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ravedigger of the Fallen Kingdom RAW novel - Chapter 81
제81화
다짜고짜 찾아와서는 대뜸 싸움부터 걸어오는 저 여인의 이름은 칼리 아르젠.
아르젠 가문에서도 드물게 쌍단검을 쓰는 검사이다.
아직까지 단검을 빼 들지 않은 것을 보면 정말로 싸우자고 온 것은 아닌 것 같다.
‘음……, 클레타 숙부가 보낸 건가?’
방계인 그녀가 여기 찾아올 이유는 하나밖에 없다.
클레타 숙부의 전언을 전달하기 위해.
그러니 저리 불만 가득한 얼굴로 시비를 트는 것이겠지.
‘아르젠이 나 정도의 가벼운 명성에 겁먹을 이들은 아니니까.’
대륙 전체를 울리는 아르젠의 이름에 비하면 지금 내가 가진 명성은 새 발의 피일 뿐.
하물며 그 소문마저도 명확한 게 아닌 뜬구름 잡는 소리들이 대부분이다.
더구나 내 유년 시절을 가문의 사람들은 직접 보았으니, 그러한 소문들이 더 믿기지 않는 것은 당연한 일일 터.
“한 판 붙자니깐?”
“붙어서 지면 어떡할 건데?”
“이길 거니까 상관없어. 내가 너한테 왜 져?”
이 녀석도 어지간히 막무가내라는 게 단 몇 마디 한 것만으로도 느껴질 정도다.
언제부터 아르젠에 이리 바보들이 많았었지?
아니, 그런 놈들이니 지금 브릴런트에 처박혀 있는 건가?
“그럼 붙을 이유가 없는데.”
“내가 왜 너 때문에 여기까지 와서 전령 역할을 해야 하는데? 그 이유면 충분하지! 짜증 나잖아?”
“그건 네 사정이고.”
“개새끼. 그래서 안 붙어준다고?”
“그래.”
“고블린 발싸개 같은 새끼.”
“뭐…, 뭐?”
“드레이크 콧구멍에 후벼질 놈 같으니라고.”
“…….”
– 이야! 저 친구 아주 입이 거칠구만? 역시! 아르젠이야.
포터가 박수치며 감탄을 흘렸다.
아르젠을 옹호하고 싶지는 않지만, 아무리 그래도 아르젠의 이미지가 저렇지는 않지.
“아주 막 나가는구나?”
“안 붙어준다며? 어쩔 건데?”
정말 한 판 붙어서 저 버르장머리를 고쳐줄까 했지만 참았다.
붙어주면 오히려 저 녀석의 뜻대로 휘둘리는 것 같아 내키지 않았다.
“숙부님 전언이나 전달해.”
“칫.”
“칫?”
“저택으로 오래. 보여줄 게 있다고.”
분명 지난번에 자신의 능력을 보여주겠다며 떠났었다.
그 이후로 아무런 연락이 없길래 뭐하나 했더니, 이제야 그것을 보여주려는 건가?
“언제?”
“오늘.”
“알겠다. 가라.”
내가 귀찮다는 듯 손을 휘휘 저으니 맘에 안 드는지 그녀가 또 욕을 뇌까리며 몸을 돌렸다.
아주 입에 욕을 달고 사는 녀석이다.
‘그나저나, 뭘 준비하신 거지?’
숙부님이 비록 아르젠의 가주에게 밀려 브릴런트에 거주하고 있다지만, 그 영향력은 생각 이상으로 강하다.
그가 정확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하나, 적어도 내게 적대적이지 않다는 건 느껴졌다.
이번에 가게 된다면 그의 생각을 알 수 있겠지.
* * *
브릴런트에 있는 화려하고 고급스러운 저택은 아르젠의 사람들이 머무는 곳이다.
렌은 일과를 끝내고 칼리의 안내에 따라 저택에 도착하여 클레타의 환대를 받았다.
“보여줄 게 있다고 들었습니다.”
“성질도 급하군. 거기 놓여 있는 서류를 봐라.”
정갈하게 놓인 서류 몇 장을 집어 든 렌은 처음부터 꼼꼼하게 그 내용을 읽어 내려갔다.
“이건…….”
첫 장을 다 읽고 넘기기도 전에 그 내용의 핵심을 파악한 렌이 눈을 부릅뜨고 클레타를 보았다.
별거 아니라는 듯 태연한 표정으로 고개를 들어 올린 클레타.
렌은 읽던 서류를 마저 읽어갔다.
‘어떻게 이리 시기가 딱 맞아떨어질 수가 있지?’
이 안에 담긴 내용은 1왕자인 레브와 추밀원의 변태 늙은이인 퍼번트가 뒤에서 결착한 증거였다.
서로의 뒷거래 장부.
뇌물을 주고받으며 추밀원의 의견을 조작하고 국왕을 조종하려던 내용의 전문이었다.
‘이거라면 아무리 모리스 국왕이라 할지라도 레브를 포용할 수 없겠지. 거기다가…….’
로자리아 왕국의 북부, 아인 바이에르 성채의 지원.
혹독한 북부의 추위를 버티며 밀려 내려오는 북부 괴수들을 막아내기 위해 브릴런트는 꾸준하게 로자리아 왕국과 외교를 하여 지원하곤 했다.
그리고 그 외교 자리에 루이즈를 보낸다는 계획이 여기 적혀 있었다.
“회담에 루이즈 왕자님을 보낸다라……. 함정이군요.”
“맞아. 렌, 너라면 바로 눈치챌 줄 알았다.”
여유롭게 차를 한 모금 마신 클레타가 가소롭다는 듯 웃음을 짓는다.
강자에게서나 흘러나오는 여유가 그 웃음 속에 담겨 있다.
모든 상황을 조율하고 통제할 수 있다는 자신감.
이미 그의 머릿속에 계획이 대부분 짜여 있음을 렌은 직감했다.
“레브 왕자는 루이즈 왕자님의 성격을 알고 그리 한 것이겠고요.”
“그렇지. 지난 사막 원정을 레브와 알란이 합심해서 보냈으니, 이번에도 똑같은 짓을 할 수 없다는 걸 안 거지.”
“로자리아와의 중요한 회담 자리에 루이즈 왕자님을 보내주어 호의를 베풀었음을 보이고, 루이즈 왕자가 스스로 북부로 가게 만들겠다……. 뭐, 이런 계획이겠네요. 거기에 더해 루이즈 왕자가 자리를 비운 사이 그의 세력에 어떠한 압력을 가할 테고 말이죠.”
“정확하다. 하지만 우리가 그 계획을 알고 있는 이상 다 부질없는 생각일 뿐이지.”
클레타가 가져온 이 정보는 정말 그들의 내부 깊숙이 들어가 있는 인물이 아닌 이상 알아내기 힘든 정보였다.
그만큼 적들에겐 치명적이라는 뜻.
그간 무얼 하고 있나 했더니, 이러한 준비를 하고 있을 것이라곤 렌은 전혀 생각도 못 했었다.
도대체 어떻게 찾아낸 거지? 직접 이러한 계획을 꾸민 퍼번트나 레브가 아닌 이상 알기 힘든……, 설마?
“퍼번트는 욕심 많은 늙은이지. 권력을 쥐고 있는 이들이라면 다들 그 늙은이의 뒷돈을 받지 않은 이가 없을 거다.”
“그 안에 숙부님도 계시고요?”
“그래. 그 늙은이에게 아르젠은 잡아야 할 동아줄이겠지만……, 우리에게 퍼번트는 언제든지 쳐 죽일 수 있는 뱀 새끼일 뿐이지.”
고저 없는 무덤덤한 목소리.
역시나 클레타 또한 퍼번트와 레브의 계획에 동참하기로 되어 있던 거다. 그리고 그 일시적 동맹을 렌으로 인해 깨버리려는 것이었고.
클레타에게 이 정도의 일은 딱히 중요한 일도, 힘든 일도 아니었다.
렌은 새삼 아르젠의 힘이 어느 정도인지를 체감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떻게 하고 싶으냐?”
“……퍼번트는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루이즈 왕자님의 회담……, 그건 우선 기다려 보시죠.”
“무슨 생각이 있나?”
“예.”
“좋아. 이 건은 이걸로 마무리하는 걸로 하지.”
그리 말한 클레타가 렌을 지긋이 본다.
“그래서 말인데.”
“예.”
“그 월격이란 기술, 나도 좀 배울 수 없나?”
“……예?”
“크, 큼.”
헛기침을 하며 다른 곳을 바라보는 클레타.
렌은 멍하니 그를 보다가 피식 웃음을 흘렸다.
“다음에 데케인에 한 번 더 오시죠. 그때 가르쳐 드리겠습니다.”
“정말인가?”
말은 꺼냈지만 정말로 들어주리라 생각 못 했던 클레타가 눈을 휘둥그레 뜨고는 물었다.
“예.”
* * *
“단장님! 요즘 너무 바쁘신 거 아닙니까?”
“폴의 여동생이 단장님을 오매불망 기다리고 있답니다! 하하하!”
“단장님이 역시 인기가 많으셔?”
“하긴 내가 여자였어도 반했을 거야.”
“저 쌀쌀맞은 성격만 아니면 여자들이 줄을 설 텐데 말이지. 아쉽구만.”
훈련을 끝마치고 쉬던 금사자 기사단원들이 렌을 보고는 장난스레 말했다.
“시끄럽다.”
“단장님, 여동생분께서 아까 단장님을 찾아오셨습니다.”
“어? 레시아가?”
“예.”
“그 단장님의 여동생분 말이야? 엄청 미인이라고 하시던데! 도미닉! 너 이 자식 혼자만 단장님 여동생분 보기냐?”
“야! 너 레시아 님에게 조금이라도 수작 부렸으면 내가 가만두지 않아.”
“이 또라이 새끼들아! 내가 너희들인 줄 알아?”
“시끄러! 5분 휴식하고 다시 훈련 시작할 거다. 도미닉, 앤드류.”
“에!”
“옙! 단장님! 부르셨습니까?”
유독 기합이 바짝 들어간 앤드류를 불러 세운 렌이 그의 어깨를 툭 치며 말했다.
“너희 둘이 알아서 훈련 잘 진행해. 나 몰래 쉬다가 걸리면 각오하고.”
“예!”
“제가 그런 놈들 있으면 어떻게든 정신머리 고쳐놓겠습니다!”
“그, 그래.”
건방지게 대들 때는 언제고, 갑자기 태도를 확 바꾼 앤드류의 모습에 렌이 어색하게 대답하고는 떠났다.
‘레시아가 웬일이지?’
렌은 곧장 레시아가 있는 행정 집무실로 갔다.
“오셨습니까?”
자리에 앉아서 무표정한 얼굴로 서류들을 들여다보던 행정보좌관이 렌에게 인사했다.
렌도 가볍게 묵례하고는 레시아를 찾았다.
“레시아는 어딨습니까?”
“잠깐 나갔습니다. 아래 뒤뜰로 가면 있을 겁니다.”
“감사합니다.”
창밖을 보니, 레시아가 천천히 뒤뜰을 돌고 있었다.
제법 떨어져 있었지만, 레시아의 표정은 역력하게 보였다.
얼굴 가득한 근심, 걱정.
무슨 일이 있는 것이 분명했다.
“레시아.”
“어? 왔어?”
“표정이 왜 그래? 무슨 일이야?”
“아, 그게…….”
굉장히 익숙한 모습이다.
무언가를 심각하게 고민하고 말하기를 망설일 때 나타나는 표정.
전생에 퍼번트가 레시아를 괴롭혔을 때 드러나던 그 표정이 다시금 나타나기 시작했다.
“퍼번트 님께서…….”
레시아는 망설이다 그간 있던 일들을 천천히 풀었다.
일하는 도중 우연히 마주치는 횟수가 많아지고, 점점 친한 척 다가오더니 슬쩍 레시아의 몸을 건드는 일도 빈번해졌다고 한다.
더구나 이제는 자꾸만 저택에 놀러 오라는 말까지 던지는 게, 가만히 있으면 더 심해질 것 같아 고민 끝에 말을 꺼낸 것이었다.
그 이야기를 듣던 렌의 표정이 점차 굳어지더니 저도 모르게 주먹을 움켜쥐었다.
“이 망할 새끼가…….”
“오, 오빠! 진정해! 너무 감정적으로 그러지는 말고 우리 천천히 생각을-.”
“아니, 넌 그냥 내가 하라는 대로만 해. 아니다. 넌 가만히 있어. 내가 알아서 처리할 테니까.”
“처리? 뭘 어떻게 처리를…….”
자리에서 벌떡 일어선 렌이 이를 아드득 갈고는 레시아를 끌고 다시 행정 집무실로 향했다.
“벌써 오셨습니까?”
“행정보좌관님, 죄송하지만 오늘 저희 레시아 좀 일찍 퇴근해도 되겠습니까?”
다짜고짜 집무실로 들어와 레시아를 보내 달라는 렌.
당황할 법도 하건만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로 레시아를 흘긋 본 그가 고개를 끄덕인다.
“알겠습니다. 레시아, 오늘은 일찍 들어가 쉬거라.”
“네? 하지만 일이 너무 많은데…….”
“괜찮으니까 쉬어도 된다.”
행정보좌관의 말에 렌이 감사의 인사를 건네고는 레시아를 집으로 돌려보냈다.
그리고는 비좁은 복도를 내달려 퍼번트가 있는 응접실로 향했다.
‘안 그래도 퍼번트는 한 번 손 봐줄 생각이었는데, 그 시기가 이렇게 빨리 올 줄이야.’
조금 더 기회를 보다가 깔끔한 방법으로 처리하려 했는데 더는 안 되겠다.
좀 더 지체했다가는 이 변태 늙은이가 선을 넘을 것 같았다.
끼익.
렌이 문을 열고 안에 들어서자, 퍼번트가 의미심장한 웃음을 지으며 그를 맞이한다.
“왔나? 렌 단장.”
“…….”
“할 말이 없나 보군. 얼굴은 그렇지 않은데 말이야.”
이미 레시아의 일로 렌이 찾아올 것을 예견이라도 한 듯, 여유롭게 앉은 퍼번트가 렌에게 손짓했다.
“앉게나.”
달려올 때까지만 해도 분노로 가득 찼건만, 퍼번트의 얼굴을 보고 나니 오히려 머리가 차갑게 식었다.
렌은 그가 무슨 생각인지 듣기 위해 우선 자리에 앉았다.
“그래, 렌 아르젠. 아르젠의 사생아이자, 가문에서 쫓겨난 비운의 천재 검사. 자네가 가문을 떠난 이유도 짐작이 가네. 아마 내부의 견제와 배척이 심했기에 브릴런트로 도망쳐 온 것이겠지.”
퍼번트가 이렇게 당당한 이유는 이미 렌에 관한 뒷조사를 마치고 상황을 주도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 때문이었다.
“그 나이에 상급 기사에 이를 정도의 실력. 인정하지, 역시 아르젠의 피가 어디 안 가긴 하군. 검술에 한해서는 진짜 천재야. 하지만 세력이 없다면 아무리 천재라도 아무것도 할 수 없네.”
렌은 그가 어디까지 알아냈고 무엇을 자신하고 이리 행동하는지 듣기 위해 우선 가만히 있었다.
“흠, 말할 생각이 없나? 아님 이해를 못하는 건가? 자네, 지금 트레비스를 믿나 본데, 그 인간들이 언제까지 자네를 도울 거 같나? 쓸모없어지면 버려질걸세. 혹여 버려져지지 않는다 한들, 배경으로 트레비스만 두기엔 부족해.”
“그래서, 뭘 말하고 싶은 겁니까?”
“내가 자네 뒷배경이 되어주지. 내 뒤에 얼마나 많은 권력자들이 있는 줄 아나?”
“……그리 말하는 데에는 바라는 게 있다는 거겠군요.”
“흐흐, 역시 똑똑해서 말이 참 잘 통하는군. 뭐, 별건 없네. 그저 이리 친하게 지내자는 거지. 뭐……, 자네 동생도 함께 친해지면 더 좋고. 우리 저택에도 놀러 오게나, 동생 혼자 오면 더 좋고 말이야. 흐흐흐.”
렌은 귀가 썩을 것만 같아 이 이상 그의 말을 들어줄 수가 없었다.
이성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여기까지. 이제는 감정에 충실할 생각이었다.
“쯧.”
“지금… 혀를 찼나? 그 표정 뭐지?”
“뭐긴.”
자리에 일어선 렌이 그와 퍼번트 사이에 있는 테이블을 발로 걷어찼다.
쾅!!
테이블에 밀려 의자와 함께 뒤로 넘어간 퍼번트가 바닥에 엎어졌다.
“헙! 이, 이게 뭐 하는 짓이야!!”
당황하여 버럭 소리 지르는 퍼번트.
렌은 그의 말을 무시하고는 느릿하게 걸어갔다.
“너, 너! 가문에 돌아가기 싫어? 브릴런트에서도 배척당하고 싶냐고!”
“해볼 수 있으면 해보든가.”
후웅― 퍽!!
“쿠엑!!”
구둣발에 복부를 걷어차인 퍼번트가 고통에 신음하며 땅바닥을 굴렀다.
“감히 이러고도 무사할 줄 알아?”
“쯧, 뒷조사를 할 거면 제대로 했어야지.”
퍽! 퍽! 퍽!
퍼번트의 멱살을 움켜쥐고 주먹으로 얼굴을 연달아 세 번 후려치자 그의 얼굴이 팅팅 부어 피를 철철 흘렸다.
“으어, 내 뒤에…, 아르젠이 있어!”
“아르젠?”
여기서 아르젠을 들먹일 줄이야.
끝까지 더럽고 추잡한 퍼번트의 모습에, 코웃음을 치려던 렌은 실제로 어느 정도 짜증이 났다는 것을 자각하고는 입매를 비틀어 올렸다.
“그럼 그 잘난 아르젠한테 부탁해보든가.”
비웃음을 흘린 렌이 그리 말하곤 방을 나갔다.
코에서 흘린 핏물로 온몸을 적신 퍼번트가 주먹을 부르르 떨며 렌이 나간 문을 노려보았다.
“이런…, 개 같은!”
퍼번트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세력을 키우기 위해 브릴런트에 잠적해 있던 녀석이 무슨 배짱으로 이따위 짓을 벌인 건지.
평소에 렌의 성격을 생각하면 절대 막무가내로 들이받지는 않을 것이라고 확신했었다.
근데 다짜고짜 주먹을 휘두르다니…….
“죽여버리겠다……!”
퍼번트가 간신히 몸을 일으켜 자리에서 일어섰다.
워낙 심하게 짓밟혀 조금 움직이는 것도 힘들었다. 삐걱거리는 다리를 움직이다, 이내 포기하고는 의자에 앉았다.
‘그래, 제대로 짓밟아주마. 네가 그렇게 싫어하는 아르젠의 밑에 깔리면 어떤 표정을 지을까.’
속으로 복수의 다짐을 계속 되새긴 퍼번트가 이를 갈았다.
* * *
브릴런트의 아르젠 저택.
난데없이 저택으로 대뜸 찾아온 퍼번트를 클레타가 반갑게 맞이해주었다.
시퍼런 눈두덩이와 잔뜩 부은 얼굴을 본 클레타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묻는다.
“어쩌다 이리됐는가?”
“렌 아르젠, 그놈이 제 분수를 모르고 저를 이 꼴로 만들더군요.”
“이런, 괜찮나?”
“안 괜찮습니다. 그놈이 아르젠 가문을 계속 욕보이기에 한마디 한 것을……, 쯧.”
“다음 추밀원 의장이 될지도 모르는 자네에게 그 무슨?”
“역시, 클레타 경께선 말이 잘 통하십니다.”
“하하, 그런가? 아! 마침 자네를 보고 싶어 하던 분이 계시는데. 만나보겠나? 도움이 될 걸세.”
“저를 말입니까? 제가 올 줄 어찌 알고……?”
“가 보면 아네. 따라오게.”
싱긋 웃는 클레타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퍼번트가 왠지 모를 불안감을 느끼며 따라 걸었다.
저벅, 저벅.
끼익.
커다란 응접실의 문을 열고 들어서자 익숙한 남자의 모습이 보인다.
“너, 너……!”
“어찌 이리 예상대로만 움직이시는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렌 아르젠이 일어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