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 has become the older brother of the villainess RAW novel - Chapter 184
184화. 불청객이라고 무작정 내쫓을 순 없잖아 (3)
“소문을 내고 싶다고?”
아네모네를 비롯한 주변 사람들이 의아하게 쳐다봤다. 누군가를 설득할 생각은 없지만, 내 의중을 전혀 파악하지 못하는 모습이 웃겨서 나는 굳이 입을 열었다.
“내가 용의 허리로 가지 못하는 이유는 명분이 없기 때문이야. 명분만 있으면 타이머스도 나를 보내지 않을 수가 없겠지.”
“이해는 갑니다만……. 그럼 어떤 소문을 내시게요? ‘공작이 용의 허리에 가지 않으면 전쟁이 일어난다’라거나.”
“그런 터무니없는 것 말고.”
나는 아젤의 어깨를 감싸 안고 여유롭게 말했다.
“좀 감성적인 소문을 내는 거야. 뭐라고나 할까……. 그래. 가족애를 건드리는 소문.”
“예? 더 모르겠는데요.”
아젤이 뒷머리를 벅벅 긁었다. 그럼에도 나는 말을 멈출 수 없었다. 내가 생각해도 이 계획은 꽤 괜찮았기 때문이다.
“다들 호기심을 갖고 서로에게 물어보지 않을 수 없는 소문이 될 거야. 소문을 퍼뜨릴 사람을 고용해야 할 테니, 그 돈은 미리 챙겨둬야겠어. 단델! 장부를 가져와. 그리고 아네모네도 도적단을 이용해 소문을 널리 널리 퍼뜨리면 좋겠고…….”
“이봐, 도련님. 무슨 생각을 하고 있길래 혼자 그렇게 신이 난 거야?”
내가 신이 난 건 또 어떻게 알았는지. 이럴 때 보니 똑똑한 것 같기도 하다?
나는 방긋 웃으며 아네모네의 등을 다독였다.
“내가 싫어하는 사람을 둘이나 엿 먹일 수 있게 됐는데, 어떻게 재밌어하지 않을 수 있겠어! 아하하하!”
마치 라기아처럼 웃어젖히다가, 나는 퍼뜩 정신을 차리고 피핀에게 명령했다.
“당분간 내가 그만하라고 말할 때까지 나와 달리아의 방 호위를 강화해. 몸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달리아가 마음대로 마법을 써도 좋다고 전하고.”
“나으리…….”
이젠 피핀까지 얼굴을 씰룩거렸다.
“도대체 무슨 소문을 퍼뜨리실 건데요!”
“뭐, 굳이 이렇게 말하면 너무 거창한 것처럼 들리는데……. 별거 아냐.”
약간 민망해하며 나는 내 머릿속의 ‘소문’을 읊었다.
“오로반체 후작이 용의 허리에 유폐해 둔 자식이 있다는 소문. 근데 그 애가 글러토니 가문 사람이라고 하는 거지.”
“…….”
“…….
내 이야기를 들은 피핀이 마른 코를 훌쩍이며 물었다.
“용의 허리로 가는 좀 더 평범한 방법은 진짜 없는 거예요?”
***
아젤을 이용해 소문을 퍼뜨린 뒤, 예상했던 것보다 빨리 손님이 도착했다.
본인이 직접 나타날 줄은 몰랐는데 말이지. 오로반체 후작은 공작성까지 직접 찾아왔다. 정확히 말하면 내 방으로 왔는데, 주변 하인의 에스코트를 받으며 온 건 확실히 아니었다. 그랬다면 자정이 넘은 시각에 창문을 열고 들어올 리가 없다.
“까꿍. 공작님. 아직 안 주무시고 계셨군요.”
“직접 오실 줄은 몰랐습니다. 정말 몰라서 잠옷 차림을 하고 있네요. 이거 실례가 아닐 수 없게 되었습니다.”
나는 접고 있던 종이학을 탁상에 내려놓으며 몸을 일으켰다.
“그건……?”
“아, 밤에 잠이 오지 않을 때는 종이를 접으며 시간을 때웁니다. 책을 읽으면 좋겠지만 영 취미가 안 맞아서요. 재미없으면 괴롭기만 하고, 재미있으면 밤이 샐 때까지 읽으니까요.”
“그렇군요, 호기심 많은 소년다운 말이에요.”
“그건 그렇고…….”
나는 침대 밑에 숨겨놨던 상자를 꺼냈다. 드르르륵 묵직한 소리와 함께 부러진 무기가 잔뜩 모습을 드러냈다.
“돌려받으러 오셨습니까? 후작께서 손님을 좀 많이 보내셨는데, 대접이 허술해서 죄송할 따름이었습니다.”
“하하하하. 괜찮습니다. 우리 사이에. 할 짓 못 할 짓 구분 없는 사이인데 그깟 철붙이 좀 챙긴다고 제가 공작님을 책망하기라도 하겠습니까. 뒤에서 욕이나 좀 하고 말지요.”
“이왕 오신 거 마법도 좀 풀어주시지 않고요. 제 호위 기사가 방에 못 들어오고 있는데요.”
“그 친구 없이 이야기를 좀, 오붓하게 나눠보면 어떨까 하고.”
오로반체 후작은 내 허락도 구하지 않고 독한 시가를 품에서 꺼내 물었다. 어지간히 화가 난 모양이었다.
하긴. 미치긴 했지만 애처가인 오로반체 후작한테 글러토니 가문의 사생아가 있다는 소문을 냈으니…….
우리 가문의 명성에도 먹칠을 하는 소문이었지만, 오로반체 후작에게는 심장을 후벼파는 거짓말이었을 것이다. 애들 잡아다가 암살자 만드는 아저씨한테 양심과 감정이라는 게 남아있다면, 분명 그랬을 것이다.
“어린 공작님을 혼내는 건 나의 월권일 것이고……. 차분히 이야기부터 들어볼까 합니다. 우리 공작님은 왜 그런 웃긴 소문을 냈을까?”
오로반체 후작은 진로상담을 하는 학생주임 같은 분위기를 풍겼다. 적당히 나이 들었지만 늙었다는 느낌은 주지 않는 장정. 손이 얼마나 큰지 그 큰 시가가 사과나무 막대기처럼 보였다. 자칫 말을 잘못해서 뺨이라도 한 대 맞았다가는 사흘 내내 병석에서 못 일어날 것 같은 인상을 준다.
“용의 허리에 가야 하거든요.”
“아아.”
오로반체 후작이 시가 연기를 후욱 내뱉었다. 나를 어린애 취급하는 것치고는 별로 배려해주는 모양새가 아니다.
“그런 거라면 나한테 부탁하면 됐을 텐데? 내 기꺼이 뒷길을 열어줬을걸. 항해도 하고, 얼마나 재밌겠어. 물도 잔잔하니 요즘 바다 날씨가 좋다던데.”
“제가 부탁했다면 후작께서는 뭔가 대가를 받으려 하셨겠죠.”
“그렇지. 똑똑하군요. 작위만 아니었으면 내 후계자로 납치했을 텐데…….”
“납치해서 암살자 교육을 시키시려고요? 암살자 출신 후작이라니 멋지긴 하네요.”
“그건 살아남았을 때 얘기고.”
오로반체 후작이 시가를 털어 바닥에 던졌다. 그러나 어떤 마법을 사용했는지, 시가는 완전히 사라져 내 바닥에 더러운 흔적을 남기지 않았다.
“저는 타이머스 황태자를 굳이 자극하고 싶지 않습니다. 허가 없이 용의 허리로 갔다가 괜한 뒷수습을 하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지금 나랑 대면한 건? 이 뒷수습은 괜찮으시고요?”
“오로반체 후작께서는 저를 죽이지 않으실 테니까요. 건방지게 굴어봤습니다. 또 우리 둘만 남아서 얘기하는 기회가 있어야 한다는 건, 싫지만 동의했거든요.”
“오호라.”
우리는 자리를 옮겼다. 내가 실외용 가운을 걸쳤을 때, 막혀있던 문이 열리며 피핀과 코카가 들이닥쳤다.
“나으리!”
“공작님!”
오로반체 후작을 발견한 두 사람이 멍한 표정을 지었다.
‘너희도 그렇냐? 나도 이 아저씨가 이렇게 올 줄은 몰랐어.’
소문을 낸 뒤, 오로반체 후작이 반응하리라는 건 예상하고 있었다. 오로반체 후작은 모종의 이유로 나를 건드리지 않고 있기에, 아마 나를 죽이지 않을 것이다. 그런 확신으로 던진 도발이었다.
내 예상이 틀리지 않았는지 지금까지는 수준 낮은 암살자만 찾아왔다. 놈들은 내 방에 당도하기도 전에 피핀과 코카의 선에서 처리됐다. 나는 다음 날 아침, 부러진 암기를 보며 ‘어젯밤에는 두 명이 찾아왔습니다’ 하는 보고를 받는 게 전부였던 것이다.
당분간도 이런 잔챙이만 상대하게 될 줄 알았는데…….
갑자기 보스가 등장해 버렸다.
“오, 오로반체 후작님…….”
후작을 본 코카가 유독 희게 질렸다. 녀석은 피핀의 등 뒤로 은근히 숨으며 주변을 살폈다. 오로반체 후작을 부담스러워하면서도 주변에 다른 암살자가 있나 확인하는 모습은 퍽 전문가다웠다.
“사과를 한다고 해도 받아주지 않을 겁니다, 글러토니 공작.”
오로반체 후작이 짐짓 화난 교장 선생님 같은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입꼬리가 슬쩍 들려 있는 탓에, 저 사람이 농담을 하고 있는 건지, 아니면 농담처럼 말할 뿐 정말 나를 죽일 생각을 하고 있는 건지 분간이 가질 않았다.
“후계자 얘기가 나와서 하는 말인데. 테네리페 러스트를 점찍고 계시죠?”
“…….”
오로반체 후작의 미소가 짙어졌다.
“왜 그렇게 생각하셨습니까?”
“지난번 후작성에서 테네리페를 보았을 때 이상하다고는 생각했습니다. 테네리페도, 후작님도 가족과 오붓하게 시간을 보내는 성격이 아니지 않습니까. 그런데 후작님이 굳이 테네리페의 귀찮은 시체 모으기에 협력하고 있다…….”
무슨 목적이 있다고밖에는 말할 수 없다.
나이 든 후작에게 있을 법한 목적은 뻔했다. 후계자.
마침 그의 본처는 러스트 가문의 사람이고, 테네리페는 러스트 가문에서 살아남은 마지막 사령술사다. 음습한 암살자 가문을 물려받기에 테네리페만큼 적합한 사람이 또 있을까.
그래, 테네리페뿐이다.
하지만 테네리페 본인은 어떨까?
“시체포식자에게 정신이 팔려 가문을 물려받는다는 생각은 추호도 하지 못할 테죠. 어쩌면 오로반체 후작께서는 러스트 가문의 복권이나 명예 회복을 노리실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하지만 이 또한 테네리페의 머릿속에는 안중에도 없어요.”
“…….”
“섣불리 테네리페를 붙잡아 두기는 어려우셨을 겁니다. 그는 평범한 사령술사가 아니니까요. 확실히. 더군다나 다치게 하고 싶지도 않았겠죠. 얼마나 가까운 친척인지는 모르겠으나, 테네리페는 러스트 부인을 많이 닮았으니…….”
오로반체 후작은 만족스럽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부드럽게 팔을 내밀며 물었다.
“그래서. 오로반체 후작가에 버려진 사생아가 있다는 소문을 내고, 나한테는 어떤 조건을 제시할 생각이었지? 여기까지 얘기해보니 알 만도 하군. 나한테 테네리페를 넘겨주겠다는 말을 하고 있군그래?”
“정답입니다. 역시 현명하신 분은 다르네요.”
테네리페가 없는 자리에서, 테네리페가 어디에 있을 것인지 논의하는 자리가 만들어졌다.
테네리페 스승님, 미안하게 됐습니다. 하지만 이왕 치사한 사람으로 사는 거, 배신 한두 번은 용서해주시길. 용서하지 못한다면 뭐, 어쩔 수 없는 거고.
“저는 시체포식자를 잡아 죽일 겁니다. 시체포식자가 없어진다면 테네리페 러스트가 이곳저곳 떠도는 것도 멈추겠죠. 그때 그의 마음의 빈자리를 사로잡아 후계자로 앉히시면 됩니다. 복수심도 좋고, 애정도 좋겠네요. 저는 후자를 추천합니다. 전자는 저한테 해가 될 것 같아서.”
“아하하하. 테네리페가 아끼는 데미안을 죽이겠다? 왜? 그래. 테네리페와 같은 이유겠군. 초월자 중 한 사람의 자리만 비어도 악마의 발목을 붙잡을 수 있을 테니까.”
“맞습니다.”
“하지만 나는 영 젊은 사람과 소통하는 걸 어려워해서. 테네리페가 이 늙은이의 위로를 받아줄까?”
“오직 한 가지만 바라보고 사는 사람은, 그 한 가지를 잃은 순간 다른 것은 아무것도 보지 못하게 됩니다. 데미안을 잃은 테네리페는 잘만 구슬린다면 후작님의 좋은 허수아비가 되어줄 겁니다.”
“아, 재밌는 친구야. 이런 말도 안 되는 제안을 해오다니.”
껄껄 웃으며 눈가의 눈물까지 닦던 오로반체 후작은 한결 편안한 표정을 지었다. 아까보다는 단조롭고 온화한 얼굴이다. 처음 만났을 때처럼 의중을 읽을 수 없는 그 모습.
“그래서. 공작님의 계획은 ‘오해를 풀기 위해 용의 허리로 직접 가보겠다’는 것일 테고. 그다음은? 내가 도와줄 것은 없나?”
이 말이 나오기를 간절히 기도했다. 오로반체 후작이 해줄 일? 당연히 있지!
“염치 불고하고 부탁드리겠습니다. 시체포식자가 죽었을 때를 대비해…….”
“…….”
“큰 자루가 하나 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