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 has become the older brother of the villainess RAW novel - Chapter 126
126화. 전설의 용을 임시보호합니다 (4)
데지데리움의 밥을 뺏어 먹던 코스모가 방향을 바꿔 달리아에게 다가왔다. 코스모는 솜털 같은 작은 짐승으로 변하며 달리아 품에 폭 안겼다. 달리아에게 코스모는 일종의 애완동물 취급을 받고 있었다.
[달리아! 달리아는 오늘도 마수 안 먹어? 안 먹을 거면 놀자!]“이젠 돌아가야 해. 선생님이 깨어날 시간이거든.”
달리아는 피핀과 함께 돌아가며 데지데리움을 연신 돌아봤다. 데지데리움은 달리아의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마치 말할 것이 있다는 것처럼 보였다. 달리아와 단둘이 남을 시간을 기다리는 듯…….
번들거리는 눈동자는 달리아에게서 떨어질 줄 몰랐다.
***
그날 밤.
“잘자, 뮤리엘.”
“좋은 꿈 꾸세요, 아가씨.”
유모는 달리아의 이마에 입 맞추고 방을 벗어났다. 문밖에 서 있던 엔비와 유모는 몇 마디 가벼운 인사말을 나누었다. 이윽고 유모의 발소리가 점점 멀어지고, 이내 완전히 들리지 않게 되었다.
“갔다!”
달리아는 색색 숨소리를 연기하며 자는 척을 하다가, 한쪽 눈을 떴다. 달리아는 이불을 걷어내고 벌떡 일어났다. 인형인 척, 달리아의 침대 한쪽을 차지하고 있던 코스모가 달리아에게 굴러왔다.
[정말 갈 거야? 주인이 싫어할 거야.]“괜찮아. 오라버니는 이제 날 싫어하지 않아. 혼내지 않으실 거야.”
[문밖에는 아직 엔비가 있어. 우리 말소리가 다 들릴지도 몰라.]달리아가 문을 향해 손짓했다. 문틈에서부터 시작된 어둠이 장막처럼 펼쳐지며 문을 막았다. 달리아가 씨익 웃는 것을 보며 코스모는 불안한 듯 눈을 굴렸다.
[혼날 거야…….]달리아는 코스모를 들어 올려 책상으로 갔다. 코스모의 빨간 눈들이 등불처럼 빛을 냈다. 이 또한 달리아의 마법이었다.
졸지에 달리아의 등불이 된 코스모가 혀를 쭉 뺐다. 나름대로 불만의 표시였지만, 그다지 효과적이지는 못했다. 마법에 걸린 상황에서는 길게 내뺀 혓바닥마저 번쩍거리며 빛을 냈다.
“데지데리움이랑은 대화가 되지 않아. 꿈도마뱀은 나랑 이야기할 수 있었을 텐데.”
책상에 턱을 괴고 앉은 달리아는 잠시 고민하다가, 종이를 부욱 찢었다. 색연필을 잡아 들고 달리아는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말이 통하지 않는 용과 대화할 수 있게 해주는 도구를 만들 생각이었다.
달리아가 흰 종이에 그려 넣은 건 입과 귀였다. 재주껏 그렸지만 모양새는 엉망진창이었다. 코스모는 몸을 이리저리 굴려 가며 달리아의 역작을 감상했는데, 입과 귀라는 것을 알아보지는 못했다. 마수인가, 먹는 건가 골똘히 고민하며 눈을 깜박일 뿐이었다.
“좋아! 이걸로 대화를 하는 거야.”
달리아는 직접 그린 입과 귀를 가위로 잘 오려낸 뒤, 끝에 리본을 달았다. 코스모는 가위도 들어주고, 종이도 들어주며 조수로서 그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준비물은 완벽하다. 이제는 모험을 위한 옷차림을 갖출 차례. 달리아는 코스모를 밟고 올라가서 옷장을 열고, 승마 수업 때 입는 옷으로 갈아입었다.
“코스모!”
[으음, 알았어. 대신 주인한테는 비밀이야. 정말 비밀이라구…….]코스모는 평소의 마수 모습으로 변신하며, 달리아가 올라탈 수 있게 몸을 낮췄다. 달리아는 준비물을 챙겨 코스모에 올라탄 뒤, 용맹하게 창문을 가리켰다.
“가자! 그리움에게로!”
코스모는 못마땅해하면서도 어쩔 수 없다는 듯, 창문을 열고 밖으로 뛰어내렸다.
***
순찰 중인 호위 기사의 눈을 피해, 달리아와 코스모는 샛길을 이용해 데지데리움에게 향했다. 피핀의 작업실을 지날 때는 유독 조심했다. 감이 좋은 피핀이 미심쩍은 기색을 눈치챌까 걱정했기 때문이다.
다행히 데지데리움 앞에 도달할 때까지, 둘은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았다.
“그리움!”
데지데리움은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고개를 들었다. 코스모는 움찔하며 더 가까이 다가가지 못했다. 오히려 달리아의 옷자락을 입으로 물며 말리기까지 했다.
[달리아, 그냥 돌아가자. 나 무서워. 폭풍의 용이 나 노려봐…….]“안 돼, 코스모! 그리움은 아직 아무 잘못도 하지 않았어. 남을 함부로 의심하면 안 돼.”
[달리아, 쟤를 봐! 달리아, 달리아! 저 용 무섭게 생겼잖아! 그게 잘못이야! 무섭게 생긴 게 잘못이라고!]“코스모가 더 무섭게 생겼으니까 괜찮아.”
[응……?]달리아는 코스모를 두고 데지데리움에게 다가갔다. 한 발짝, 한 발짝 다가갈수록 달리아는 울새처럼 몸을 부풀리며 용기를 냈다. 데지데리움의 눈알 하나가 달리아의 머리통 크기였으니, 겁이 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달리아는 어린아이 특유의 순진함과 선량함으로 직감하건대, 데지데리움이 자신을 침착하게 기다려 주고 있다는 사실을 확신할 수 있었다.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해! 우리가 들어줄게!”
달리아는 직접 그린 입과 귀를 데지데리움의 머리에 달았다. 위엄 있는 용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장식이었다. 데지데리움은 말처럼 푸르릉- 투레질을 하더니 달리아를 빤히 쳐다봤다. 이어 굳게 닫혀 있던 용의 입이 열렸다.
[환각의 주인이여. 그대의 사도는 어디에 있는가.]“…….”
[폭풍의 근원은 어디에 있는가. 미약하나마 힘이 느껴진다. 그러나 방향을 알 수 없다.]“…….”
달리아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못 알아듣겠어…….”
용의 엄숙한 한 마디 한 마디가 달리아의 귀에서 튕겨 나갔다. 데지데리움은 인간의 말을 사용할 수 있게 됐지만, 달리아가 이해할 수 없는 말만 내뱉었다. 달리아는 코스모를 끌어당기며, 자신이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소통을 시도했다.
“얘는 코스모야! 내 친구! 그리움도 친구가 있어?”
[그가 환각의 사도인가. 생각보다 작고 약하고 탐욕스럽구나.]데지데리움이 코스모를 빤히 쳐다봤다. 코스모는 은근히 달리아의 뒤로 도망쳤다.
[환각의 주인이여. 도와다오. 나는 지금껏 어떤 인간에게 붙들려 있었는데, 그의 손을 떠나 새로운 인간을 만나게 되었다. 그에게서는 폭풍의 냄새가 났지. 폭풍의 근원은 멀리 있지 않을 것이야.]“음……. 친구를 찾는다는 말이지?”
달리아와 데지데리움 둘 다 서로 무슨 소리를 하는지 제대로 알아듣지 못했지만, 뜻은 어떻게든 통했다. 달리아는 작은 손으로 데지데리움을 다독였다.
“달리아가 도와줄게! 그리움의 친구를 찾으러 가자!”
***
달리아는 데지데리움을 지팡이의 형태로 만들어 챙겨 들었다. 코스모와 함께 공작성으로 돌아간 달리아는, 지팡이를 이리저리 휘두르며 활보했다. 데지데리움의 보석 장식은 달리아가 특정한 방향으로 휘두를 때 빛을 냈다. 폭풍의 힘이 느껴지는 대로 움직이는 것이다.
“이쪽? 이쪽인가?”
달리아는 졸음도 잊고 모험에 몰두했다. 데지데리움의 안내에 따라 코스모를 타고 벽을 기어오르기도 했고, 사용하지 않는 방을 한 바퀴 빙 돌아보기도 했다. 천천히 공작성을 순찰하는 시종들은 달리아의 마법으로 돌연 잠에 빠져들었다. 달리아가 지나간 자리에는 걷다가 잠들어버린 시종들이 남았다.
이어 달리아의 발길이 멈춘 곳은 커다란 문 앞이었다. 데지데리움이 아까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환히 빛났다. 당장이라도 방 안에 날아가고 싶다는 듯 날개 모양의 장신구를 비틀어 보이기도 했다.
“여기야? 여기에 있는 거야?”
달리아가 까치발을 들어 문을 열었다. 코스모도 달리아를 도와 육중한 문을 밀었다.
방 안은 어두컴컴했다. 그러나 달리아가 데지데리움을 거품기처럼 흔들자, 방의 저 멀리 구석에서 초록색으로 빛나는 무언가가 있었다. 은은한 푸른빛은 데지데리움과 공명하며 환영의 인사를 건네는 듯했다.
“저기구나!”
달리아는 빛을 향해 성큼성큼 다가갔다. 녹색 불빛에 거의 가까워진 그 순간, 방의 불이 환히 켜지며 달리아의 야행은 적발되고 말았다.
“달리아?”
***
어디선가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방 안에 벌레라도 들어온 걸까, 잠결에 환청을 듣는 걸까. 무시하며 다시 잠들려는 찰나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달리아와 코스모가 속닥속닥하는 목소리.
꿈이라기에는 너무 선명해서 번뜩 눈이 뜨였다. 몸을 돌려 살펴보자 캄캄하기만 해야 하는 내 방에 이질적인 불빛이 두 개나 있었다. 하나는 선반 위에서 번쩍이고 있었고, 하나는 그 불빛을 향해 흔들흔들 이동했다. 그 높이는 딱 달리아의 키만 했다.
“달리아?”
마력을 주입해 방에 불을 밝혔다. 덜미를 잡힌 침입자가 어깨를 움츠리며 내 눈치를 살폈다. 달리아의 손에는 심지어 무기로 변한 데지데리움이 들려 있었다.
“달리아, 지금 뭐 하는 거야?”
눈을 비비며 침대에서 내려왔다. 달리아가 황급히 데지데리움을 제 뒤로 숨겼지만, 이미 늦었다. 볼이 잔뜩 상기돼 있는 걸 보니 남몰래 즐기는 밤 산책이 어지간히 재밌었던 모양이다.
달리아의 머리에 붙은 낙엽을 떼어주며, 나는 침착하게 물었다.
“지금 잘 시간 아니야? 달리아가 왜 오라버니 방에 있을까?”
“…그리움이, 그리움이 찾고 있는 친구가 있대서. 친구를 찾아주려고 그랬어요.”
“친구?”
달리아는 데지데리움을 꿋꿋이 ‘그리움’이라고 불렀다. 워낙 수수께끼 같은 아이다 보니 하나하나 다 캐묻기보다는 하고 싶은 대로 하게 내버려 두는 편이었다. 어쩌면 데지데리움이 ‘그리워하는’ 존재를 찾아주려 한 건지도 모른다.
“데지데리움의 친구가 여기에 있어?”
달리아는 고개를 끄덕이며, 내 선반으로 다가갔다. 선반에 가까워지자 무기로 변한 데지데리움이 마치 라기아가 그랬듯 진동하며 반응하는 게 보였다. 달리아는 데지데리움을 금속 탐지기처럼 휘저으며 주변을 탐색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데지데리움이 강하게 반응하는 물건을 찾아낼 수 있었다.
“이거예요!”
달리아가 잡아든 건 팔찌였다. 팔찌를 보고 나는 흠칫 놀라서, 하마터면 달리아의 손에서 낚아채 빼앗을 뻔했다.
데지데리움이 반응하는 팔찌는, 내가 헬리오헬리안에게서 구한 마도구였다. 두 개가 한 쌍으로, 하나는 내 선반에 방치돼 있고 다른 하나는 아네모네의 팔에 수갑처럼 채워져 있다.
‘이건 착용자의 위치를 알 수 있는 마도구인데. 데지데리움이 이 팔찌에 반응했다는 건, 아네모네의 마력을 느꼈다는 소리겠지.’
데지데리움은 원작에서 아네모네가 다루는 용이었다. 타이머스 황태자가 아네모네에게 주는 사랑의 증표라고나 할까.
그 사실을 증명하기라도 하는 듯, 데지데리움은 달리아를 이용해 내 방까지 침입해 들어온 것이었다. 제 주인이 될 사람의 마력을 좇아서.
“친구의 힘을 느꼈다고 했어요! 그리움은 친구를 찾고 있느라 우리 집에서 얌전히 지내는 거예요. 아니었으면 와앙 다 잡아먹었을 거야.”
달리아가 팔찌와 데지데리움을 동시에 휘두르며 열심히 소리쳤다. 달리아의 말이 사실이라면, 데지데리움은 지금껏 일부러 얌전히 있었다는 얘기였다. 아네모네를 만나기 위해서 말이다.
‘그 멧돼지가 용을 손에 넣는다고?’
데지데리움이 아네모네의 큰 전력인 것은 사실이다. 아직 둘이 만날 때가 되지 않아 방심하고 있었는데, 넋 놓고 있다간 아네모네가 데지데리움을 얻고 더 파괴적인 괴물이 되어 돌아올지 모른다. 아네모네에게 우리 달리아는 한 입 거리일 게 분명하다.
아네모네가 더 강해지기 전에, 손을 써야겠어.
“달리아. 데지데리움에게 친구가 필요하다고 했지?”
“네!”
“우리 달리아가 데지데리움의 친구가 되어주는 건 어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