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rd-working billing engineer RAW novel - Chapter 365
열일하는 과금 기사 364화
* * *
내가 칸과 함께 수년간 20층에서 전투를 이어 나갔을 때.
20층은 완전히 안정되었다. 초월하지 못한 탐험가들조차 장비만 충실하면 얼마든지 20층에 올라왔을 정도다.
이 모든 건 20층에서의 피해가 거의 없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으며.
‘다 내 덕이지.’
이는 생색이 아닌 냉엄한 사실이다. 기백의 초월자들이 싸우게 되면 적은 쪽이 당연히 불리하고, 장비와 전략에 따라 승리하더라도 엄청난 피해를 감수할 수밖에 없지만.
그사이에 황제 클래스의 강자가 있다면 이야기는 완전히 달라지기 때문이다.
[천검-백인참(百人斬)]&[천지를 가르는 검]대기만성(大器晩成). 극대심검(極大心劍).
쩍.
소란스럽던 20층이 단숨에 적막에 잠긴다. 무시무시한 기세와 살기를 내뿜던, 개중 태반이 초월급인 몬스터 군단이 너무나 허망하게 쓰러져 죽는다.
“후.”
무수히 올라오는 토큰 획득 메시지를 밀어내며 암흑검을 인벤토리에 집어넣자, 다른 초월자들이 수군거린다.
“허허. 만만한 녀석 하나 없었는데…… 괴물이군. 이것이 자연경의 고수인가.”
“하나하나가 역사를 만들고 재앙으로 군림할 초월자들이 일개 잡졸처럼 쓸려 나가다니.”
탐험가들이 탄성을 내지른다. 신음하거나 경외의 눈으로 바라보기도 한다.
“어떤 면에서 몬스터보다 더 무섭군.”
“흥. 그래 봤자 34지구라는 도원향에서 태어난 덕일 뿐이다. 최상급 신의 사도가 아니었다면 어찌 저 나이에 저런 힘을 가지는 게 가능하겠나?”
허탈해하거나 질투하는 이들도 있다. 그들은 모두 운명을 초월한 존재지만, 그럼에도 중급과 하급 초월자 사이의 간극은 컸으니까.
‘아니었다면 아군도 많이 죽었겠지.’
이 전장에서 내 존재감은 넘칠 정도로 크다. 심검이란 권능기가 양민 학살에 특화된데다, 다수의 특성을 사용할 수 있는 올 마스터 클래스. 거기에 치명타 피해를 증폭하는 [가장 어두운 절망]의 아티팩트의 조합이 천지검 콤보의 위력을 살인적으로 끌어올리니 더욱 그러하다.
그러나 그렇게 강한 공격을 날릴 수 있는 내가 있음에도.
초월자는 계속해서 죽는다.
“울타…… 이 멍청한 녀석. 할당량도 채웠으면서…….”
“제길. 임전무퇴, 이 규칙 어떻게 깰 수 없나?”
여기저기에서 한탄하는 소리가 들린다.
‘요번 웨이브에서만 10명이 죽었나?’
다행스럽게도 그중 8명은 다른 탐험가가 아군으로 받아들인 망자였지만, 그걸 제외하더라도 두 명의 초월자가 죽었다.
8명의 망자도 문제인 것이 한 번 죽어 살아난 망자가 다시 죽으면 토큰이 아무리 많아도 구원할 수 없다. 그로테스크의 권능. [흑색감염]이 일으킬 수 있는 기적은 1회뿐이라는 말이다.
팟!
그때 내 눈앞에 커다란 덩치가 모습을 드러낸다.
당장이라도 포효할 듯 생생한 기세를 품고 있는 오크. 그러나 가슴팍의 커다란 구멍은 녀석이 시체라는 사실을 알려 준다.
[20층의 망자를 마주했습니다. 다음과 같은 선택을 할 수 있습니다.]1. 토큰을 지불하여 아군으로 받아들인다.
2. 아군으로 받아들이길 포기하고 장비 중 하나를 선택해 받는다.
가만히 바라본다.
‘초월급 망자라.’
사실 살려 본 적이 없는 것은 아니다. 어차피 남아도는 토큰 이런 곳에 써도 상관없으니까.
“저기. 울타를 아군으로 받아들이실 생각입니까?”
“……아뇨. 됐습니다.”
토큰을 충분히 투자하고 이런저런 케어를 한다면 다시 초월자가 될 수 있는 망자지만, 지금 내게 초월자 한 명의 무력은 그리 큰 의미가 없다.
다수를 이끌고 다닐 수 있다면 또 모르겠지만, 다수의 망자를 받아들이려면 관련 특성을 찍어야 한다.
‘그런 걸 찍느니 평온의 집을 더 키우는 게 낫다.’
“감사합니다.”
꾸벅 고개를 숙인 탐험가가 오크 망자를 되살려 데리고 간다.
당연한 말이지만 이대로는 그저 강대한 시체일 뿐이고 상당한 토큰과 케어가 있어야 생전의 역량을 뽐내게 되리라.
“이제 5분 후입니다!”
“아…… 웨이브 간격 정말 너무한데.”
“자리 잡습니다!”
[입장이 시작됩니다.] [다음 입장까지 100분.]새로운 탐험가들이 들어온다.
현실에서 쉬다 왔거나 전전 웨이브에서 후퇴한 인원.
그리고.
웅!
10개의 문이 열린다.
“아직 기세가 살아 있군.”
[어리석은 자들.]수백의 몬스터를 이끌고 우주천마와 복수의 여신이 모습을 드러낸다.
키잉!
“읏……!”
내 뒤에 서 있던 분신 중 하나가 신음한다.
탐험가들을 공격하는 우주천마의 심검을 [쳐 내다]가 타격을 입은 것이다.
분신이라 해도 어린아이니 낼 수 있는 출력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아.”
또다시 모습을 드러난 황제 클래스의 모습에 절로 한숨이 흘러나온다.
“제길. 저거 두 녀석 포함됐다고 까다롭단 말이지.”
본래 피해가 거의 없었던 20층의 전투는 두 황제 클래스의 합류로 피해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1:1로 싸우면 내 상대가 아닌데…….’
그러나 다 의미 없는 소리다. 무지막지한 버프를 뿌리는 복수의 여신, 대인전의 스페셜리스트인 주제에 핀 포인트 저격까지 가능한 우주천마는 상황과 조건이 맞아떨어지지 않는 이상 즉살시키기 불가능한 존재였으니까.
특히나 복수의 여신은 [무적] 스킬로 천지검 콤보를 무용지물로 만드는 주범.
온갖 버프. 특성. 아티팩트에 더불어 막대한 내공과 심력을 쏟아 낸 데미지 전파임에도, 고작 1초도 안 되는 무적에 끊기고 만다.
‘겨우 이 정도 수고로!’
너무나 화나는 일.
문제는 또 있다.
[……도저히 안 되겠군. 나가 보겠다.]피로감이 가득한 응룡의 말에 한숨 쉰다.
“저기 성채에서 쉬시면 안 됩니까?”
[정신적인 문제라 안 돼. 미궁에서 계속 버틸 수는 없다. 솔직히 말해…… 계속 버틸 수 있는 네가 비정상이지.]1,000배의 시간 배율이 걸려 있는 몽환의 미궁은 정신과 영혼에 지속적인 부하를 준다.
정신보다 육체가 훨씬 먼저 지치는 필멸자들에게는 그리 크게 느껴지지 않겠지만, 1,000배의 배율이 좋다는 이유로 휴식을 취하기에 미궁은 그리 좋은 환경이 아니라는 뜻이다.
“뭐, 그러면 혼자 버텨 보죠.”
[한계에 도달하면 신호하게. 성채를 접고 후퇴해야 하니.]“그럴 수는 없죠.”
그래. 그럴 수는 없다.
저 성채에 얽힌 돈이 얼마인데 그걸 포기한단 말인가?
[……가급적 빨리 와 보지.]팟!
부드럽게 뒤로 물러나더니 그대로 사라지는 응룡의 말에 웃는다.
“빨리라니.”
현실에서 1분만 쉬어도 여기에선 약 17시간이다. 1시간을 쉬면 약 42일. 하루를 쉬면 2년 8개월.
그가 아무리 빨리 와 봐야 여기에서는 몇 년은 걸린다는 말이다.
-축복하는 자께서 말씀하시길. 전투에 임하면 물러설 수 없음이라!
RTS 게임의 보스 ‘신성한 목소리’가 임전무퇴의 규칙을 설정하며 전장의 한복판으로 들어온다.
“그래. 간다 간다.”
한숨 쉬며 앞으로 나아간다.
싸운다.
하루, 이틀, 사흘, 나흘.
일 주, 이 주, 삼 주, 사 주.
한 달, 두 달, 석 달, 넉 달.
마침내 일 년. 이 년. 삼 년…….
“표정들이 좋군.”
[얼마 안 남았군요.]또다시 계단을 통해 모습을 드러내는 우주천마와 복수의 여신.
그리고 수백의 몬스터를 보며 신음한다.
“와. 진짜 안 끝나네…….”
같은 초월자라도 탐험가는 몬스터보다 강하다. 충실한 무장과 전략 전술의 도움을 받기 때문이다.
20층의 환경 또한 탐험가들에게 유리하다. 드래고니아에서 세워 둔 거대 성벽과 거기에 붙어 있는 다수의 요새 마을 등은 그걸 끼고 싸우는 탐험가들에게 커다란 어드밴티지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렇다 해도.
끊임없이 재등장하는 황제와 수백의 초월급 몬스터를 감당할 정도는 아니다.
꽝!
검과 검이 충돌하자 폭음이 터지고 주변 공간이 일그러진다. 같은 심검 사용자인 우주천마를 심검으로 죽이기는 어려웠기에 극대강기로 밀어붙이며 근력으로 움직임을 방해한다.
[특성 발동 : 분신 생성.]자연스럽게 내 뒤로 모습을 드러낸 분신들이 사방으로 심검을 쏘아내고.
“(ꐦ ◣‸◢).”
[흥! 어림없는 짓이다!]빛살처럼 돌진하는 에레보스를 복수의 여신이 결계를 펼쳐 막아 낸다.
전세는 급격히 기울었다.
퍽!
“큭!”
한 손으로 검을 맞댄 채, 남는 손으로 우주천마의 어깨를 친다.
콰득!
다시 한번 내려치자 어깨가 아예 부서져 버린다.
“네놈……!”
이를 박박 갈지만, 우주천마는 더 이상 내 상대가 아니다. 경지 자체에는 큰 차이가 없어도 스펙의 차이가 너무도 막심하기 때문이다.
예전에도 그랬으니 권능까지 다수 확보한 지금은 더더욱 그렇다.
특히나 민첩 계열 권능. 영원(永遠)의 찰나(刹那)를 얻은 이후에는, 힘을 떠나서 근접전에서도 상대가 안 되는 상황.
문제는 이렇게 발이 묶인 시간 그 자체다.
“온다……!”
“성벽을 끼고 싸워! 죽지 않는 걸 최우선으로!”
콰광!
쩌정!
백 명 정도의 탐험가와 그 몇 배는 되는 몬스터 군단이 충돌한다.
유리한 전투지만 피해가 없을 수는 없다.
몬스터 군단이 제 목숨 아까운 줄 모르는 미친놈들이기에 더욱 그렇다.
“제길! 초월자라는 놈들이 자살 특공을……!”
“이것이 20층!? 소문은 많이 들었지만!”
“아니, 이 상황에 신입이!? 나갈 생각 말고 방어부터 해!”
충돌한다. 준비된 주문과 검격에 몬스터들이 죽어 나가고 초월자들 역시 리타이어 하는 인원이 많다.
성벽을 끼고 있지만, 그 뒤에 숨을 수는 없다. 성벽을 완전히 방치해서 그것이 파괴돼 버렸다간 결계의 보조조차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뿌득!
“크…… 흑!!”
잠시 버티긴 했으나, 기어코 힘에 밀린 우주천마의 목을 꺾어 버린다.
[챌린지 토큰×512]아깝지만 우주천마의 시체는 그냥 버린다. 복숭아나무에 먹이고 싶지만, 미궁이 다 뺏어 간다.
“히페리온!”
고오오!!
온몸을 뒤덮은 빛이 빠르게 확장한다.
콰과광!
그대로 빛의 검을 휘둘러 몬스터 군단의 중심을 헤집는다. 초월급 몬스터들이 미친 듯 달려들지만 내 생명력을 공유하는 빛의 거인을 어찌하지는 못한다.
퍼억!
퍼억!
결국 복수의 여신에게도 검을 박아 넣는다.
[무용한…… 발악일 뿐…….]검은 날개를 퍼덕이던 복수의 여신이 축 늘어진다.
[챌린지 토큰×512]“남는 건 토큰뿐이군…… 슬슬 평온의 집이 진화할 것 같은데.”
투덜거리며 고개를 돌린다. 고작 30분의 전투였지만 피해는 막심하다.
“저주다! 해제해!”
“제길. 곱게 죽을 것이지…….”
“지치는군…….”
남아 있는 초월자는 처음의 절반에 불과하다. 초월자 50명이 죽었다는 말은 당연히 아니다. 탐험가들은 목숨이 위험하면 즉시 미궁에서 후퇴해 빈자리가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렇게 쉬운 후퇴에도 사망자는 꼬박꼬박 생기고.
부상을 입고 후퇴한 초월자가 다시 미궁으로 돌아오기까지는 그야말로 까마득한 시간이 필요하다.
퍼억!
마침내 마지막 몬스터가 쓰러지고 탐험가들이 호흡을 고른다.
“62분 남았습니다! 치료하실 분들은 치료하고, 명상하실 분들은 하세요!”
“아…… 한 번 더 안 될 거 같은데. 그냥 후퇴할까.”
“그럼 너무 적어지는 거 아냐?”
“아니, 매 웨이브마다 황제 클래스가 둘씩 올라오는데 이걸 어떻게 막아! 슬슬 무리야!”
“하. 우리 행성에서는 나도 왕이고 황제인데.”
이곳에 있는 탐험가들은 대부분 지고한 경지의 초월자지만, 그럼에도 사기가 말이 아니다.
몽환의 미궁 20층은 온 우주의 힘이 모여 몬스터를 막아 내는 최전선.
‘꽤 오래 막았지만…… 슬슬 한계인가.’
팟!
히페리온과 분신을 돌려보내고 몸 상태를 확인한다.
엄청난 소모가 있었지만 그래도 한 웨이브 정도는 더 막고 로그인해도 될 상황.
그런 나를 보고 초월자들이 신음한다.
“그나저나 저 사람은 나가지도 않고 얼마나 버티고 있는 거지?”
“4년. 아니 5년인가?”
“진짜 괴물이군…… 이쯤 되면 황제 클래스 이상인 거 아닌가?”
“……언터쳐블 클래스라고?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 아무리 그래도 신이라니!”
기막혀하는 탐험가들을 보며 생각한다.
‘하긴 이상하게 보이긴 하겠군.’
내 전투력만 해도 황제 클래스 중에서도 상위권이지만, 전투 지속력은 그것으로도 설명이 안 되는 수준이다.
진실은 단순하게 아르데니아에 가서 쉬고 올 뿐이지만.
“저게 30살이라니…….”
“사실 그것도 이젠 틀린 말이지. 현실에서야 30살일지 몰라도 여기에서 수십 년을 보내고 있으니.”
초월자들의 수군거림을 들으며 성벽 위에 걸터앉는다.
소모된 마나를 회복하기 위해 맹렬히 요동치는 대기의 박동을 느끼며 생각한다.
‘뭔가 잘못되고 있어.’
너무 많고.
너무 빠르다.
아무리 죽이고 죽여도 몰려드는 몬스터의 수가 전혀 줄지 않는다. 매 웨이브마다 황제 클래스가 둘씩 껴 있다는 걸 생각하면 그야말로 말이 안 되는 리젠 속도.
게다가 확인 결과, 이것들은 1층에서가 아니라 19층에서부터 올라오고 있다!
‘……실수였나?’
아르데니아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사실 하면 안 되는 일이다. 내가 그곳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면 몬스터들이 대량으로 리젠된다는 걸 짐작하고 있었기 때문.
그러나 그럼에도 난 그렇게 했다.
왜냐하면 어차피 그들 중 태반을 내가 처리하고 있기 때문이었는데…….
‘내가, 오만했다고?’
내가 초인적인 정신력과 불굴의 의지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실제로 나는 계속 버틸 수 있다. 아르데니아에서 쉬고 오면 그만이니 뭐가 문제겠는가?
그러나 그 ‘쉬고 오는’ 시간이 문제가 된다면?
지금 버티는 이 시간이…… 영원히 끝나지 않는다면?
[입장이 시작됩니다.] [다음 입장까지 100분.]다음 웨이브 시작 전, 탐험가들이 들어온다.
성벽 위에서, 혹은 아래에서 쉬던 탐험가들의 얼굴이 어두워진다.
“이런.”
“여기까진가…….”
들어온 탐험가는 10명.
그들도 놀라 주변을 본다.
“뭐야. 왜 이렇게 적어?”
“많이 죽었나?”
빠진 인원은 50명인데 들어온 인원이 10명이니, 이번에는 탐험가 60명만으로 웨이브를 버텨야 하는 상황.
웅!
그러나 탐험가들이 당황하거나 말거나 10개의 문이 열린다.
“더 줄었군.”
[길었습니다. 드디어 최종장이군요.]다시 우주천마와 복수의 여신이 모습을 드러낸다.
“나는 여기까지 하겠어.”
“아쉽게 되었군.”
초월자들이 한 걸음씩 물러선다. 겁에 질려서가 아니라, 후퇴를 위해서.
그러나 그 순간.
퍽!
퍽!
우주천마와 복수의 여신의 머리가 터져 나간다.
“뭐?”
“무슨?”
너무 뜬금없는 상황에 후퇴하려던 탐험가들이 멈칫한다.
“후. 놀래라. 대체 무슨 일이죠?”
“금낭?”
나는 내 옆에서 땀을 닦는 금낭을 바라보았다.
그의 기세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너 설마?”
“아, 네. 운이 좋았고 아주…… 아주 많은 일이 있었죠.”
뭔가 많이 바뀐 느낌으로.
황제. 금낭이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