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ravity 10000% Catastrophic Player RAW novel - Chapter 38
* * *
파리여왕 베스페라.
이전 회차에선 지금으로부터 몇 년 뒤,
소래습지 땅속에 형성된 균열의 ‘균열지기’로 등장하는데.
플레이어들을 잡아다 둥지로 끌고 가는 바람에 관리국과 언론이 발칵 뒤집힌 일이 있었다.
다행히 그 당시 대한민국에서 세 손가락 중 하나로 꼽히던 ‘데우스 길드’가 온갖 마공학 장비를 동원해,
베스페라를 빠르게 퇴치한 덕에 사상자는 없었지만.
개중 [다종 교감] 계열의 스킬을 지닌 플레이어는 심한 충격에 그대로 은퇴 수순을 밟았었다.
‘분명 그 많은 수렁구더기가 전부 베스페라의 자식이고······. 그 많은 애벌레 하나하나에 이름까지 붙이고 기억할 정도로 모성애가 강한 악마랬지.’
만일 자식을 해한 대상이 있다면, 끝까지 추적해 죽이거나 몸에 알을 낳고.
최악의 경우 번식을 시도한다고 했다.
비록 그 지경에는 이르지 않았지만,
은퇴한 [다종 교감] 플레이어는 바로 그 번식의 대상으로 낙점되어 트라우마에 휩싸인 것이다.
‘거대 파리와 그 짓을? 죽어도 사절이지.’
그렇기에 수렁구더기들을 다치게 하는 데서 그치고 숨통은 끊지 않은 건데.
욕심에 눈이 먼 장선규가 스스로 그 지옥으로 발을 들였다.
“어떡하죠? 구하러 가야 하는 거 아니에요?”
최솔이 떨면서 하는 말을, 김태훈이 어두운 표정으로 받았다.
“하지만 놈이 공간이동을 써서, 추적하고 싶어도 흔적조차 남지 않았습니다. 이래서는.”
“세상에. 성우 씨, 뭔가 방법이 없을까요?”
이성우는 한동안 최솔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장선규 같은 인간도 인간이라고.
여전히 구하고 싶어 하는 건 그저 타고난 본성일까.
아니면 힐러로서의 책임감 같은 것일까.
그건 알 수 없지만.
사람을 구하고 싶다는 염원에 사무쳐 보았던 건 그 역시 마찬가지라.
최솔의 마음은 충분히 이해했다.
“방금 그놈이 이 게이트의 주인이기도 할 테니, 어차피 잡으러 가야 하긴 합니다. 다만, 태훈 씨 말씀처럼 공간이동 능력이 골치가 아프긴 한데.”
“아······ 역시 방법이 없겠죠? 그럼 어서 움직이기라도······.”
실망한 최솔이 성급히 걸음을 옮기려는 찰나.
이성우가 어깨에 앉아 있던 레라지에를 들었다.
“방법이 없는 건 아닙니다.”
당황한 레라지에가 버둥댔다.
“왜, 왜 이러느냐. 필멸자!”
“방향이라도 알려줘. 냄새 추적할 수 있을 거 아냐.”
“내가 왜 그래야 하지?”
“앞으로 협력하려면 이럴 때 호의를 베풀어두는 것도 나쁘지 않을 텐데? 어차피 네가 확인하고 싶은 건 내 무력이지, 후각이 아니잖아.”
“끙······.”
그 모습을 바라보던 최솔과 김태훈이 서로를 쳐다봤다.
“지금 고양이랑 대화하시는 거······.”
고양이 소리에 레라지에가 최솔을 향해 빽, 소리쳤다.
“나는 고양이가 아니다! 지옥의 칠십이 위 고위 악마다!”
물론, 최솔에겐 그저 애옹거리는 소리로 들렸을 것이다.
“협력할 거야, 말 거야. 이런 데서 시간 끌지 말자고.”
“후우. 그래, 확실히 네 코가 궁금한 것은 아니니까.”
레라지에가 고개를 돌리더니, 한쪽을 가리켰다.
“저쪽이다.”
이성우가 두 사람을 향해 싱긋 웃어 보였다.
“저쪽이라는군요.”
* * *
걸음을 옮기는 한편, 이성우는 베스페라의 공략법을 구상했다.
놈의 몸은 지구의 곤충처럼 머리, 가슴, 배 세 부분으로 나뉜다.
머리와 가슴의 키틴질 갑각은 아다만티움에 버금갈 정도로 단단하다.
알을 잔뜩 품고 있는 배는 갑각이 없어 약하지만.
문제는 베스페라가 그걸 쉽사리 노출할 리가 없다는 것.
‘그 녀석이 쓰는 단거리 공간이동이 영 까다로울 거란 말이지.’
방법이 없는 건 아니다.
샌드웜에게서 갈무리한 이빨들.
그걸 쓰면 제아무리 열심히 공간을 드나든다 해도 약점을 감출 수 없을 테니까.
단지 특성에만 의지해 [강착]이나 [압축] 같은 스킬로 어떻게든 놈을 제압해볼 수도 있겠지만.
‘이상하게도 악마들이 중력에 강하단 말이야. 단순히 강하기 때문만은 아닌 것 같고.’
회귀 전에 마주쳤던 발로그도 그랬고.
레라지에도 그랬고.
아, 설마 그런 건가?
이성우는 퍼뜩 어떤 생각이 떠올라, 레라지에를 돌아봤다.
“어이, 고양이. 하나만 물어보자.”
“이 필멸자가······ 그래, 뭐냐?”
“지옥에 있다가 이 세계로 나오면 몸이 좀 가벼워지나?”
레라지에의 인상이 구겨졌다.
“뭐? 네가 그걸 어떻게 아는 거냐. 솔직히 말해봐라, 너 악마지?”
역시 그런가.
지옥은 기본적으로 지구보다 중력이 높은 것이다.
고위 악마도 아닌 발로그가 8배의 증강까지 견뎌냈던 걸 생각하면, 최소 5배. 넉넉히 10배는 되겠지.
‘그럼 중력 압박으로 피해를 주려면 기본적으로 지옥의 중력 수준은 초과해야 한다는 소리군.’
면역이 아닌 게 어디냐.
지금은 벌써 8배까지는 숨 쉬듯이 조절할 수 있게 되었다.
이 속도면, 진짜 악마들에게 피해를 줄 정도로 강해지기까지는 얼마 걸리지 않을 테다.
‘번식의 여제, 베스페라도 그걸 위한 성장의 발판이 되어줄 거다.’
이성우는 이전 회차에 데우스 길드가 베스페라를 처치한 뒤, 습득했다고 보고한 전리품이 무엇인지.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독정. 그걸 얻는다면 머잖아 도래할 큰 이벤트의 절반은 먹고 들어간다.’
그때, 척척한 늪지대가 끝나고.
눈앞에 거대한 고목들이 서로 기대어 서 있는, 인디언 텐트 같은 구조물이 눈앞에 나타났다.
“도착했군요. 놈의 둥지.”
* * *
“우웁······!”
둥지 안에 발을 들이자마자, 최솔이 헛구역질을 해댔다.
그럴 만도 했다.
둥지 내부는 수렁구더기들의 탈피 껍데기와 알껍질.
그리고 놈들의 숙주이자 먹이가 된 마수들의 썩은 사체로 가득했으니까.
“으······ 으어······ 허억.”
무엇보다 아까 베스페라에게 잡혀갔던 장선규.
이미 파리 부인과의 거사를······ 아니, 그건 됐고.
그는 등판에 커다란 알집을 단 채 수렁구더기 몇 마리에게 산 채로 파먹히는 중이었다.
충격과 고통에 정신을 놓았는지, 비명조차 제대로 지르지 못하는 모습을 보고.
그 누가 태연할 수 있을까.
심지어 장선규가 없는 편이 세상에 이로울 거라 판단했던 이성우마저 인상이 찌푸려졌다.
인간이 악마에게 이따위로 당하는 꼴은,
이전 회차에서 본 것만 해도 차고 넘쳤다.
“힘드시면 밖에 계셔도 됩니다.”
이성우가 제안했지만, 최솔은 단호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치료하려면 제가 있어야죠.”
“기다려 보세요.”
이성우는 정신을 놓은 장선규에게 무중력을 부여한 뒤, [강착]으로 가까이 끌어당겼다.
끼에에에엑!
덤벼드는 수렁구더기들은 [중력 역전]으로 띄워버리고, 등짝에 붙어 있던 알집을 떼어냈다.
콰득!
“태훈 씨, 이 사람 부축해서 최솔 씨랑 나가세요. 멀리 가진 마시고요.”
김태훈이 장선규를 받아들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부디 몸조심하세요.”
최솔은 혼자 남은 이성우가 걱정되는지, 연신 뒤를 돌아보며 멀어져갔다.
두 사람이 둥지 밖으로 나가는 것까지 확인한 이성우가, 알집을 들고 있던 손아귀에 힘을 가했다.
콰지직― 주르륵
“나와, 더러운 악마야.”
“거, 듣는 악마 기분 나쁘게 말하는구나. 필멸자.”
“너랑 농담 따먹기 할 기분 아니니까, 조용히 있어.”
레라지에가 히죽거리다가, 무심코 이성우의 눈빛을 보고 입을 다물었다.
‘······지옥의 칠십이 위, 군단장인 이 몸께서 위축됐다고? 무슨 인간 놈의 기세가 저리 흉흉한지······.’
그때, 거대한 둥지 안이 무수한 날갯짓 소리로 가득 찼다.
부우웅―
왜에에엥―
거의 화물용 컨테이너만 한 크기의 베스페라가 모습을 드러냈다.
한 마리 한 마리가 사람 팔뚝만큼 커다란 파리들을 떼로 이끌고서.
“하찮은 필멸자 주제에······! 감히 내 아이들을 죽여?!”
혐오스럽기 짝이 없는 파리여왕과 말을 섞고 싶지도 않았던 이성우는,
귀찮다는 듯이 손을 뻗어 홀스터에 달렸던 이빨을 던지는 동시에 한쪽 바닥에 [강착]을 시전했다.
콰가가가가!
지구 중력 8배에 달하는 인력이 베스페라는 물론, 파리로 우화한 새끼 악마들을 모조리 끌어당겼다.
“당장 그만두지 못해!”
베스페라가 독기에 차 외치면서,
공간이동으로 [강착]의 범위를 벗어나 이성우의 머리 위를 노렸다.
하지만.
쩌엉―
콰지직!
아공간 해방음과 함께 모습을 드러낸 콘크리트 구조물이 [강착]에 휩쓸려 한데 몰려 있던 파리들 위로 떨어지자.
“안 돼!”
한눈을 판 베스페라를,
이성우의 [대룡거검]이 가격했다.
콰직!
“키아아아악!”
비명을 토하며 날아가던 베스페라는 바닥에 충돌하려는 순간, 다시 공간이동을 써서 공중으로 위치를 옮겼다.
“너, 너 이 자식! 내 새끼들을 잘도!”
이성우가 차가운 목소리로 대꾸했다.
“왜. 자식들을 지키지 못해 열이 뻗치나?”
“너희 하찮은 필멸자들은 알지 못하겠지! 이 고통, 이 슬픔을! 잔학한 놈, 널 죽이고 네놈의 세계로 나가서 네 자식! 네 자식의 자식! 그 자식의 자식까지 모조리 숙주로 삼아주마!”
“하, 모성애를 안다는 놈이 못 하는 소리가 없네.”
“뭐 어때! 너희 필멸자들은 약하기 그지없지. 그 하찮은 삶을 내 아이들을 위해 써주는 걸 영광으로 알 것이지!”
“약하니까 그래도 된다?”
“······!”
이성우의 눈빛을 마주한 베스페라는, 순간 말문이 막혔다.
“그 말 그대로 돌려주마.”
‘[중력 강타]’
현재 중력 제어 한도는 812%.
중력 강타는 그 두 배인 1,624%.
고위 악마가 아닌 이상, 이 수치에는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큭!”
열심히 날개를 펄럭여도 몸이 빠르게 떨어지는 몸.
결국 베스페라는 다시 공간이동을 쓰기 위해, 공간을 찢었다.
‘지금이다.’
이성우는 그 순간을 노렸다.
베스페라가 공간의 틈으로 몸을 밀어 넣는 순간.
대룡거검으로 직접 타격을 시도하는 대신······.
놈에게 [강착]을 시전하면서 허공에 공들여 채집한 ‘샌드웜의 이빨’을 흩뿌렸다.
촤르르르!
던져진 이빨들은 [강착]의 효과에 휘말려,
자연스레 자리를 옮긴 베스페라에게로 날아들었다
촥!
푹, 푹푹!
“끄아! 이게 무슨······!”
다시 한 번 공간 도약을 시도하는 베스페라.
놈에게 날아들던 이빨들 중 일부는 찢어진 공간의 틈을 따라 들어가고.
나머지는 다시 혜성처럼 궤도를 틀어,
놈에게로 쇄도했다.
“크아아아! 하찮은 필멸자 따위가!”
베스페라가 독털을 새카맣게 뿜어냈지만,
그것들도 [강착]에 휘말려 아무런 효과도 발휘할 수 없었다.
“······.”
이성우는 건조하게 베스페라가 발버둥 치는 광경을 지켜보았다.
샌드웜의 이빨은 보기보다 강도도 예리도도 높은 소재.
그것과 [강착]을 이용해 만들어낸 ‘분쇄 폭풍’은,
이성우가 스킬을 중단하거나 베스페라가 만신창이가 될 때까지 절대 멈추지 않을 터.
“어이, 이 정도면 네 힘은 충분히 확인했다. 적당히 하지 그래.”
레라지에마저도 보다 못해 이성우를 만류할 정도로, ‘분쇄 폭풍’의 위력은 잔혹했다.
“크, 크어······ 대공 각하······.”
쿵―
결국 베스페라는 이성우에게 제대로 된 공격 한 번도 못 해보고 쓰러졌다.
『게이트 보스를 처치했습니다!』
이성우는 베스페라에게 다가가,
머리에 박혀 있던 마석을 빼내고.
바닥에 떨어진 보랏빛 광석, [중력석 덩어리]를 집었다.
샌드웜이 [중력석 파편]을 떨군 게 못내 아쉬웠는데,
그래도 만회한 셈.
만족스럽게 주변을 더 둘러보던 이성우의 눈에 붉은 아우라를 피워내는 물건이 띄었다.
“저건······ 열쇠 조각이군.”
그것을 주워들자, 눈앞에 메시지가 떠올랐다.
『메인 퀘스트 업데이트』
조건 : 타르타로스의 열쇠 조각을 모아라. (3개 중 2개 완료)
일전에 남산에서 균열지기 ‘아다만티움 땅거북’을 처치하고 보상으로 얻었던 조각에 맞춰보자.
우우웅―
묘한 공명음을 내며, 나눠져 있던 조각 두 개가 서로 합쳐졌다.
‘손잡이 쪽은 완성됐고, 이제 끝부분만 남았네.’
“그건······ 타르타로스의 열쇠잖아? 필멸자야, 다른 고위 악마들과도 싸우겠다는 게 진심이었구나. 심지어 지옥으로 넘어가서 싸울 셈이군?”
이성우는 레라지에의 그 말에서 홀로 하고 있던 추측을 굳혔다.
‘역시, 메인 퀘스트는 지옥으로 넘어가는 경로를 그리고 있는 건가.’
그렇다면 이쪽도 환영이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지구, 그것도 서울에서 능력을 마음껏 터뜨리는 건 꺼림칙한 일이지만.
지옥을 파괴하는 건 거리낄 것 없는 일이니까.
‘내가 지옥의 재앙이 되어주마.’
나머지 하나가 어디에 있는지는 아직 알 수 없지만,
기회가 찾아올 때까지 이성우는 끊임없이 성장할 셈이었다.
그는 열쇠를 챙겨 넣고, 잔뜩 오그라든 베스페라의 다리 쪽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대룡거검]으로 부드러운 배 부분을 갈랐다.
“또 전리품 챙기냐? 이번엔 어딜 뜯어가게?”
레라지에가 딴지를 걸었다.
“아까 샌드웜에게서 뜯어온 이빨 쓰는 거 못 봤어?”
게다가 그가 얻으려는 건, 사냥의 트로피로 삼을 신체 부분이 아니었다.
“찾았다.”
배에서 가슴 부분으로 이어지는 길목에 동그랗게 형체를 이룬 물건.
『아이템 정보』
이름 : 독정
등급 : 영웅
효과 : 독 저항력 [25-100%] 증가
-독기 어린 늪지대에서 헤아릴 수 없는 세월을 보낸 존재에게서 발견되는 내단. 끔찍한 고통을 선사하는 맹독성의 물질이지만, 복용 후 그 힘을 자신의 것으로 할 수 있다.
‘좋았어.’
마침 머잖아 닥쳐올 재앙을 생각하면, 냉기와 독에 대한 저항력을 확보할 필요가 있었던 상황이었다.
‘머잖아, 김포를 쑥대밭으로 만들었던 냉룡 스카디마이어. 그 망할 놈이 흑룡과 함께 다시 등장할 거다.’
그리고 흑룡이 뿜어내는 맹독 브레스와 독무를 견디려면 100%의 독 저항력을 갖추는 게 필수적이었다.
물론 독정의 아이템 설명을 보면 25%에서 100% 사이의 랜덤한 값으로 저항력을 올려주는 것 같지만.
‘이건 꾸러미 류의 아이템과는 달리, 조건만 만족하면 무조건 100%를 확보할 수 있지.’
마침, 그 ‘조건’ 확보의 열쇠가 근처에 있었다.
이성우가 베스페라의 둥지를 뒤로하고 걸음을 돌리려는 찰나.
파지지직―
불길한 스파크와 함께, 주변의 마기 농도가 치솟기 시작했다.
“늪의 대공, 그의 눈이 온다.”
레라지에의 털이 미세하게 곤두서 있었다.
하지만 이성우는 조금도 당황하지 않았다.
‘역시, 실망시키지 않고 등장해주시는군. 기다렸다고. 관음충 대공 양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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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부패와 재생, 그리고 진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