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ravity 10000% Catastrophic Player RAW novel - Chapter 12
* * *
이성우와 최솔 등 세 사람이 게이트를 빠져나오자······.
구름 같은 인파가 일행을 둘러쌌다.
“이성우 플레이어, 여기 좀 봐주세요!”
“방패 길드입니다! 명함 좀 받아주세요!”
“거, 밀지 맙시다!”
이성우는 일행 세 사람과 눈인사를 나눈 후, 홀로 인파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예정에도 없었던 상급 게이트의 등장.
그 까다롭다는 언데드들을 상대로 이성우가 보여준 무위······ 특히, 마력이 깃든 물건도 아닌 건물 잔해로 보스를 통째로 짓이겨버린 장면은.
가히 충격적이라고밖에는 말할 수 없었다.
과연 [측정 불가] 판정이 난, 규격 외 플레이어다운 퍼포먼스였달까?
그렇기에 취재와 입찰 경쟁은 과열의 양상으로 치닫고 있었다.
원래 등급 측정장에 자리를 깔고 있던 인원도 적지 않은데.
소식을 듣고 추가로 몰려든 인파에 서울 측정소는 그야말로 아수라장.
그곳을 이성우가 담담히 걸어 지나가는 광경은, 마치 하나의 태풍이 부는 것 같았다.
그가 발을 내딛는 방향으로 길을 열면서, 구름처럼 따라붙은 인파가 오만가지 질문을 쏟아냈다.
개중 가장 많은 물음은 이것이었다.
“앞으로의 거취는 결정하셨습니까?”
“한국에 남아 계실 건가요?”
앞으로 어디에 몸을 담을지.
혹시 더 좋은 대우를 약속받는다면, 외국으로 넘어갈 의향이 있는지.
기대 반 우려 반 섞인 시선들을 보고, 이성우는 이건 확실히 못을 박아야 할 문제라고 여겼다.
그렇지 않으면, 스카웃 제안이 계속 쏟아져 상당히 귀찮게 될 가능성이 크니까.
그리고······ 자신이 저 질문에 침묵하면, 불필요한 불안이 싹을 띄울 터였다.
‘서울이 그렇게 처참하게 부서지는 꼴을 막고 싶다는 염원이 닿아 시작한 2회차다. 그깟 돈 때문에 해외로 나르진 않지.’
그가 잠시 걸음을 멈추자.
일순간 장내가 찬물을 끼얹은 것처럼 조용해졌다.
“저는 어느 길드로도 가지 않습니다.”
그 말은 누구나 예상했다.
대한민국 초유의 등급.
그런 판정을 받았다면, 아무리 좋은 대우를 받더라도.
남 밑에서 일하기 싫을 테니까.
실제로 그런 이유로 S급 플레이어의 대다수가 프리랜서로 홀로 활동하던가, 직접 길드를 창설한다.
이성우의 말을 그런 의미로 받아들인 민간 길드 헤드헌터들은, 잠자코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외국으로 도망치지도 않습니다.”
이전 회차엔, 한국의 상황이 나쁘게 돌아가자 해외로 도피 이민을 한 상위 랭커도 적지 않았다.
그들을 염두에 둔 발언.
그때, 한 언론사 기자가 손을 들고 외쳤다.
“아시다시피 미국과 독일은 SSS급까지 판별할 수 있는 측정기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그쪽을 방문하실 예정도 없습니까?”
요컨대 이성우의 정확한 등급이 궁금하다는 이야기였다.
이성우는 고개를 갸웃했다.
“굳이 그래야 하나요? 필요를 잘 모르겠습니다.”
게이트 돌파하고, 빌런 쳐부수고 악마 도륙하는 데에 도움이 되면 모를까.
이성우는 그런 일에 시간을 낭비할 생각이 없었다.
‘시간 낭비라.’
그 단어를 떠올리자, 지금 이 상황도 시간 낭비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행동으로 충분히 보여줬다. 경주로 내려가 그 무기를 확보하는 게 시급하다.’
오직 그 생각으로, 이성우는 쏟아지는 질문을 무시한 채 인파를 헤치며 걸었다.
그때, 장내를 뒤흔드는 사자후 같은 호령이 떨어졌다.
“취재는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벌떼처럼 달라붙던 인파가 걸음을 멈추고 주춤거리기 시작했다.
“하아, 일찍 나타나셨군.”
“측정 불가가 나왔는데 당연하지.”
“괜히 못 볼 꼴 보지 말고 철수하자고.”
이성우에게도 귀에 익은 목소리였다.
‘용투사 정찬석.’
관리국의 창설 멤버이자, 현 수장.
언론과 길드 인사들이 잠자코 물러난 건, 그가 존경받는 인사라는 이유도 있지만.
‘대한민국 최초의 S급 플레이어. [투신] 특성을 가진 괴물이라는 이유가 더 크지. 성격도 불같은 것도 한몫하겠고.’
현시점으로부터 1년 전, 김포 일대에서 벌어진 ‘냉룡 웨이브’에서 그 거대한 냉룡과 힘 싸움을 벌인 끝에 대규모 파괴마법의 완성을 가능케 했던 주역.
그가 부푼 근육 탓에 터질 듯한 정장 차림으로, 이성우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성우 플레이어, 잠깐 시간 좀 내주겠나?”
* * *
정찬석 국장의 차를 타고 측정소 담장을 벗어나자,
동승한 차무혁이 먼저 입을 열었다.
“게이트에 대한 건, 사과드리겠습니다. 결코 나쁜 의도는 아니었습니다만.”
의도했던 것보다 높은 등급의 게이트가 발생했다.
이성우가 얼마나 간단하게 돌파해냈느냐와는 별개로, 사고는 사고였으니까.
더욱이 측정 범위 초과, ‘오버로드’로 드러난 이성우다.
무탈하게 경험을 쌓으며 성장만 한다면 국가급 전력이 될 S급 이상의 플레이어.
그의 심기는 차무혁이라도 신경 쓰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그리고 그런 태도는, 언데드 게이트의 등장을 자신을 시험해보려 했던 의도로 이해하고 있던 이성우에겐.
대단히 성의있게 느껴졌다.
이성우는 별것 아니라는 듯, 손을 내저었다.
“괜찮습니다. 지나간 일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앞으로가 중요하죠.”
반대로 이러한 이성우의 태도는, 관리국장 정찬석에겐 매우 흥미롭게 비쳤고.
‘호오. 게이트 사고에 대해서는 정말 조금도 괘념치 않는 눈치군. 대의를 읽을 줄 아는 사내구만.’
이성우는 관리국의 작은 허물은 덮어주었고, 만인이 보는 앞에서 외국으로 ‘도망’치지 않겠다고 공표까지 했다.
그렇다면 적어도 ‘국토방위’라는, 관리국의 존재 목표와 당분간은 같은 길을 가겠다는 의미일 터.
‘이 정도면 우리 관리국도 호응하지 않을 수가 없겠지.’
정찬석은 이성우가 제안했던 ‘포괄적 파트너십’, 그 구상을 이 자리에서 현실로 만들 셈이었다.
“그래, 같이 해보지.”
맥락 모를 소리에 이성우의 시선에 의아함이 담겼다.
정찬석이 말을 이었다.
“일전에 차 차장 통해 전해 들은 제안. 수락하겠다는 이야길세.”
‘아하, 등급이 높게 나온 덕에 생각보다 빠르게 구워삶았군.’
이성우는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딱―
정찬석이 손가락을 튕기자, 조수석에 앉아 있던 수행비서가 서류철을 내밀었다.
정찬석은 그걸 받아, 이성우에게 건넸다.
“이건 부동산 등기권리증이네. 앞으로 지낼 안가를 마련해뒀지. 독립 주차장과 엘리베이터가 딸려있고······.”
부동산?
뜻밖의 화제에 이성우는 손을 저었다.
“잠시만요. 저는 이미 지내고 있는 곳이 있습니다만.”
이런 의식주 차원의 특혜를 바란 건 아니었다.
하지만 차무혁의 보충 설명에 납득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은 국내의 관심만 쏟아지고 있지만, 곧 소식이 알려지면 해외의 주목도 받게 되실 겁니다. 이성우 씨께 좋지 않은 의도를 품는 이들도 적지 않을 거고요.”
“그건 각오하고 있습니다.”
이득을 독식하기 시작하면, 빌런 조직은 물론.
기존 기득권 길드들도 견제를 시작할 터.
등급 측정의 결과 탓에 관리국을 예상보다 빠르게 등에 업을 수 있게 된 것처럼.
견제 세력의 방해도 예상보다 빠르게 닥쳐올 것이다.
이성우는 이미 그런 일들에 대해선,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었다.
“물론 그러시겠지. 하지만 플레이어도 사람이야. 일상이 유지되어야 게이트도 돌 수 있단 말이지. 안가와 경호, 이건 자네를 위해서가 아니라 관리국의 안녕을 위해 제공해주는 걸세. 사생팬에게 시달리다 폭주라도 하면, 그걸 누가 막을 수 있겠나? 하하!”
정찬석이 너털웃음을 터뜨렸지만.
이성우는 조금도 우습지 않았다.
각성한 지 10년이 다 되어가는 S급 플레이어 정찬석이라면, 이제 막 성장을 시작한 자신 정도는 가볍게 묵사발로 만들어버릴 수 있을 테니까.
등급은 특성의 잠재력을 반영한 것이지, 현재 강함의 척도가 아니기 때문.
‘소름 끼치는군. 역시, 성장이 무엇보다 시급하다.’
확실히 가볍게 넘길 이야기는 아니라서, 이성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그리고요?”
“그 ‘포괄적 파트너십’에 대한 상세한 논의가 있어야겠지. 먼저, 거기 있는 것부터 확인해보게.”
정찬석이 이성우의 손에 들린 서류철을 가리켰다.
이성우가 등기권리증을 넘기자, 검은 바탕에 금색 글씨가 찍힌 ‘플레이어 라이센스’가 나왔다.
이성우가 미간을 좁히자, 정찬석이 품에서 자신의 라이센스를 꺼내 보였다.
그의 것은 S급 라이센스. 흰 바탕에 금색 글씨였다.
“그건 대한민국에 오직 하나뿐인 특수등급 라이센스네. 등급 측정 직후 급하게 제작했지만, 마음에 들걸세.”
“뭐, 역시 카드는 블랙 카드죠.”
“하하하! 이 얘길 들으면 더욱 마음에 들어하겠군. 이 라이센스에는 원하는 어떤 게이트라도 우선 공략할 수 있는 권한이 포함되어 있네. 길드 창설도 신청서만 내면 심사 없이 바로 인가를 내드리지.”
“그건······ 굉장히 좋은데요.”
“역시 그렇지?”
이성우는 조용히 미소 지었다.
‘좋아, 이거면. 앞으로 중요한 보상이 등장하는 게이트는 전부 확보할 수 있겠군.’
세간의 눈에는 어떨지 몰라도, 이성우에겐 초고가의 부동산보다도 이게 더 큰 보상이었다.
“그 밖의 상세한 사항은 차차 논의하도록 하고······. 달리 원하시는 건 없으신가? 손을 잡기로 한 이상, 지원을 아끼지 않을 셈이네만.”
달리 원하는 것? 글쎄, 길드나 태성과 관련한 이권들은 지금 꺼낼 이야기는 아닌 것 같고.
이성우는 시급한 목표부터 떠올렸다.
“경주, 문무왕릉으로 최대한 빠르게 움직일 방법이 필요합니다.”
“문무왕릉? 설마 문무대왕릉 던전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차무혁이 확인차 되물었다.
던전.
불시에 무작위로 생성되는 게이트와 달리, 상시 활성화되어 있는 형태의 스테이지를 일컫는다.
세상 곳곳에 던전이 형성된 건 게이트 사태 때의 일.
지금껏 시간이 많이 흘렀기에, 대부분의 던전은 이미 공략되었다.
이성우가 언급한 문무왕릉 던전은 몇 안 되는 예외 가운데 하나였다.
바위에 박힌 대검을 뽑는 것이 마지막 클리어 조건이자, 보상 그 자체이기도 했는데.
무거워도 너무 무거운 탓에 누구도 대검을 획득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정찬석은 흥미롭다는 듯이 한쪽 눈썹을 추켜세웠다.
“설마······ 그 물건을 노리고 있는 건가?”
“예.”
정찬석은 흔들림 없는 이성우의 표정을 살피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음, 보유한 특성을 생각해보면 가능성이 있을지도 모르겠군. 나도 2년 전에 다시 한번 뽑아보려고 시도했다가 실패했네만.”
그 말에, 이성우는 귀가 번쩍 뜨이는 것 같았다.
‘아, 하긴 정찬석 국장도 시도해봤겠군. 그걸 뽑아보겠다고 외국 플레이어들까지 몰려들곤 했으니.’
물론, 그 외국 플레이어들은 그 던전에 도전조차 할 수 없었지만.
이성우는 순수한 호기심에 물었다.
“어땠습니까? 힘으로는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으시잖습니까.”
“하하하! 그것도 옛날 얘기지. 하지만 이건 확실하네.”
이성우는 물론, 차무혁도 정찬석의 말에 주의를 기울였다.
“그 검······ 검이라는 호칭이 맞을지 모르겠군. 아무튼 그것은 냉룡 스카디마이어의 주먹질보다도 무거웠다네.”
정찬석이 뽑지 못했다면, 힘으로 그것을 휘두를 수 있는 인간은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가능하다.’
이성우는 추호의 의심도 없었다.
자신의 스킬 그리고 시험용 던전에서 확보한 부유석.
이 두 가지를 조합하면, 그보다 더 무거운 무기라도 다루어낼 자신이 있었다.
그런 속내를 모르는 차무혁이 걱정된다는 듯 물었다.
“정말 확보하실 수 있겠습니까?”
이성우가 뭐라 대꾸하려는 찰나.
정찬석이 손뼉을 쳐서 주의를 환기했다.
“그건 중요하지 않아. 이성우 플레이어가 경주로 가고 싶어한다는 게 중요하지. 김 비서, 당장 이륙할 수 있는 헬기장 수배하게.”
그리곤 이성우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두 시간 뒤엔 경주 땅을 밟게 해드리지.”
* * *
두 시간 뒤.
정말로 이성우는 해변에서 200m 떨어진 ‘대왕암(大王岩)’, 문무왕릉 위에 서 있게 되었다.
헬기에서 함께 내려온 차무혁이 시계를 확인했다.
“문무왕릉 던전의 평균 클리어 시간은 7시간입니다. 5시간 후부터는 모시러 올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겠습니다. 던전에서 나오시면 연락주십시오.”
“알겠습니다.”
“무운을 빕니다.”
차무혁이 고개를 꾸벅 숙여 보이고, 다시 사다리를 타고 헬기로 오르자.
두두두―
헬기가 대왕암을 벗어나 멀어져갔다.
이성우는 동서남북 네 방향으로 난 수로의 가운데 부분으로 걸음을 옮겼다.
수로 가운데에 볼록 솟은 바위에 아래로 향하는 계단이 뚫려 있었다.
문무왕릉이 던전화되면서 생겨난 입구.
그리로 걸어 내려가자, 어둑하고 축축한 동굴형 공간이 눈앞에 펼쳐졌다.
『던전: 문무대왕릉에 입장했습니다.』
『퀘스트 – 문무대왕릉』
분류 : 던전
난이도 : ?
클리어 조건 : 왕릉 미궁을 통과하고, 왕의 시험을 통과하시오.
보상 : ???
‘퀘스트도 활성화되었고.’
이어서 나지막하지만 힘 있는 목소리가 동굴 전체를 뒤흔들었다.
―짐은 불법(佛法)을 받들고 나라를 수호하고자 호국대룡(護國大龍)이 되었으니. 이곳에 발을 들인 자, 다른 뜻을 품었다면 그 발길을 돌리라.
『강제 추방 조건이 설정된 던전입니다!』
『자격을 확인합니다.』
···
『강제 추방 조건에 해당하지 않습니다.』
‘이래서 외국 플레이어들은 던전에 도전조차 하지 못했다고 했었지.’
외적으로부터 나라를 수호하겠다고 바다에 자진해서 묻힌 왕답게, 외세를 배척하겠다는 의지가 반영된 모양.
웬 국뽕 무기인가 싶기도 하겠으나.
넓게 보면 인류를 위협하는 몬스터와 악마들도 외세는 외세.
이곳에 남겨진 문무왕의 의지는 그 위협에 맞서는 데에 도움이 될 것이다.
“좋아, 가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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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문무왕릉, 대룡의 검(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