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lf a penny from the Golden Tiger RAW novel - Chapter 37
하북행 (2)
“드디어 도착했구나.”
쏴아아아아아!
물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고 곧 천룡 폭포가 눈에 보였다.
두 개의 봉우리 사이, 기암괴석을 뚫고 물이 흐르는 곳은 마치 용이 하늘로 올라가면서 생긴 모양이라며 천룡 폭포라는 이름이 붙었다.
대자연의 위대함을 몸소 느꼈고 발을 옮겨 천룡 폭포의 앞으로 걸어갔다.
내가 이곳에 온 이유는 하나였다.
“무조를 보러 왔으니 길을 열어주시오.”
천룡 폭포에서 물이 떨어지는 소리와 함께 말소리가 들려왔다.
“이곳을 찾은 분의 성함은 어떻게 되십니까?”
“송삼현이오.”
“금호장 삼 공자 송삼현, 왜 이곳에 오셨습니까.”
무조는 저번 삶에서 흑사회의 정보책으로 활동했던 자였다.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은밀하게 뒤에서 정보를 긁어모으는 일은 가히 천하에서 따를 자가 없었다.
이런 말이 있을 만큼 무조는 중원의 모든 정보를 손바닥 보듯 보는 존재였다.
“그야 그대를 내 사람으로 만들고 싶기에 왔소만.”
휘이이익!
폭포 사이에서 비수가 날아오며 내 뺨을 지나서 뒤에 있는 나무에 박혔다.
‘무음비도술’
암살을 주로 하는 이들이 익히는 비도술이었다.
“무조를 이끌려면 그에 합당한 자격을 갖춰야 합니다. 허나 송 공자의 어디에도 그에 걸맞은 자격은 없어 보입니다.”
“지금 나에게 자격은 없지만, 그대들이 원하는 것을 줄 자신은 있소.”
“우리가 원하는 것을 말입니까? 우리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요?”
그들의 말에 난 곧바로 대답했다.
“화령신조(火靈神鳥), 그의 목을 그대들에게 가져다주겠소.”
그러자 그들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아마 자기들끼리 무언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것이겠지.
그렇게 기다리고 있자 곧이어 목소리가 폭포를 뚫고 들려왔다.
“이야기를 나누도록 하지요.”
천룡 폭포가 세로로 갈라지며 길이 열렸고 폭포 뒤에 있는 동굴 안은 횃불이 길을 비췄다.
이렇게 길이 열리지 않은 채, 폭포를 헤집고 무작정 들어가면 진법에 갇히게 되는 곳이었으나 난 무조의 허락을 받았기에 진법에 갇힐 일은 없었다.
동굴 안으로 계속해서 들어가자 문 하나가 있었다.
그 문을 열고 들어가니 수많은 서책이 있었고 그 서책 사이로 의자에 앉아 나를 보고 있는 사람이 있었다.
“이쪽으로 앉으시지요.”
왜소한 체구에 긴 장발, 금방이라도 죽을 것 같은 몰골을 한 자는 이곳을 이끄는 무조였다.
“이곳을 아는 이는 중원에서도 극소수만 아는데 어찌 아셨습니까?”
“운이지요.”
“뭐 그것은 크게 궁금한 것은 아니니 넘어가겠습니다.”
어둠 속에서 신형이 하나 나오더니 탁자에 차를 두 잔 올린 뒤에 다시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화령신조의 목이라고 하셨습니까?”
“그렇소.”
화령신조는 막대한 기밀정보를 빼돌리고 수하들을 죽인 뒤에 무조를 배신하고 나간 자로 현재 행방이 묘연했다.
그를 잡으려고 추적조까지 꾸렸으나 화령신조라는 별호처럼 새처럼 날아다니는 신묘한 경공을 펼치는 바람에 치밀한 추적을 뿌리쳤다.
그리고 지금 화령신조는 하북성 인근에 숨어 있었고 난 그가 어디 있는지 알고 있었다.
“그 말은 어떻게 믿어야 하지요? 지금 화령신조가 어디에 있는지 아는 자는 그 어디에도 없습니다만.”
“나도 모를 거라고 보시오?”
“열다섯의 어린 공자가 화령신조를 잡을 수 있다는 것은 거짓으로밖에 들리지 않습니다. 그리고, 우리 무조에게 거짓을 고한 자는 목숨으로 그 대가를 치러야 하고요.”
“알고 있소.”
“… 그것을 아는 분이 그리 말씀하셨단 말입니까?”
“새 사냥쯤은 자신 있소.”
무조의 표정은 변함이 없었다.
“….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요?”
“그대들의 통제권.”
저번 삶에서 이들 때문에 얼마나 고생했는가, 만약 이들만 손에 얻을 수 있다면 흑사회와 마교의 손 하나는 잘라낸 셈이다.
“만약 이 말이 거짓이라면 그 대가는 무조의 규율대로 송삼현 공자의 목숨으로 치러야 할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라도 이들을 끌어드릴 자격을 갖춰야 했다.
저번 삶에서 흑사회주가 패도로 이들을 다스렸다면 나는 그와 달리 포용으로 이들을 다룰 것이다.
그렇게 그들의 숨통을 조여나가 종국(終局)에는 내 검이 천마의 목 끝에 닿을 수 있도록.
“기다리시오, 한 달 안에 화령신조의 목을 가지고 오겠소.”
*
화령신조를 잡으러 가기 전에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이 있었다.
그 일을 위해 난 하북성의 서쪽에 있는 마안으로 갔다.
하룻밤을 자고 아침을 먹는데 아침부터 객잔은 소란스러웠다.
이곳은 나라에서 관리하는 광산 때문에 일하는 사람이 많았고 사람들이 사는 이야기가 들려왔다.
“아니 글쎄 이번에도 왜구들이 쳐들어와서 황화부의 많은 이들이 죽임을 당했다지 뭔가.”
“참으로 딱하지, 관군들은 무엇을 하는지도 모르겠고.”
“작년에 나라에서 대대적인 토벌을 감행했는데도 올해 또 생겨났으니 나라에서도 고민이 많겠지.”
하북에서 말이 많은 것은 왜구와 관련된 일이었다.
하북을 비롯해 산동, 강소, 절강, 복건등 해안에 밀접한 지역은 왜구의 문제가 끊이지 않았다.
그들이 멸종하는 것도 아니고 소탕을 해도 다음에 또 다른 이들이 오니 나라에서도 난감했다.
관직에 있는 이들은 그들을 소탕하고 피해를 당한 이들에게 지원해주고 있지만, 올해는 작년보다 피해가 막심해 지지부진했다.
“나라 곳간은 저 높은 이들이 다 헤쳐 먹고, 정작 필요한 곳으로 들어가질 못하니 이게 사는 건지 죽은 건지 모르겠어.”
“그래도 황화부 지부대인은 자기 곳간도 털어가며 구휼하니 얼마나 훌륭한 분이신가.”
그 뒤로도 여러 이야기가 들려왔다.
도움을 주고 싶지만, 내게 급한 것은 무조의 정보력을 손에 넣는 일이니 먹은 음식을 계산하고 다시 길을 나섰다.
그렇게 마안에서 반나절 거리에 있는 천음산으로 입산했고 얼마 오르지 않아 지게에 땔감을 쌓은 채, 뛰어가는 사람이 보였다.
등에 짊어진 많은 나무가 한 치도 흔들리지 않으며 신묘한 경공을 펼치는 그와 눈이 마주쳤다.
“앗! 주군!”
나를 주군이라고 부르는 유일한 사람.
“오랜만이오, 선무정.”
금호무회에서 만났던 풍천신보 선무정이었다.
*
“이곳에서 주군을 만날지 몰랐습니다. 안 그래도 열흘 뒤에 금호장으로 가려고 했거든요.”
“아직 소문을 듣지 못했소?”
“어떤걸요?”
“난 금호장에서 나와 강호행 중이오, 그래서 그대와 약조한 게 떠올라 이렇게 데리러 왔고.”
내가 금호장을 나왔다고 하자 선무정의 두 눈은 커졌다.
“그, 그게 정말입니까?”
“… 그대가 걱정하는 것은 내가 금호장을 나온 거요? 아니면 전에 약조했던 배불리 먹게 해주겠다는 약조를 못 지킬까 봐 하는 걱정이오?”
눈에 띄게 당황했다.
저번 삶에서도 먹을 거라면 환장하던 이 자라면 십 할은 후자일 거다.
“걱정하지 마시오. 금호장의 돈은 마음대로 쓸 수 있으니 그대에게 급여는 물론 먹을 거 사주는 데 아무런 문제 없소.”
“전 단 한 순간도 주군을 의심한 적이 없습니다!”
의심했다. 무조건 했다.
“하하하하! 주군 저기가 제가 사는 곳입니다!”
말을 돌리는 것도 잘하네.
멀리서 보이는 집을 보는데 나무로 만든 오두막집이었다.
마당에서 내 또래로 보이는 아이가 장작을 패고 있었고 선무정을 보자 활짝 웃었다.
“사형!”
“도광아, 사부님은 어디 계시느냐?”
“평상에서 술을 드시고 계십니다.”
그때,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곳에 객이라니 오랜만이군, 무정아 그놈은 누구더냐?”
“사부님! 제가 전에 말씀드렸던 금호장의 삼 공자님으로 앞으로 제 주군이 되실 분입니다!”
천음산보!
그가 나에게 걸어왔고 하얀 백염을 쓰다듬으며 나를 유심히 바라봤다.
“…. 참으로 신묘한 물건들을 가졌구나, 천잠사에 몸을 감싼 이 갑옷은 대체 뭐냐.”
“독곡주께서 만들어주신 신물입니다.”
“그 늙은이는 여전히 물건 하나는 잘 만드는군.”
“곡주님을 아십니까?”
“알다마다. 오래전에 강호를 유랑할 때, 그 녀석이랑 만난 적이 있다. 지금도 이상한 물건을 만들면 나에게 이것저것 보내주지.”
천음산보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그들이 지내는 오두막 안으로 들어갔다.
내부는 꽤 컸고 여러 명이 지내도 괜찮을 정도로 물건들도 많았다.
“그래, 이곳에는 무정이를 데리러 온 것이냐?”
“그렇습니다.”
“하도 모자란 녀석이라 너에게 피해만 줄까 봐 걱정이다.”
“처음이 모자라지 끝도 모자란 법은 아니니까요. 선무정은 천음산보께서 그랬던 것처럼 강호에 큰 발자취를 남길 것입니다.”
“…. 꽤 재미있는 말을 하는구나.”
선무정의 사제가 차를 가지고 들어왔고 천음산보는 한 모금을 마신 뒤에 나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그러더니 내공을 발산해 내 몸을 살피기 시작했고 난 방해하지 않았다.
제자를 데리고 갈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서 나온 행동이니 훑게 뒀고 곧이어 두 눈이 커졌다.
“화경에는 언제 오른 것이냐?”
역시 중원 영감님들의 눈은 피하질 못한다니까.
화경이라고 하자 차를 마시던 선무정을 비롯해 사제는 차를 뿜을 뻔한 것을 참고 나를 봤다.
“얼마 전에 깨달음을 얻고 올랐습니다.”
“묘하구나, 이리 어린 나이에 중원에 몇 없는 고수라니. 내 나이쯤 되면 천하가 너의 발아래 놓이겠구나.”
“과한 말씀입니다. 저는 그리 큰 사람이 되고자 하는 마음은 없습니다.”
“그러면 왜 그리 높은 경지를 추구하느냐?”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해서입니다.”
“소중한 것을 지킨다?”
“제가 강하지 않으면 지키기는 커녕 잃기만 하니까요.”
천음산보는 내 말을 듣고 묘한 웃음을 지었다.
그리곤 선무정을 보며 말했다.
“네가 모시기로 한 자라면 따라가거라. 도광이도 있으니 내 걱정은 말고.”
“네! 사부님!”
연신 웃으며 해맑게 대답한 선무정을 보곤 천음산보는 손가락으로 선무정의 이마를 툭 쳤다.
꽁.
“이놈아, 그래도 아쉬워하는 기색이라도 있어야지. 그렇게 속 시원하게 말하면 내가 보내고 싶겠느냐?”
“너.무.아.쉽.습.니.다.”
“…. 그냥 가라.”
포기했는지 손을 휘휘 저었다.
“사부님! 드시고 싶은 거 있으세요? 제가 돈 많이 벌어서 사 오겠습니다!”
“됐으니 어서 가보거라, 더 지체했다간 어두워지니 밝을 때, 산을 나서거라.”
떠나기 전에 선무정은 천음산보에게 절을 올리며 스승에게 하산의 예를 갖췄다.
“내가 너에게 해줄 말은 하나다. 배고프다고 훔쳐 먹지 말고 맛있어 보인다고 훔쳐 먹지 말고 무조건 네가 따르기로 한 이의 말을 따르거라. 그것이 지옥불에 뛰어들라고 해도 말이다. 알겠느냐?”
“예! 사부님! 사부님의 가르침을 잊지 않고 매일 정진하겠습니다!”
그리고 선무정의 사제인 유도광은 활짝 웃으며 말했다.
“저도 더 수련해 후에 사형을 따라잡겠습니다! 그때까지 건강하십시오!”
“그러마! 사부님 끼니 잘 챙겨드리고! 내가 전에 줬던 돈은 아껴 쓰거라.”
“네! 사형!”
밝게 웃으며 이별을 고했고 천음산보가 마지막으로 말했다.
“어서 가거라. 해가 벌써 기울기 시작했구나.”
발을 떼려고 하자 천음산보가 나에게 전음을 보냈다.
[모자라고 순수한 녀석이다. 하지만 나의 진전을 전부 물려받은 녀석이니 소중히 대해주거라.]
[그리하겠습니다.]
포권을 올린 뒤에 산에서 내려갔다.
하산하는 중에도 선무정은 여러 가지를 물었고 내 대답에 뭐가 마음에 들지 않는지 미간을 찌푸렸다.
“주군. 이제 제가 주군을 모셔야 하는 사람이니 말은 하대를 해주십시오.”
선무정은 스물 두살로 지금의 나보다 일곱 살은 많았다.
무영단에서도 내가 서른다섯의 나이로 단주에 있을 때, 마흔넷의 송일현이 수하였으니 하대하는 건 크게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알겠다. 그리하마.”
“그러면 내려가서 뭘 먹을 겁니까? 전 북경에 가서 오리 요리도 먹고 싶고 사천에서는 속이 아플 정도로 매운 것도 먹어보고 싶습니다! 그리고 복건 지방에서 별미인 탕 요리도 먹고 싶고···.”
결국에는 모든 지방의 음식을 먹고 싶다고 말할 때까지 말을 멈추지 않았다.
평지에 다다랐을 때, 선무정은 해맑게 웃으며 물었다.
“주군 저희는 이제 어딜 가는 겁니까?”
“새 한 마리 잡으러 간다.”
“그 새는 맛있습니까?”
선무정이 진짜 궁금하다는 표정을 지었고 난 웃으며 대답했다.
“아주 맛있는 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