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rd-working billing engineer RAW novel - Chapter 301
열일하는 과금 기사 300화
* * *
영지에 도착하자 영지민들의 시선이 몰려든다.
역마차를 바라보는 초췌한 얼굴, 절망에 잠긴 눈, 뒤틀린 표정, 반쯤 돌아 있는 눈동자.
보통 사람이라면 두려움을 느끼거나 그게 아니더라도 음침함, 불길함을 느낄 광경이지만…….
저벅.
거침없이 그들 사이를 가로지른다. 그들의 얼굴과 성향은 새벽, 황혼, 어둠 난이도를 거치며 충분히 파악하고 있다.
“너.”
“히! 곱다 고와. 이 귀여운 애송이는 어쩌다 이 지옥으로 굴러 왔을꼬? 내가…….”
“영지민들을 다 모아라, 던칸.”
“…….”
실성한 듯 낄낄거리던 사내가 정색하자 단숨에 주변 분위기가 가라앉는다.
녀석이 별 말을 하지 않았음에도, 영지의 골목골목에서 넝마를 걸친 걸인들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낸다.
마을 이벤트, [빈민의 분노]의 네임드 보스와 그 부하들이었다.
“……넌 뭐냐.”
“새 영주다.”
“……그래. 그래서 이렇게 뻣뻣하셨군. 귀족 나리라서 말이야. 이 영지를 엉망으로 만들고 죽음으로 도망친 그 역겨운 쓰레기의.”
“던칸.”
살기등등한 말을 끊어 버리고 던칸을 본다.
녀석의 얼굴의 좌우 대칭이 맞지 않는다. 오른쪽 눈동자가 0.5센티 정도 삐뚤어져 있다. 오른쪽 윗니는 어디 갔는지 보이지 않고 왼쪽 귀가 찌그러져 있다.
녀석의 얼굴을 짓뭉개고 다시 조립해 대칭을 맞추고 싶다. 왼쪽 윗니는 뽑아 버리고 귀는 양쪽 다 뜯어 균형을 잡아 주고 싶다.
‘아.’
모든 것이 거슬린다.
모여드는 걸인들에게서 풍겨 오는 역겨운 냄새.
웅성거리는 영지민들의 목소리.
삐걱거리는 문짝.
무너진 담장.
내 두 눈을 뽑아 버리고 싶다. 내 코를 뜯어 내던지고 싶다. 영지 전체를 잿더미로 만들어 완전한 고요를 얻고 싶다.
죽이고 싶다. 죽고 싶다. 도망치고 싶다. 눈물이 나올 것 같다. 다 찢어 버리고 싶다. 분노를 참을 수 없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
‘그냥…….’
문득 생각한다.
‘그냥 다 박살내 버리고 싶다.’
“…….”
“…….”
“…….”
“…….”
어느 순간 웅성웅성 시끄럽던 영지민들은 물론이고 내 뒤에서 나를 보좌하고 있던 알렌과 [도적] 마이클마저 숨을 죽인다.
나와 눈을 마주치고 있는 던칸은 물론이다.
“후.”
침묵에 잠긴 영지민들 앞에서 천천히 호흡을 고른다. 어마어마한 충동이 밀려들었지만 그 충동대로 움직이고 싶지 않았다.
그들의 생명을 소중하게 생각해서는 아니다. 살인을 하기 싫어서는 더더욱 아니었다.
감히, 그 무엇도.
나를 조종하는 것을 용납할 수 없다.
‘충동대로, 광기가 시키는 대로 움직여서는 안 돼.’
이 광기를 한 번 욕망대로 풀면 앞으로도 영원히 그런 식으로 풀어야 한다. 충동이 시키는 대로, 본능과 광기에 휩쓸리는 하찮은 존재가 된다.
쿠크다스 멘탈이라고 맨날 욕하던 영웅 녀석들과 다를 바 없는 존재가 돼 버린다.
“뭐하고 있지?”
“뭐를…… 뭐를…….”
“모든 영지민을 모아 놔. 한 시간 내에.”
던칸이 내 말에 눈을 크게 뜬다. 이내 녀석에게서 사나운 기세가 느껴진다.
그러나 그뿐.
가만히 그 두 눈을 바라보자, 이내 녀석이 버티지 못하고 눈을 깔았다.
“알겠습니다.”
“그래.”
적당히 고개를 끄덕여 준 뒤 영지를 관리하고 있던 집사 알프레드를 만나 인수인계를 받는다.
“저 사람 뭐야? 진짜 새 영주라고?”
“무서워…….”
영지민들이 수군거리거나 말거나 식량을 풀어 그들을 먹인 뒤 영웅들로 파티를 짜 던전에 보낸다.
그리고 이번에도 역시.
나는 홀로 던전으로 향했다.
꽝!
전투 자체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가장 어두운 절망]의 아티팩트는 패널티가 클수록 효과가 좋기 때문이다. 회차가 초기화되어 레벨이 1로 되돌아왔다 해도 능력치 차이가 이 정도가 되면 전투라는 상황조차 성립되지 않는다.
언제나 그랬듯 진짜 문제는 스트레스다.
[스트레스 +24]스트레스가 올라가는 단위 자체가 과거와 수준이 다르다.
그뿐이 아니다.
강제적인 스트레스의 증폭이 내 정신과 영혼에 어마어마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
스트레스가 나 한 명을 좀먹다 못해…… 외부로 뿜어지는 것이다.
“어, 어…… 뭐지?”
“뭐야. 마트 분위기 왜 이래? 아무도 말을 안 하다니…….”
소곤거리는 사람들 속에서 대량의 식료품을 구매한다.
길을 막는 사람, 겁에 질려 웅크리는 사람, 어디론가 전화하는 사람, 손을 덜덜 떠느라 자꾸 실수를 하는 캐셔 때문에 짜증과 분노가 밀려왔지만, 호흡을 골라 그 모든 감정을 갈무리한다.
[영웅의 의지가 시험받고 있습니다…….] [영웅의 의지가 시험받고 있습니다…….] [영웅의 의지가 시험받고 있습니다…….]식료품을 잔뜩 챙겨 외딴 무인도에 들어간 뒤 던전을 계속 공략한다.
5주차.
10주차.
15주차.
시간은 빠르게 흘러간다. 난이도가 높아졌을 뿐 게임의 기본 구성은 똑같기에 헤맬 이유가 없다.
[영웅의 의지가 시험받고 있습니다…….]이 게임의 스트레스 최대치는 200포인트다. 200포인트에 이르면 [사망 판정]에 대한 내성 굴림이 이루어지게 되고, 그 절반인 100포인트에서는 [운명의 갈림길]에 들어서 75% 확률로 멘탈이 붕괴되고 25%의 확률로 ‘각성’하여 어마어마한 버프를 받는다.
‘그마저도 해당 던전이 끝나면 끝나지만…… 아무리 그래도 각성 이벤트가 아예 안 터지는 건 짜증나는군.’
원래도 어렵기로 유명한 게임인데 현실이 되며 아예 밸런스 똥망겜이 되어 버렸다. 명중, 회피 등의 개념이 현실화 된 거야 스킬과 장착 액세서리를 변경해 대처할 수 있지만, 멘탈 붕괴는 있는 주제에 각성 이벤트는 없다는 사실이 너무 아니꼽다.
[영웅의 의지가 시험받고 있습니다…….]시험에 든다. 또다시 시험에 든다.
이제는 익숙하기까지 한 두통과 약속된 무기력이 온몸을 집어삼킨다.
그러나 그럼에도.
검을 휘두른다.
쩍!
[그아아…… 그륵!]노래 부르던 세이렌의 목이 잘려 나간다. 땅을 뒹구는 머리는 어떻게든 노래를 이어 나가려 했지만 잘린 목의 단면과 주둥이만 뻐끔거릴 뿐 아무런 결과도 만들어 내지 못한다.
[스트레스 –2]“후.”
던전 공략 속도는 엄청나다.
지금의 미친 전투력이라면 혼자서 한 주에 2개의 던전을 클리어 할 수도 있다.
게임이 현실이 되며 명중, 치명처럼 무의미해진 스텟도 존재하지만. 반대로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위상을 가지게 된 스텟 역시 존재하기 때문이다.
‘속도.’
게임에서는 그저 선턴을 잡게 할 뿐이었던 속도 스텟은 적이 공격을 하기도 전에 검을 세 번이고 네 번이고 휘두를 수 있게 하는 미친 스텟이 되어 던전 이동 시간, 전투 시간도 대폭 줄여 버렸기 때문이다.
“로그아웃.”
“로그인.”
공략을 계속 진행한다. 벌어들인 재화로 이미 알고 있는 최적의 형태로 영지를 개발하고, 영웅들을 던전에 보내 레벨링을 진행했다.
그리고 그 결과.
영웅들의 레벨이 3이 되었다.
‘미친…… 이건 너무 느리다. 이거 어쩌면 최후 전투까지 4레벨을 못 찍을 수도 있겠는데?’
풀강 장비와 전직으로 당장의 전투 스펙은 부족하지 않지만 여전히 스트레스가 발목을 잡는다.
스트레스가 100까지 쌓여 멘탈 붕괴 상태에 빠진다고 무조건 파티가 전멸하고 영웅이 죽는 것은 아니지만…… 한 번 멘탈이 붕괴해 그 인간의 바닥이 드러나게 되면 영웅들과의 관계에 돌이키기 힘든 앙금이 남는다.
‘하기야…… 걷는 것만으로도 스트레스 받는 던전에 자기 뒤통수에 칼질했던 인간과 같이 가고 싶을 리가 없지.’
영웅들이 점점 더 던전에 가는 걸 꺼리게 된다.
영웅들이 점점 더 서로를 불신하기 시작한다. 멘탈 붕괴라는 일종의 [이상 상태]를 목격하게 되면, 상대를 이해할 수 없고 믿을 수 없는 존재로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여, 영주님. 죄송하지만…….”
“죄송하지만?”
“제, 제가 아직 부상이 회복되지 않아서…….”
“않아서?”
“……이번 주도 열심히 해 보겠습니다.”
[천하장사] 이호련이 시무룩해져서 방을 나선다. 아마 한 주 더 쉬고 싶다는 용무였겠지만 부상 회복이 끝난 걸 뻔히 아는데 그래 줄 수는 없다.‘아니, 3레벨에 잠이 오나? 부정 특성도 다 지워 줬는데 2주 연속 쉬려 하다니 저러고도 영웅이라고…….’
그나마 다행이랄까. 예전처럼 영웅들을 무릎 꿇고 설득할 필요는 없다.
예전과 달리 영웅들이 너무 약해 그들이 힘을 다 합쳐도 반란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정말 다행이다.
“다행은 시발…….”
절로 욕이 나온다. 이 밸런스 똥망겜을 하다 보니 안 그럴 수가 없었다.
“쉠곤이야 내가 일대일로 해 본다고 해도 중간 보스들은 니들이 막아줘야 할 거 아니냐…….”
아, 정말.
스트레스 받는다.
[스트레스 +14]“……?”
순간, 아주 기묘한 느낌을 받는다.
[영웅의 의지가 시험받고 있습니다…….]“아, 꺼져 봐.”
또다시 밀려드는 환각과 환청을 눌러 버리고 생각한다.
“느낌이 달라.”
나는 항상 스트레스를 받는다. 최근에 들어서 내 스트레스는 언제나 100포인트 아니면 적을 죽여서 98포인트였다.
그러나 사실…… 이것들은 ‘진짜’가 아니다. 게임 시스템이 강요하는 일종의 정신 간섭. 말하자면 외부에서 쏟아 붓는 가짜 스트레스이기 때문이다.
반면 주차가 쭉쭉 진행됨에도 영웅들이 레벨링을 제대로 못하는 현실에 받는 스트레스는 실제로 내가 느끼는 것이다.
“로그아웃.”
쏴아아……!
현실로 돌아온다. 이제는 광활한 바다를 봐도 스트레스가 전혀 깎이지 않는다.
깎인다 해도 의미가 없기도 했고.
‘이제 멘탈 붕괴에 저항하는 건 완전히 익숙해졌어.’
효율적으로 아티팩트를 활용하고자 했다면 아이템을 스왑했을 것이다. 평상시에는 다른 아이템을 끼고 있다가 전투 시에만 스트레스 증가 아이템을 끼는 식으로 공략을 진행했겠지.
그러나 난 그러지 않았다.
스펙을 위해 스트레스를 감수한 게 아니라, 스트레스 증가를 챙기다 보니 스펙도 같이 챙긴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훅.
가부좌를 취한 채 내면세계로 가라앉는다.
달라진 건 없다. 내면세계에는 6개의 층과 거기에 하나씩 들어간 아티팩트들이 있을 뿐.
“외부 공격. 정신 간섭이란 말이지…….”
[스트레스 –4] [스트레스 –4] [스트레스 –4]명상에 빠져 있다 보니 가득 차 있던 스트레스가 서서히 빠진다. 대단한 변화는 아니다. 영웅들을 마을에서 쉬게 해도 벌어지는 일.
아무리 대단한 스트레스도 시간이 많다면 결국 가라앉기 마련이다.
“로그인.”
게임 속으로 들어간다.
“끼에에엑!”
“환희에 몸부림치는도다! 그분을 경배하며 영원한 찬양을 이어 나가는도다!”
“캬하하하! 심장을 내놔라!”
죽은 자, 광기에 미친 자. 인간의 살점을 탐하는 자들을 찢어 죽인다.
[영웅의 의지가 시험받고 있습니다…….]그리고 그렇게 스트레스가 극한에 이르면.
다시 현실로 돌아와 명상에 잠긴다.
하루 이틀 사흘 나흘.
한 주, 두 주, 삼 주, 사 주.
한 달, 두 달, 세 달, 네 달.
“로그인.”
“로그아웃.”
게임과 현실을 왕복한다. 명상 시간은 점점 늘어난다. 명상을 취해도 스트레스가 깎이지 않는 지경에 이르게 되면서는 몇 주일이고 한 자리에서 꼼짝 않고 앉아 있기도 했다.
배고픔도 잊고 외부의 상황도 잊었다. 던전 안에서도 그저 기계적으로 괴물을 찾아 죽이고 보상을 획득할 뿐 녀석들의 현재의 상황에 관심이 없다.
[영웅의 의지가 시험받고 있습니다…….]또다시 명상한다.
그리고 어느 순간…… 나는 내 내면세계를 침범해 있는 어떤 [힘]을 느꼈다.
“……스트레스.”
그렇다. 굳이 말하자면 그것이야말로 스트레스일 것이다. 지금 새로이 침입해 온 힘이 아니라 아주 예전부터 내 내면세계를 들락날락하던 외부의 힘.
“후우…….”
호흡한다. 마나를 느낄 수 없는 내게 아무런 의미도 없는 행위지만 그럼에도 이미 자연스럽게 행할 수 있을 정도로 익숙하다.
그만큼이나 내게 마나가 절실했기 때문일 것이다.
‘마나라.’
여전히 마나라는 게 뭔지 모르겠다.
[기사]로서 만들어 내는 검기. [마술사]로서 만들어 내는 불꽃. [연금술사]의 약에 깃든 자연의 정기. [신관]이 발휘하는 신성력.영웅 전체가 덤벼도 짓밟을 수 있는 나지만 그럼에도 나는 그것들을 전혀 느끼지 못한다. 스킬, 스텟, 아티팩트의 힘을 빌어 사용하는 나는, 굳이 말하자면 이능력자라기보다는 이능 사용자에 가깝다.
[영주님의 정신과 영혼은 아예 고립되어 있습니다. 정신 공격은커녕 영적인 공격은 통하지도 않죠. 장님에게 섬광이 통하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마술사 녀석의 말을 떠올린다.
녀석의 말은 바꿔 말하면 이런 말이기도 하다.
‘그런 내게도 통하는 이 스트레스는 그 이상의 개념이란 말이지. 게임의 시스템이라 그럴 수도 있겠지만.’
명상한다.
더욱 깊게 내 내면에 집중한다.
그리고 그러면 그럴수록…… 내 내면을 뒤덮고 있는 외부의 [힘]이 선명해진다.
“……그렇군.”
나는 깨달았다.
이토록 끔찍하고, 지긋지긋하고, 사악하고 광기에 휩싸여 있지만.
그러나 그럼에도.
이것은 내가 처음으로 접하는 [영적 자원]이다.
끼이이익–!
붙잡아 당기자 힘이, 아니, [스트레스]가 괴성을 내지르며 발악한다.
그러나 내 안에 들어온 이상 그것은 내 것이었다.
[끼이익–!] [꺄아아악!] [죽여! 죽여! 죽여!] [위대한 존재시여! 오오! 심연이시여!]괴성이, 고함이, 저주와 광기를 붙잡아.
끼긱!
천천히.
까득!
아주 천천히 검을 빚어 내기 시작한다.
내가 처음 접하는 영적 자원을 뭉쳐 낸 나만의 무기.
스트레스 블레이드(Stress Blade)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