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ravity 10000% Catastrophic Player RAW novel - Chapter 117
* * *
난데없는 용의 등장.
아무리 용족이 반신에 가까운 존재라곤 해도 기본적으론 생명체다.
장구한 수명으로 그 한계를 넘어버릴 뿐이지, 엄밀히 따지면 필멸자라는 이야기.
반면에 악마들은 ‘사념’에서 배태된 존재들이기에 그 수명은 영구하다.
물론 워낙 호전적이라, 지들끼리 칼침을 놓아대느라 고위 악마들 외엔 영원을 누리는 경우가 드물지만.
어쨌든 중요한 건.
악마와 용족은 서로 사이가 좋으려야 좋을 수가 없다는 사실이다.
“여기가 어느 안전이라고······ 하찮은 도마뱀 따위가 함부로 입을 놀리는 거냐?”
먼저, ‘침입자’인 이성우와 ‘반동분자’ 노스페라투를 진압하고자 몰려든 샤스의 친위대가 칼을 뽑아 들었다.
‘샤스 이놈은 얼마나 졸렬하게 보고를 숨겨온 거야? 어떻게 된 게 친위대조차 보고와 창고지기조차 못 알아봐?’
풀카넬리의 지식에 따르면, 금룡 샤일라그는 다트 에메트 시절부터 이 아공관 보관소를 지켜왔다.
워낙에 반짝거리는 물건에 환장한 놈이라 자진해서 맡은 역할이긴 한데, 여기엔 샤일라그로선 말 못 할 비밀이 숨어 있다.
“더러운 망상의 부산물들 주제에······!”
아공간 안에서 샤일라그가 포효하자, 대전 안에 싯누런 뇌전이 튀기 시작했다.
파지지지직!
한 놈에게서 두 놈으로, 두 놈에게서 네 놈으로 갈라지는 뇌전의 연쇄 속에 샤스의 친위대 수십이 일순간에 통구이가 되어 스러졌다.
“크르륵, 벌레 같은 놈들.”
역시, 그래도 용은 용이다.
하지만 악마들도 구경만 하진 않았다.
“덩치만 큰 도마뱀을 제압하라!”
“배신자와 침입자도 팔다리를 잘라 무릎 꿇려!”
“그래, 네놈이 이 몸의 휴식을 깨뜨렸겠다?”
순식간에 용족과 악마, 이성우의 삼파전으로 판이 커졌다.
“왜 불똥이 나한테까지 튀는데?”
이성우는 대룡거검을 피뢰침 삼아 근처 바닥에 박아놓고, 트롤스베르드-G를 꼬나쥐었다.
성 내를 수호하는 친위대와 파수병들의 ‘충성도’는, 영지 외곽을 지키던 경비 군단과는 그 궤를 달리했다.
“죽엇!”
죽음도 불사하고 이성우를 찢어발기려 달려드는 악마들.
우웅―!
이성우는 사건지평선 칼날을 뽑아 달려드는 악마들을 베어나갔다.
닿은 것을 돌아오지 못하는 피안으로 보내버리는 사건지평선 칼날은 번쩍이는 족족 적을 영원히 잠재웠다.
“크륵······ 오러인가. 소드 마스터냐?”
그 모습을 보고 샤일라그가 으르렁거렸다.
드디어 봤냐?
이성우가 중력 지배력으로 전장을 압도하는 대신, 트롤스베르드를 쓴 건 샤일라그의 이목을 끌기 위함이었다.
놈이 가진 ‘소드 마스터’와의 특별한 추억을 되살려 주려는 목적이었는데, 잘 먹혀든 모양.
이성우는 벌써부터 풀카넬 리가 넘겨준 기억과 지식을 제 것처럼 활용하고 있었다.
“넌 이게 단순한 검강으로 보이나? 소드 마스터 따위, 한 부대가 와도 내 상대는 안 된다.”
아공간 창고 안에서 번들거리던 금룡의 눈동자가 조금 어두워졌다.
“······네놈, 내게 볼 일이 있는 거냐?”
“아니, 창고 쪽.”
“그렇다면 함께 저 불쾌한 마족놈들부터 정리하는 게 어떠냐. 그래야 조용히 대화가 될 것 같다만.”
됐다.
창고도 편하게 써먹고, 샤스의 극렬한 추종 세력까지 온전히 흡수하는 계획의 첫 단추가 끼워졌다.
하지만 그렇다고 놈들을 모조리 죽여버리는 건 곤란하다.
지옥에도 ‘악마는 고쳐 쓰는 게 아니다’ 비슷한 속담이 있다지만, 병력이 부족한 지금은 군단 하나가 아쉬운 상황.
저 충성도 높은 집단을 포섭할 수만 있다면 훌륭한 전력이 될 터.
금룡 샤일라그를 이용해 한 가지 시도를 해볼 생각이었다.
이성우는 달려드는 악마를 중력으로 밀쳐내면서 말했다.
“저 새끼들, 튀겨 죽이지 말고 기절만 시킬 수는 없냐?”
“흥. 그딴 게 이몸에게 어려울 성싶은가?”
그 순간, 창고 안의 눈이 맹렬한 섬광을 토해냈다.
“얌전해져라, 수준 떨어지는 것들.”
파직―!
연쇄 번개보다 위력이 떨어지는 전류가 대전 전체를 일순간 휘감았다.
“끄억!”
“케헤엑!”
맹렬하게 달려들던 악마들이 일순간 머리를 얻어맞은 물고기처럼 뻣뻣해져서 쓰러졌다.
대기 자체에 강제로 전격을 흘려, 순간적으로 무력화시킨 것.
“용케 휘말리지 않았구나, 소드 마스터여.”
“왠지 아쉽다는 투다?”
바닥에 박아둔 대룡거검 뒤로 서둘러 몸을 숨기지 않았다면, 이성우도 놈들과 같은 신세가 됐을 것이다.
노란 도마뱀 자식도 그걸 바라긴 했겠지.
힘을 합쳤다고 해서 온전히 믿어선 안 될 놈이다.
무장을 회수한 이성우가 아공간 창고 앞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래, 이 보고엔 무슨 볼일이지?”
“뭔 일이겠어. 털어가려는 거지.”
“지금 이 창고의 주인은 따로 있다.”
“놈은 내 손에 뒈졌다.”
샤일라그가 눈을 질끈 감으며 중얼거렸다.
“······이런 망할.”
이성우는 어깨를 으쓱하며 제안했다.
“걱정하지 마라, 샤일라그. 이번에 날 도와주면 네가 바라는 ‘평온’을 약속하마.”
샤일라그, ‘겁쟁이 용’은 이 제안을 결코 거절하지 못할 것이다.
“······.”
금룡이 입을 다물었다.
아마 지금쯤, 자신의 니즈를 어찌 알았는지 따져보는 중이겠지.
“너, 해츨링 때 금화에 정신 팔려 인간 제국의 황실 호송대를 건드렸다가 소드 마스터에게 멱이 따일 뻔했다며?”
“······!”
금룡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 소드 마스터가 늙어 죽을 때까지, 50년 동안 금빛 드래곤스케일을 빼앗기곤 했다지? 꼬리 끝부분 왼쪽에 반복적으로 비늘을 뽑아 생긴 흉터가 있지 않나?”
그 이야기까지 꺼내자, 착각이겠지만 금룡의 얼굴이 붉어진 듯한 느낌이 들었다.
“······망할 네놈이 그걸 어찌 아는 거냐?”
어찌 알긴.
풀카넬리한테 질질 짜면서 스스로 털어놓고.
“그건 네가 알 바 아니고, 넌 그때 이후로 싸움이라면 치가 떨리잖아? 그래서 아공간 창고를 조용한 곳에 숨겨놓겠다는 약속을 받고 약탈이나 일삼는 고위 악마와 협력해온 거 아닌가? 그 약속을 내가 잇겠다.”
“음······.”
생각에 잠긴 금룡을 바라보며, 이성우는 고개를 저었다.
너는 어차피 거절할 수 없다니까.
“만일, 내가 네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겠다면. 어쩔 테냐?”
우웅―
이성우가 사건지평선 칼날을 길게 뽑아냈다.
“어떻게 되긴, 유년기의 악몽이 되살아 나는 거지.”
샤일라그가 인상을 쓰고 이성우를 오래도록 노려봤다.
이쯤 됐으면 슬슬 느꼈을 것이다.
아무리 감춰도 용족만은 알아볼 수 있을, 용살자의 기척을.
샤일라그의 동공에 일순간 이채가 어렸다.
느꼈냐?
자, 이제 어쩔래?
금룡 샤일라그가 마른침을 삼키는 소리가, 꿀꺽 하고 크게 들려왔다.
“······들어와라.”
이성우는 레라지에와 노스페라투에게 당부했다.
“이 새끼들 일어날 것 같으면 다시 때려서 기절시켜라.”
* * *
다트 에메트의 몰락과 함께 지옥으로 유실된 보고.
각종 오파츠가 보관되어 있는 51구역 던전과 달리, 여긴 원래 결사의 ‘자급자족’을 위한 아공간이었다.
‘외부와 단절된 독립적인 생태계, 바이오스피어.’
뜻밖에도 풀카넬리의 기억 속에 남아 있던 너른 목초지와 농토로 이루어진 목가적 풍경은, 거의 변화 없이 고스란히 유지되고 있었다.
“놀랍군.”
“아주 오랜 옛날의 마법사들이 만들어낸 기적이지.”
흡족한 시선으로 평화로운 전경을 둘러보던 금룡이 입을 열었다.
“이쪽이다.”
안내를 따라 앞에 보이는 둔덕을 넘어서자, 반구형의 벙커 비슷한 건물이 나타났다.
“저기를 창고로 쓰고 있나?”
금룡이 고개를 끄덕였다.
“구미가 당기는 물건이 있다면, 마음껏 챙겨라. 그리고 어서 떠나.”
“자식이 보채기는.”
이성우는 우선 창고로 걸어가, 중력을 동원해 묵직한 철문을 열었다.
창고 자체에도 다시 아공간 마법이 걸려 있는지, 내부는 밖에서 보이는 것보다도 훨씬 넓었다.
아공간 속의 아공간이라니.
다트 에메트의 초기술은 언제 봐도 감탄이 절로 나온다.
선반마다 이름 모를 잡초부터, 희귀한 광물, 용도를 알 수 없는 아티팩트들이 가득 들어차 있었다.
“별의별 걸 다 모아놨네. 이건······ 뭣 하려고 갖다 놨지?”
이성우는 선반 위에 곱게 모셔져 있는 레이스 속옷에서 눈을 떼며 중얼거렸다.
그래도 가볍게 둘러보니 마침 쓸만한 물건도 있었다. 오리할콘이나 미스릴제 장비나 원석 같은 것들.
이성우는 그것들을 무중력으로 띠워 뒤에 주렁주렁 달고 다니다가, 문득 한 물건에 시선을 빼앗겼다.
[하멜른의 피리]옵션을 살펴보니, 설치류를 조종할 수 있게 해주는 아티팩트였다.
‘마침 암두시아스의 영지 주변에······. 레밍고스들이 자리하고 있다지?’
레밍고스는 야생 마수로 쥐와 비슷한 생물이었다.
물론, 한놈 한놈의 크기가 다 자란 소와 비슷하지만.
이 피리는 언젠간 요긴하게 쓰일지도 모른다.
‘일단 챙겨두고.’
창고를 가볍게 휘 둘러본 이성우는 밖으로 나섰다.
“끝났나?”
밖에서 기다리던 샤일라그가 물었으나, 이성우는 고개를 저었다.
“여긴 그냥 잠깐 들른 거다. 보채지 좀 마라.”
“끄응······.”
불편한 기색을 숨기지는 않았으나, 저 겁쟁이 용은 감히 손을 쓰지 못할 것이다.
게다가 오래 걸릴 일도 아니고.
창고에서 나온 이성우는 그대로 둥그런 창고 벽을 따라 오른쪽으로 걸었다.
“어디 가지?”
대답하지 않고 걸음을 계속하던 이성우는, 문으로부터 정확히 17번째 걸음이 닿은 곳에 멈춰 섰다.
퍽퍽― 텅―
발을 굴러보니 묘하게 소리가 다른 곳이 있었다.
중력을 역전시켜 흙을 퍼 올리자, 그 안에 흰빛을 뿜어내는 손가락만 한 수정이 들어있었다.
‘이게 천상의 결정.’
풀카넬리가 ‘신격의 조각’을 탐색할 때 핵심으로 사용했고, 승천 직전 이곳에 숨겨놓은 물건.
그걸 가지려 손을 뻗는 순간,
빠직!
“큭.”
강한 마력 반발이 이성우의 손을 튕겨 냈다.
“결계인가?”
이성우가 트롤스베르드를 꺼내쥐자, 샤일라그가 발을 동동 굴렀다.
“그거 뭐야······. 무서우니까 제발, 밖으로 가지고 나가서 다루면 안 되겠나?”
겁쟁이 용의 커다란 눈에 물기가 촉촉했다.
이성우는 마지못해 샤스의 날개를 꺼내, 용에게 내밀었다.
“알았으니까, 여기다 번개 좀 쏴 봐라.”
금룡이 큼직한 눈을 끔뻑였다.
“참, 그리고 비늘도 하나 내놔봐.”
* * *
다행히, 결계는 이성우의 중력마저 거부하지는 않았다.
온갖 희귀 광물제 물건에 ‘천상의 결정’까지 주렁주렁 달고 아공간을 빠져나온 이성우는, 아공간 보고 자체를 [히드라의 금고] 속에 수납했다.
아공간 속은 그저 ‘평온’할 테니, 이걸로 약속은 지킨 셈이다.
최후의 성채 지하실에 갖다두고 필요할 때만 좀 괴롭혀줘야지.
“크으윽······.”
때마침, 샤스의 친위대와 성채 파수병들이 정신을 차리기 시작했다.
“젠장! 그 멍청한 도마뱀은?”
이성우는 정신이 들자마자 금룡 샤일라그부터 찾는 친위대 휘장 악마에게 다가가, 샤스의 날개를 내던졌다.
툭.
금룡의 번갯불에 잘 구워져 노릿한 냄새를 풍기는 날개를, 친위대 악마는 잘도 알아봤다.
“이, 이건!?”
“놈이 네 주인을 소멸시켰다.”
소멸.
그 단어의 무게에 좌중이 술렁였다.
“그리고 놈을 내가 잡았지.”
챙그랑―
이성우의 손에서 떨어진 건, 금룡의 황금빛 비늘 조각이었다.
“나, 타르타로스의 군주가 자비를 베풀어 너희를 거둬주마.”
긴 설명은 필요 없었다.
주인의 소멸, 그 복수, 그리고 포용.
“충성을 맹세해라.”
누가 봐도 선택지는 하나였다.
“······주인님을 뵙습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레라지에는 어처구니가 없어서 나지막이 웃음을 흘렸다.
“마귀 같은 놈······ 저런 사기꾼이 있나.”
레라지에는 이성우에게 사로잡히지 않았더라도, 언젠간 이런 식으로 처참하게 정리당했으리라 생각했다.
“붙잡힌 게 차라리 다행이지, 다행이야.”
한편, 이성우는 낯선 시스템 메시지를 보고 주먹을 꽉 쥐고 있었다.
『[친위대장 녹티보어]가 세력을 이끌고 충성을 맹세합니다.』
『[고위 악마 샤스]의 [친위대] 외 4개 군단을 권속으로 받아들이시겠습니까?』
‘그래.’
『메인 퀘스트 업데이트!』
『[고위 악마 샤스]의 영지를 점령했습니다.』
『지옥 멸망 진행도 : 3.22%』
‘3.22퍼센트라. 아직 암두시아스의 영지는 아직인가?’
암두시아스는 샤스와 달리 대부분의 병력을 영지전에 동원한 걸로 아는데.
그럼 슬슬 영지 점령도 마무리 단계일 것이다.
때마침, 이성우의 머릿속으로 권속 교신이 전해져왔다.
아이담을 보조하는 최후의 성채 부 관리자, 사탄이었다.
―주인님, 주인님! 일각의 자작령을 점령 중인 부대로부터 기별이 왔습니다.
마침 반가운 소식.
헌데, 예상치 못한 내용이 이어졌다.
―자작의 성채를 점거하던 중, 제3세력의 포위로 현재 대치 상태라고 합니다!
이성우의 미간이 구겨졌다.
‘감히 어떤 놈들이······. 지금 내가 갈 테니 조금 더 버티라고 전해라.’
―예, 주인님!
이성우는 곧장 노스페라투를 불러들였다.
“비행이 빠른 녀석들로, 1개 군단을 차출해라. 지금 당장 일각의 자작령으로 간다. 녹티보어, 너는 뒤숭숭한 영지를 수습하고 새 주인을 반기지 않는 놈들을 정리하도록.”
“예, 명을 받듭니다······!”
악마 군단병들이 곧장 숨 가쁘게 움직이기 시작했고, 이성우는 성채 난간으로 나가 멀리 암두시아스의 영지쪽으로 시선을 던졌다.
영지전에 끼어든 게 어떤 놈들인지 몰라도, 곧 그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