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 has become the older brother of the villainess RAW novel - Chapter 72
72화. 과자를 물처럼 마시는 사나이 (5)
“진짜 뭐라고 하셨죠?”
순간 내가 잘못 들었나 하는 생각에 눈이 크게 뜨였다. 맛이 없었다고? 그렇게 먹어놓고?
놀란 건 나뿐이 아니었다. 피핀이 달려들어 엔비의 멱살을 잡고 흔들었다.
“방금 뭐라고 했냐? 그렇게 접시까지 먹을 기세로 날뛰더니!”
엔비가 고개를 까딱이며 딴청을 부렸다.
“우리 나으리 돈 돌려내! 과자 내놔! 그냥 바다에 버리고 왔어야 했는데! 처음부터 맘에 안 들었어!”
그 와중에 피핀의 울분은 조금 이상한 방향으로 튀었다.
“내가 사냥할 몫까지 마수를 사냥해버리고! 마수 사체는 범고래 모습으로 뼈까지 씹어먹고! 내가 구경할 기회도 없이! 이, 이 방해만 되는 물고기!”
피핀이 엔비를 쥐고 흔들며 나를 쳐다봤다.
“나으리, 이 새끼 그냥 버리죠?”
“잠깐, 잠깐만……. 생각할 시간을 줘.”
당황스러운 일이었다. 간식을 다 먹은 이후의 전개는 이러면 안 되는데?
아네모네와 만나 간식을 맛있게 먹은 엔비. 엔비는 가게 안의 모든 디저트를 게걸스럽게 먹어 치우고, 아네모네는 그런 엔비를 잘 다독이며 데이트를 마친다.
간식으로 실컷 배를 채운 엔비는 이런 달콤한 음식은 처음 먹어본다며 쑥스럽다는 듯 얼굴을 붉힌다. 바다에서 쌈박질만 하던 자신에게 이런 평화로운 여유는 처음이었다고 하면서.
그리고 엔비의 호감도는 한 개 올라가야 한다.
‘호감도 하트 3개에 열리는 이벤트가 맞아.’
하지만 지금은 상태창에 이벤트 알림이 뜨기는커녕 호감도 하트도 3개에서 제자리걸음이었다.
“맛없어. 육지에서는 이런 걸 먹고 사는구나. 목만 더 말라지는걸. 꺼억.”
불평하는 놈치고 자세가 여유롭고 느긋하다. 트림까지 꺽꺽 뱉어대는 걸 보면 만족스럽게 먹은 것 같은데, 뭐가 문제였지?
가게가 문제였다? 아네모네랑 갔던 가게가 아니면 안 되는 건가?
“다른 가게를 찾아보지.”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피핀과 단델이 놀라서 나를 쳐다봤다. 달리아도 나를 보고 있긴 했는데, 별생각은 없어보였다. 치맛자락에 과자 묻은 손을 박박 닦을 뿐이다.
“엔비 님은 어엿한 손님이다. 불만족한 상태에서 돌려보낼 순 없어.”
애써 웃으며 엔비에게 다가갔다. 냅킨을 챙겨가 엔비의 얼굴과 온몸에 묻은 크림과 과자가루를 털어냈다. 기껏 씻겨서 데려왔는데 멀끔했던 인어의 모습이 완전 걸레짝이 됐다.
“엔비 님, 어떤 점이 별로였죠? 새로운 경험 아니었습니까?”
엔비는 얌전히 내 손길을 받으며 “음……” 하고 고민하는 척을 했다.
“그냥.”
“…….”
“몰라, 물 마시고 싶어.”
이 순간만큼은 그냥 바다에 버리자는 피핀의 말에 공감하고 싶었다. 하지만 여기까지 데려와서 포기하는 건 성미에 맞지 않는 일이다.
“나으리, 꼭 다른 가게까지 가야 하나요?”
피핀이 내게서 엔비를 떨어뜨려 놓았다.
“이런 멍청이는 이만큼 먹은 것도 호사였을 거라고요.”
“피핀, 말조심해. 내 손님이다.”
“손님이 아니라 골칫덩이일 텐데.”
“골칫덩이 손님 챙겨. 다른 가게로 간다.”
단델이 먼저 눈치를 채고 값을 치르러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이만 일어나자, 달리아.”
나는 달리아의 손을 닦아주고 일으켜 세웠다. 달리아가 작게 트림을 내뱉었다. ‘빱’ 하는 정체불명의 소리가 났다.
“달리아. 공작 영애는 바깥에서 트림을 하지 않아.”
“네.”
달리아의 손을 잡고 계단을 내려가 가게를 벗어나려는데, 한 무더기의 종업원이 우리에게 우르르 달려들었다. 내 표정이 좋지 않았던 탓인지 분위기가 착 가라앉아 있었다. 가장 나이가 지긋한 사람이 내 옆에 다가오며 고개를 숙였다.
“글러토니 공작님, 방문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다만, 공작님께서 모시고 오신 손님께서 만족하지 못하셨다는 말을 들어……. 죄송할 따름입니다.”
유니폼 모자를 손에 꾹 쥐며, 종업원이 울상을 지었다.
“무슨 문제라도 있었는지요. 저희 누베스 파티세리의 명예를 걸고 오늘 최선을 다해 모셨습니다.”
괜찮다고 답변하려는 찰나, 엔비가 내 앞을 가로막고 시비를 걸었다.
“맛이 없잖아, 맛이! 바삭바삭하고, 달고. 물고기는 어디에 있는데? 엉? 누가 만든 거야? 싸움 잘해?”
[아하하하! 촌스러워! 내가 다 창피할 지경이로구먼!]엔비의 위협적인 기세에 말하는 단도까지 가세하니 아주 가관이었다. 종업원의 얼굴이 희게 질렸다.
나는 한숨이나 한번 쉬고 피핀을 향해 대충 손을 휘저었다. 피핀이 곧장 엔비를 제압해 두 팔을 뒤로 묶었다.
“난동 부리지 마. 아직 네가 나으리의 손님이니까 봐주는 거라고.”
“으아! 육지라고 내가 못 싸울 거 같아? 으아 싸운다! 싸운다!”
엔비가 쩌렁쩌렁 소리쳤다. 피핀이 내 눈치를 살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끌고 나가.”
엔비가 변덕스러운 거지, 가게는 잘못이 없었다. 나는 종업원의 어깨를 다독이며 어색하게 웃었다.
“아주 먼 곳에서 온 손님이라 좀, 좀…….”
엔비를 어떻게 좋게 포장할 수 있을까. 머리를 굴려봤지만 포장할 수 있는 말이 전혀 없었다. 구제 불능이다. 데리고 다른 가게에 갈 생각을 하니 막막하다. 피핀 말대로 그냥 버려버릴까. 지금의 피핀이라면 놈을 죽이자고 해도 흔쾌히 좋다고 할 텐데.
괜히 먼 길을 자처하고 있는 걸 보니, 진짜 멍청이는 나다. 가급적 살인은 피하고 싶을 뿐이지만.
그래, 지금 괜히 인어를 죽이면 나중에 황태자 앞에서도 할 말이 없어진다. 외교 문제로 번질지도 모르지. 인어들 사이에 의리 따윈 없겠지만.
“과자는 다 훌륭했다. 특히 과일 타르트가 훌륭하더군.”
내 말에 종업원들의 얼굴이 조금 펴졌다. 달리아가 손을 번쩍 들며 눈을 빛냈다.
“달리아가 제일 좋아하는 거!”
“그래. 그것만 두 입이나 먹었잖아. 나머지는 입이 짧아 많이 먹지 못했는데.”
종업원이 기도하듯 두 손을 모아가며 연신 감사하다는 말을 내뱉었다. 공작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았다는 사실만 해도 그들에게 큰 위안이 된 듯했다.
나는 뒤에 멀찍이 서서 이 모든 장면을 지켜보고 있던 단델에게 말을 걸었다.
“너는 어땠어?”
자신에게 말을 걸 줄은 몰랐는지, 단델이 화들짝 놀라며 반응해왔다.
“저, 저 말씀이십니까? 저는 황송했습니다!”
“아니. 어떤 게 맛있었냐고.”
“감히, 감히……. 여긴 높으신 분들을 모시는 가게이기에……. 그런 대단한 작품들을 맛본 것만으로도…….”
오늘따라 단델이 위축돼 있어 안쓰러운 기분도 들었다. 가게에 오고 간식을 주문하고. 단델도 오늘 고생할 대로 고생했는데 조금의 보상은 있어도 좋겠지.
“가는 길에 사람을 보내서, 공작성에 오늘 맛본 디저트를 전달해줘. 주방장에게도 몇 가지 만들 수 있는지 물어보고 싶군. 나도 만족했거든.”
“분부 받들겠습니다!”
꾸벅 인사한 단델이 후다닥 자리를 옮겼다.
나는 가게를 나서기 직전, 인사를 받으며 종업원에게 말을 물었다.
“실례인 건 알지만, 자네들보다 명성이 높은 디저트 가게가 있나?”
“그, 글쎄요. 그런 건…….”
곤란해하는 종업원 뒤로, 누군가 후다닥 달려 나왔다. 조리복을 입고 있는 것을 보아하니 메인 파티시에 같았다.
“공작님! 글러토니 공작님!”
파티시에가 앞치마를 펄럭이며 달려왔다. 그의 뒤로 단델까지 쫓아 나오고 있었다.
“공작님! 이렇게나 많이 드시고 가시다니!”
헐떡이는 파티시에의 눈이 초롱초롱 빛났다.
[♥♥♥♥♥]우리 오늘 처음 보는 사이 아닌가……? 날 너무 좋아하는데?
파티시에는 왠지 예민할 것 같은 인상의 나이 많은 아저씨였다. 그는 밀가루가 묻어 보송보송한 손으로 내 손을 덥석 잡았다. 보통 귀족의 몸에는 손을 대지 않는 게 예의인데, 지금 당장 눈앞에 뵈는 게 없는 것 같았다. 얼떨떨한 나 대신 뒤따라온 단델이 성질을 냈다.
“이보세요! 감히 공작님의 몸에 손을 대다니!”
“단델, 나는 괜찮아. 그, 자네는 무슨 일로…….”
파티시에의 눈이 촉촉해졌다. 그는 울먹거리는 목소리로 내 손등에 입까지 맞췄다.
“공작님 정말 감사합니다. 제가 누베스의 문을 연 이래로, 이렇게 많이 드신 손님은 공작님이 처음입니다.”
“아.”
저절로 시선이 피핀과 엔비를 향했다. 먹었다고 해야 할지, 마셨다고 해야 할지.
“그거야, 그렇겠지.”
정도가 없는 먹보를 둘이나 데려왔으니까. 피핀의 입가에는 아직도 과자 부스러기가 잔뜩 묻어 있었다. 엔비는 피핀에게 붙들린 채 싸우고 싶다고 노래를 부르는 중이었는데, 중간중간 트림하는 걸 잊지 않았다. 정말 꼴불견이었다.
“제 스승님께서는 항상 말씀하셨습니다. 모든 것은 배를 곯지 않는 것에서 시작하는 것이라고. 달콤한 과자는 마음의 허기를 채우는 양식이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건 배불리 먹이는 것이라고.”
“그것참, 따스한 말이네…….”
나는 관심 없지만…….
“오늘 과자를 실컷 구웠더니 팔이 다 아플 정도입니다. 수련할 때 이후로 처음인데 정말 감격스럽고, 벅차오릅니다. 제 과자를 이렇게 배불리 드셔주는 분이 계시다니!”
“좋아해 주는 것 같아서 다행이네.”
“아까 종업원과 하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과자를 더 찾으러 가십니까? 혹시 공작성에 파티시에가 필요하십니까? 추천해드릴 인재가 많습니다.”
나는 파티시에의 손을 뿌리쳤다. 눈에 OK 사인을 가져다 댄 달리아가 파티시에를 보며 키득키득 웃었다.
“그런 건 아니야. 그저……. 새로운 맛을 경험해야 하는 상대가 있다.”
눈동자만 굴려서 엔비를 쳐다봤다. 여전히 펄쩍펄쩍 뛰고 있다. 육지에 나온 활어가 틀림없다.
저런 놈에게 과자를 더 먹인다고, 이벤트를 볼 수 있으려나 의심스럽긴 하지만. 시도는 해야겠지.
“그렇다면 과자의 장인을 한 번 찾아가 보시는 건 어떠십니까?”
파티시에가 눈을 여러 번 깜박이며 속눈썹을 나부꼈다.
“저의 스승님을 만나시면 어떨까요? 여기서 좀 떨어진 외진 곳에 살긴 하는데……. 절 가르쳐주신 스승님입니다. 데어리 아카데미의 교수님이셨는데 지금은 은퇴하셨지요.”
데어리라면, 우리 집 주방장도 그곳 출신이다. 거기에 교수 출신이라면 실력은 확실하겠지.
“공작님이라면 스승님께서도 분명 솜씨를 발휘해 주실 겁니다. 저를 아들처럼 키워주신 정 많고 다정하신 분입니다. 제 소개로 왔다고 말씀하시면 곧장 맞이해주실 겁니다.”
파티시에가 종업원을 시켜 간단한 약도를 그려 내게 건넸다.
그 스승이라는 작자는 꽤 거리가 있는 곳에 살고 있었다. 광장을 지나 교외로 넘어가야 한다.
하늘을 올려다보니 아직 날이 밝았다. 서두르면 충분히 방문할 수 있다. 나는 달리아의 손을 잡고 흔들었다.
“달리아, 조금 더 산책해도 되겠어?”
“오라버니랑 산책하는 거 좋아요.”
파티시에와 종업원들의 인사를 뒤로하고 발걸음을 내디뎠다. 피핀이 엔비를 포박한 채 내게 다가왔다.
“그럼 가볼까? 피핀, 엔비 님을 잘 모시도록 해. 어디로 빠져나가지 못하게 잘 붙들어.”
“나으리, 저는 이만 집에 돌아가고 싶어요. 피곤하단 말이죠. 오늘 원정에서 돌아왔다구요. 나으리는 피곤하지도 않으세요?”
피핀이 퉁명스럽게 말했다. 나는 피핀의 이마를 톡 치며 고개를 저었다.
“밥 줄 테니까 일해. 호위 기사잖아.”
“어휴. 잔뜩 먹을 거예요. 이 물고기의 배는 먹을 거라고요. 각오하세요.”
이번 여정에서 단델은 따로 맡을 일이 있었다.
“단델.”
“네넵!”
“너는 공작성으로 돌아가서 주문한 과자를 잘 전달하도록 해. 이번엔 우리끼리 다녀오겠어. 너는 따로 할 일이 더 있을 테니까.”
“예에?”
단델이 피핀과 엔비를 쳐다보며 고개를 마구 휘저었다.
“공작님, 그, 저 두 분을 데리고 다녀오시겠다고요?”
“호위 기사인 피핀도 있으니 걱정 없어. 공작성에 있는 어린애들이 특히 좋아하겠는데.”
어차피 이런 건 다 나중에 내 편을 만들기 위해 필요한 포석이다.
“밀리벨이라는 꼬맹이……. 그때 나한테 인사했었지. 마구간의 어린 시종들에게도 나눠줘.”
“공작님……!”
단델이 아까 그 파티시에처럼 눈을 빛냈다. 레몬을 먹은 것처럼 내 미간이 쪼그라들었다.
“낯간지러우니까 눈깔아.”
“네!”
단델을 떠나보내고, 우리는 마차를 하나 불러 잡아탔다. 달리아와 엔비가 찰싹 달라붙어 창밖을 구경하는 동안, 나는 음흉하지만 선량한 계획에 다시 불을 지폈다.
“이번에는 기필코……. 행복하게 해주겠어……. 장인의 과자 맛을 봐라, 엔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