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 has become the older brother of the villainess RAW novel - Chapter 171
171화. 아무튼 악녀 등장 (1)
아네모네에게 붙잡힌 나는 사정없이 흔들렸다. 값비싼 소재의 잠옷이 거의 찢어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누더기 상태의 아네모네는 미친 사람처럼 보이기까지 했다.
녀석이 하는 말은 더 가관이었다.
“저 자식한테 다 오해라고 말해! 네가 준 팔찌가 사랑의 증표라고! 그렇지? 당장 그렇다고 말 안 해?”
멱살을 잡다 못해 거의 목을 조르는 수준이었다.
나는 아네모네의 얼굴을 손으로 밀쳤다.
“이 미친 꼬맹이가 뭐라고 지껄이는 거야! 코카!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설명해!”
무너진 창턱에 걸터앉은 용이 코카를 침대 위로 집어 던졌다. 엉겁결에 내 앞으로 굴러떨어진 코카가 있지도 않은 모자를 벗는 척하며 인사했다.
“돌아왔습니다.”
“돌아온 건 보면 알아! 이 미친 꼬맹이가 왜 내 멱살을 흔들고 있냐고 묻잖아!”
“미친 꼬맹이라니! 하하하! 역시 자기의 애칭은 좀 거칠어?”
아네모네가 나를 껴안는 척하면서 귓가에 속삭였다.
“너 나 죽이려고 했냐……?”
그러면서 동시에 은근슬쩍 마력을 동원해 내 등에 갖다 댔다. 응축된 마력은 위협적이었다. 식은땀을 흘리는 것조차 사치로 느껴졌다.
이대로 폭발하면 내 척추가, 아니 이 침실 자체가 날아간다.
“말 잘해.”
황당함과 억울함, 약간의 공포와 많은 분노가 몰아쳤지만, 아네모네의 바람 폭탄 앞에서는 객기를 부릴 수 없었다.
나는 살짝 떨리는 목소리로 코카에게 말했다.
“잘……. 잘 모셔 왔구나.”
“아!”
코카는 큰 깨달음을 얻었다는 듯 과장되게 반응했다.
“역시 두 분은 그런 사이셨군요!”
“그런 사이?”
서로 목 졸라 죽이고 싶은 사이를 말하는 건가?
내가 의아해하자 아네모네가 나를 덥석 껴안았다. 껴안았다고 해야 하는지 내 몸통까지 조르면서 압박했다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우리는 사랑하는 사이잖아? 그렇지?”
그렇다고 말해. 이어지는 속삭임은 사랑과는 전혀 거리가 멀었다. 언제부터 협박의 다른 말이 사랑이 된 거지?
“우리가?”
“그래, 우리가.”
나는 차마 긍정하고 싶지 않아서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코카의 표정이 미묘해지고, 침대 옆에 세워둔 라기아가 낄낄 웃기 시작하고, 아네모네의 안광이 더 이상 부담스러워질 수 없을 정도로 시퍼렇게 빛날 때.
간신히 다른 말을 찾아냈다.
“중요한 비밀을 나눈 사이기는 하지.”
“흠.”
“이 정도로 만족해 줄래? 은둔자의 땅에 사는 멧돼지도 너보다는 순할 거다…….”
나와 아네모네를 빤히 쳐다보던 코카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주인이 죽게 생겼는데 뭘 안도하고 있는 거야? 눈치 없는 자식!
“역시 죽이지 않고 모셔 오기를 잘했네요. 저 사람, 아니 아네모네 님이 말씀해주셨거든요. 사실 두 분은 사랑하는 사이고, 공작님께서 한순간의 잘못된 판단으로 공격하려고 하시는 거라고.”
“얘가? 그런 소리를 했어?”
노려보자 아네모네는 씨익 웃었다. 그 얼굴은 무척 예뻤으나 내면에는 둘도 없는 양아치가 숨어 있는 것이다.
“사실이잖아? 그렇지?”
그렇지 않다고 말하면 내 장기를 적출해 버릴 것 같은 모습이다.
나는 은행 강도에게 협박당하는데 폴리스 콜 버튼도 없어 괴로워하는 은행원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일부 사실이 섞여 있지.”
“완전히 인정하지는 않네? 하하하, 자기는 참 짓궂어, 하하하.”
“…너…….”
나는 코카가 알아주기를 바라며, 아네모네의 정곡을 찔렀다.
“이렇게 사랑하는 내 이름이 뭔지는 알아?”
“그…….”
아네모네의 말문이 막혔다.
“빨리 말해 봐. 진짜 사랑하는 사이라면, 내 이름 정도는 불러줄 수 있잖아? 안 그래? 응?”
“이 개자식이…….”
“아, 신분을 떠나 서로 이름을 부른다니 낭만적이에요……. 요즘 피핀 경이 빌려주는 책에도 이런 내용이 나오거든요……. 역시 그런 거구나…….”
코카는 뭔가 감격한 것처럼, 두 손을 모으고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다정한 커플의 사랑싸움을 보는 늙은이 같은 얼굴이었다.
정반대로, 아네모네의 얼굴은 하얗게 질려갔다.
“그…….”
당연한 일이다. 아네모네가 내 이름을 제대로 기억하고 있을 리가 없다. 이 성격에 다정하게 내 이름을 부른다고? 말도 안 되지.
아네모네는 당장의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코카를 속인 것뿐. 하잘것없는 밑천은 금방 드러날 것이다. 그걸 코카가 알아채 주기만 한다면……!
하지만 내 아네모네는 내 생각보다 더 강적이었다.
“자기도 참!”
아네모네는 내 등짝을 후려쳤다. 신음조차 뱉을 수 없을 정도로 강한 타격이었다.
설정상, 이 녀석 나보다 한참 어린 꼬맹이 아닌가? 손이 맵다는 말로는 표현할 수 없었다. 방금은 마력을 실은 것도 아닌데 이렇게 위력적이라고?
“자기가 자기지, 누구긴 누구야. 자꾸 그런 못된 질문 하면…….”
아네모네가 내 귓가에 속삭였다.
“진심으로 죽인다……. 나 혼자 죽지는 않을 거야…….”
마음이 담긴 말에 나는 크게 감동했다.
그래. 이 자식 진심이구나. 진짜 나랑 동귀어진이라도 하려고 하는 거구나.
“코카. 나가 봐. 일단 우리 둘이 할 얘기가 있으니까.”
아네모네가 턱짓으로 데지데리움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것도 치워.”
“저거라니…….”
일단은 네 사도인데…….
데지데리움이 내 부탁을 들어줄지는 모르겠으나, 나는 일단 정중히 요청했다.
“데지데리움. 가능하다면 내 창턱에서 내려와서, 원래 지내던 자리로 돌아갈 수 있을까? 아네모네와 결투할 수 있는 기회는 내가, 아아아아, 아야, 아파, 꼬집지 마, 아, 아무튼 마련해 볼 테니까. 어떻게든.”
[방해받은 것은 실로 못마땅한 일이지만, 인간에게는 인간의 사정이 있다는 것을 안다. 이번엔 특별히 이해해주도록 하지. 폭풍의 실력이 하찮다는 것을 알았으니, 나 또한 김이 샜다.]데지데리움은 몸을 뒤로 넘기는 것처럼 하더니 금세 자취를 감췄다.
“저 재수 없는 도마뱀 자식…….”
아네모네는 데지데리움이 사라진 쪽을 바라보며 나를 밀쳤다. 나는 무방비한 상태로 있다가, 곧장 라기아를 잡아들었다.
서로 마력을 담아 목을 겨눴다. 자기가 어쩌고저쩌고 잘만 거짓말을 하던 아네모네는, 지켜보는 사람이 없어지자마자 태도를 바꿨다.
“야, 도련님. 너 나 없앤다고 했다며? 이거 배신이다?”
“우리한테 배신을 운운할 의리가 있는 것 같냐?”
“넌 나처럼 예쁘고, 어리고, 순수한 여자아이를 죽일 생각이 들어? 양심이 있어, 너한테?”
“내가 묻고 싶은 말이야. 네가 예쁘고 뭐? 그게 양심이 있는 사람이 할 말이냐?”
“이 자식이 진짜 죽고 싶은 거구나. 내가 혼자 죽어줄 것 같아?”
아네모네가 내 멱살을 잡은 채 나를 깔아뭉갰다. 나는 최대한 반항하면서, 애당초 내가 반항한다는 게 말이 안 된다. 내가 훨씬 나이가 많을 것 같은데 이렇게 속수무책으로 당한다고? 폭풍의 마녀가 아니라 무력의 마녀 아니야? 뭐가 잘못됐다고 봐야 한다.
“크윽……. 나도 어쩔 수 없었어. 내 동생을 희생시키지 않으려면, 네가 당해야 한다고!”
“그런 게 어디 있어? 당하긴 뭘 당해!”
나와 아네모네는 서로의 멱살을 잡으며, 오붓하기는 개뿔 험악하기 짝이 없는 대화를 이어갔다.
“네가 초월자라는 건 알고 있지? 이쯤 되면 알았을 텐데? 데지데리움이 널 찾아간 것도 그것 때문이니까!”
“그래, 저 도마뱀도 그 소리를 하더라. 웃기는 그림을 몸에 붙이고, 내가 초월자니 폭풍이니 겉멋 든 소리만 잔뜩 지껄이던데. 그게 다 무슨 소리야?”
아네모네는 갑자기 제 나이대에 맞는 얼굴로 변했다. 표독스럽고 공격적인 표정에서, 살짝 두려움을 느끼는 어린아이의 얼굴이 비쳤다. 아네모네의 목을 조르던 내 손에 힘이 조금 풀렸다. 이 또한 저 녀석의 전략일지도 모르는데, 멍청한 나의 마음이 금방 약해진 것이다.
“꿈속에 자꾸 나오는 시커먼 괴물이 말해. 시간이 얼마 없다고. 세상을 다시 시작해야 한다고. 나를 사랑한다고 자신이 나의 어머니라고 하지만, 결국 원하는 건 나의 죽음이야. 내가 살아가는 세상의 죽음이라고.”
“…….”
“내가 꾸는 악몽이 현실과 닿아 있을 리가 없어. 이건 그냥 악몽이잖아! 그래야 하는 거라고!”
아네모네가 내 어깨를 두들겨 팼다. 얘는 손도 작은 게 무슨 망치 같다. 비쩍 말라서 그런가 뼈마디가 뾰족한 게 공격력이 장난 아니다. 고기 다지는 줄 알았다. 내 어깨뼈 부서진 거 아냐? 엑스레이 찍어봐야 하는데 이 세계에 엑스레이가 없네.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야. 너 말고도 초월자가 둘 있어. 네 어머니라고 주장하는 괴물은 내 동생의 뒤에도 도사리고 있고.”
“…….”
“내가 원하는 건 내 동생의 안전이야. 그 괴물은 원래도 세상을 멸망시킬 작정이었는데, 또 다른 초월자, 그러니까 너와 내 동생을 제외한 다른 놈이 맛이 가서 작전을 좀 앞당기기로 한 거지.”
“좀 더 자세히 말해 봐. 당장.”
나는 오늘 낮에 소이에게 당한 것처럼, 씨익 웃으며 말했다.
“엄청 비싼 정보인데 이거. 내가 집 한 채 값으로 산 귀한 정보거든.”
“아하, 그러셔.”
아네모네의 손에 순식간에 칼날이 쥐어졌다. 바람을 이용해 만들었는데도 확실한 실체를 가지고 있는 칼날이 내 목을 향했다.
정보를 들어야만 하는 아네모네는 나를 죽일 수 없다.
그 사실을 알아서 그런가, 나는 삼류 악당처럼 킬킬 웃음만 나왔다.
“그 귀한 정보, 나도 좀 사자. 네 목숨값으로. 어때?”
“목숨값만으로는 부족한데.”
“돈도 많은 새끼가 욕심이 과하네.”
“조건을 하나만 더 걸자. 내 동생을 지켜줘. 네 목숨을 걸고. 내 동생을 지켜주는 동안은 다른 하인들처럼 대우해주겠어. 따뜻한 잠자리에 배부른 식사를 주고, 깨끗한 옷을 입을 수 있게 해주겠다고.”
“…….”
“부랑자들 사이에서 도적질하는 것보다 훨씬 낫지 않겠냐? 네 말대로 네가 어리고 어쩌고 한 아이라면.”
아네모네의 칼날이 살짝 기울어졌다. 분위기가 점점 더 심상찮게 흘러간다고 느꼈는지, 라기아가 흉흉한 기운을 풍겼다.
라기아가 울퉁불퉁 모습을 변화시킬 때, 아네모네가 라기아를 잡고 있는 내 손목을 확 붙잡았다.
“거래, 하자고. 너한테 유리한 거래인데, 내가 특별히 해주는 거야. 우리 자기니까.”
“이야……. 영광이다. 내 이름도 모르는 사람한테 자기 소리도 듣고.”
“그러니까 말해.”
아네모네는 조금 다급한 목소리로 물었다.
“초월자는, 어떻게 해야 운명에서 도망칠 수 있지?”
***
“그런 의미에서, 오늘부터 우리와 한 식구가 된 아네모네를 소개한다.”
본래 알라타에게 거둬졌어야 하는 아네모네를, 내가 거뒀다. 거뒀다고 할지, 협박당해서 어쩔 수 없이 집에 들였다고 할지.
“앞으로 잘 부탁드려요. 앞으로 달리아 글러토니 아가씨를 보좌하게 된 아네모네입니다. 글러토니 공작가와 함께하게 되다니 크나큰 영광이 아닐 수 없네요.”
공작가의 메이드 의복을 입은 아네모네가 좌중을 향해 정중하게 인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