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rd-working billing engineer RAW novel - Chapter 393
열일하는 과금 기사 392화
[……살려 주시오.]잔뜩 갈라지고 짓눌린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나는 나도 모르게 헛웃음을 흘렸다.
“정말 뜬금없는 소리네.”
그렇게 말했지만 짐작 가는 바는 당연히 있다.
‘드디어 오셨군.’
몽환의 미궁 때문에 스타게이트가 먹통이 되어 버렸지만 문명 간 교역이나 거래는 예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활발해졌다.
이것 역시 몽환의 미궁 때문.
수많은 탐험가들이 바리바리 싸들고 들어간 짐으로 다른 문명의 존재와 물물교환을 했다. 사실 [마나 코인]이 본격적으로 재화로 사용된 것 역시 이런 흐름 덕분이라 할 수 있다.
서로 떨어져 있던 대우주를 몽환의 미궁이 연결시킨 것이다.
‘그리고 덕분에 바로 처리할 수 있었지.’
내가 서른 명의 황제 클래스를 만난 것은 누군가의 음모 때문이었다.
원래대로라면 이 사실을 알아도 복수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우주는 까마득히 머니, 복수에 시간을 쓸 정도로 한가하지 못한 나는 그냥 참고 넘어갈 수밖에 없는 상황.
그러나 몽환의 미궁 덕에 나는 인과를 추적하는 심검을 쏘아 낼 수 있었다.
‘굳이 말하자면 비살상이지. 반드시 살리자는 공격도 아니었지만.’
내가 쏘아 낸 것은 살상력보다는 [고통]에 집중한, 굳이 말하자면 [저주]에 가까운 심검.
내 심검의 근간이 스트레스 블레이드였던 만큼 크게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사죄드리오. 우리가, 어리석은 짓을 저질렀다오. 부디 자비를 베풀어 주시면.]“그러니까 어떻게 어리석었는데?”
[그건…….]하양이 너머의 상대는 한참이나 말이 없다. 인내심 있게 기다리니 헐떡이던 녀석이 말한다.
[말씀드릴 수 없소.]“얼씨구?”
기가 막혀 웃자 사내의 목소리가 다급해진다.
다급한 목소리는 나름대로 진지하다. 아무래도 내게 저주를 걸 때처럼 어떠한 권능이 관여되어 있는 모양.
그러나 당연하게도, 내가 고려해 줘야 할 문제는 아니었다.
“끊어.”
[하, 한재연 공! 잠시 내 말을 들.]뚝.
통화를 끊어 버린 에드워드가 웃는다.
[건방진 것들이군요. 천 번, 만 번 찢어 죽여도 부족한 것들이 감히 간 보는 태도를 보이다니.]“스트레스에 제정신이 아닌가 보지.”
죽이는 것보다 고통 주는 것에 집중한 심검이니 그걸 맞은 녀석이 아무리 강대한 정신력과 초월적인 항마력을 가지고 있다 해도 심검이 남긴 상처를 극복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죽는 것보다 고통스러운 악몽을 날마다 꿀 테고 영성(靈性)에 치명적인 타격을 입어 초월자로서의 힘을 쓸 수 없다. 마음에 남겨진 시커먼 악의(惡意)를 씻어 내지 못하는 한…… 그들은 기나긴 시간 동안 고통받다 결국 죽고 말 것이다.
어쩌면 이미 죽었을지도 모르고.
[폐하, 연락이 다시 옵니다.]“나름 절박하네. 그렇게나 절박한 놈들이 날 건드리는 선택을 하다니.”
그런데 에드워드가 뜻밖의 말을 한다.
[다른 번호인 것 같은데…….]“호오…….”
피식 웃으며 말한다.
“받아 봐.”
[사, 살려 줘…… 이거 당장……!] [용서해 주십시오.] [도, 돈이라면 충분히 있습니다. 모든 잘못을 인정할 터이니…….]통화를 한다. 끊어 버린다.
통화를 한다. 다시 끊어 버린다.
일성 기업의 본사로 들어서는 동안 총 여덟 명의 초월자에게 연락이 왔다.
용건은 대동소이하다.
-살려 달라. 뭐든 하겠다.
“연결된 인과는 11개였지. 나머지는 아직 버티고 있는 건가.”
어쩌면 녀석들이 가진 능력, 또는 인맥으로 심검을 이겨 낸 녀석들이 있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죽었거나.
“에드워드. 다시 연락 오면 네가 상대해. 살고 싶으면…….”
원래는 그저 고통을 주며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할 예정이었지만.
상황이 이러하니 자연히 현재 마주한 고민거리가 흘러나온다.
“네메시스 소프트 주식 5%씩 가져오라고 그래.”
[오…… 이 녀석들이 그럴 능력이 될까요? 게다가 주식을 사들이면 주가가 오를 텐데.]네메시스 주식은 한 주에 1억 5천. 5%의 주식이면 1,196,000주이니 대충 계산해도 180조(兆)의 돈이 필요하다.
물론 명색의 초월자이니 조 단위의 돈도 감당할 수 있겠지만…… 34지구의 물가는 외계의 탐험가들이 기겁할 정도로 높다. 무지막지한 외화를 벌어들이는 우주 용병과 안전을 찾아 막대한 돈을 들고 들어오는 이민자, 우주에서도 알아주는 마법기 생성 능력 때문.
그런데 그런 34지구에서도 까마득히 비싸고, 또 오르기만 하는 주식을 사야 한다면.
“뭐, 내가 걱정할 문제는 아니지.”
적당히 넘기고 일성 기업으로 들어선다. 일도 많은데 쓸데없는 일에 너무 심력을 쏟을 이유가 없다.
8명의 초월자 놈들이 다 성공해 주식 40%를 가져다주면 대박이고 아니면 말면 그만.
한때 절망을 떠올릴 정도의 난관을 안겨 주었던 녀석들이지만.
이겨 낸 이상 녀석들은 딱 그 정도의 존재에 불과하다.
“오. 한재연이다.”
“대우주 최연소 황제 클래스…… 일성에는 무슨 일이지?”
“소문 못 들었어? 배사랑 대표님하고 사귄다잖아. 요새는 거의 동거한다고 하던데.”
“파이브 드래곤하고 사귀는 거 아니야?”
“와. 배경도 없이 혼자 힘으로 드래곤에 재벌집 막내딸에…….”
“배경이 왜 없어? 게임마스터님의 사도인데.”
“위대하고 위대하신은 왜 빼? 너 이 녀석…… 불경자로군?”
“아, 지랄 좀 하지 말고. 나도 게임신님 사랑하거든?”
당연히 내 앞을 막아서는 존재는 없었지만 시선이 모이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나는 현 34지구 최고의 슈퍼스타.
그나마 34지구이니 슈퍼스타로 끝나는 것이지 다른 문명이었으면 황제 클래스는, 탄생하는 순간 새로운 지배자다.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회장님을 모시는 기담이라고 합니다.”
꾸벅 고개를 숙이는 노인을 따라 엘리베이터를 타자 그대로 상승한다.
“엘리베이터가 넓군요?”
저층이면 몰라도 초고층 빌딩은 텔레포트 게이트로 이동하는 게 보통이기에 이 정도 규모는 놀랍다.
“건축법 때문에 설치만 해 두었던 물건인데 이제는 이걸 주로 이용하지요. 출근 시간에는 그마저도 부족해 계단을 이용하는 해프닝이 있습니다만.”
공간 이동 제한으로 인한 불편함은 사회 전반에 엄청난 변화를 불러오고 있다.
엘리베이터를 아예 설치조차 하지 않은 몇몇 건물이나 물자 이동에 텔레포트가 필수적이던 시설 등의 경우 아예 기초 설비부터 뒤엎고 있는 실정이고 음식이나 물건을 배달하기 위해 사방에서 배달부를 고용하고 있단다.
띵.
엘리베이터가 최상층에 도착하자 기담이 먼저 나가 문을 연다.
“한재연 님께서 오셨습니다.”
“……드디어 보는군.”
방 안으로 들어가자 큼직한 의자에 앉아 있는 건장한 체격의 노인이 보인다.
교과서에서, 뉴스에서 많이 본 존재지만 역시나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무적철인이라는 아이디로 올 마스터 클래스를 뽑았을 때.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그렇다. 그가 거기에 있다. 34지구 최고의 부자이자 인류를 이끌던 지도자.
배재석 회장.
“교과서에서만 보던 분을 이렇게 만나게 되다니.”
정중히 예를 취한다. 34지구 최고의 부자이자 사랑의 아버지인 그와 굳이 각을 세울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초월지경에 이르지 못했다 해도 그는 34지구 역사의 산증인.
살아온 시간이 1,000년이 넘을지도 모른다고 알려진 시대의 거인이다.
“……정말 무시무시하군.”
가만히 나를 바라보던 재석이 쓰게 웃는다.
가만 보니 그의 손이 가늘게 떨리고 있다.
“괜찮으십니까?”
뭔가 정상이 아닌 것 같아 물었지만 재석은 차분한 태도로 나를 응시하고 있을 뿐이다.
“이 정도면…… 그냥 황제 클래스 정도를 넘어서는군. 거의 상급 초월자에 준해.”
나를 가만히 바라보며 읊조리는 재석의 모습에 멈칫한다.
‘내 힘을 가늠한다고?’
눈을 가늘게 뜬다. 나와 동격은커녕 초월자조차 아닌 재석의 능력으로는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순간.
펄럭.
6장의 날개를 달고 있는 천사의 형상이 그의 뒤에 내려선다. 안대로 눈을 가리고 있는 여인이, 거대한 석판을 들고 있는 노인의 형상이 보인다.
‘아.’
그것은 34지구의 신이다.
정의.
진실.
명예.
놀랍게도 배재석은 정의신의, 진실신의, 명예신의 사도였던 것이다.
그뿐이 아니다.
웅!
절대 권능, 권능무력체(權能無力體)를 발동하자 내가 가해지던 몇 개의 권능이 사라지고 특수한 감각이 일어난다.
권능을 무력화시키는 절대 권능의 부가 효과로 인해…… 주변의 [권능]들이 느껴지는 것.
나는 깨달았다.
삼신의 존재와 별개로 배재석 회장에게 게임신의 권능이 다섯 개나 임해 있다는 것을.
‘아니 게임 마스터님…… 아무리 친해도 그렇지.’
그야말로 기가 막힌 일이었다. 아무리 동창이어도 그렇지 이건 편애가 좀 심한 거 아닌가?
공식적인 게임신의 사도 동민의 경우 조건부 권능 한 개가 있을 뿐이었는데.
이렇게 되면 초월이 문제가 아니다. 지금 내 앞의 존재는 황제 클래스의 몬스터보다도 위험하면 위험하지 결코 약한 존재가 아닌 것!
황당해하는 나를 보며 재석이 말했다.
“운명이란 참 알 수가 없어. 평화의 시대가 된 이후 초월자 하나 등장하지 못하던 34지구에 너 같은 녀석이 나타날 줄이야.”
“사실 저도 편의점 알바를 할 땐 이렇게까지 될지는 몰랐습니다. 스스로가 비범하다는 걸 모를 정도는 아니었지만요.”
“보통 그런 걸 제 입으로 말하나? 하긴 자연경에 도달할 정도의 재능이면 모르는 게 이상하긴 하지. 그 폐급 적성인가 뭔가가 아니었으면 훨씬 일찍 그 존재를 알았을 텐데.”
쓴웃음 지은 재석이 드디어 나를 부른 용건을 말한다.
“일성의 회장이 되어라.”
“……그게 무슨.”
온갖 상황을 다 예상하고 온 나조차 황당해 입을 벌릴 수밖에 없다.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다.
“아니, 회장님 자식들이 있지 않습니까?”
배재석 회장은 악멸화(惡滅花). 이경은과 결혼하여 평생 그녀만을 사랑했고 그녀와의 사이에서 일남이녀의 자식을 보았다.
그중 막내인 사랑이는 독립해 네메시스 소프트를 만들었다지만 그녀의 언니 오빠는 정상적으로 일성 기업을 이끌고 있는데 왜 나한테 일성을 넘긴단 말인가?
“있어도 유지할 수 없으니까. 삼신이 있는 34지구의 특성상…… 일성 같이 온갖 영역을 아우르는 초대형 재벌은 사실 존재할 수 없어. 일성은 사실 나라는 존재가 없으면 존립될 수 없지.”
나는 재석의 말이 뜻하는 바에 눈을 가늘게 떴다.
“회장님. 설마.”
“그래. 내 수명이 얼마 남지 않았다.”
“…….”
34지구 주식판에 폭풍이 몰아칠 어마어마한 정보.
시대의 거인 배재석의 죽음은 결코 개인의 죽음이 아니다. 그가 죽는 순간, 34지구의 재계에는 그야말로 격변이 일어나게 되리라.
‘이렇게 멀쩡해 보이는데 얼마 남지 않았다니.’
생명체라기보다 탱크나 기가스에 가까워 보이는 육신. 팽팽한 피부와 윤기가 흐르는 머리칼.
그러나 자세히 보면, 그의 눈동자는 한껏 지친 노인의 그것이다.
“관대하 그 녀석은…… 나를 아끼는 거지 내 핏줄까지 아끼는 게 아니야. 내가 죽는 순간 일성 기업은 반드시 수십 수백 개로 흩어져 버릴 거다. 첫째와 둘째가 대단히 무능한 건 아니지만, 초월자도 아닌 녀석들이 통제하기에 일성기업은 너무나 크지.”
“그러니까 저한테 맡긴다고요?”
“그래. 너라면. 홀로 제국을 만들 수 있는 너라면 일성도 충분히 아우를 수 있을 테니까.”
그의 말에 생각한다.
‘일성을 먹는다고?’
34지구를 아우르는 일성 기업.
만약 정말 그게 내 손으로 들어온다면…… 내가 벌 수 있는 돈은 수백 억. 수백 조…… 뭐 그런 단위가 아니다.
경(京).
그래. 그 정도의 돈을 손에 넣을 수 있다.
연봉이 100억이어도 100만 년을 한 푼도 안 쓰고 저축해야 모을 수 있는.
그저 돈만으로 문명 하나를 일으켜 세울 수 있는.
돈으로 우주전쟁을 일으킬 수 있고 돈으로 물리적인 해일을 일으킬 수 있는.
그런 단위.
“……대가는요?”
“사랑이랑 결혼해라. 물론 우리 쪽이 크게 기운다는 걸 아니 다른 여자들하고 놀아나는 것까지는 상관 않겠지만…… 자식은 사랑이랑만 낳았으면 한다.”
“앗.”
나도 모르게 멈칫한다.
재석의 얼굴이 굳는다.
“사랑이랑 일성기업을 얹어 주는데 부족하다는 건가? 미래를 장담하기 어렵다면…… 그래. 적어도 첫째 아들은 사랑이와 낳아라.”
그의 말에 식은땀이 흐른다.
“아…… 아니 그게 아니라.”
“네가 F‧D라는 드래곤들과 연인 관계라는 걸 안다. 하지만 녀석들은 보통 드래곤이 아니야! 녀석은 용황 칸! 네가 아무리 황제 클래스라고 해도 그 오만한 용들은 절대 너를 제대로 된 상대로 생각하지 않는다! 그저 황제급 전투력을 탐내고 있을…… 아니 잠깐.”
목소리를 높이던 재석이 내 표정을 보며 멈칫한다.
“너, 칸의 정체를 알고 있군?”
나를 노려보는 시선에 이마에 땀이 맺힌다. 상황이 몹시 난감하다.
그러나 여기에서 침묵하면 상황이 더 꼬이기만 할 것이다.
“아, 그 죄송합니다.”
“뭐가?”
“이미 오룡이 녀석들이 임신을 해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