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 has become the older brother of the villainess RAW novel - Chapter 173
173화. 아무튼 악녀 등장 (3)
남주인공들의 몰살 엔딩을 바랐더니, 남주인공 중 하나인 내 인생도 멸망의 위기에 놓였다.
“이제 오라버니는 아네모네한테 가는 거지! 엉엉엉……. 맨날 아네모네랑 놀 거지……. 새 여동생 생긴 거지……!”
달리아는 서럽게 울었다. 달리아가 이렇게 목 놓아 우는 걸 본 적이 또 있었나. 처음이었다.
당황한 나는 평소처럼 달리아를 달래보려고 노력했다.
“울지 말자! 착하지? 아무것도 달라진 거 없어!”
“저리 가! 미워!”
“달리아. 결혼도 아니고, 아네모네가 내 동생이 되는 것도 아니야. 진정해. 코코아 마실까? 코코아?”
“싫어!”
효과는 없었다. 달리아는 아네모네의 마법에 붙들린 채로, 치와와처럼 이를 드러냈다.
작지만, 충분히 무섭다.
“왜 그렇게 화가 났어. 오해하고 있는 거야. 오늘은 그림책 읽으면서 늦게 잘까?”
“몰라! 미워! 다 밉다고!”
분노 스위치가 올라간 달리아는 누구의 말도 듣지 않았다. 내가 달래러 다가가니 화난 고양이처럼 발버둥 치며 저항했다.
피핀은 모르는 척 고개를 돌렸고, 코카 쟤는 무조건 달리아 편이었다.
내 편은 진짜 없었다. 달리아가 하는 일이라면 뭐든지 상관없는 엔비는 콧구멍이나 후비적거리고 있었다.
결국 아네모네가 달리아를 제압했다.
“아가씨, 완전 고집쟁이네. 쪼그만 게 다람쥐 같으면서……. 참. 다람쥐는 앞니가 있지.”
“이이이이익!”
“이리 오세요.”
아네모네는 달리아를 품에 꽉 끌어안고 들어 올렸다. 어째서인지 능숙한 모습이었다.
“어떻게 그렇게 잘…….”
“제압했냐고?”
“응…….”
“나한테는 쉬운 일이지. 내가 살던 동네에는 많거든. 성질 나쁜 꼬맹이. 이렇게 귀한 꼬맹이는 처음이지만.”
아네모네의 품에 꽉 안겨버린 달리아는 재판장에서 억울함을 호소하는 사람처럼 보였다. 펄떡거리는 모습은 방금 잡힌 활어와도 비슷했다.
“나는 싫어! 오라버니는 내 거야! 아네모네랑 남매 하지 마! 오라버니는 나랑 남매란 말이야!”
앞니 빠진 다섯 살이 표독스럽게 소리쳤다.
“네, 네. 그러세요. 다음 일정이 뭐였더라? 양치하게 하고……. 가정교사가 오기 전까지 글을 예습하는 거였지?”
“이이이익! 이거 놔! 놔! 미워!”
달리아가 할 줄 아는 말 중 가장 나쁜 것이 ‘밉다’는 말이었다. 달리아는 있는 힘껏, 자신이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열심히 증오를 표출했다.
하지만 무덤덤한 아네모네 앞에서는 그저 왈왈거리는 강아지에 불과했다.
“나……! 나……!”
달리아가 온몸의 힘을 끌어모으며 소리쳤다.
“나 화났어!”
미운 다섯 살, 악녀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화났다고! 다 미워!”
마치 ‘두고 보자’고 외치는 악당처럼…….
달리아는 우리를 하나하나 노려봤다. 이 순간을 똑똑히 기억해 두겠다는 듯이.
“아가씨가 진짜 화가 많이 나셨나 본데요…….”
피핀이 뒤늦게 중얼거렸다.
“그래봤자 다섯 살이야. 화를 내면 얼마나 내겠어. 내일이면 잊어버리고 놀겠지.”
그러나 내 예상과 다르게, 달리아는 오늘의 분노를 뼛속까지 새겼다.
아네모네를 만난 순간을 기점으로 달리아는 악행을 일삼기 시작했다. 조금 소소하고 하찮은 악행을…….
***
“아가씨. 당근만 남기셨네요.”
“흥.”
실랑이는 아침 식탁에서부터 시작했다. 평소 칭찬받기 좋아하는 달리아는, 싫어하는 채소를 과장되게 잘 먹는 연기를 하고는 했다. 일종의 놀이 비슷한 건데, 달리아가 괴로워하면서도 채소를 다 먹으면 주변 사람들이 모두 박수를 치며 기뻐해 준다.
심지어 그 무뚝뚝한 알베르토마저 아가씨가 참으로 기특하다며 감탄을 아끼지 않는다.
당근을 비롯한 채소를 먹는 일은 달리아에게 꽤 중요한 업무였던 모양이다. 달리아는 ‘편식하지 않기’라는 다섯 살의 임무에 파업을 선언했다.
“안 먹어.”
“흐음…….”
뮤리엘이 뒤에서 달리아를 혼낼지 말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나도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 중이었다.
겨우 당근 가지고 잔소리를 하는 것도 웃기지만, 당근을 시작으로 다른 음식도 거부한다면…….
‘이런 건 단단히 혼을 내야 하는 걸까…….’
나와 뮤리엘이 시선을 교환했다. 넘어가 주지 말자는 뜻이었다. 우리의 눈치를 살피던 단델이 먼저 나섰다.
단델은 달리아와 눈높이를 맞추고, 괜히 비뚤어진 마음을 돌리려 애썼다.
“맛있는 요리인데! 평소에는 잘 드셨잖아요. 오늘은 기분이 안 좋으세요? 하지만 드시는 게 좋아요.”
“싫어.”
“아가씨……. 나중에 아름다운 어른이 되려면 당근을 드셔야 한답니다. 키도 커요.”
“흥. 난 이미 예쁘니까 괜찮아.”
달리아의 말에 순간 웃음이 터졌다. 그 순간 뮤리엘과 알베르토의 날카로운 시선이 내게 꽂혔다. 매서운 눈동자가 내게 경고하는 듯했다. 지금 부드러운 분위기를 만들면 안 된다고.
“흠흠. 역시 안 되겠군요. 달리아, 아가씨……!”
뮤리엘이 카리스마 있게 나서기 직전, 아네모네가 달리아의 접시를 들어 올렸다.
“먹기 싫으면 먹지 마. 아니, 드시지 마세요.”
나는 똑똑히 봤다. 달리아가 크게 당황하는 걸.
우리가 모두 매달려 자신에게 애걸하기를 바랐는데, 아네모네가 너무 덤덤히 접시를 치워버린 것이다.
“어, 어?”
아네모네는 오히려 달리아의 편을 들었다.
“당근 정도 안 먹는다고 안 죽어요. 다들 엄살이 왜 이렇게 심해? 앞으로 요리에는 당근을 다 빼라고 전달할게요. 그러면 되잖아요.”
“어…….”
달리아의 입이 괜히 벌어졌다. 앞니가 빈자리가 유난히 공허해 보인다.
“아니 근데…….”
달리아가 괜히 중얼거렸다. 달리아의 편을 들어주려는 듯하던 아네모네는, 은근슬쩍 말을 돌렸다.
“앞으로 평생 드시지 마세요. 당근은 우리끼리만 먹어야겠다. 아가씨는 안 먹어도 돼요.”
“어어……?”
아네모네는 덤덤히 말하며 접시를 치워버렸다. 이어 달리아의 약을 살살 올리기 시작했다.
“저는 당근 좋아하는데. 오늘 당근 먹고 공작님한테 칭찬받아야겠다.”
나랑 친하지도 않으면서 저런 말을 내뱉는 게 대단하다면 대단하다.
접시를 든 아네모네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주방으로 향했다. 뮤리엘이 그런 아네모네를 눈으로 좇으며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달리아도 식탁에 앉은 채 아네모네의 뒷모습을 하염없이 바라봤다.
어디로 보나 ‘이게 아닌데…….’ 하는 표정이었다.
알베르토도 아네모네의 대처가 마음에 들었던 모양이다. 조용히 다가와 이렇게 속삭인 걸 보면.
“꽤 영특한 하인을 구해오셨군요.”
“뭐…….”
“달리아 아가씨가 심술이 나신 모양인데, 저 아이더러 한번 모셔보라고 하지요.”
“아네모네한테 맡기겠다고?”
“뮤리엘도 이제 늙었습니다. 그리고 달리아 아가씨 앞에서는 마음이 너무 약해요. 공작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지나친 사랑은 오히려 독입니다.”
알베르토의 말에 뜨끔해져서는 어깨가 움찔했다.
“하지만 달리아는 뭐든 할 수 있게 해주고 싶어. 공작 영애잖아? 하고 싶은 것, 갖고 싶은 것 모두 누릴 수 있어야 한다고.”
“그러는 공작님은요?”
“응?”
알베르토가 나를 빤히 쳐다봤다. 주름진 눈매가 은근히 매서웠다. 잿빛의 눈동자는 나의 내면을 읽어내려는 듯 집요한 면이 있어서, 괜히 시선을 피하고 싶어졌다.
“공작님이 갖고 싶으신 건 뭐지요?”
“…….”
“항상 신경이 쓰였습니다만……. 언급하기 죄송할 따름입니다. 공작 부인께서 돌아가신 이후, 공작님께서 요청해서 구입한 사치품이 없습니다. 이전에는 종종 친구분들과 만나기 위해 의복이든 브로치든 구입하셨으면서…….”
전혀 예상하지 못한 말이었다. 사치품?
생각해 보면, 내가 쓸데없이 갖고 싶어 한 물건은 딱히 없었다. 예전에도 그랬고, 이 세계에 와서도 그랬다.
아, 딱 하나 제외하고.
“대신 비싼 거 하나 샀잖아. 파란 조약돌.”
내 마력으로 봉인한 뒤, 피핀의 작업실에 숨겨둔 미미 모르포팔의 핵. 소이에게서 그 돌과 정보를 사는 대가로 얼마나 큰 돈을 지불했던가. 알베르토가 보기에는 분명 말도 안 되는 소비였을 것이다.
그런데 의외로 알베르토는 그 터무니없는 돈 낭비를 금방 납득했다.
“그 또한 이유가 있으셨겠죠. 안 그래도 피핀에게 캐물어 봤습니다. 공작님께서 허튼 데 돈을 쓰는 분이 아니시라는 걸 아니까요. 피핀에게서 정확한 대답을 들을 수는 없었습니다만…….”
알베르토는 수염을 움찔거리며 고개를 저었다.
“워낙에 말주변이 없는 녀석이라 그러려니 합니다. 공작님께서 말씀해 주지 않으시는 이유도 있으실 테고요. 마력과 관련된 물건이겠죠.”
“…….”
예리한 통찰이었다. 역시 집사장 하루 이틀 해 본 눈치가 아닌데?
“그러니 오늘은 우리 공작님도 숙제를 하셔야겠습니다.”
“무슨 소리야? 숙제?”
“예. 오랜만에 하는 숙제라니 반갑지요?”
“전혀?”
알베르토는 하인들을 불러 식탁을 정리하며, 가만히 생각하다가 툭, 대수롭지 않게 내뱉었다.
“쓸데없이 갖고 싶은 물건, 다섯 가지를 적어오세요.”
“내가 왜 그런 숙제를 해야 하는데? 아무거나 사면 되잖아. 뭐, 사치품이면……. 향수? 액세서리?”
“안 됩니다. 진심을 담아 숙제에 임하세요.”
“내가 왜?”
팔짱을 끼고 알베르토를 노려봤다. 알베르토는 눈썹을 들어 올리더니, 저편을 눈짓했다.
알베르토가 바라보는 곳을 보니, 나와 똑같은 자세로 앉아 뮤리엘을 노려보는 달리아가 보였다.
나 지금 다섯 살이랑 비교당한 거야……?
“사치할 줄 아는 사람이 사치하는 법을 가르칠 수 있는 겁니다. 제가 예전에는 공작님의 가정교사도 겸했지요. 오늘 다시 한번 선생 노릇을 해봐야겠군요.”
“…….”
“저는 이만 바빠서. 공작님이 농땡이를 부리며 피한 일감이 수두룩하거든요. 그건 다 나이 든 제가 처리하고 있지요. 어휴. 힘들어라.”
알베르토는 코웃음을 치면서 자리를 떴다.
“어이없어.”
그까짓 숙제, 못할 줄 알아? 10분이면 다 한다.
***
“아……. 생각나는 게 없어…….”
알베르토의 숙제는 생각보다 까다로웠다.
사치품으로 생각나는 것들을 다섯 가지 적어 가자, 알베르토는 죄다 퇴짜를 놓았다.
“제대로 고민하지 않으셨지요? 향수면 어떤 향수 말씀이십니까? 구체적으로요. 브로치는 어떤 브로치가 갖고 싶으시죠? 언제 사용하고 싶으신데요? 간식도 그렇습니다. 종류가 없지 않습니까. 세상에 간식이 얼마나 많은데요.”
아무거나 대충 적어가면 알베르토의 잔소리만 듣다가 쫓겨난다. 숙제를 핑계로 집무실에 갇힌 나는 머리를 싸매며 고민했다.
“나는 어떤 물건을 쓸데없이 갖고 싶어 해야 하는 거지……? 어쩌다 내가 이런 고민을 하게 된 거야……?”
책상에 머리를 박고 한숨을 내쉬었다. 피핀이 슬금슬금 다가와 나를 불렀다.
“저기 나으리…….”
“왜. 좀 떠오르는 사치품이 있어? 이유도 중요해……. 사치 좀 부려 봐. 내가 너희더러 언제 검소하라고 했어. 겸손하지 말고 검소하지 말자. 우리 가훈이야. 방금 내가 정했어.”
“그런 게 아니라요…….”
피핀은 머뭇거리더니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달리아 아가씨께서 장난감 상자를 엎으신 다음, 계속 쳐다봐 달라고 눈치를 주십니다.”
아, 달리아의 작은 반항기가 아직 끝나지 않았구나.
“그런데 정말……. 하찮은 반항이다…….”
기껏 하는 못된 짓이 장난감 상자 엎는 거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