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reat Chinese warlord from Joseon RAW novel - chapter 192
우연에 우연이 겹치지 않았더라면, 수많은 군벌들이 일어났다 스러진 혼란기에 그들 역시 허다한 군벌들처럼 흔적없이 사라져 버렸을 수도 있었겠으나.
그러나 그들은 단지 운으로만 광시성의 패자가 된 것은 아니었다.
“왕징웨이 위원은 쑨원 선생님을 오랫동안 모셨으며 또한 동맹회 창립회원이시지만. 쑨 선생님의 사상을 그저 따르는 대신, 본인만의 독창적인 혁명전략을 수립하고 계시지요. 왕 위원의 연설 능력과 글솜씨는 모두가 인정하는 바이며, 쑨 선생님 못지않게 대중적 인지도 또한 높으니. 비상 상황에 당을 이끌 위원장으로 추천하는 바입니다.”
“저도 추천합니다.”
한신이 군벌 시대를 끝냈다지만.
장제스는 리쭝런과 바이충시 같은 무리를 볼 때마다, 어떤 기시감을 느꼈다.
신군벌 시대가 도래할 것 같은 무서운 예감이었다.
군대를 중앙정부에 반납한 후에는 별 볼 일 없는 신세가 되지 않을까 싶었으나.
리쭝런은 재빨리 광저우로 건너와 국민당 내에서 자리를 잡으려 시도했다.
한창 광시성에서 장교 지원 열풍이 불었던 당시, 300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육군소학당에 수석 입학했던 리쭝런.
그는 결코 멍청이가 아니었다.
차기 당대표로 가장 유력한 사람이 왕징웨이라는 사실을 꿰뚫어보고, 줄을 댈 정도의 정치감각이 있었다.
바이충시는 소수민족인 회족 출신으로 흔치 않은 이슬람교도였다.
그는 무서운 전술적 능력을 보유한 자였다.
전장에서는 귀신으로 불린다고 했다.
양무새처럼 리쭝런의 말을 따라하는 것이 묘하게 위협감을 느끼게 했다.
광시 군벌 두 사람이 미는 왕징웨이는 천안문 공청회 참석과 연관이 된 일로 베이징에 출장 중이었다.
본격적으로 거국정부를 구성한 것은 아니지만.
신 중화합중국이 어떤 식으로 모습을 드러내게 될지 파악하기 위하여, 국민당이 공화정부에 댄 유일한 끈이었다.
“얘기는 나중에 마저 합시다.”
회의는 결론을 내지 못하고 종료되었다.
제 2차 비상대책회의가 열리기까지 주어진 짧은 휴지기 동안.
장제스는 휴가를 내서 광저우를 벗어났다.
그리하여 도착한 곳이 홍콩.
쉬기 위함이 아니었다.
광저우에 깔린 감시망으로부터 탈출하기 위해서였다.
장제스는 구룡반도의 대로를 살짝 벗어나서 파칭코점 앞에 섰다.
아침이라 거리는 한산하고 가게 문은 닫혀 있었지만.
장제스는 주변을 살펴보고는 말가죽으로 덮인 뒷문을 젖혔다.
어린 놈 하나가 다리를 꼬고 앉아 있다가 장제스를 발견하곤 벌떡 일어섰다.
“정지. 너 뭐야?”
장제스는 말없이 가게 안을 둘러보았다.
“고참 없어?”
“너 뭐냐고?”
“구룡성 매콤주먹이라고 아냐?”
“···뭐?”
“왕코상어는? 아직도 코골이와 이갈이를 한꺼번에 하냐?”
“그, 그걸 어떻게?”
“닥치고 네 아무 형님이나 데려와. 평의사 경력이 있으면 더 좋고.”
허겁지겁 안쪽으로 달려 들어간 삼합회의 말단은 금방 다시 나왔다.
도쿄에서 같이 작전을 수행했던 왕코상어와 함께였다.
“형님! 어쩐 일이십니까! 뵙고 싶었습니다!”
“연락을 해야겠어.”
“어디에 말입니까?”
“맨 위.”
“어···. 마스터는 저녁쯤에 나오실 텐데. 급한 일입니까?”
장제스는 다시 분명하게 말했다.
“더 위.”
“예?”
“삼합회의 용두를 찾는 게 아니다. 말했잖아, 더 위에 볼일이 있다고.”
“그, 그럼···?”
왕코상어가 큼지막한 왕코를 긁으며 난처해했다.
“그것이, 어지간히 급한 일 아니면 연락하지 말라고.”
“괜찮아. 나는 통화를 해야겠어.”
“그럼 모시겠습니다.”
기다란 복도를 지나.
장제스는 홍콩 삼합회 본부의 깊숙한 방에 도착하였다.
“직통회선이 있으니, 자유롭게 거시면 됩니다.”
“알았어. 나가 봐.”
“옙.”
방에 혼자 남은 장제스는 수화기를 들었다.
신호음 끝에 상대방이 받았다.
“여보세요?”
여자 목소리. 뭐야 이거.
왕코상어가 분명 그대로 걸기만 하면 된다고 했는데.
“어···. 한신의 댁이 맞습니까?”
“어! 맞아요. 바로 불러드릴까요?”
“예. 부탁드립니다.”
여자의 호흡이 멀어지는 소리가 들렸다가.
다시 가까워졌다.
“그런데 혹시 누구시죠? 뭐라고 전해야 될지 몰라서요.”
“저는···. 녀석의 친구입니다. 장제스라고 합니다.”
“아! 제스 오빠셨구나. 진작 말씀하시지. 금방 불러드릴게요.”
제스 오빠라고···?
거참, 국민당의 명운을 걸고 진지한 마음으로 임하는데.
괜히 마음이 싱숭생숭해진다.
“응. 나야.”
드디어 한신이 받았다.
이 통화를 위해 홍콩까지 온 장제스였다.
“네 지시냐?”
“뭐가?”
“알잖아.”
한신은 한참 만에 대답했다.
“아니.”
“그럼 대체 어떻게 된 건데?”
“나도 몰라. 의회에서 사판안이 채택되었다 했나? 잘 해결이 되겠지.”
“그리 무책임한 소리를···.”
정치경찰은 함부로 움직이지 않는다.
예전에 국무총리 량스이와 육군부 장관 차오쿤 같은 거물을 연행한 적이 있지만.
당시는 외국과 내통했다는 중대 혐의가 적용된 데다 현행범으로 잡힌 것이었다.
반면에 쑨원의 경우는 훨씬 파격적이다.
정치 탄압으로 보일 여지가 분명함에도 그걸 무시하고 강행할 정도면···.
둘 중 하나다.
정말로 쑨원의 범죄 증거가 확실하거나.
아니면, 진짜 정치 탄압이거나.
“나는 안다. 공화정부의 숨은 실력자는 너잖아.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냐? 어째서 쑨원 선생님을 체포한 거지?”
“나는 몰라. 내각의 일은 관료들이 알아서 한다. 지금의 난 그저 평범한 애 아빠일 뿐이야.”
말도 안 돼.
이 사람이 정말 한신이란 말인가?
“···많이 약해졌군. 자네, 무슨 일이 있었나? 전쟁이 그렇게 힘들었어?”
“응. 졸라게 힘들었어. 그러니 좀 쉬련다.”
“이번 일은 좌시할 수 없어. 제1야당의 대표가 대낮에 베이징으로 압송되었다고!”
“야, 장제스. 왜 이리 열을 내. 간단한 거야. 죄가 있으면 처벌 받고. 죄가 없으면 풀려나겠지. 중합중국의 시스템을 신뢰해보라고.”
죄가 있으면 감옥에 가고, 없으면 풀려날 거란 건 자신이 했던 생각이다.
그럼에도 한신의 입을 통해 들으니 어째 괘씸한 마음이 앞선다.
아직도 쑨원에 대한 미련이 남아있는 것일까?
“그것보다, 소련의 요페라는 자와 국민당의 밀약을 조사해 본다는 일은 어떻게 되었냐?”
“똑같다. 조사중이야.”
“어떻게 조사하는데?”
“루블이 들어오고 나가는 장부를 살펴보고, 요페뿐 아니라 다른 소련인들의 동향을 파악하는 거지. 누구와 만나는가, 누구와 통화하는가···.”
“그런 식으로는 10년이 지나도 진전이 없을 걸.”
“뭐?”
한신이 단호한 음성으로 말했다.
잠깐이나마, 공화군 최고사령관 국사무쌍 한신으로 돌아온 것 같았다.
“소련에 가.”
하필이면 소련을 방문할 중국 특사를 한창 선정 중이긴 한데.
그래도 추운 곳은 딱 질색이란 말이다.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굴에 들어가란 얘기냐?”
“호랑이가 누군데? 쑨원?”
“그래.”
“장제스, 뭔가 착각하는데.”
한신에게서 나온 말은 뜻밖이었다.
“내가 쑨원을 미워한다고 생각하나? 쑨원은 내 적이 아냐. 중국의 적도 아니지. 나는 혁명 같은 거창한 표현을 좋아하진 않지만, 쑨원의 식대로 표현하면 우리는 같은 혁명의 길을 걷는 동지다. 단지 도달하는 방식에 있어서 의견 차이가 있을 뿐이지.”
처음 듣는 한신의 진심.
잠깐, 그럼 지금까지 자신이 정보를 보낸 것은 뭘 위해서였단 말인가?
“그렇다면, 무엇 때문에 나를 국민당에 잠입시킨 거냐?”
“적의 동향을 파악하기 위해.”
“방금 쑨원 선생님은 적이 아니라고···.”
“그래.”
장제스는 멈칫하였다.
쑨원에 대한 애증이 눈을 가렸던 것일까.
지금껏 편협함에 사로잡혀있던 시야가 탁 트이는 느낌이었다.
“소련을···. 견제하는 거냐?”
“그래. 모르긴 해도 장래 통일중국의 가장 큰 적은 소련이 될 거다.”
“그럴 리가? 나도 공산당을 썩 좋아하진 않지만. 소련은 아시아에 관심이 많아. 계속 자금을 지원하며 중국을 돕고 있어.”
“그래서 위험하다는 거다.”
잠시 뜸을 들이더니 한신이 다시 말했다.
“사회주의 이념은 강력한 힘을 지니고 있지. 소수의 자본가를 척결하고 절대 다수 인민의 손으로 세상을 일구어 내자는 사상이니. 고대로부터 전해 내려오는 사유재산의 부당함에 대한 저항이다. 어째서 가진 자는 태어나면서부터 호의호식을 누리고, 가지지 못한 자는 노예가 되어 평생 구차한 삶을 이어가야 하는가? 그러한 부조리에 대해 한 번도 의문을 품어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거야. 사회주의는 바로 그 물음에 대한 해답을 제시하고 있다.”
장제스는 그렇게까지 깊이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그저 중국의 오래된 유교문화와 맞지 않는 신사상이라, 본능적으로 거부감이 들었을 뿐이었다.
“그게 무슨 말이냐. 사회주의가 중국에서도 성행할 거란 얘기냐? 중국공산당 놈들의 꼬락서니를 네가 직접 보았다면 그런 얘기를 못 할 텐데.”
“사회주의는 소수의 엘리트 당원들이 위로부터 전파하는 게 아니다. 봉급 대신 받은 썩은 쌀이 담긴 쌀가마, 배고프다고 허구한 날 울어 대는 다섯 살 배기 딸아이, 공장에서 철근에 깔려 잘려 나간 두 다리, 파김치가 되어 퇴근하는 길에 우연히, 고급 요리점에서 우아하게 스테이크를 썰고 있는 고용주의 모습을 목격하게 되면서 탄생하는 거다···.”
이어지는 한신의 목소리는 어딘가 쓸쓸했다.
“토지 개혁을 하고 공장 직원들의 처우를 개선해 주고 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은 여전히, 세계 어느 나라보다 사회주의의 위협에 취약하다.”
“그렇다면 차라리 사회주의를 시도해볼 수도 있잖아?”
“아니. 그렇게는 안 돼.”
“왜?”
“안되니까.”
“마치 해본 것처럼 말하는군.”
“···나는 봤어.”
뭘 봤다는 거지?
장제스는 의아하여 물었으나, 한신은 더 설명하지 않았다.
대신 한신은 소련에 가게 되면 주의해야 할 점을 알려주었다.
“트로츠키보다는 스탈린을 조심해. 그놈이 진짜야.”
아직 소련행을 결심한 것은 아니지만.
장제스는 한신의 충고를 열심히 들었다.
본래는 쑨원의 연행을 따지려 했으나, 어째 지령을 받는 것처럼 되어버렸다.
긴 대화 끝에.
한신이 마지막으로 말했다.
“확실히 수화기로 들으니, 네 목소리가 좋은 것도 같다.”
“갑자기 무슨 소리냐?”
“쑹메이링이 우리 집에 와 있거든. 한신 오빠, 목소리 좋은 친구분이 찾으셔요. 라던걸.”
쑹메이링이라면.
자신이 목숨을 구해주었던 쑹칭링의 동생이 아닌가.
그래서 마음이 뛰었던 것인가?
“전화 받은 분이 형수님이 아니었던 거냐?”
“당연하지. 쑹씨 말괄량이와 우리 차분하고 우아한 시씨 안주인을 구분하라고.”
수화기를 내려놓은 장제스는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한신과 통화하고 나면 개운해질 줄 알았는데.
몇 배로 거추장스러운 일거리가 생겨버렸다.
그러나 무겁게 짓눌려 있던 가슴은 한결 가벼워졌다.
책상 앞에 앉아 끙끙 고민하는 것보다.
아무리 어려운 일이라도 대뜸 뛰어들고 보는 것이 장제스의 스타일이었다.
곧바로 당사에 요청했다.
“내가 소련에 가겠소.”
그렇게 장제스의 소련행이 결정되었다.
준비로 한창 바쁜 나날을 보내는데.
거짓말처럼 쑨원이 돌아왔다.
대부분의 혐의들에서 증거 불충분으로 풀려난 것이었다.
그러나 주변의 시선은 곱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