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ravedigger of the Fallen Kingdom RAW novel - Chapter 220
제220화
불바다가 된 에스트라의 저택.
저택의 입구에선 가문의 수호 기사 둘과 흑마법사가 치열한 접전을 벌이고 있었다.
‘젠장, 프레이 누님의 모습은 안 보여.’
저택을 둘러싼 이 불의 장막의 위력도 수준급이다.
웬만한 기사들은 뚫기도 전에 생을 마감할 정도로.
‘저 흑마법사는……, 분명 브릴런트 습격에 왔었던 그 마법사?’
얼굴의 절반이 녹아내려 뭉개진 저 모습을 잊을 수 있을 리가.
클레타 숙부님과 싸우다가 도망친 그 흑마법사가 분명했다.
검은 액체를 다루는 저 흑마법도 그 당시에 썼던 마법과 유사하다.
하지만 그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이 진해진 마기와 마력.
‘시간이 없어. 저기는 우선 수호기사들에게 맡겨야겠군.’
지금의 상황을 보면 2:1의 상황임에도 흑마법사가 싸움의 흐름을 주도하고 있었다.
이대로 가다간 수호기사들이 질 것은 뻔한 결과.
하지만 어느 정도는 버틸 수 있겠지.
‘저택이 그렇게 크지는 않다. 안쪽에 폭음이 들리는 걸로 봐선 이미 흑성이 진입했다는 거겠지.’
프레이를 구하고 될 수 있으면 장부도 챙겨와야 한다.
놈들이 싸우고 있는 정문의 반대쪽.
하늘 높이 치솟아 오른 불의 장막.
사방에서 흘러오는 비릿한 피 내음에 혈검이 자꾸만 발광하듯 진동한다.
‘그래, 이번엔 네가 날뛰어 봐라.’
혈검을 꺼내 들자, 놈이 흥분한 듯 사방에 붉은 선을 그어낸다.
심지어 불의 장막에서조차 보인다.
그 흐름을 끊어낼 수 있는 선들이.
파지직!!
아르젠 검술 뇌신류
– 보법
– 뇌인(雷引)
타앗!
내부에서 휘몰아치는 마력의 흐름들을 모조리 베어내자, 드러나는 활로(活路).
장막을 뚫고 안쪽으로 진입하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어디냐.’
기를 흘려보내고 내부에 느껴지는 기척을 파악한다.
가장 많은 진동이 울려 퍼지는 곳.
‘저기다.’
저택의 가장 위쪽.
귀술 – 벽 붙기
타다닷.
뜨거워진 벽면을 즈려밟고 뛰어올라 단번에 꼭대기의 창문을 부수고 들어간다.
복도에 널브러진 시체들과 여기저기 묻어 있는 핏물들.
그리고 안쪽에서 들려오는 미세한 목소리.
“으윽!”
프레이가 흘리는 비명이었다.
소리의 진원지로 가자, 방문은 부서져 있고 내부는 난장판이다.
양팔이 뽑힌 남자와 바닥에 쓰러져 상처투성이로 피를 줄줄 흘리고 있는 프레이.
그리고 그녀를 발로 밟으며 칼끝을 겨누고 있는 남자.
까득-
나도 모르게 이가 갈렸다.
지금까지 프레이를 향한 고민들이 지금 이 순간만큼은 완전히 잊혀졌다.
그녀에 대한 의심과 실망은 분노라는 감정에 휩쓸려 떠내려간 지 오래.
프레이가 막상 저런 꼴이 된 것을 보니 피가 거꾸로 치솟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호오, 또 왔군. 너도-.”
그의 말이 들리지도 않았다.
그저 그를 프레이에게서 떼어놔야겠다는 생각만 들 뿐.
후웅―! 콰앙!!
놈을 걷어차자 볼썽사납게 바닥을 구른 남자가 벽에 처박혔다.
그리고 프레이가 놀란 눈으로 나를 바라보다 어설프게 웃었다.
“히…, 와줬구나? 렌.”
“미안합니다. 누님. 좀 쉬고 계십시오.”
“렌…, 부탁이 있는데. 하나만 들어줄래?”
“뭡니까?”
“저분도 지켜줄 수 있어?”
책상에 기대어 정신을 잃고 쓰러진 남자.
아직까지 살아 있다는 게 용할 정도로 처참한 몰골이었다.
에스트라 영주인가.
“그러죠.”
“고마워…….”
그 말을 끝으로 프레이도 눈을 감았다.
“이…, 망할 새끼가…!!”
눈깔이 뒤집혀 분노를 쏟아내는 남자가 마기를 끌어올리며 검을 치켜든다.
“넌 내가 살점을 하나하나 썰어내어 씹어 먹어주마.”
“난 그냥 죽여줄게. 네놈이랑 놀아줄 시간이 없거든.”
프레이와 영주로 보이는 남자에게는 시간이 얼마 없었다.
누님의 부탁을 들어주려면 좀 서둘러야 한다.
* * *
에스트라 저택의 정문 앞.
그 안쪽 마당에서 벌어지고 있는 치열한 전투가 끝내 마무리되어가고 있다.
“흐흐…, 아르젠 놈들이었나? 어디서 본 검술인가 했더니.”
검은 액체가 덕지덕지 달라붙은 두 수호기사가 바닥에 쓰러져 신음을 흘렸다.
마르드루크가 품에서 가면을 꺼내 자신의 흉측한 얼굴을 가리고는 지팡이를 앞으로 기울인다.
“아르젠과는 악연이 깊어서 말이지. 곱게는 못 보내주겠군.”
그의 지팡이 끝에 모여드는 검은 마력이 구체를 이루다가 쏘아지는 그 순간.
반대쪽에서 뻗어 나온 백색의 뇌전이 액체와 격돌하며 사라졌다.
“그 악연, 내가 끊어주지.”
활활 타오르는 붉은 화마 속에서 걸어 나오는 은발의 남자.
수호기사들을 향해 가볍게 뇌기를 흩뿌리자 그들을 휘감고 있던 검은 액체들이 모조리 녹아내린다.
“그 뇌기…, 에덴 아르젠인가? 거물이 나타나셨군.”
“흠. 어디서 렌 아르젠을 본 적이 있나 보지? 내가 렌이 아니란 걸 확신하는 걸 보니.”
심드렁했던 에덴의 눈에 흥미로움이 깃들었다.
“네놈이 알 거 없다.”
쿵!
힘차게 지팡이를 내리찍음과 동시에 저택을 휘감던 불의 장막이 사그라들고, 사방으로 흩어졌던 마력이 몰려든다.
“전력을 다하겠다? 그런다고 결과가 바뀔까?”
마르드루크는 대답하지 않았다.
이번 일에 아르젠이 개입되어 있다는 것도 짜증 나는데, 여기에 에덴 아르젠이 나타날 줄이야.
고작 변방 소영주의 일이다. 흑성이 개입되어 있다고 한들, 겉으로 드러난 건 그저 군사 물품의 지원뿐.
그 안에 숨겨진 진짜 비밀은 에스트라 영주조차 알지 못한다.
근데 왜 에덴 아르젠이 이곳에 있는 건가.
짧은 사색 끝에 나온 결론은 하나였다.
‘……함정이었군.’
흑성의 비밀을 꿰어내기 위한 함정.
그리고 저 실망감 가득한 표정을 본다면 아마 원하는 게 나오지는 않은 것일 테지.
제국과 아르젠이 합작이라도 한 것인가.
“눈빛이 변했군. 상황 파악이 빨라.”
에덴은 여유로웠다.
주변에 펼쳐진 마법진의 구조와 힘만 보아도 시전자의 능력을 파악할 수 있다.
기껏해야 마법사 4성 최상위 정도.
기사로 치면 상급 기사 최상위 수준일 터.
5성에도 이르지 못한 마법사 정도야 이기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래도 수확은 하나 있군. 렌 아르젠에 대해 아는 게 있다면 전부 말하는 게 좋을 거다.”
에덴이 가볍게 손목을 비틀며 자세를 숙이고 앞으로 도약했다.
아르젠 검술
– 에덴류 제1 결전기
– 번뇌(繁雷)
파지지직!!
그의 검으로 휘몰아치는 뇌전의 격류가 회오리가 되어 앞으로 쏟아진다.
바닥에서 치솟은 검은 파도가 그의 번뇌를 막아보려 하지만 역부족이었다.
파도가 꿰뚫릴 것을 대비한 마르드루크가 이중 삼중으로 보호막을 펼쳤다.
콰앙! 콰앙! 콰아아앙!!
거센 충격파가 바닥을 쓸어내며 밀려나고 주변 정원의 흙바닥이 다 뒤지어지며 흙먼지와 꽃가루가 흩날린다.
순식간에 뿌옇게 변해버린 시야 속에서 한줄기의 낙뢰가 그의 머리 위로 떨어지고.
콰아아아아아앙!!
다급히 다섯 겹의 실드를 펼쳐보지만, 끝내 실드가 모두 뚫린 마르드루크가 벼락을 맞고 온몸을 경련한다.
“크허어러러러럭!”
시꺼멓게 타 버린 로브.
하늘에서 난데없이 낙뢰를 불러낼 줄은 생각지도 못한 마르드루크가 벌벌 떨며 다가오는 괴물을 처량히 바라본다.
파각.
마르드루크의 가면이 부서져 떨어지고 그의 흉측한 맨얼굴이 드러났다.
그것을 보며 인상을 와락 찌푸리는 에덴.
상대의 반응에 마르드루크가 이를 악물며 몸을 떨었지만 할 수 있는 건 없다.
“가면은 좀 더 튼튼한 걸로 들고 다니지 그랬나. 못 볼 것을 봤군.”
“……죽여라.”
“그럴 수는 없지. 아직 제대로 된 질문 하나 던지지 못했으니 말이야.”
에덴의 눈가에 탐욕이 일렁이기 시작했다.
“자, 말해봐. 네가 아는 렌 아르젠에 대한 모든 것을.”
눈가를 경련하며 에덴과 렌의 관계를 유추하던 마르드루크가 갑작스럽게 변하는 상공의 기류를 감지하고 고개를 치켜든다.
에덴 또한 표정이 확 굳어져 위를 보았다.
하늘을 뒤덮은 구름들이 일제히 갈라지고 그 위에서 검은색의 무언가가 엄청난 속도로 떨어져 내린다.
후우우우웅!!
눈이 번쩍 뜨인 에덴이 다급히 검을 치켜들며 뇌전을 끌어올렸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앙!!!
“끄으으윽!!”
신음을 흘리며 얼굴에 핏줄을 잔뜩 세운 그가 팔을 바들바들 떨었다.
커다란 굉음과 함께 바닥이 뭉개지며 크레이터가 생기고, 충격파가 파도처럼 밀려나 주변 지형지물을 죄다 무너뜨렸다.
허공으로 퍼지는 뇌전 가닥들이 마기와 뒤엉켜 공간에 번져간다.
시뻘건 불똥을 튀기며 물러난 둘.
바닥을 긁으며 뒤로 주르륵 밀려난 에덴이 이를 악물며 눈앞의 괴물을 노려본다.
“에덴 아르젠? 제법이야. 한 번에 짓뭉갤 생각으로 휘두른 공격이었는데. 이걸 버텨내다니.”
어깨 아래까지 내려오는 치렁치렁한 검은 머리.
비늘로 뒤덮인 듯한, 마치 철제 장갑을 쓴 것 같은 오른팔.
보랏빛으로 물든 피부색과 금빛으로 빛나는 오른 눈.
“넌… 누구지?”
도저히 인간으로 보기 힘든 그 모습에 에덴조차 표정 관리를 하지 못했다.
“다, 다, 단장님을 뵙습니다!!”
마르드루크가 남자를 보며 황급히 몸을 조아리며 고개를 숙였다.
“일어나라, 마르드루크.”
“단장?”
에덴의 머릿속이 복잡하게 돌아갔다.
흑성의 일원들이 단장이라는 호칭을 쓰는 것을 처음 들어보았기 때문이었다.
‘단장이라면 저놈들의 진짜 수장인가?’
방금 보인 놈의 무위를 생각하면 충분히 일리가 있었다.
기존에 간부라는 놈들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의 힘.
그리고 저 괴랄한 겉모습까지.
순간 지상에 강림한 악마인가 했지만, 악마라고 하기에는 무언가 그 분위기가 조금 달랐다.
정신은 인간인데 신체만 악마인 것 같은 느낌이랄까.
“네가 흑성의 수장인가보군.”
“단장이라고 불러줬으면 좋겠는데?”
그의 여유 넘치는 모습에 눈가를 씰룩이는 에덴.
“언제까지 여유를 부릴 수 있을지 보겠다.”
조금 전 마르드루크와 싸울 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긴장이 됐다.
어쩌면 이곳에서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쿠구구구구궁.
그가 벼락에 뇌기를 실어 하늘로 보내자 주변의 기상이 바뀌며 창공이 검게 물들기 시작했다.
“고대의 검인가? 권능을 담고 있군.”
“뭘 안다고 지껄이는 거냐.”
“너보다는 많이 알지. 그리고 그 검이 네게 얼마나 과분한지도 말이야.”
순식간에 몰려드는 먹구름과 뇌전.
뇌성이 쏟아지고 구름 사이로 전류가 넘실거리기 시작한다.
“죽고 나서도 그 입을 나불댈 수 있는지 보지.”
“큭, 차라리 잘 됐어. 플레처, 그 괴물을 죽이기 전에 자식 놈들부터 좀 죽여놔 볼까? 그놈 표정이 어떨지 궁금하군.”
에덴이 검을 치켜들자 벼락으로 몰려드는 뇌기가 사방으로 새하얀 전광을 뿜어내며 공간을 뜨겁게 달구고.
단장의 오른손에 시꺼먼 마기가 모여들어 에덴의 벼락과 맞부딪힌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앙!!
* * *
분노에 휩싸인 중년의 남자가 렌에게 달려들었다.
묵직하게 스텝을 밟으며 사정없이 휘둘러 치는 검격.
카앙!!
하지만 속도도, 힘도, 기술도 모든 게 렌에 비해 부족하다.
“크윽!”
서걱―! 촤악!!
단번에 왼팔이 떨어진 그가 비틀거리며 뒷걸음질 쳤다.
“다음엔 목이야.”
“으아아아아아!!”
그가 믿을 수 없다는 듯 다시 한-번 달려들지만 달라지는 건 없었다.
서걱! 툭.
바닥으로 떨어진 머리통이 데구르르 굴러 에스트라의 앞에 멈춰 섰다.
그 감각에 슬며시 눈을 뜬 그가 자신에게 다가온 렌을 보았다.
“당…신은…….”
“이게 당신 팔입니까?”
그가 동공을 떨었다.
눈앞의 남자가 자신의 팔을 절단면에 갖다 대더니 황금빛 신성력을 뿜어냈기 때문이었다.
“렌…, 아르젠?”
저 괴물을 단번에 베어버리는 검사가 수호기사 따위일 리가 없었다.
더구나 아르젠에서 팔을 갖다 붙일 수 있을 정도의 신성력을 쓸 수 있는 이는 렌 아르젠밖에 없으니.
“시끄럽다.”
갑자기 바뀌어버린 말투.
놀랍도록 빠르게 회복되는 감각.
‘이게…, 가능하다고?’
정신도 점점 맑아졌다.
소문으로만 듣던 게 사실이었던가.
렌 아르젠이 교황급으로 신성력을 다룰 수 있다는 사실이.
“됐다. 떨어진 지 얼마 되지 않아서 가능했던 거니, 앞으론 팔 간수 잘해라.”
잠깐 생각에 잠긴 사이 양팔이 원래대로 돌아왔다.
“아, 알겠소.”
그가 감격에 겨울 새도 없이 렌이 프레이에게로 다가갔다.
자신을 지키려다 피투성이가 된 프레이를 보며 에스트라가 다급히 다가간다.
“제발, 이분을 살려주시오!”
“너보다 멀쩡하니 호들갑 떨지 말아라.”
“아…….”
렌의 신성력이 그녀의 몸을 감싸자 순식간에 자잘한 상처들이 회복되고 몸이 원래대로 돌아간다.
불에 지진 듯 뜨겁게 타오르던 성흔의 광채가 꺼지고.
[강령이 풀립니다.] [묘지기의 석판이 해제됩니다.] [영혼 부르기가 취소됩니다.]정신을 되찾은 프레이가 눈을 뜬다.
“렌?”
“일어나십시오.”
“괘, 괜찮소?”
“괜찮…아요. 에스트라 님 팔이?”
“이분이 붙여주셨소.”
그 말에 그녀가 놀란 눈으로 렌을 보았다.
다행히 두 사람 모두 멀쩡하게 구해냈지만 렌의 표정은 오히려 심각하게 굳어졌다.
“……장부는 어딨습니까?”
“저기, 금고에 숨겨두었소.”
에스트라가 다급히 일어서며 책상으로 간다.
렌은 창문으로 가서 하늘을 보았다.
맑았던 하늘에 몰려드는 먹구름과 뇌전 그리고 요동치는 기의 흐름.
‘저건 에덴 형님의 벼락이 불러낸 뇌전이다. 형님이 왜 여기 있는 거지?’
더구나 벼락의 힘을 꺼낸다는 건 에덴이 전력을 다하려 한다는 뜻.
상황이 심상치 않았다.
“빨리 꺼내십시오. 아무래도 일이 이상하게 흘러가는 것 같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