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 reverted to being a K-drama genius RAW novel - Chapter 201
영화 시나리오 작업은 처음인 래원의 초고를 최대한 존중해주면서도, 동시에 잘 다듬어 주었으면 했으니까.
이럴 때는,
남들도 다 아는 확실한 보증 수표 말고,
래원만 알고 있는 보증 수표를 찾아 나서면 되는 일이었다.
래원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영화가 하나 있었다.
영화 자체도 인상적이었지만 탄탄한 시나리오가 머리와 가슴에 남았다.
특히 시나리오 작가가 각종 영화 시상식의 작가상을 휩쓸며, 매번 울음을 터트렸던 모습도 기억에 선했다.
기나긴 무명 생활 속에서 중학교 방과 후 강사로 일하며 아픈 홀어머니를 부양했다는 가정사도 짠했다.
이번만 쓰고 안 되면 영화는 포기하자고 마음먹었던 시나리오가 라고 했던 것도 인상적이었다.
“아⋯. 그 작가 이름이 기억이 안 나네.”
영화 업계는 드라마보다 상대적으로 작가 이름이 드러나지 않는 탓에, 흥행 영화 제목만 기억날 뿐이었다.
허나 는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 미래의 영화.
때문에 검색을 해봤자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이름이 완전 흔한 이름은 아니었는데⋯. 그렇다고 엄청 튀는 이름도 아니었던 거 같고⋯. 하아⋯. 답답해.”
래원은 무작정 검색을 시작했다.
기억 속의 파편을 하나하나 꺼내는 기분으로 말이다.
“10여 년을 공모전만 전전하다가 그 영화로 입봉했댔어⋯. 시나리오 공모전을 다 뒤져보자.”
그때,
지이이이이잉———
“아씨⋯. 바빠죽겠는데⋯.”
하필 래원을 찾는 휴대폰 액정에 찍힌 이름은,
[조민 기자 (천하 일보)]달갑지 않은 인물이었다.
“⋯ 어어? 조..민..? 그래!! 조민시!!!”
공교롭게도, 영화 의 작가 이름이 ‘조민시’였던 것이 떠올랐다.
래원은 계속해서 울리는 전화를 팽개쳐두고, ‘조민시 작가’를 검색했다.
아니나 다를까,
각종 시나리오 공모전 명단과, 수상자 인터뷰에서 그녀의 이름이 보였다.
“찾았다!”
래원의 첫 영화 선박에 탑승시킬 첫 번째 선원이 정해진 순간이었다.
동시에, 지이이이이잉——
계속해서 래원을 불러대는 조민 기자의 전화.
래원은 이제야 이것을 받을 여유가 생겼다.
한껏 업된 표정으로 휴대폰을 주워들었다.
지금이라면 조민이 그 어떤 태클을 걸든 다 받아줄 수 있을 것 같았다.
“네, 조 기자님.”
– 도 감독님, 축하드립니다!
래원의 예상과 달리 뜻밖의 축하 인사를 건네는 조민이었다.
설마 드라마 감독판 DVD 완판 소식으로 뒷북을 치는 건 아닐 테고,
영화 로는 아직 축하받을 건수가 없었다.
“⋯ 네? 축하요?”
– 에이, 이미 엠바고 풀렸어요!
“무슨 말씀이신지⋯?”
– 국제 스마트 필름 페스티벌. 골든 트로피 수상 축하드린다고요!
“네???”
– ⋯ 아직 모르셨어요? 감독님 수상하셨어요. Five Senses of Korea. 한국의 오감! 이미 홈페이지에 떠 있던데요? 너무 좋더라고요! 저한테 논산은 군대 때 훈련소 갔던 기억 뿐인데⋯.
설마!
래원은 런던에서 서울에 오자마자 홀로 논산을 여행하며 찍고 편집했던 영상을 떠올렸다.
‘국제 스마트 필름 페스티벌’은 스마트폰으로 촬영한 15분 이내의 영상만을 가지고 상을 주는 영화제였다.
그런데, 래원의 휴대폰에 고이 잠들어있을 뿐인 영상이 갑자기 최우수상 격인 ‘골든 트로피’를 탔다니⋯.
범인은 하나였다.
‘안정원 실장⋯!’
K드라마 천재로 회귀했다! 195화 – 리디북스
까다롭다 못해 악랄하기로 유명한 조민 기자의 호평에 어안이 벙벙한 것도 잠시,
국제 스마트 필름 페스티벌이라니⋯.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파악하는 게 먼저였다.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조 기자님. 제가 시간 날 때 다시 연락드릴게요. 식사나 한 끼 같이 하시죠!”
래원은 조민 기자와의 통화를 급히 마무리 짓고, 안정원에게 전화를 걸었다.
통화 연결음이 끝나기 무섭게,
“안 실장님! 제가 보낸 영상, 실장님이 출품하셨어요?”
소리친 래원의 말에 안정원은 태연하게 반응했다.
– 네. 좋은 건 혼자 보는 거 아니라고, 널리 널리 나누는 거라고 배웠거든요. 유튜브에 올릴까 어쩔까 하다가, 영화제 출품 공고를 발견했고, 마침 모집 기간이라서 넣었죠.
“하아⋯. 그래도 그렇지⋯.”
– 말씀드리려다가, 감독님 바쁘신데 신경 쓰실까 봐 서류랑 전부 제가 알아서 처리했던 거였어요. 안 그래도 지금 수상 소식 듣고 연락 드리려던 참이었는데⋯. 축하드려요, 감독님! 제 판단이 맞았죠?
만약 수상 못 했으면 안정원 혼자 조용히 넘어갈 요량이었나보다.
어쨌든 결과가 좋으니, 과정 또한 좋게 생각하기로 한 래원이었다.
“하아⋯. 네, 뭐. 조금 쑥스럽긴 하네요. 그게 이렇게 매스컴 탈 영상인가 싶고⋯.”
– 늘상 말씀드리지만 도 감독님은 기준이 너무 높으세요! 뭐어, 그래서 그 기준에 맞는 작품을 매번 만들어내시는 거겠지만요. 하하.
작품 이야기가 나오니 래원의 머릿속에 번뜩, 할 일이 떠올랐다.
“아, 실장님! 저 다른 용건도 있어요.”
– 네?
“영화 시나리오 쓰시는 조민시 작가님이라고요. 연락처 좀 구해주시겠어요?”
– 조민시 작가님이요?
안정원이 생소한 이름이라는 듯이 되물었다.
그녀 역시 모를 만한 인물이기는 했다.
“네, 정식 상업 입봉작은 아직 없는 신인 작가세요. 제가 이 분 공모전 수상이랑 인터뷰 링크 보내드릴게요.”
안정원은 전화를 끊은 후,
노트북을 TV 모니터로 연결하고, 국제 스마트 필름 페스티벌 홈페이지에 접속해 다큐멘터리 섹션의 골든 트로피’ 수상에 당당히 업로드 되어 있는 래원의 영상을 재생시켰다.
커다란 화면으로 보니 색다르게 느껴졌다.
늦가을의 사찰 풍경.
주지 스님의 목탁 소리.
살랑살랑 부는 바람이 영상 너머로 전해지는 듯했다.
딸기 농장에서 딸기를 따 먹는 어린아이들의 모습에서는 새콤한 딸기 향이 느껴졌고,
도자기 공방 장면에서는 장인의 손길과 도자기 곡선의 아름다움에 감탄이 터져 나왔다.
뿐만 아니라 떡갈비와 장어구이를 먹음직스럽게 화면에 담아낸 시퀀스를 보며 입에 절로 침이 고이기도 했다.
“제목. 한국의 오감(Five Senses of Korea) 누가 지었는지 완전 찰떡이야. 참 잘 지었네!”
안정원은 마치 자신의 성과처럼 뿌듯함을 느끼고 있었다.
그녀에게는 래원을 모시면서 느끼는 이 같은 만족감과 보람이 중요했다.
안정원이 다른 일을 마다하고 래원의 매니저를 자처하며 계속해서 자리를 지키는 것은 길게 보면 자신의 미래를 위해서이기도 했지만,
이렇게 이따금 찾아오는 행복감과 보람, 그리고 소속감을 포기할 수 없기 때문이기도 했다.
래원의 영상 밑에는 각종 외국어로 댓글이 달려있었다.
안정원은 웹 브라우저에 딸린 자동 번역기를 클릭해서 그 내용을 확인했다.
ㄴ 나는 이 영상에서 못 나가고 있다
ㄴ 휴식 같은 다큐멘터리!
ㄴ 한국에 가보고 싶어 🙂 갈비? 실제로 먹어보고 싶습니다
ㄴ 감독의 원래 직업은 드라마 피디? 놀라워!
ㄴ 이 사람이 찍은 드라마도 보고 싶어져
ㄴ 이 콘텐츠는 주목할 만합니다
ㄴ 저 생선 스테이크 정말 맛있어 보인다
ㄴ 딸기 아이들의 미소 햇살 😀 나도 같이 미소지어졌다 🙂
ㄴ 한국은 이토록 훌륭하게 전통과 현대가 공존합니까?
외신들의 기사 또한 반응이 좋았다.
특히 이 다큐멘터리 영상을 만든 래원의 본업이 드라마 감독이며, 차기작은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국 드라마 라는 후속 기사와 함께 파생되는 관심이 대단했다.
뜻하지 않게 홍보 수단이 된 것이다.
안정원은 자신이 출품한 것으로 래원에게 보탬이 된 것에 다시금 뿌듯함을 느꼈더랬다.
잔뜩 상기된 기분으로 래원이 부탁한 일을 처리하기 위해 노트북 앞에 앉았다.
“조민시⋯. 조민시⋯. 어딘가 익숙한 이름인데⋯.”
래원이 보내온 여러 시나리오 공모전 기사를 확인한 후, 해당 주최 측에 모두 연락을 돌리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누군지 생각났다! 조민시!”
안정원 또한 그 신인 작가에 대해 떠올렸다.
래원의 선택에 감탄하며 회심의 미소를 짓는 안정원이었다.
* * *
한편, 래원은 이튿날까지도 수상 소식으로 여러 곳에서 연락을 받고 있었다.
후작업이 한창인 팀들은 물론,
최근의 팀원들의 축하 메시지가 쏟아졌고,
아직 대외비로 진행 중인 영화 작업 관련 지인들도 인사를 보내왔다.
[강채령] 래원 감독님한테 또 자극을 받네요! 안주하지 않는 모습, 저도 배울게요~!뜻밖의 수상도 어안이 벙벙한 찰나에,
이 같은 연락이 몹시도 쑥스러운 래원이었다.
그중에는 오랜만에 소식을 전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황태수] 내 품 떠나더니 다큐까지 진출했냐? 축하한다! 도래원!래원의 SBC 드라마국 동기 단톡방도 오랜만에 떠들썩 한 분위기가 됐다.
[지혜영] 오빠는 우리 기수의 자랑이야>_< 새로운 도전 멋져! [래원] 너네 까지 이러지 말아라ㅎㅎ [유찬] 국제 스마트 필름 페스티벌은 또 뭐야? 추카추카추! 한턱 쏴야지! [래원] 몰라ㅎㅎ 내가 낸 거 아니고 우리 매니저님이 내셨더라고ㅎㅎ 나도 조민 기자한테 전화 받고 알았어 [지혜영] 그러고보니까 조민 기사 봤어? 해가 서쪽에서 뜨는 줄ㅋㅋ [유찬] 왜왜?? 뭔데?? [지혜영] 그 기자놈 원래 취미이자 특기가 트집 잡기잖아? [유찬] ㅇㅇ [지혜영] 근데 래원 오빠 수상 소식에 극찬해놨더라고? [유찬] 정말? 뭐지?? 조민 그 새끼 요새 더 악랄해졌다고 선배들도 속수무책이던데?이에 래원은 조민 기자의 기사를 검색해서 직접 확인해보았다.
지혜영의 말대로였다.
“이야⋯. 뭐지? 이거 완전 꿈보다 해몽인데?"
그냥 머리 식힐 겸 여행하며 찍은 영상이 이렇게 반응이 좋을 줄이야.
"어제 수상 축하 전화도 그렇고⋯. 조민이 안 하던 짓 하니까 이상하네⋯.”
강채령이 손을 썼을 리도 만무했다.
아니, 더 정확하게는 강채령이 손 쓴다고 쉽게 구워 삶아질 조민이 아니었다.
그는 이제 천하일보 강 사장과 대형 광고주들을 등에 업고 더욱 활개를 떨치고 다니는 중이었으니까.
“그러고보니 지난 번 제발회에서도 기사 잘 내줬었지⋯.”
래원의 머릿속에서는, 자신이 조민의 마음을 얻었다는 의심이 확신으로 번지고 있었다.
“진짜로 밥 한 번 사야겠네. 조민 기자님.”
어찌 됐건 특별 취급은 기분이 좋았다.
그 주체가 악명 높은 조민 기자일지라도 말이다.
아니 어쩌면, 조민이라서 더 색다른 뿌듯함이 밀려드는 것 같기도 했다.
* * *
– (도 감독님! 한 번 들어보세요. 대박입니다!)
드라마 의 음악감독이 새벽같이 음원과 메시지를 보냈더랬다.
지금 런던은 밤이었다.
음악 감독 같은 올빼미족 사람들이 가장 활발하기 일할 시간 말이다.
래원은 잠이 깨지 않은 상태로 음원을 재생시켰다.
30초가 채 안 되는 짧은 음원에서 루아의 음색이 들려왔다.
When I was young ♪♬
I wanted to be a super hero- ♪♬
아직 마스터링은 물론 간단한 믹싱 조차 거치지 않은 날 것의 소리.
물론 루아의 이 결과물 자체가 인간이 부른 음성에 AI 시스템으로 한 번 기계를 거친 터라 완전히 날 것이라고는 할 수 없으나, 어쨌든 우리 음악감독의 손길이 닿기 전이니 그런 셈 쳐도 좋을 듯했다.
– (루아 최고죠? 와⋯. 이렇게 잘 해낼 줄은 몰랐습니다! 도 감독님 아니었으면 이런 친구를 놓칠 뻔했어요!)
음악 감독의 흥분이 래원에게도 전해졌다.
자신의 곡을 이토록 소화한 아티스트를 만났으니 이런 반응을 보이는 것이 당연했다.
지금도 이렇게 중간 과정을 래원에게 공유할 필요가 전혀 없었지만, 이 흥분감을 래원과 나누고 싶었던 것 같다.
래원도 반복해서 들어 보았다.
들으면 들을수록 사람의 마음을 울리는 무언가가 느껴졌다.
루아의 음색 자체는 청량하고 부드러우나,
그 안에 형용할 수 없는 어떤 힘이 있었으니까.
– (이거 공개되면 반응이 어떨지 기대되는데요?)
래원 또한 그랬다.
전생에는 접점이 없었던 ‘1세대 버츄얼 팝스타’ 루아(RUA).
그녀의 노래가 래원의 드라마를 통해 전세계인을 만나게 된다는 사실에 설렘이 일었다.
* * *
“안녕하세요, 조민시 입니다.”
앞머리를 내린 흑갈색 단발머리에, 까만 뿔테 안경, 검은 블라우스, 그리고 블랙진에 검정 힐을 신은 20대 중반의 여인.
조민시 작가의 첫인상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새까맸다.
단정한 느낌이 들면서도 어딘가 함부로 대할 수 없는 카리스마도 느껴졌다.
그녀가 안경 너머로 까만 눈동자를 빛내며 래원을 빤히 보았다.
래원이 빙긋이 웃으며 입을 열었다.
“반갑습니다, 작가님.”
“저도요. 도 감독님 드라마, 시청자로서 되게 재밌게 봤거든요. 영화 작업에도 뛰어드실 줄은 몰랐어요.”
어딘가 긴장한 듯한 그녀를 풀어주려 래원은 농담처럼 말을 이었다.
“영화 쪽에서는 햇병아리입니다. 저도 작가님이랑 다를 게 없어요.”
하지만, 곧 조민시의 긴장을 걱정한 것은 기우였음을 알게 됐더랬다.
“시나리오 꼼꼼히 읽어봤어요. 전체적으로 재밌었습니다. 특히 구성이랑 캐릭터가 인상적이었어요.”
본격적인 일 이야기로 넘어가자 까만 뿔테 안경을 고쳐 쓰며, 천천히 조곤조곤 의견을 내놓기 시작하는 조민시였다.
“다만, 대사를 조금 다듬으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요, 장면 순서나 연출적인 측면도 감독님 만나 뵈면 상의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래원은 그녀의 말에 딱히 부정하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았다.
나긋나긋한 말투 자체에서 사람을 묘하게 설득하는 기운이 느껴졌으니까.
아직 입봉 경력이 없다는 게 무색할 만큼, 똑부러지는 그녀였다.
‘이런 작가니까 훗날 같은 시나리오를 썼지⋯.’
래원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고,
조민시는 용기를 얻은 듯 말을 이어나갔다.
“무엇보다 감독님의 기획 의도가 정말 마음에 들었어요. SNS로 타인의 삶을 너무나 쉽게 들여다볼 수 있는 시대면서 동시에, 타인의 진실은 아이러니하게도 구석 깊숙이로 가려지는 시대⋯. 크으!”
“하하하. 고마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