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rd-working billing engineer RAW novel - Chapter 25
열일하는 과금 기사 24화
일과는 꽤 빡빡하다.
오전 3시부터 9시까지 편의점 알바를 한 뒤 공장으로 출근한다. 기가스 제조로 이름 높은 [환웅 컴퍼니]의 하청 업체, [웅녀 철강]이다.
‘이름 진짜.’
어쨌든 공장에서 비교적 단순하고 힘쓰는 업무를 오후 7시 30분까지 한다. 보통 5시 정도에 퇴근인데 나는 추가금을 받기로 약속하고 작업장 청소를 맡아서 월급을 늘렸다.
그리고 오후 8시, 나는 세 번째 일터로 출근했다.
“여~ 네가 새로 온 기도냐?”
“한재연이라고 합니다.”
“그래그래. 군대 전역자 출신이면 틀림없겠지. 하지만 어리버리 타면 바로 아웃인 거 알지? 여기는 수당이 무조건 일당이고 돈도 일 끝날 때 준다. 중간에 도망가면 개털도 없는 거야.”
“물론입니다.”
나는 강남에 위치한 중형 클럽. [스타 게이트]에서 준 유니폼을 입고 일을 시작했다.
기도. 혹은 바운서(Bouncer)라 불리는, 일종의 문지기였다. 술집이나 도박장 같은 유흥업소의 사설 경비원.
‘전역증 하등 쓸모없을 줄 알았는데 이렇게 쓰네.’
유사시 폭력을 휘두를 수도 있는 일이기에 확실한 신원과 무력에 대한 기대치가 있는 직업이다.
본래 입문 능력자라 알려져 있는 내가 감히 넘볼 수 없는 일자리이지만 전역증이 있으니 문제없이 시작할 수 있었다. 유흥업소에서 기업들처럼 정보 공개 요청할 것도 아니었으니까.
‘뭐, 그래 봐야 수습 기간이고 미심쩍다 싶으면 언제든 잘리겠지만.’
일을 시작했다지만 혼자 하는 게 아니라 사수가 옆에 붙어 있다. 인수인계가 충분히 이뤄지고 나 혼자서도 바운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고 판단되어야 사수가 일을 그만둘 수 있게 되는 시스템이다. 즉 이 모든 과정은 선임이 후임자을 구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오, 이번 후임은 기세가 아주 좋은데? 역시 전역자 출신이 다르긴 다르네.”
선임의 이름은 알 룬드그랜. 이름만 봐도 알겠지만 외국 출신인 그는 하얗게 빗어 넘긴 머리칼이 인상적인 노인이다.
‘와. 뭐 이렇게 늙어 보여? 술 취해도 이 얼굴을 보면 행패를 부릴 수가 없겠다.’
당연한 일이다. 행패를 부렸는데 혹시나 그가 심심해서 알바를 하는 어르신이면 제대로 야단이 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니야.’
서 있는 자세나 보폭. 호흡 등으로 보아 어르신이라기엔 많이 모자라다. 사용 이능은 내공, 수준은 대략 숙련자에서 전문가 수준.
호흡을 보아하니 익힌 무공은 사파의 것으로 짐작되는데 아마 그 부작용으로 노안이 온 것 같았다. 아니면 다른 행성에서 정착한 이민자이던가.
‘대충…… 함롬 정도 되어 보이네.’
나는 얼마 전에 쓰러트렸던 오크 투사를 떠올렸다. 직감이 둘의 전투력이 비슷하다는 사실을 알려 줬다. 어쩌면 그 역시 경기공의 수련자일지 모른다.
“그래. 수고했네.”
“수고하셨습니다.”
별문제 없이 업무를 교대한 시간은 오전 2시. 모든 작업을 마무리하고 클럽을 나선 시간은 2시 30분.
나는 바로 편의점으로 이동했다. 애초에 동선을 계산하고 일자리를 구했던 만큼 클럽과 편의점의 거리는 가까운 편이다.
“어? 왜 이렇게 빨리 오셨어요?”
“전 일이 일찍 끝나서. 대충 정리하고 나와.”
“고마워요 오빠! 아싸!”
전 타임을 떠나 보내고 카운터에 자리한다. 편의점 알바를 시작하고 딱 24시간만의 일.
‘일과가 한 바퀴 돌았다.’
편의점 업무 6시간. 공장에서 10시간. 클럽에서 6시간 30분. 그리고 중간중간 자투리 시간이 1시간 30분 정도.
‘이것이 내가 앞으로 해 나가야 할 매일매일.’
누군가 이 모습을 봤다면 ‘수면 시간이 없잖아 미친놈아!’하고 기겁하겠지만 적어도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다.
‘로그인.’
아르데니아로 들어가 잠을 자면 그만이었으니까.
심지어 충분히 잔 후 일어나 하루 종일 오토를 돌려 얻어 낸 멧돼지 고기로 영지민들을 먹이고 새로 뽑은 병사들을 특기에 따라 분류하고 훈련도 시켰다.
나는 아르데니아에서 고기와 장비들만 뿌리며 계속 잠을 잤다. 그동안 영지민들과 병사들은 잘 먹고 잘 잤으며 피난민들을 받아들이며 덩치를 점점 키워 나갔다.
종종 몰려 온 고블린들은 이미 진지를 끼고 싸우는 영지민들의 탄탄한 방어에 무수한 피해만 입고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나름대로 전략전술을 아는 고블린들은 멀찍이에서 포위진을 짜고 물자가 바닥나길 기다렸으나…….
당연하게도 바닥나지 않는다. 리벤지의 캐릭터들이 사냥을 계속하는 한, 멧돼지 뒷다리는 영원히 끊기지 않을 것이다.
로그인 한다.
로그아웃 한다.
아르데니아에서 나흘, 현실에서는 일주일의 시간이 흘렀다.
나는 멧돼지 고기가 쌓이기 시작하는 것을 확인 한 후 레벨이 가장 낮던 킬리언스포부터 사냥터를 옮겼다.
사냥터를 옮긴 기준은 다음과 같았다.
1. 고급 등급의 아이템이 떨어질 것.
2. 다른 플레이어들이 [버리는] 아이템이 많을 것.
3. 버려지는 아이템이 쓸모 있을 것.
그 결과 내가 자리 잡게 된 장소는.
“허허. 결국 여기라니.”
킬리언스 산맥이었다.
[발칸 오크 돌격병(고급) 드랍 아이템.]일반 클래스 소환권(등급 없음). 오크 돌격병의 도끼(고급). 배틀 크라이 비전서(고급).
힐링 포션(일반). 강철 흉갑(일반). 강철 부츠(일반).
하품 철괴(재료) 오크족 인장(상점 판매). 골드.
발칸 오크는 꽤 여러 종류의 클래스를 가지고 있다. 발칸 오크 전사. 발칸 오크 정찰병. 발칸 오크 돌격병. 발칸 오크 주술사. 발칸 오크 사냥꾼 등등.
나는 그중에서 오크 돌격병을 낙점했다.
“우글우글하네.”
편의점에 손님이 없는 틈을 타 킬리언스포를 조작했다. 사냥터에 수백 마리의 오크들이 서 있고 그에 맞서 열댓 명의 플레이어들이 오크들을 족치고 있다.
나는 사냥터 중에서도 사람들이 가장 밀집된 곳을 골랐다. 비집고 들어갔기에 사냥 효율은 좀 떨어졌지만, 대신 다른 효율이 있다.
강철 흉갑(일반)을 획득했습니다!
강철 부츠(일반)를 획득했습니다!
강철 흉갑(일반)을……
사방에 떨어진 흉갑과 부츠들을 마구 줍는다. 뭐라고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들이 여기에서 자동 사냥을 돌리는 이유는 하품 철괴를 줍기 위함이며, 강철 흉갑과 부츠는 그냥 무거운 잡템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가치는 별로 없는데 중갑이라 무게만 엄청난, 문자 그대로 쓰레기!
‘그러니까 줍지 않도록 설정했겠지.’
[인벤토리 중량이 100%를 초과했습니다!] [인벤토리 중량이 100%를 초과하여 이동 속도가 극도로 느려지고 체력, 생명력, 마나가 천천히 감소합니다!]인벤토리가 터져 나가도록 챙긴 뒤 아르데니아인으로 넘어가 전열에 서는 이들에게 중갑을 걸치게 만들었다.
그뿐이 아니다.
나는 강철 흉갑 중 일부를 분해하여 가죽 방패에 철판을 덧대라고 지시했다.
‘시스템상으로는 하등 쓸모없는 짓이지.’
가죽 방패에 철판을 박아 넣었지만 가죽 방패의 상태창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다. 방어력이 늘어나지도 않고 표시된 중량이 변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물리 세계에서는 다르다.
까앙!
“튼튼하군요.”
“철판을 저렇게 많이 덧댔는데 당연히 튼튼해야지.”
“대신 너무 무겁습니다. 애송이 녀석들 중에서는 들고 서 있지도 못하는 놈들도 많더군요.”
“그래도 들고 훈련하게 해. 클래스를 얻게 되면 저걸 들고 싸울 수도 있을 테니까.”
잠시 훈련 중인 병사들을 지켜보다 고개를 끄덕인다.
“뭐, 훈련 잘 부탁하고. 난 자러 간다.”
“요즘 많이 주무시는군요.”
“중요한 시기라. 잘 부탁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로그인 한다.
로그아웃 한다.
로그인 한다.
……로그아웃 한다.
킬리언스쓰리가 사냥터를 옮겼다. 킬리언스투도, 마침내 킬리언스마저 사냥터를 옮겼다.
레벨이 낮은 순으로 사냥터를 옮겼던 만큼 어느새 네 캐릭터 모두 38레벨을 달성해 있었다.
“와, 레벨 미친 듯 안 오른다.”
어느 순간 거의 레벨링이 멈춘 것이나 다름없는 상황이 되었다. 하루 종일 오크들을 때려잡아도 경험치가 10% 오르는 정도.
그러나 상관없다.
성장이라곤 없는 리벤지의 캐릭터들과 다르게 영지민들과 병사들은 하루가 다르게 정예병으로 거듭나고 있었기 때문이다.
로그인 한다.
로그아웃 한다.
나는 모든 업무 중 가장 개인 시간이 보장되는 편의점 알바 때마다 상황을 정리했다.
‘편의점 알바비가…… 야간인 덕에 좀 붙어서 220만 원. 그리고 공장일은 추가분까지 쳐서 380만 원.’
사실 여기까지만 해도 적지 않은 돈이다. 한 달에 600만 원이라니. 살면서 이렇게 벌어 본 적이 없다.
‘그리고 거기에…… 클럽 기도가 일당 13만 원. 심지어 수습 기간이 끝나면 더 오른다고 했지.’
나는 단 하루의 휴일도 없이 모두 일정으로 잡았으니 기도 일로만 한 달에 390만 원이었다.
즉.
‘와. 한 달에 990만 원이라고?’
월 1,000만 원이라니 꿈에서나 생각하던 수익!
그러나 잘 생각해 보면 이상한 일은 아니다.
‘한 달에 쉬는 날이 단 하루도 없고…… 무엇보다 수면 시간이 없이 24시간 동안 일만 하니까.’
바짝 번다 바짝 번다 많이들 말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건 인간이 할 짓이 아니다.
아르데니아인에서 잘 시간을 벌 수 있는 내게도 절대 만만치 않던 일정.
그러나.
“수고하셨습니다!”
“작업 끝! 크! 한 씨는 성실해서 좋아. 불안했는데 혼자서 청소도 깔끔하게 하고.”
“훌륭하군. 참을성도 좋고 사람을 다루는 데에도 익숙하고. 내가 이런 말을 하면 웃기게 들리겠지만…… 고작 이런 곳에서 주정뱅이들이나 상대할 사람이 아닌 것 같군.”
지구에서의 노동이.
생각보다 재미있다.
‘노동이라는 게…… 이렇게 힐링 되는 일이었나?’
육체가 강건하니 육체 노동이 수월하고 감정 노동도 별문제 없다.
사람을 상대하는 일?
부하가 자신의 그림자를 밟았다고 다리를 잘라 벽에 장식으로 달아 두는 미친 귀족새끼를 어르고 달래서, 수틀리면 협박까지 해서 의뢰금을 받아 내야 했던 용병대장 때를 생각하면 코웃음 나오는 난이도다.
‘직장을 구하지 못해 자괴감에 몸부림치던 과거가 거짓말 같을 정도네.’
처음에는 100장을 뽑았던 클래스 카드로 일부 병사에게 직업을 부여한 뒤 군대를 움직일 생각이었다. 200만 원의 과금만으로도, 그것은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으니까.
그러나…… 일을 하게 되며 계획이 점점 수정된다.
생각보다 돈을 벌 만하다.
생각보다…… 일을 하는 게 보람찼다.
“한 달 동안 수고했어. 요새 야간 구하기 힘든데 쉬는 날도 없이 잘해 줘서 고마워. 다음 달도 잘 부탁한다는 뜻에서 좀 더 넣었다.”
“요즘 어린 것들 정신머리가 빠져 가지고 뻑하면 도망치는데 잘해 줘서 고마워요. 다음 달도 잘 부탁해요.”
“벌써 한 달이군. 자네가 생각보다 고객들을 잘 다루니 이젠 혼자서도 잘할 것 같아. 이제 수습 딱지도 떼었으니 일당은 20만 원이 될 거야.”
뜨겁게 유난을 떨던 태양이 기세를 잃어간다.
어느새 시월.
“하하.”
카운터에 서서 웃는다.
일하는 게 보람차다. 뭔가 문제가 생기거나 난관을 마주했을 때 그것을 잘 이겨 내고 사람들의 시선을 받는 것이 즐거웠다.
그러나 이러니저러니 해도 노동의 보람이 정점을 찍을 때는.
바로 월급을 받을 때이다.
자유저축 예탁금(G-뱅크 1173-5511)
11,573,988원.
“크.”
참지 못하고 또 웃고 말았다.
그렇다. 일을 시작한 지 어느새 한 달.
천만 원이 넘는 군자금이 마련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