Gravedigger of the Fallen Kingdom RAW novel - Chapter 201
제201화
스칼렛 아르젠이 뒤로 물러나고 그 자리를 마르시아가 올라왔다.
스칼렛의 승리를 지켜보며 심기일전한 듯 진지한 표정으로 상대를 고르고 대련을 시작했다.
쿵!!
대련장 밑으로 떨어진 쇄비류의 기사.
“마르시아. 세 번째 시험을 통과했다.”
스칼렛에 비해 온몸이 만신창이가 된 그녀가 거친 숨을 몰아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두 입회 후보자는 검의 각인을 받거라.”
검의 각인은 두 사람의 애검을 가문의 대장장이에게 맡겨 새기게 된다.
감격에 찬 얼굴로 검을 건네는 마르시아.
스칼렛은 검을 잠깐이라도 사용하지 못한다는 것에 불만스러움이 얼굴에 슬쩍 드러났지만, 그것을 뭐라 하는 이는 없었다.
“두 사람은 유파를 정하라.”
이미 스칼렛은 뇌신류에 들어가겠다 거의 대놓고 선언한 상황이었고, 마르시아만 아직 의견을 표출하지 않았다.
“뇌신류로 갈게요.”
스칼렛이 먼저 말했다.
“그리하도록.”
레오노라가 허락하자, 그녀가 씩 웃으며 렌의 뒤편으로 훌쩍 올라갔다.
“수장님이니 이제 다음 기술을 알려주겠지?”
“뭐 맡겨 놨습니까?”
“내가 저번에 너 지켜준 건 잊었나 봐?”
“……가르쳐 드리려 했습니다.”
뇌신류에 스칼렛이 들어와서 좋기야 하지만 렌은 뭔가 더 피곤해질 것 같은 예감이 들어 한숨을 내쉬었다.
“저는…….”
그때 마르시아가 입을 열었다. 그에 따라 렌과 스칼렛의 시선도 돌아간다.
“뇌신류로 가겠습니다.”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
렌은 속으로 쾌재를 불렀고, 스칼렛은 재밌는 장난감이라도 보듯 웃었으며, 다른 유파 기사들의 표정은 굳어졌다.
그럴 만도 한 것이, 이번 검의 입회식에서 결론적으로 입회자가 된 모든 기사가 뇌신류로 간 셈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사실을 문득 알아챈 몇몇 이들이 렌을 바라보며 그의 의도를 의심했다.
‘설마……, 검의 입회식 한참 전부터 계획하고 있던 것이었나!’
울리히는 렌이 잠들어 있는 사이 그에 대한 뒷조사를 매우 철저하게 했다.
근 2년간 렌이 브릴런트에서 보인 행적들.
그리고 굵직굵직한 사건들 틈에 대부분 렌이 연관되어 있었다.
마치 계획적으로 사건이 터질 곳들에만 일부러 나타나기라도 한 것처럼.
그것도 아니라면 스스로 사건을 불러일으킨 것과 다름없는데, 사건이 일어난 것들을 보면 그건 실상 불가능했다.
‘그간 알아본 바로는 렌 아르젠은 매우 계획적인 인물이다.’
어릴 때, 몇 년간 무능력함을 드러내며 가문의 멸시를 받고 자연스럽게 가문을 빠져나와 브릴런트로 향했다.
그리고 어느 날 완전히 각성한 모습으로 가문에 나타나 단번에 뇌신류를 설립하고 가문의 후계자 자리를 꿰찼다.
도저히 믿기지 않지만, 만약 그것이 그 어린 나이에서부터 계획된 것들이라면?
마치 미래를 속속들이 알고 있는 것처럼, 그가 시대의 흐름을 읽는 눈을 가지고 있는 것이라면?
‘……애초에 스칼렛과 마르시아조차 사전에 준비된 장기 말이었군. 이제야 확신이 든다.’
마르시아가 뇌신류에 들어온다고 함에도 눈 하나 깜짝 않고 태연한 렌 아르젠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소름이 돋았다.
무서운 인물이었다. 경이로운 검의 재능과 더불어 비상한 머리까지.
만약 렌 아르젠을 적으로 두게 된다면 중무류는 살아남을 수 있을까?
그의 의도대로 가문의 기사들 사이에 얕은 파문이 파도처럼 퍼지고 있었다.
고작 2명뿐이었지만 입회 후보자 모두가 뇌신류로 들어갔다.
그것도 직계인 스칼렛까지. 가문의 기사들이 혹하기에는 충분한 상황이었다.
‘……그러고 보니, 이미 쇄비류는 수장의 목이 날아갔군.’
다음은 어디 차례가 될까. 중무류? 비호류? 그것도 아니라면 원로원일까?
“검의 입회식은 이만 마치겠다.”
플레처가 자리에서 일어서며 입회식의 끝을 선언하며 돌아나간다.
수많은 이들의 시선이 뇌신류가 있는 곳을 향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모두 직감했다.
다음 검의 입회식에 역대 최고로 많은 입회 후보자들이 참여할 것이라는 걸.
“렌!”
리안이 입회장을 나가는 렌을 붙잡았다.
“너도 봤지?”
그가 무엇을 말하는지 알아챈 렌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입회자의 자격을 얻은 이들도 검의 입회식에 다시 참여할 수 있어. 입회자의 자격을 걸고.”
“저도 알고 있습니다.”
“생각보다 많은 이들이 입회식에 참여할 거야.”
렌도 조금 전 기사들의 시선을 느끼고는 그리 생각했다.
생각보다 더 많은 이들이 뇌신류에 관심을 보이고 있었다.
“하지만 아마 지금은 흔들리더라도 곧 타 세력의 단속이 들어가면 대부분 그 생각을 접기는 하겠지.”
“그래서, 그 생각을 유지하도록 계속해서 계기를 만들라는 겁니까?”
“그래. 너는 말이 잘 통해서 좋단 말이야. 아르한 그 자식은 세 번, 네 번을 설명해야 귓구멍에 들어갔는데.”
리안이 한 말처럼 뇌신류에 몰린 관심을 좀 더 유지할 필요는 있다.
1년 뒤까지 그게 유지가 된다면 좋겠지만, 사실 그것은 어렵다. 하지만 반년만이라도 이 관심이 유지가 된다면 다음 검의 입회식 때는 확실한 결과가 나올 터.
“그래서 형님과 몇몇한테 뇌신류의 기술을 바로 가르쳐볼까 합니다.”
“오……! 그거라면 충분하지!”
리안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입회자들은 이미 유파를 정한 상태라 다른 유파의 검술을 배울 수는 없지만, 입회자가 아닌 이들은 얼마든지 여러 유파의 검술을 배울 수 있다.
그럼에도 입회식에 참여하여 유파에 들어가는 건 그렇게 해야 각 유파의 진짜 검술을 알려주기 때문이다.
“형님도 내년에는 입회식에 참여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야지.”
“제가 도와드리죠.”
“고맙다.”
그도 아르젠의 피를 이었기에 검의 재능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워낙 가족들 중에 괴물들이 많고 아르젠 자체에도 뛰어난 검사들이 많아, 묻혀 있을 뿐.
‘렌이 도와준다면 충분히 올라 갈만하다.’
“근데 제가 언제까지고 가문에 있을 수는 없습니다.”
“그거야 나도 알고 있다. 그래서 그 대안으로-.”
“그래서 수장에 앉힐 사람을 생각해봤습니다.”
“……뭐? 수장에? 누구를?”
렌이 주변으로 기를 퍼트렸다.
저택의 뒤뜰로 오기는 했으나, 아직 대낮인지라, 활보하는 이들이 있었다.
그래서 뜸을 들이다가 아무도 없는 지금 말을 꺼냈다.
“에덴 형님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뭐라고? 내가 지금 제대로 들은 거 맞지?”
“예.”
리안이 어처구니가 없다는 얼굴로 이마를 부여잡았다.
기껏 뇌신류를 만들어 놨더니 에덴한테 갖다 바치겠다니.
“잠에서 깬지 벌써 며칠 지났는데? 아직 정신을 못 차렸나?”
“멀쩡합니다.”
“근데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야?”
“지금 당장 에덴을 수장의 자리에 앉히겠다는 건 아닙니다. 제가 소가주에 임명된다면. 그때, 그를 불러올 생각입니다.”
리안이 흥분을 가라앉히고 차분하게 에덴이 뇌신류의 수장이 됨으로써 얻어질 이득과 손해를 계산했다.
“너로 인해 드러났지. 에덴 형님이 뇌신류의 검술을 쓴다는 걸. 에덴 형님이 뇌신류로 온다면 좋은 일이야. 엄청난 전력이지. 맞아. 근데……, 그 사람이 우리 편일 경우에 한해서야.”
리안은 아무리 렌이 소가주라는 확실한 명분을 얻는다고 해도 에덴이라는 시한폭탄을 뇌신류에 들이고 싶지 않았다.
기왕이면 렌이 소가주에 오른 순간 그를 숙청해주길 바랐다.
‘에덴 형님은 렌이 소가주가 되었다고 포기할 인물이 아니다.’
렌은 모르겠지만 그는 보았었다.
어린 시절, 에덴이 뇌신류의 유산을 통해 뇌기를 얻기 전.
블레어와의 대련에서 질 뻔한 이후로 눈빛이 달라졌던 것을.
분노와 열등감으로 휩싸인 그의 눈빛 속에서 리안은 분명 짙은 살기를 보았었다.
블레어가 이후 극도로 나태한 모습을 보이며 가주에게 크게 깨지지 않았었다면.
그녀의 입지가 그 일로 수직 낙하하지 않았었다면.
‘분명 에덴 형님은 블레어 누님을 죽였을 거다.’
단지 자신을 위협하는 재능을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그녀가 가주의 자리에 전혀 관심이 없다는 걸 알면서도 말이다.
블레어 이후 그만한 재능은 아르한에게서도 나타났지만 이미 에덴과의 격차가 크게 벌어져 있던 상황.
더구나 뇌기까지 얻어 승승장구하던 에덴에게 아르한과 블레어는 더 이상 경쟁자가 아니었다.
그렇기에 살아남은 것이다. 적어도 리안을 그렇게 생각했다.
“렌. 정 네가 뇌신류를 이끌기 힘들다면 내가 어떻게 해서든 경지를 끌어올려서-.”
“아니요. 뇌신류는 에덴 형님이 맡아야만 합니다.”
이렇게까지 말하는 데도 단호한 렌의 태도에 리안은 생각을 바꿨다.
렌은 아르한이나 다른 형제들처럼 생각이 없는 녀석이 아니다.
그가 하는 행동의 대부분은 이미 머릿속에서 계획을 거쳐 나오는 것들.
아마 이것에 대해서도 생각하는 게 있을 터였다.
우선 그것을 들어야 했다. 그래야, 반박을 하든 설득을 하든 할 테니.
“……이유는?”
“뇌신류의 수준을 최고까지 끌어올리기에는 에덴 형님만 한 인물이 없습니다.”
“네가 있잖아.”
“저는 사대 유파 전체를 총괄해야 합니다.”
“역대 가주들 대부분이 하나의 유파를 정했다. 아버지도 그렇고. 근데 네가 그 규율을 깨겠다고?”
“아버지도 소속만 중무류일 뿐, 실상 다른 힘을 쓰고 계십니다.”
“뇌신류는 너를 지지할 기반이 되어야 한다. 근데 에덴 형님이 수장 자리에 오면 그 지지기반이 흔들릴 수 있어.”
리안의 말에 렌이 고개를 끄덕였다.
애초에 어느 정도 예상한 반응이었다.
그저 미리 충격을 주려 한 것이다. 나중에 이것을 갑자기 툭 던져버리면 반발이 매우 클 테니까.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았으니 천천히 생각해 보겠습니다.”
“그래. 잘 생각해봐라.”
렌은 리안과 헤어지고 다시 검의 무덤으로 향했다.
‘뇌신류…, 진짜 그 힘을 온전히 익히려면 2대 가주의 도움이 필요해.’
하벤베르크는 당연하게도 사대 유파의 검술을 알지 못한다.
그렇기에 렌 또한 뇌신류를 듣기만 했을 뿐, 제대로 배워본 적이 없었다.
여태 그가 사용한 뇌신류의 검술은 그저 하벤베르크의 검술을 토대로 새롭게 만들어낸 것이었으니.
‘체계적으로 가르치려면 나부터 알아야겠지.’
적어도 뇌신류 1검 정도는 확실히 가르치고 움직여야 한다.
“반드릭 가주님.”
– 왔구나.
아르젠의 2대 가주이자, 사대 유파의 창시자인 반드릭 아르젠.
하벤베르크 검술을 익힌 렌의 잠재력을 인정하고 뇌신류를 되살린 그를 반드릭은 매우 좋게 보고 있었다.
“뇌신류의 검술을 배우고 싶어 왔습니다.”
– 좋다. 알려주마. 뇌신류가 무엇인지. 그리고 그 검술이 어떠한 잠재력을 가지고 있는지 말이다.
[강령 – 반드릭 아르젠]“잘 보아라.”
렌의 몸으로 들어온 반드릭이 초혼을 하늘 위로 치켜들었다.
“아르젠 검술은 자연의 힘을 빌리는 검술. 특히나 뇌신류의 검술은 그 어느 유파보다 강력하고 치명적이다.”
파지직……. 파직!
초혼의 검에 모여드는 뇌기가 검신에 극도로 압축되어 시퍼런 전광을 뿜어낸다.
“잘 보아라. 제1 검은 눈 깜짝할 새에 상대에게 치명상을 입히거나 즉사시키는 기술이다.”
팔을 뒤로 당김과 동시에 응축된 뇌기의 덩어리가 폭발하며 찌르기를 가속한다.
아르젠 검술 뇌신류
– 제1 검
– 뇌격일섬(雷擊一閃)
소름 돋는 파열음과 함께 시린 섬광이 하늘 저편을 비추며 일직선으로 나아갔다.
눈 깜짝할 새에 구름 사이로 사라진 뇌전.
하지만 허공에 미세하게 남은 뇌기의 잔흔과 구름의 갈라진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다.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 쏘아냈기에, 그 위력을 정확히 알 수는 없었지만, 반드릭이 그의 몸으로 펼친 기술이기에 이것이 얼마나 말도 안 되는 기술인지 알 수 있었다.
– 뇌기를 그 짧은 순간에 몇 번이나 가속한 겁니까?
“총 9번. 이 몸으로는 이게 한계군. 이론상 최대 10번까지 가능하다.”
순간적으로 뇌기의 입자들을 응축하고 부딪혀 폭발력과 속도를 극대화하는 방법.
이론적으로는 누구나 할 수 있다지만, 실제로 이것을 적용시키는 건 완전히 다른 문제다.
그것을 지금 반드릭은 아무렇지 않게 9번이나 성공시켰다.
– 한 번만 더 보여주십시오.
“그러지.”
반드릭이 또 한 번 하늘에 섬광을 쏘아 보냈다.
– 어……, 한 번만 더.
“그러지.”
파지직!!
–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가능하겠습니까?
“……좋다.”
벌써 하늘에 다섯 줄기의 길이 만들어졌다.
그제서야 렌은 고개를 끄덕이곤 강령을 풀었다.
– 할 수 있겠느냐.
“해보겠습니다.”
반드릭이 이 몸으로 펼쳐낸 9번의 가속.
‘뇌격일섬이라…….’
그가 다섯 번의 뇌격일섬을 뿌리는 동안 렌은 철저히 그 감각을 느끼고 익히는 데에 집중했다.
렌은 그가 가진 직관의 재능을 믿었다.
파지직!
검신에 휘감기는 뇌기를 여러 개의 점으로 끌어모아 단번에 터트린다.
손끝을 타고 찌릿하게 느껴지는 뇌전.
콰과과과과과과광!!
실제로는 들리지 않는 8번의 폭발음이 귓가를 맴돌며 새하얀 섬광을 흩뿌렸다.
“후우…….”
– 내가 잘못 보지 않았군.
반드릭은 만족스러운 듯 말했지만, 오히려 하벤베르크의 훈련방식 익숙해져 있기 때문일까.
렌은 불만스러운 듯 한숨을 내쉬었다.
“조금만 쉬고 다시 해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