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rd-working billing engineer RAW novel - Chapter 259
열일하는 과금 기사 258화
* * *
“뭐야? 드디어 우주 멸망의 위기가 왔나?”
기척도 없이, 공간이 갈라진다거나 마나가 유동한다거나 하는 아무런 전조조차 없이 사내는 그곳에 서 있다.
그는 잠시 주위를 두리번거렸지만, 이내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그를 부른 친구가 있었다.
“우주 멸망은 무슨 우주 멸망이야 뜬금없이.”
“50년 동안 한 번도 안 쓴 호출을 썼으니 그렇지. 아…… 아, 그것보다 나 바빠. 37분 45초밖에 낼 수 없으니 용건을 빨리 말해 줘. 전력을 다해 해결해 주고 갈게.”
사내와 말을 하던 그는 섬뜩함과 부러움을 동시에 느꼈다.
이 사내가 [전력을 다 하는] 37분 45초의 시간이 얼마나 무시무시한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 시간 정도면 이 사내는 은하 단위로 지배하는 제국 클래스의 문명을 통째로 지워 버릴 수 있으니까.
하고자 한다면 그는 신급 기가스를 만들어 낼 수도, 새로운 항성계를 만들어 낼 수도 있다. 수백억 인류가 살아갈 수 있는 행성 규모의 거주 구역을 건설하는 것조차 가능할 것이다.
존재 자체가 우주의 불합리.
대우주 그 누구도 고개 숙이지 않을 수 없는 존재가 바로 그다.
‘물론 내가 지나친 부탁을 안 하니 이 관계가 유지되는 거겠지만.’
그렇게 생각하며 일성기업의 회장, 배재석이 말했다.
“어제 내 딸이 어떤 놈팽이랑 잤다.”
“…….”
34지구의 지배자이자 대우주에 존재하는 [게임]이라는 개념 그 자체를 지배하는 게임 마스터 관대하의 얼굴이 떨떠름해진다.
그는 잠시 머리를 긁적이다 말했다.
“아니, 재석아. 사랑이 일흔이 넘지 않았냐? 예전이었으면 자식에 손녀에 어쩌면 증손녀까지 있을 나이야. 네가 유명한 딸 바보였긴 해도 이건 좀.”
어이없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커다란 의자에 앉아 있던 재석은 차분한 태도로 말을 이었다.
“그리고 초월자가 되었지.”
“……음?”
잠시 그 말을 이해하지 못해 고개를 갸웃거리던 대하의 표정이 확 밝아진다. 왜냐하면 떠오르는 존재가 있었기 때문이다.
바로 색황(色皇).
색공을 자연경, 혹은 생사경이라 불리는 경지까지 성장시킨 드넓은 대우주에서도 아주 특수한 케이스에 속하는 존재다.
풍문에 따르면 그는 잠자리를 하는 것만으로 상대 여성에게 극강의 신체 능력이나 더 높은 경지. 심지어 초능력까지 부여할 수 있다고 한다.
“오! 설마 색황이 34지구에 온 거야? 최고의 대우를 약속하고 잡아 놔! 내가 시켜 볼 게 있…….”
“한재연이라는 놈이다. 네 사도.”
“……었는데. 역시 색황은 아니구나. 하긴 죽은 거나 다름없는 상황인데 갑자기 34지구에서 나타나는 것도 이상하긴 하지.”
맥 빠지는 표정에 재석이 의문을 표한다.
“죽은 거나 다름없는 상황? 녀석이 드래고니아랑 프리아냐 헤븐에 들린 다음 행방불명이라는 이야기를 듣기는 했는데…… 설마 노블레스 녀석들에게 당했나?”
재석의 물음에 대하가 고개를 흔든다.
“그보다는 업보에 당했다고 해야지.”
“업보?”
“잠자리 중에 칼을 맞았어. 아무리 색황의 권능이 대단해도 검황 정도의 강자를, 그냥 유혹도 아니고 성전환을 시켜서 사랑의 노예로 만들었으니 언젠가 일어날 수밖에 없는 일이었지.”
혀를 끌끌 찬 대하가 아쉬워한다. 마음에 안 든다 하더라도 색공으로 중급 신위를 얻은 존재는 귀하고 귀했기 때문이다.
최상급 신인 그와 중급 신인 색황의 수준은 그야말로 하늘과 땅 차이지만 아무래도 [계통]이 너무나 달라 그의 권능을 흉내 내기 어렵다.
“아, 그 녀석이 34지구에 오기만 하면 내가 지켜 주면서 여러모로 할 일이 많았을 텐데. 너도 좀 더 살 수 있고.”
그의 말을 들은 재석이 질색하는 표정을 지었다.
“이 나이에 미소녀가 돼서 다른 사내놈한테 깔리라고?”
“다 늙은 노인네 보다야 귀여운 미소녀가 좋지.”
“에라이 미친놈아!”
쿵! 하는 소리와 웬만한 빌딩은 하나 없앨 수준의 진동이 뿜어졌지만 당연히 대하의 근처에도 범접하지 못하고 스러진다.
대하가 한결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재석아…… 이제 네 수명도 얼마 남지 않았어. 내 신성으로 연장할 수 있는 시간은 슬슬 한계야.”
“그러니까 이제 정말 초월지경뿐이다?”
“그래. 검황 녀석이 부활을 막는다고 무한시공참(無限時空斬)을 썼지만 [DLC]로 영웅 불러오기를 한다면.”
“……관대하.”
묵직한 목소리에 대하의 말이 멈춘다.
재석이 쓴웃음을 지었다.
“나는 이미 너무 오래 살았어.”
재석은 자신의 오른손을 들어 보았다. 커다란 손을 뒤덮고 있는 팽팽한 피부가 보인다.
극의지체를 완성하지는 못했지만 사실 엔간한 극의지체보다 강성한 육체다. 수많은 영약과 최상급 신 관대하의 도움 덕에 그의 육신은 여전히 강대하고 힘이 넘치는 상황.
그러나 영혼은 다르다.
지구에서, 종말의 틈새에서, 강철계에서 살아온 세월이 어느새 600년.
엔간한 초월자만큼이나 긴 세월을 살아오면서 그의 영혼과 정신은 크게 마모되어 있다.
‘치열하게 살았다.’
툭하면 100년은 자고 툭하면 몇십 년이고 명상에 잠기는 드래곤들과는 다르다.
수십 년을 죽음과 굶주림, 무엇보다 외로움에 고통 받으며 투쟁하기도 했고 그보다 더 긴 시간을 강적에게서 살아남기 위해 쏟아부었으며 그 모든 시간을 다 더한 시간 동안 사람들을 이끌며 살아왔다.
“이젠 됐다.”
“네가 있어야 편한데…… 미소녀 진짜 안 되냐?”
“뒤진다. 진짜.”
주먹을 좌우로 휘두르는 재석의 모습에 웃던 대하는 이내 진정하고 본론으로 돌아왔다.
“그나저나 색황이 아니라 한재연이라니 여러모로 특이하네. 시간이 많다고 색공을 익힐 녀석으로는 보이지 않았는데.”
우우웅-!
중얼거리는 대하의 눈이 시퍼렇게 빛난다. 몇 번 그 과정을 본 적 있는 재석은 그가 사용하는 능력의 정체를 알았다.
절대권능(絶對權能). 전지(全知).
세계에서 정보를 읽어 낸 대하의 표정이 기묘하게 변한다.
“이게…… 무슨…… 뭐야? 어떻게 이런 게 가능하지? 버그 아닌가?”
“버그는 또 뭐야. 게임 신 티 내냐?”
“비유가 아니라…… 아니 진짜 해괴한 경우네.”
시퍼렇게 빛나던 대하의 눈이 잠잠해진 후 재석이 물었다.
“정말 녀석이 힘이 사랑이를 초월자로 만든 거냐?”
“결론만 말하자면…… 그래. 다만 너한테는 쓸 수 없겠네.”
재연의 [인자]는 기본적으로 대상에게 특별한 [기관]을 만들어 주거나 특별한 [혈통]을 품게 해 주지만, 대상이 강렬한 [염원]을 가지고 있다면 그것을 위해 대상의 육신을 [진화]시키는 방향으로 발현된다.
‘생체 인자의 특성이지.’
이는 [육체적인 진화]였기에 영혼에 문제가 생긴 재석은 도움을 받기 힘들다.
“단순히 대상을 초월시키는 힘이 아니라는 말이군.”
“그래. 사랑이 초월자가 된 건 아주 예외적인 케이스일 뿐 이건 원래 그런 식으로 작동하는 능력이 아냐. 이걸로 초월자로 만들 수 있는 대상은 34지구를 다 뒤져 봐도 3명 정도?”
다만 초월자를 만들 수 없을 뿐이지 인자를 적용하면 누구든 전력 상승이 가능했다.
특히나 내공 수련자나 생체력 수련자의 경우에는…… 그야말로 드라마틱한 성장이 가능하리라.
‘아마 제한이 있겠지만…… 그렇다 해도 위험한 능력이다. 평화로운 시기였다면 어쩌면 봉인하거나 폐(廢)하는 걸 고민했을지도 모를 정도야.’
물론 몬스터가 깽판치는 지금은 무조건 활용해야 하는 능력이지만, 그렇다 해도 여전히 이해가 안 가는 바가 있다.
‘아무리 봐도 인풋 대비 아웃풋이 너무 크지 않나? 이렇게 되면 코스트가 감당 안 될 텐데…….’
전지의 능력을 썼음에도 납득이 안 된다. 이건 성립이 불가능한 능력이었다.
‘다 떠나서……. 부여 대상에게 주어지는 업은 대체 어디서 나오는 거지?’
* * *
내가 특별한 인자를 생산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된 이후로 긴 시간 그 능력을 실험하고 한계를 파악해 왔다.
그 결과 나는 인자를 생산할 때 뼈 대신 근육만 소모되도록 컨트롤할 수 있었고 사정할 때마다 인자를 쏟아 내지 않도록 조절할 수 있게 되었다.
특수 인자 대신 평범한 인자를 쏟아 낼 수도, 정액이 아니라 피나 살점으로 특수인자를 만들 수도 있게 되었다.
‘다만 이 경우에는 소모가 커진다. 근육이 거의 30킬로 가깝게 날아가고 피도 잔뜩 들어가지.’
단 한 번 실행해 보았고 그 수혜는 나의 아들, 지성이 보았다. 어이없게도 지능과 마나 회복량이 증가하더라.
어쨌든 실험과 연구 끝에 확인한 바는, 내 인자를 생산해 내는 능력이 그야말로 상상을 초월하는 포텐셜을 품고 있다는 것.
그러나 아무리 그렇다 하더라도.
‘말도 안 돼.’
이건 진짜 선을 넘었다.
‘초월지경이라니…….’
나는 방 한가운데에 가부좌를 취하고 앉아 있는 사랑을 보았다.
외향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나처럼 신장이 더 커지지도, 근육이 부풀지도 않았다. 눈에서 빛이 나지도, 머리칼에 어둠이 깃들지도 않았다.
그러나 그럼에도.
분명히 달라졌다.
우웅……
그녀가 품고 있는 진동이 느껴진다. 프로 파이터 올리야 그랜트도 사용했던 경천칠색(傾天七色).
전투용으로도, 공업용으로도 쓸 데가 많아서 지금까지 익힌 사람을 제법 많이 봐 왔지만.
‘차원이 다르군…… 이게 초월경에 도달한 경천칠색인가.’
약점이 분명하지만 강점 또한 분명한, 마치 송곳처럼 뚜렷한 힘!
“후.”
명상에 잠겨 있던 사랑이 눈을 뜬다. 그녀의 검은 눈동자가 마치 거울처럼 내 모습을 비춘다.
“한재연. 아니, 재연 씨. 아니 재연아…….”
사랑이 잠시 혼란스러워 하다 물었다.
“이거, 네가, 한 거야?”
발뺌할 수도 있지만 그러지 않았다. 설마 초월지경에 오를 줄은 몰랐지만 상황 자체는 내가 유도한 것이기 때문이다.
“생체인자야.”
“그게 무슨. 생체인자라면 생체력 수련자라면 누구라도 만들 수 있는 거 아냐?”
“조금 특별한 생체인자지. 날 봐.”
피식 웃으며 팔을 벌리자 사랑이 이제야 깨닫고 놀란다.
“체중이 줄었어! 거의 20킬로 정도.”
“그래. 그것도 근육만 해서 그렇지.”
“무슨 생체 인자가 근육을 20킬로그램이나…… 아. 아니지 이 효과라면.”
여전히 좀 혼란스러운지 버벅이는 사랑.
그리고 그때였다.
[칼튼 비서님이 방문했습니다.] [대표님! 급히 보고드릴 게 있습니다!]들려오는 목소리에 사랑이 답한다.
“통과시켜.”
얇은 가운 하나 걸치고 있는 상황임에도 거침없는 사랑의 말에 문이 열리고 칼튼이 뛰어들어온다.
“대표님! 지금 우주 평화군이. 앗.”
뒤늦게 나를 발견한 칼튼이 멈칫한다. 상의를 탈의하고 겨우 팬티나 입고 있는 옷차림이었음에도 충격을 받았다거나 분노한다거나 하는 분위기는 아니다.
“아, 결국 이렇게…….”
올 게 왔다는 표정. 그러거나 말거나 사랑이 말했다.
“보고해. 어지간히 급한 일인 모양인데.”
“아, 저기 그런데.”
나를 눈짓하며 머뭇거린다. 아무래도 기밀인 모양이었지만 사랑은 차분한 목소리로 재촉했다.
“지금 해.”
“…….”
칼튼이 잠시 입을 벌렸다가 이내 표정을 고쳤다.
“보고드리겠습니다. 우주 평화군에 참여하고 있던 직원들로부터 구조 신호 도착. 우주 평화군이 공격당하고 있다고 합니다.”
“우주 평화군의 전력이 공격을 당할 수준이 아닐 텐데.”
맞는 말이다. 엄청난 수의 어르신과 군인들을 포함하고 있는 우주 평화군은 제국 클래스의 세력이라도 함부로 넘볼 수 없는 전력이 아니던가?
그러나 칼튼의 표정은 심각하다.
팟!
칼튼이 손짓하자 허공에 영상이 떠오른다. 먼저 보인 것은 우주 공간에 떠 있는 3대의 테라급 전함이다. 우주 평화군의 모든 병력이 들어 있는 거대 전함.
그리고.
“아니…….”
“이게 무슨…….”
그 3대의 전함을…… 수백 대도, 수천 대도 아닌.
수십만 대의 전함이 포위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