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 has become the older brother of the villainess RAW novel - Chapter 172
172화. 아무튼 악녀 등장 (2)
좌중이라고 해 봤자, 그 나물에 그 밥이다. 맨날 나와 어울리는 바보들 말이다. 더하기 우리 귀여운 달리아.
그런데 저 녀석, 이렇게 멀쩡한 척도 할 수 있었구나…….
하긴 그러니까 원작에서 그렇게 여러 사람을 홀릴 수 있었겠지. 사기꾼. 영혼부터 사기꾼인 것이다.
그 사기에 된통 당한 코카가 입을 열었다.
“두 분은 보통 사이가 아니에요.”
코카의 자신만만한 목소리에 녀석들의 시선이 한데 모였다.
“저분은, 그러니까…….”
나와 아네모네의 표정이 험악한 걸 봤기 때문일까. 코카는 말을 사렸다.
“엄청 중요한 사이죠.”
그때 달리아가 물었다.
“남매처럼?”
“음…….”
코카는 말을 한참 고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만큼 중요한 사이일 것도 같아요.”
그 순간 달리아의 입이 떡 벌어졌다.
“풉…….”
그런 달리아를 보며 아네모네가 웃음을 터뜨렸다. 금방 갈무리했지만, 달리아에게 그 비웃음은 들리고야 말았다.
“웃었어……. 나를 보고 웃었셔!”
달리아는 격분했는데, 주변 사람들의 표정은 모두 기괴해졌다. 달리아는 어제 앞니가 빠졌다. 발음이 새기 시작했고, 본인 스스로도 앞니를 의식하느라 혓바닥을 낼름거렸다.
일단 보기에 웃겼다. 앞니 빠진 공작 영애가 진지하게 항의하는 모습은 쉽게 구경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아네모네에게 공감하고 싶지는 않지만, 웃을 만했다. 나 또한 웃음을 참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달, 달리아, 크흡. 널 보고 웃은 게 아니야. 그냥 웃음이 많아, 얘가.”
“오라버니!”
달리아가 미간을 찌푸리며 화났다는 티를 냈다. 제 딴에는 무서운 표정을 지었겠지만, 앞니가 빠진 이상 위엄 따위 찾아볼 수 없다.
단호하고 새침하게 팔짱을 끼고 있으나 팔이 짧아서 자세가 어색하다. 저 자세는 내가 피핀과 엔비를 혼낼 때 옆에서 종종 따라 하는 것 같더니, 이제는 무슨 말만 하면 저렇게 행동한다.
자신이 본 것을 바로바로 따라 하는 게 앵무새, 그것도 아주 작은 앵무새 같아서 귀엽고 또 웃겼다.
“달리아 아가씨. 오해하지 마세요. 저는 아가씨를 모시기 위해 왔습니다.”
그 와중에 아네모네는 입에 침도 바르지 않고 거짓말을 한다.
“나를 위해서 왔다고? 그런데 왜 오라버니 옆에 서 있는 거지?”
“그건……. 공작님이 저를 소개하는 자리니까요……. 제가 갑자기 뒤에서 툭 튀어나올 수는 없잖아요.”
“옷도! 그 옷은 우리 공작성에서 사는 사람만 입는 건데!”
“당분간, 공작님의 뜻으로 여기서 지내게 되었답니다.”
이때, 아네모네가 나를 돌아보며 ‘으득’ 이를 가는 모습이 보였다. 별것 아닌 행동인데도 꽤 무서웠다. 저 녀석이 보기와는 다른 무투파 마법사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슬금슬금 다가온 피핀이 쑥덕거렸다.
“사정이 아무리 딱하다고는 해도, 너무 갑자기 주워 오신 거 아니에요?”
나는 녀석들에게 아네모네의 가정사가 불행해서 어쩔 수 없이 우리와 함께 생활해야 한다고 언급하기는 했다.
“그…….”
내가 생각해도 터무니없는 변명이었다.
공작성이 무슨 빈민구호소도 아니고, 불쌍하다고 아무나 데려온단 말인가. 그것도 왜 하필 아네모네를 데려왔는데? 아네모네가 유달리 불쌍해서?
칭찬을 하려는 게 아니라, 저 매끈한 얼굴을 보고 있자면 고생 따위 하나 모르고 자라온 귀족 영애처럼 보였다. 행동거지가 약간 양아치 같아서 그렇지. 입만 다물고 꼭두각시 인형처럼 서 있으면 멀쩡하다고.
그런 아네모네를 무슨 이유로 주워 왔는데?
한국이었다면 아네모네는 초등학생이었다. 그런 아네모네에게 중학생 나이쯤 되는 시에라가 사랑에 빠졌다는 것도 순진하고 웃긴 설명이다.
뭐라 말을 못 하고 머뭇거리고 있는데, 적절한 대답은 내가 아니라 코카에게서 나왔다.
“피핀 경. 그렇게 치면, 우리도 공작님이 불쌍해서 거둬주시지 않았습니까.”
“어……. 그것도 그렇네.”
피핀은 코카의 말에 너무나도 쉽게 수긍했다.
“하긴……. 나으리는 맘이 너무 여려서 탈이에요. 그러다 사기라도 당하면 어쩌시려고요.”
“그러게…….”
이미 당했어, 사기. 저기 웃으면서 달리아에게 손을 뻗는 여자애가 나를 사기쳐 먹으려 하고 있다고.
차마 저런 꼬맹이와 드잡이를 하다가 내가 반쯤 패배했다는 고백은 할 수 없었다. 그냥 정이 많아서 바보 같은 선택을 하는 공작인 척하자. 이쪽이 훨씬 나은 것 같다.
“그래. 사정이 이렇게 되었으니까, 다들 아네모네와 싸우지 말고 잘 지내.”
싸웠다간 우리가 질지도 몰라.
아네모네는 어린 달리아에게는 악의가 없는지, 빙긋 웃었다.
‘오히려 잘된 일인지도 몰라. 달리아가 요즘 언니가 갖고 싶다고 노래를 불렀잖아.’
스위트피와 소이가 돌아갈 때, 달리아는 마차로 향하는 그들의 뒷모습을 아주 빤히, 노골적으로 오랫동안 쳐다봤다.
그들을 태운 마차가 저만치 달려가 점처럼 변할 때까지, 달리아는 창턱에 매달려 계속해서 바라보고 또 바라봤다.
심지어는 나를 돌아보고 그 조그만 입으로 한숨도 쉬었다. 아무래도 내가 ’언니‘가 아니라는 사실이 못마땅한 듯했다.
이제 와서 오라버니를 언니로 바꿀 수도 없는 노릇이고, 새로 언니를 어디서 주워올 수도 없다. 달리아는 스위트피를 부러워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앞니는 그때 빠졌다.
입술을 부루퉁히 내밀던 달리아가, “좋겠다.” 하고 내뱉는 순간.
나는 그때 와하하하 크게 웃어젖혔다가, 달리아한테 백 번쯤 꼬집혔다. 다섯 살이라고 무시하면 안 된다. 얼마나 야무진지 팔에는 멍도 들었다. 그래도 웃음을 참을 순 없었지만.
“자, 달리아. 앞으로 아네모네가 너랑 놀아줄 거야. 좋지?”
아네모네는 달리아의 환심을 사기 위해서인지, 있지도 않은 우리의 친분을 과시하며 내 쪽에 바짝 붙었다.
“공작님께 얘기 많이 들었답니다. 달리아 아가씨가 그렇게 영특하고, 귀여우시다고요. 앞으로 잘 부탁드려요, 아가씨.”
“…….”
“공작님도. 잘 부탁드립니다. 우리가 아까 한 얘기는 다 기억하고 계시겠죠?”
“……기억하고 있지. 나한테도 중요한 일이니까.”
나와 아네모네는 멱살잡이를 하다가 휴전협정을 맺었다.
소이에게 들은 이야기를 아네모네에게 전달해주며, 우리 둘 다 원하는 게 같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우리의 목적은 하나.
초월자가 운명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을 알아내는 것이다.
아네모네는 자기 자신을 지키고 싶어 했고, 나는 달리아가 위험에 처하게 둘 수 없었다. 세계를 멸망시키기 위해 초월자를 만들었다고?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심연의 악마는 일종의 어머니 역할인 듯한데, 자식은 원래 뜻하는 대로 자라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아야 할 때가 온 것이다. 내가 이 세계에 끼어든 것이 심연의 악마 짓인지 아니면 다른 누군가의 짓인지는 몰라도, 달리아를 구하기 위해 왔다는 건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우리 달리아를 심연의 불효자로 키워내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죽는 것보다 더 심한 꼴을 당할지도 몰라…….’
나는 아직도 테네리페가 울었다는 이야기가 머리에서 맴돌았다. 믿기지 않는 소식이었다. 연기는 아니었겠지?
오로반체의 성에서 시체를 모으던 테네리페의 모습도 떠올랐다.
남들이 멋대로 시체포식자라고 부르는, 자신의 가족을 위해 살인을 마다하지 않던 그 모습이.
놀라고 있기만 할 수는 없었다. 나도 언제든 테네리페 꼴이 될 수 있었다.
시체포식자가 망가졌다는 뜻은, 달리아나 아네모네도 까딱하다가는 망가져 인간이 아니게 될지도 모른다는 뜻이었다.
그런 일은 일어나서는 안 된다. 아네모네야 어떻게 되든 그저 ‘안타깝네요’, 하고 넘어갈 수 있는 문제였지만 달리아는 다르다. 달리아는 아직 오 년밖에 못 살아봤고, 누릴 것도 놀 것도 많았다.
달리아만큼 미래가 창창한 꼬맹이는 이 세계에 또 없을 거라고.
그러니 나와 아네모네는 시체포식자를 찾아서, 일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파악하고 가급적 심연의 악마를 말리는 방법을 찾기로 했다.
아네모네는 심연의 악마와 싸우는 것도 불사하겠다는 태도였다. 나는 심연의 악마가 나타나면 달리아를 데리고 세상 끝이든 어디든 도망칠 심산이었다.
이름부터 ‘심연의 악마’인데 괜히 덤벼서 피 보고 싶지 않다. 호전적인 아네모네를 방패막이 삼아 달리아는 안전한 온실에서 따뜻한 밥이나 먹이고, 부드러운 침대에서 쿨쿨 재우면 족하다. 아네모네가 아무리 양심 없는 양아치라 할지라도, 이렇게 귀여운 달리아더러 함께 싸우자고 하지는 않겠지.
나는 달리아에게 퍽 다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달리아. 앞으로 위험한 일이 생기면 엔비와 아네모네가 널 지켜줄 거야. 아네모네에게 뭐든지 부탁하렴. 다 들어줄 테니까. 그렇지?”
“아, 그렇게 나오신다……. 못할 것 없지. 다섯 살 공녀님이 바라는 게 뭐 얼마나 대단하겠어.”
아네모네는 내 앞에서는 미간을 찌푸리며 깡패 같은 표정을 짓다가도, 달리아 앞에서는 순진한 메이드인 척했다.
폭풍의 마녀가 아니라 표정의 마녀 아냐?
원작의 아네모네가 왜 그런 모습으로 묘사됐는지 알 것도 같았다. 그건 다 연기였을 것이다.
저 표정의 마녀는 속으로 ‘아, 남주인공들 다 재수 없다’라고 생각하면서도 겉으로는 ‘우리 함께 시련을 헤쳐 나가요’ 하고 말했겠지.
“나는……. 나는…….”
달리아가 갑자기 바닥을 두리번거리기 시작했다.
“달리아? 왜 그래?”
“이이익……!”
한참 두리번거리던 달리아의 눈에 들어온 건, 어째서인지 잔디였다. 달리아는 잔디를 움켜쥐더니 우리에게 팍 던졌다.
“달리아! 그럼 못 써! 손이 더러워지잖아. 공작 영애는 흙을 만지는 게 아니라고 몇 번을 말하니.”
내가 잔소리를 하자 아네모네가 어이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야……. 잔소리의 방향이 잘못됐어…….”
낯선 메이드 앞에서 품위 따위 내던져버린 달리아가 아예 쪼그려 앉아서 우리에게 잔디를 집어던지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내가 달리아에게 그런 말을 했었지. 손을 다치니까 돌은 던지지 말라고…….
다른 사람은 몰라도 오라버니한테는 뭔가 던지면 안 된다는 것까지 가르쳐야 했는데, 그걸 빼먹었다. 달리아가 이렇게 삐칠 줄은 모르고.
“달리아, 왜 그래?”
내가 달리아를 말리기도 전에, 달리아의 움직임이 멈췄다. 아네모네가 거칠지 않은 바람으로 달리아의 손목을 붙든 것이다.
“아가씨. 사람한테 물건을 던지면 안 됩니다. 예의에 어긋나는 짓이에요.”
그렇게 말하는 아네모네는 직접 상대의 목을 조른다.
“나는 이 결혼 반대야!”
달리아의 고함에 우리 모두 놀랐다.
“저게 무슨 소리야?”
달리아의 심술은 대단한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달리아,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거니? 왜 그런 끔찍한 말을 해. 오라버니 섬뜩하게.”
“오라버니 미워! 나 말고 다른 동생 생긴다고 말 안 했잖아!”
달리아는 이제 울기 시작했다. 뭐가 억울한 건지 알 수 없다. 억울하기는 내가 더 억울하다.
나랑 아네모네가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