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 has become the older brother of the villainess RAW novel - Chapter 183
183화. 불청객이라고 무작정 내쫓을 순 없잖아 (2)
시체포식자가 나타날 다음 장소는 화산의 신전. 성수 레후아가 지키고 있는 곳이 유력했다.
“하긴. 지금껏 성전이 침략당한 걸 생각하면…….”
테네리페는 마지막 성전을 부수기 위해 반드시 나타날 것이다.
테네리페의 빈틈을 노려 시체포식자를 잡으면 된다는 간단한 원리. 말이 쉽지 실제로는 불가능에 가까운 도전이었다.
테네리페의 빈틈을 노린다? 여기서부터 말이 안 되기 시작한다.
하지만 도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만일 테네리페가 자기 계획을 완수하지 못한다면, 다음 초월자를 없애는 방향으로 갈 거야. 그게 아네모네가 될지, 우리 달리아가 될지는 모르는 일.’
그렇게 둘 수는 없다.
좋은 정보를 알려준 블렛 자매는 융숭히 대접해 돌려보냈다. 피핀이 만든 마수 가죽 장신구도 선물로 줬다. 자매가 준 정보가 감사하기 때문만은 아니고, 눈속임이 필요해서 그랬다.
저녁 늦은 시간 전직 성녀 자매를 불러들인 공작이라니. 사교계에서 이상한 소문이 돌 수도 있는 일이었다. 염문이면 그나마 다행이다. 내가 타이머스 황태자를 두고 역모라도 꾸민다는 말이 돌면…….
내가 선물을 준 핑계는 ‘달리아가 저지른 실례를 사과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물론 우리 달리아는 별 잘못을 하지 않았다. 그저 완벽한 핑계였을 뿐이다. 달리아가 실례를 저질렀으니 사과할 것이고, 이 내용은 발설하지 말아달라.
이런 부탁은 사교계의 요란한 소문에서 자유로울 듯하지 않은가. 달리아의 정체를 아는 우리야, 달리아가 혹 잘못한다면 세상이 뒤집힐 정도라는 걸 알지만 다른 사람은 아니다. 기껏해야 달리아가 블렛 자매를 꼬집었겠구나 하는 소문이나 돌겠지.
아무것도 모르는 다섯 살짜리에게 누명을 씌우는 악한 오라버니는, 만족스럽게 발걸음을 돌렸다.
늦은 밤이었지만 아직 모두 잠들었을 시간은 아니었다.
“알베르토.”
오늘의 집안일을 마감하려는 알베르토를 붙잡았다. 알베르토는 온화한 얼굴로 나를 맞이했다.
“무슨 일이십니까? 오늘 퍽 고생하신 듯한데……. 갑작스럽게 손님을 불러와야 하는 상황은 언제든 힘든 일이지요.”
“한 가지 더 할 일이 있어. 내일 아침 일찍 황태자를 알현하겠다는 메시지를 보내.”
“급한 일이신가요?”
“빠르면 빠를수록 좋지.”
“알겠습니다.”
충직한 노인은 내게 꾸벅 인사한 뒤 물러갔다.
‘오랜만에 타이머스 황태자를 보겠는걸.’
빈손으로 갈 수는 없으니 이번에도 피핀의 보물창고가 털릴 것이다. 불쌍한 피핀. 하지만 타이머스가 나의 부탁을 들어준다면, 더 대단한 이득을 볼 수 있을 테니 참을 만하겠지.
***
“안 돼.”
타이머스 황태자는 나를 쳐다보지도 않고 말했다.
“전하. 한 번만 고려를…….”
“안 돼.”
“그것 말고 다른 표현은 없습니까? 좀 더 고려해 보겠다, 신중히 생각해보겠다는 말이라든가…….”
식은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타이머스 앞에 섰다. 타이머스는 단호하게 고개를 내저었다.
“용의 허리로는 보낼 수 없어.”
“관광 차원에서 떠나는 겁니다.”
“도대체 어떤 머저리가 화산으로 관광을 떠나지? 글러토니 영지에 있는 관광 자원은 화산보다 못한가?”
“…….”
박치기라도 한 번 해버릴까 하다가, 가까스로 진정했다.
용의 허리라고 불리는 화산 지역은 중립국이라고 할 수 있었다. 인간들이 지배하는 노아마즈 제국의 손길이 미치지 않는, 환상적인 생물들의 나라.
은둔자의 땅과 인간들의 땅 그 어디에도 섞이지 못한 존재들이 악착같이 살아가는 곳이 바로 용의 허리였다.
그곳은 따로 지배자가 있지는 않다지만, 나름대로 왕족 같은 용이 도사리고 있기는 했다. 몇백 년이나 묵은 이무기인지는 모르겠으나, 영리하고 능글맞은 존재라는 건 확실하다.
그리고 그놈이 바로 이 세계관의 마지막 남주인공. 라스 마그타로스였다.
타이머스와의 관계는? 글쎄. 지금으로 봤을 땐 호의적인 것 같지 않군.
“복잡한 서류 절차 때문이라면 충분히 기다릴 수 있습니다.”
거짓말이다. 기다리기는 개뿔. 담당자를 족쳐서라도 당장 날아갈 것이다.
언제 시체포식자가 나타날지 모르는데, 느긋하게 기다리고만 있을 순 없지.
“그런 게 아냐.”
타이머스는 줄곧 나를 무시한 채 다른 업무를 처리하다가, 못 이기는 척 자리에서 일어났다.
“시에라.”
“예. 전하. 관광이라는 이유가 마음에 들지 않으신다면, 정찰은 어떻습니까? 사실 저는 명분이야 어떻든 상관없거든요. 제가 단출히 여정을 꾸릴 수 있도록 허가만 해주시면 됩니다. 소란은 피우지 않을 테니까요.”
“그렇게까지 용의 허리에 가야 하는 이유가 뭐야?”
타이머스는 이제야 내 이야기를 들어줄 것처럼 굴었다.
어디서부터 말을 해줄 수 있을까…….
나는 타이머스를 구슬릴 수 있는 방법을 잘 알지 못했다. 그런 방법을 아는 사람은 세상에 아무도 없을 것이다.
저 철판 같은 정신머리의 소유자를 제 입맛대로 다룰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으리라고, 하지만 자극할 수는 있겠다고 생각했다.
“역시 전하 앞에서는 이것저것 숨겨봤자 의미가 없겠죠.”
나는 괜히 분위기를 잡으며 심란한 척했다. 타이머스의 날카로운 시선 앞에서도 기죽지 않고 연기를 계속했다.
“그곳에 허가받지 않은 사령술사가 나타났다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
역시나 타이머스는 이 화제에 반응했다.
“사령술사?”
“러스트 가문의 잔당을 발견했다는 보고입니다…….”
“그 말을 어떻게 믿지?”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부랑자들이 낸 뜬소문이거든요. 하지만 제 밥벌이에 정신없는 부랑자들이, 이런 일로 소문을 내어 즐기다니 이상한 일이 아닙니까.”
“…….”
“사람을 보내 확인하면 일이 커질 겁니다. 제가 직접 나서서 보고 싶을 뿐입니다.”
타이머스의 눈빛이 대번 날카로워졌다.
“왜. 그곳에 가서 러스트 가문의 비법을 배우고 싶은가? 그동안 은둔자의 땅으로 가 목숨을 잃었던 머저리들처럼?”
“…….”
“혹은 스승을 찾으러 가고 싶은 건가?”
“……!”
내 표정에 미미한 금이 갔다.
이 자리에서 말이 나올 법한 스승이라고 한다면 한 사람뿐이다. 테네리페 러스트.
‘그래. 그때 브랙큰의 성지에서 둘이 격전을 벌인 적이 있었지……. 둘 사이에 무슨 대화가 오고 갔는지 나는 모르고 있다.’
나는 변명하기 위해 입을 열었다. 그런데 타이머스는 내 이런저런 얘기를 들을 기분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손을 들어 나를 막은 뒤, 타이머스가 길쭉한 소파에 거만하게 누웠다.
“너나 그 사령술사의 말을 다 믿지는 않아. 너는 특히 그렇지. 내가 네 말을 믿어 주길 바라고 말하지 않잖아. 용건만 통한다면 과정은 뭐가 됐든 상관없다는 태도고.”
“예, 뭐. 맞게 보셨습니다.”
“러스트 가문의 특성을 타고난 그 남자는 자신을 네 스승이라 칭했다. 우스갯소리처럼 말했기에 믿지는 않았어. 믿는다 하더라도 내게 달라질 건 없고.”
이거 감동이라도 받아야 하나. 테네리페가 나를 제자로 인정해 타이머스에게 소개까지 해주다니 말이야. 이런 영광이 또 있을 수가.
“놈과 정면으로 맞서는 건 위험하다. 나 못지않은 실력자야. 심지어 대중없는 파괴를 원하고 있지.”
“그…….”
꼭 그렇지는 않다고 말할까 하다가, 아는 체를 더 할 수는 없어서 말을 줄였다.
“그렇기에 더 대비해야 합니다.”
“너야말로 긴장하고 내가 널 어떻게 처우할지 대비해야 해. 네가 사령에 관심이 많다는 건 이미 알고 있었다. 하는 짓을 보면 모를 수가 없지. 하지만 지금껏 용인할 수 있었어. 네가 러스트와 무관하기 때문에.”
타이머스가 경고하듯 말했다.
“내 의심을 사지 않는 게 좋을 거다. 오늘 일은 못 들은 걸로 해주지. 돌아가.”
명백한 축객령이었다.
***
“그런 의미에서 다시 한번 알현 신청을 해야겠어.”
“오히려 역효과이지 않을까요.”
코카가 떨떠름하게 말했다.
“네 말도 일리는 있어. 하지만 다른 수가 있어? 밀항하다가 잡히는 것보다는 낫잖아?”
“듣고 보면 그 말이 맞는 거 같기도 한데…….”
“이번에는 곧장 가지는 않을 거야. 좀 더 준비를 해서 가야지.”
내 말에 피핀이 화들짝 놀라며 고개를 저었다.
“나으리! 이제 제 창고는 텅텅 비었어요! 이렇게 빼가실 거면 마수토벌이라도 한 번 더 보내주시라고요!”
“진정해. 이번에는 조금만 가져갈 거야. 그리고 선물만 무작정 바친다고 준비가 다 되는 게 아니거든.”
나는 붙잡아뒀던 아네모네의 심복을 데려왔다.
아네모네도 함께 찾아왔는데, 내가 무슨 짓을 하려고 하는지 퍽 걱정된다는 표정이었다.
“아젤은 갑자기 왜? 네 기분을 상하게 했다고 지하감옥에 처넣으려는 건 아니지?”
“저기요! 지하감옥이 뭐가 어때서요! 지하감옥도 꾸미면 괜찮거든요!”
“뭐야, 코카 너는. 왜 혼자 난리야……?”
“지하감옥을 모욕하지 마세요! 좋은 곳이라고요!”
아네모네와 코카가 쓸데없는 실랑이를 벌이는 동안, 나는 직접 움직였다.
포박돼있는 아젤에게 다가가, 그의 입을 막은 재갈을 풀어 내던지고 다정하게 말을 걸었다.
“지난밤 낯선 곳에서 신문 당하느라 고생했지?”
“…갑자기 친절한 척하시는 이유가 뭡니까?”
“친절한 척이라니. 오해가 풀려서 그래. 난 또……. 네가 아네모네를 핑계로 찾아온 첩자인가 오해했지 뭐야.”
연신 느긋한 말투를 유지해서 그런가, 상대의 긴장이 풀리고 있는 게 느껴졌다.
나는 녀석의 어깨도 다독이면서 말을 이었다.
“하지만 알았어. 너는 아네모네를 진심으로 생각하는 충신이라는 거.”
“아……!”
아젤의 표정이 급속도로 밝아졌다.
“맞아! 아니, 맞습니다!”
아네모네가 아젤을 흘끔 쳐다보더니 이마를 문질렀다. 그의 충성심은 아네모네에게도 과하게 느껴지는 게 틀림없었다.
나는 그 충성심을 이용해볼까 하는 거고.
“아네모네 대장은 곤경에 처한 저를 구해주고, 함께 다닐 수 있게 해줬습니다. 대장과 같이 다니면 무서울 게 없어요!”
“너는 그동안 아네모네를 위해서 어떤 일을 했는데?”
“어떤 일이든지요! 물 길어오고 불을 피우는 잡일부터, 몸싸움이나 기 싸움…….”
“그래. 아네모네가 여기에 있다는 걸 알아차린 것도 대단했어. 감탄했지. 그래서 내가 널 처음에 의심할 정도였다니까. 나는 아네모네를 지켜주려고 하는 착한 귀족이야. 믿어줘. 아네모네는 사실 나의…….”
순간 방 안의 모두가 나를 주목했다. 무던한 피핀까지도 귀를 쫑긋 세운 걸 보니 배알이 뒤틀렸다.
놈들이 듣고 싶어 하는 가십이 뭔지 안다. 하지만 절대 그렇게 말해주지 않을 거다. 재수 없어.
“먼 친척이거든.”
“아…….”
“에잉…….”
여기저기서 아쉬워하는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주인을 두고 입방아를 찧을 생각이나 했을 놈들을 죄다 지하감옥에 처넣고 싶었지만, 참았다. 나는 관대한 주인이고, 공작성의 지하감옥은 이제 살 만한 장소가 되어버렸으니까. 그 역할을 다할 수가 없다.
아무튼.
“그런 의미에서 네 도움을 받고 싶어, 아젤.”
“어떤, 도움 말씀이십니까?”
“글쎄…….”
나는 조심스러운 미소를 띤 채 말했다.
“소문을 하나 내줬으면 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