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ravity 10000% Catastrophic Player RAW novel - Chapter 3
* * *
『[염원의 별]이 당신의 소망에 응답합니다』
『현재 세계 진행사항을 리셋하여 다시 플레이하시겠습니까?』
『Y/N』
믿을 수 없는 시스템 메시지.
두 눈으로 똑똑히 보고도 의심스러웠다.
세계를 리셋한다? 다시 플레이? 2회차 말인가?
대체 이게 말이 되는 소리인가?
그러나 극악한 상황을 부여하는 경우는 있어도.
거짓을 말하는 일은 없다는 것이, 시스템에 관한 상식.
그렇다면 가능성은 단 하나.
‘이건······ 히든 피스구나.’
시스템이 인류를 생존 투쟁으로 내모는 한편.
세상 곳곳에 숨겨놓은 기연들.
그 가운데 하나를, 절체절명의 상황에 발견한 것이다.
‘그러면······ 인류도 멸망을 피하고 한 번 더 기회를 얻을 수 있다?’
이성우는 사그라드는 광채 너머로, 각자의 방식으로 싸우고 있는 이들을 바라보았다.
그다음으로는 무고한 시민들과 어린아이들이 떨고 있을 방공호를.
‘다행이다.’
진심으로 다행이었다.
만일, 시스템이 혼자만 과거로 돌려보내고.
이 세상은 그냥 이대로 망하도록 둔다고 했다면.
‘선택하기 어려웠을 텐데······.’
지금껏 살아남아 오면서 많은 이의 죽음을 목격했다.
그렇기에 잘 알았다.
그 숱한 죽음 속에서 살아남은 자의 고통을.
머리로야 당연히 혼자서라도 2회차를 시작해, 지금과 같은 처참한 결말을 막는 것이 합리적이고 당연한 선택이라는 걸 안다.
하나 그 뒤에 남겨질 사람들과, 그들이 맞게 될 최후를 생각하면 마음이 너무나 무거웠을 터.
‘하지만 아예 리셋이라면 이야기가 다르지.’
이것은 도망치는 것이 아니다.
단 한 사람이 아니라, 인류 전체가 한 번 더 기회를 거머쥘 수 있다는 이야기였다.
‘이거라면, 나 혼자만 도망친 뒤······ 평행 우주의 멸망한 지구 따위는 존재하지 않겠지.’
눈앞에 떠오른 응답 버튼에 손가락을 가져가자.
갑작스러운 광채로부터 시력을 회복한 발로그가 거칠게 칼을 쳐들었고.
그는 재빨리, 그러나 신중하게 응답을 택했다.
“그래, 망한 판은 뒤엎고 다시 시작해보자. 제안을 수락한다.”
『Y』
『···』
『현재 진행 상황을 초기화합니다.』
『복원지점 탐색 중······』
『······라플라스 레코드에 기록된 복원지점 없음.』
『요청자의 기억을 토대로 복원지점을 선정합니다.』
정신없이 출력되는 시스템 메시지 너머.
멸망하고 있는 세상을 향해 중얼거렸다.
“다시 만납시다. 더 나은 세상에서.”
“크워어어!”
높이 쳐들었던 발로그가 칼을 내리치는 순간.
이성우에게서 터져 나온 빛이 세계를 삼켰다.
* * *
몽환 속에서 이성우는 빛의 터널을 유영했다.
죽은 것인지 산 것인지 알 수 없는 상태로.
찰나인지, 영겁인지 모를 시간이 흘렀다.
그러던 와중에 저 멀리에 터널의 끝이 보였고······.
그곳에 도착하는 순간.
“······크헉!”
참았던 숨을 토해내듯,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아주 기나긴 잠에서 깨어난 것처럼, 그는 지독한 현기증에 몸을 가누지 못하고 쓰러져 바닥을 짚었다.
정신이 없는 와중에도 손바닥에 닿은 축축한 흙의 질감.
팔뚝을 간질이는 풀잎의 내음이 생생했다.
그러나 그렇다는 건.
엄연히 살아있다는 의미.
숨을 고르며 몸 상태부터 확인하려는데, 뒤에서 누군가 달려와 그를 부축했다.
“······팀장님? 이성우 팀장님?”
‘팀장님이라고?’
상대를 확인하자, 무겁던 눈꺼풀이 번쩍 뜨였다.
“아······? 성식이냐? 그 괴물 장성식? 진짜, 진짜 괴물이지?”
“아니, 이 사람이······. 예, 접니다. 다만 진짜 괴물은 아니고요. 괜찮으십니까?”
분명히 눈앞의 녀석은 190cm가 넘는 큰 키에 오크처럼 못난 외모 탓에 괴물이라 불리던 팀원, 장성식이었다.
이게, 이게 대체 몇 년 만인지.
순간적으로 반가움이 일어서 장성식의 어깨를 꽉 붙잡았으나. 한편으로는 애써 감정을 억눌렀다.
회포는 천천히 풀면 될 일.
당장은 상황 파악이 우선이었다.
“으아! 팀장님, 악력! 악력!”
“어어, 괜찮냐? 잠깐 어지러워서 그랬다.”
이성우는 장성식의 부축을 받고 일어나며, 상황을 파악했다.
이 상황에 아무런 예고도 없이 던져졌다면 꽤나 혼란스러웠을 테지만, 이미 2회차를 시작하게 된다는 걸 알고 있었던 터라.
상황을 받아들이는 것 자체에는 무리가 없었다.
‘장성식은 내가 태성 운반3팀에 있을 때의 팀원이니까.’
과거로 돌아온 것이 확실했다.
그것도 꽤 긴 시간, 거의 10년 가까이를 거슬러 올라온 것.
‘스물 여섯, 일곱 때쯤인가?’
성인이 되자마자 태성에서 일해왔기에, 나이에 비해 빠르게 팀장 직급을 달았으나.
사실상 운반팀장은 쉽게 말해 짐꾼 십장(什長)에 불과했다.
이전 회차에서 그는 이 운반3팀 팀장으로 근무하다가, 어떤 사고를 겪고 각성했다.
이후 등급 측정을 받고 난 뒤에는 신설된 특수수송팀의 팀장으로 일하게 되었고.
장성식을 비롯한 기존 팀원들은 각성의 계기가 된 그 사고 이후 다시는 볼 수 없었는데······.
그 장성식이 눈앞에 있다는 건, 각성하기 이전 시기라는 뜻.
그 점을 기억해내자, 순간적으로 불안감이 일었다.
‘이런, 설마. 각성부터 다시 해야 하나?’
노파심에 상태창을 불러낸 그는 안도할 수 있었다.
『플레이어 정보』
이름 : 이성우
나이 : 27
레벨 : 1
칭호 : 별을 부른 자
특성 : 중력 지배 (제어 가능 범위: 50%~200%)
회귀 직전에 얻어낸 ‘특성 진화’의 결과물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기 때문.
그간의 성장치가 모조리 초기화되어 중력 제어 한도도 바닥으로 내려왔지만, 그건 앞으로 성장해나가며 회복하면 되므로 큰 문제는 아니었다.
중요한 것은 특성 진화의 결과.
‘[중력 제어]에서 [중력 지배]로 바뀌었다. 다만, 상태창만 봐서는 뭐가 어떻게 달라진 건지 알 수가 없네.’
지독한 궁금증에 속이 다 간질거리는 기분이었지만, 당장은 눈앞의 상황부터 확인하고 헤쳐나가는 것이 급선무.
등에 멘 배낭부터 허리춤의 보조가방까지 묵직한 상태.
더욱이 주변을 둘러보니 현실 지구에는 존재하지 않는 식물들이 보여, 게이트 안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 말인즉, 지금 게이트 내부에서 물자 운반 중이라는 이야기군.’
이때는 아직 ‘태성’이 큰 회사로 성장하기 전. 그러니까 일용직 짐꾼들보다는 발전된 서비스를 제공하며 이름을 알려 나가던 시절인데.
‘하지만 이 정보만으로는 부족하다.’
지금 수행 중인 운반 업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하기 위해서, 그리고 안전하게 살아 나가기 위해선 정보가 필요했다.
장성식의 부축을 받고 일어나자, 그 뒤로 익숙한 얼굴들이 긴장 어린 표정으로 늘어서 있었다.
‘이야, 반가운 얼굴들이네.’
각성조차 하지 못한 일반인이거나.
낮은 등급의 [괴력], [지게 마스터리] 등 쓸모없는 특성을 가진 탓에 F급을 받은 플레이어들로 이루어진 팀원들,
이성우는 그들을 둘러보며 엷게 미소 지었다.
“성식아, 작전 브리핑 좀 해 봐.”
“예? 갑자기 말입니까?”
“응. 제대로 숙지하고 있는 게 맞나 확인 좀 해보자.”
“아니, 혼자 풀썩 쓰러지시더니 왜 나한테 그러시지?”
“성식아. 속으로 생각할 걸 말로 내뱉은 것 같은데?”
“헉.”
평소와 다른 요구에 당황한 장성식은 잠시 주춤대다가도, 어색하게나마 숙지한 작전 개요를 브리핑하기 시작했다.
게이트에 맞춤형으로 물자를 보급한다는 것이 태성의 모토였기에, 이처럼 게이트 정보를 숙지하는 것은 당연한 일.
이러한 노력이 쌓여서 훗날 T.S.C로 성장하는 발판이 된다.
“현재 공략 중인 북한산 게이트는 F급, 광색(光色)은 녹색 즉 일반형입니다. 은마 길드 사전 정탐 결과 몬스터 군집은 고블린이 주를 이루는 것으로 확인됐으며, 군락 인근 골짜기를 통해 접근해 보스 몬스터부터 제거할 계획이랍니다. 지형이 넓지는 않으나 체력 소모가 큰 열대 밀림 환경이라, 식수를 넉넉히······.”
고블린, 골짜기, 밀림 지형.
세 개의 키워드를 듣는 순간, 이성우는 피가 차게 식는 기분을 느꼈다.
‘이런, 그 게이트인가.’
“왜 그러십니까?”
장성식이 눈치 빠르게 물었지만, 대답은 옆에서 나타난 엉뚱한 놈이 했다.
“왜 그러긴. 일개 짐꾼이라 보스 몬스터란 말만 들어도 식은땀이 흐르나 보지. 왜 바짝 안 따라붙나 했더니, 여기서 수다들 떨고 있었어? 댁들 지금 장난쳐? 게이트에 소풍 오셨어들?”
갑자기 밑도 끝도 없이 빈정거리는 녀석은.
‘오승현?’
이전 회차에 [인류 멸망 프로토콜]이 발동되던 시점까지도 살아 있었던 전격 계열의 D급 마법사.
‘실력은 변변찮은데, 목숨줄이 쇠심줄보다 질기다고 해서 개껌이라 불리던 놈. 이때는 은마 길드 소속이었나?’
어린 나이에 그 귀하다는 마법사로 각성해, 자부심이 대단한 모양인지.
태성의 운반팀을 대하는 태도에 경멸이 역력했다.
그러나 상대가 훗날 ‘개껌’이라 조롱받는 놈이라는 것을 알기에 아무런 데미지도 없었다.
더욱이 더 오랜 세월을 살아본 입장에선, 그저 스물 초반의 어린 녀석이 혈기를 못 이겨 철없이 행동하는 것으로밖에는 보이지 않기도 했고.
“예, 죄송합니다. 바로 따라붙겠습니다.”
“각성도 못 해서 짐꾼 노릇 하는 거면서. 운반도 제대로 못 해서 벌써 퍼지면 어쩌자는 거야? 하여간, 병신 새끼들은 이래서 안 돼. 목마르니까 물이나 좀 내놔 봐!”
이성우가 잠자코 수통을 건네자, 오승현은 벌컥벌컥 목을 축이곤. 침을 탁 뱉으며 멀어져 갔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그는 뒤늦게 이상한 점을 깨달았다.
‘분명 [리셋]이라고 했는데, 저 자식 하는 꼴을 보니 기억이 없나 본데?’
장성식이나 팀원들이야 이 게이트에서 사망했었으니 그렇다 쳐도, 오승현이 이따위 유치한 갑질을 부리는 걸 보니.
[인류 멸망 프로토콜] 당시의 기억이 없는 모양이었다.‘초기화’니까, 인류 전체가 두 번째 기회를 받게 되는 건 줄 알았건만.
다들 오승현처럼 미래에 관한 기억이 없다면, 의미가 없는 것 아닌가?
‘이러면 내가 2회차의 유일한 변수라는 거잖아. 망할······.’
그 말인즉.
제 손으로 뭔가를 직접 해내야 한다는 뜻.
그래도 이전 회차와 달리, 이미 각성한 상태.
‘그나마 특성 진화를 이룩했다는 게 희망이라면 희망이겠군. 그러고 보니······.’
이성우는 앞서가는 오승현의 뒷모습을 지긋이 바라보았다.
마침 진화한 특성을 시험해볼 대상이 눈앞에 있었다.
‘······한 번 시험 해볼까? 특성이 어떻게 달라진 건지.’
조용히 정신을 집중했다.
과거에는 대상을 지정할 수 없어, 오직 중력장의 형태로만 펼쳐졌던 [중력 제어].
과연, [중력 지배]는 다를까?
그는 오승현을 주시하면서, 오직 그의 왼 다리에만 증강된 중력을 부여하겠다는 의지를 품었다.
‘일단, 30% 정도만 무겁게.’
―꾸구국······.
그 의지가 능력으로 관철되는 것이 느껴졌고.
“어억!”
걸음을 내딛던 오승현이 돌연 무릎을 꺾고 앞으로 쓰러졌다.
순간적으로 증강된 중력 탓에 걸음이 꼬였기 때문이었다.
“얼씨구, 갑자기 와서 혼자 지랄하더니. 갑자기 혼자 자빠지네.”
그 모습을 본 장성식이 중얼거렸다.
“에이, 씨발!”
오승현은 아픈 것보다 쪽팔림이 컸는지.
뒤쪽에 있던 운반팀을 노려보고는, 욕을 내뱉으며 빠른 걸음으로 멀어져갔다.
고소하다는 듯 소리죽여 킥킥거리는 팀원들.
이성우는 그들과는 조금 다른 이유로 웃음 지었다.
‘됐다. 능력이······ 오승현에게만, 그것도 정확히 왼 다리에만 가해졌어. 똑똑히 느껴졌다.’
줄곧 그를 괴롭게 옭아매고 있었던.
F급 특성의 제약이 사라졌다는 사실에 전율하고 있었으니까.
가슴이 벅차올랐다.
그동안 얼마나 많이 상상해왔던가?
특성의 제약만 없어진다면, 능력을 어찌 응용할지.
몬스터들을 단체로 무릎 꿇려버리기?
그건 당연하고.
그와 동시에 아군의 몸을 가볍게 만들어, 일방적인 도륙을 가능케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제어 한도가 성장한다면, 압도적인 힘으로 그냥 벌레 죽이듯 짓눌러버릴 수도 있겠고.
혹은 반대로 공중으로 띄워 농락할 수도 있겠지.
적의 무기에 중력을 부여해서 강제로 무장을 해제시켜 버린다든가, 내가 휘두른 무기의 위력을 증강할 수도 있을 거고.
‘염원의 별을 불러낸 건 순전히 우연이었지만······. 제어 한도만 충족된다면 가능하다는 거겠지. 우주의 운석을 끌어당겨 내리꽂는 공격도.’
정신없이 뻗어나가는 상상을 갈무리하며, 이성우는 팀원들을 둘러보았다.
‘당장은 게이트 공략을 무사히 성공시켜야 한다.’
고된 노동과 세간의 멸시에도 꺾이지 않고.
언제나 서로를 위하는 마음과 웃음을 잃지 않았던 팀원들이었다.
하나······ 이들은 이전 회차에서, 이 북한산 게이트 공략 중 은마 길드의 작전 실패로 전원이 사망하고 말았다.
훗날 이능대응군과 게이트 관리국 전투 교범에 사고 사례로까지 기록되었던 ‘북한산 게이트 참사’.
이 사고로 은마 길드의 공략팀은 궤멸에 가까운 피해를 당하고, 게이트에 진입했던 24명 중 단 3명만이 살아서 귀환하게 된다.
그는 이 사건에서 팀원들을 모두 잃고, 바위와 시체들 밑에 깔려 있다가 기적적으로 살아남았고.
극심한 충격을 계기로 각성해, 플레이어가 되었었다.
동료들의 핏값으로 이뤄낸 각성이라 여겼기에, 전투 일선에 나서지 못한 것이 끝끝내 괴로웠던 것이고.
‘그러나 지금의 나는 특성 진화를 이뤄낸데다가, T.S.C의 대표로서 비밀취급인가를 얻어 열람했던 수많은 게이트 공략 정보도 있다. 결코 1회차와 같은 비극이 되풀이되게 할 순 없지.’
이곳을 극복하는 건, 수많은 목숨을 살리는 동시에.
성장의 발판을 마련하는 중요한 행보가 될 것이라고.
이성우는 확신했다.
몸소 겪었던 처참한 미래.
그것을 바꾸는 첫걸음은, 지금 이 순간부터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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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북한산 게이트, 헤드헌팅(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