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 reverted to being a K-drama genius RAW novel - Chapter 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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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팍팍 밀어줄 거야
– 우리 다음에 다시 만나면, 나한테 존칭 생략하고 말 편하게 하겠다고 했던 약속. 기억하죠, 래원 피디님?
“하하하. 그랬었죠.”
래원은 멋쩍게 웃었다.
드라마 종방연 때, 살짝 취한 그녀와 나눴던 대화가 문득 생각났기 때문이다.
‘나 아직도 피디님한테 그냥 배우님이에요? 말 좀 편하게 할 순 없나···?’
‘하하. 다음번에 뵈면 그렇게 할게요.’
‘그 약속, 꼭 지켜요. 래원 피디 연출 입봉작 주연은 내가 찜했으니까.’
그때도 그랬고, 지금 전화로 들려오는 엄하늘의 목소리에서도 진심이 느껴졌다.
– 그 약속, 이번에 지키실 기회 드릴게요.
“이거 미니시리즈 아니고 4부작 단막극인데, 정말 괜찮으시겠어요, 배우님···?”
– 나 그런 거 가리는 배우 아니에요. 벌써 대본까지 다 봤는데요? 엄청 재밌더라구요. 나한테 맞는 주연도 있고.
“··· [마리코] 역, 말씀이세요?”
– 네, 마리코. 우리 통했네요? 래원 피디님도 대본 읽으면서 그 역할에 내 생각했나 봐?
“하하. 나이대도 맞고 이미지도 잘 어울리셔서, 하늘 배우님이 해주시면 저야 너무 감사하죠!”
캐스팅 첫 단추부터 완벽하게 들어맞는 배우로 끼워진 순간이었다.
래원이 통화하는 것을 옆에서 가만히 듣고만 있던 유찬과 지혜영도, 무언의 쾌재를 불렀다.
– 대본도 좋구 매력적인 캐릭터예요. 마리코가 일종의 탐정인 거잖아요? 안 해본 거라 재밌을 거 같아요. 성장캐라는 것두 맘에 들구요.
“감사합니다. 그럼 조만간 정식으로 마 대표님 뵙고 진행할게요.”
래원이 전화를 끊자,
유찬과 지혜영이 흥분해서 소리쳤다.
“우와!!!! 엄하늘? 대애바악!!!”
“드라마의 중심을 잡고 이끄는 역할이니깐, 마리코에 엄하늘이면 완전 든든하지! ”
“그럼 남주 [안승헌], 여주 [노미령]도 주연급으로 가즈아!!”
“그럼 노미령 약혼남 [박규산 남작]은 구민준으로 가고, 미스터리한 여인 [연홍]은 유하나로 가즈아!!”
“너네 덤 앤 더머냐? 세트 정신없어. 진정 좀 해봐.”
“형은 진정이 돼 지금? 청춘 런웨이 때 엄하늘 모셔오려고 우리 드라마국 전체가 난리난리였잖아. 근데 지금 엄하늘이 제 발로 우리 꺼 하겠다는데, 진정이 되겠냐고요!”
유찬의 목소리가 두 배로 커졌다.
“알겠어, 알겠으니까. 민준이랑 유하나한테는 내가 연락해볼게.”
“오케이. 주말에 갑분 회의한 보람이 있네에!”
“그럼 이제 진짜로 [안승헌], [노미령]만 남은 거네? 우리 완전 속전속결이다.”
딤섬 먹다가 갑자기 일 이야기 꺼낸다며 투덜대고 볼멘소리를 내던 지혜영과 유찬은, 이제 온데간데없었다.
두 조연출의 눈이 의욕에 차서 반짝였다.
“레장여 파이팅!! 시청률 1위 가즈아!!”
“‘레장여’가 뭐야? 설마···.”
“응, 누나가 지금 생각하고 있는 그거 맞아. 의 줄임말.”
유찬이 자랑스레 답하자, 지혜영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어우, 요새 어린 것들은 왜 이렇게 줄임말을 좋아해? 막내답다, 막내다워. 역시 우리 팀의 유일한 20대 중반.”
“뭐야, 누가 들으면 내가 엄청 막내인 줄 알겠네! 누나랑은 1살, 형이랑은 2살 차이밖에 안 나거든!”
피식-
래원은 이 두 사람이 티격태격하는 게 귀여워서 불쑥 웃음이 났다.
“오빠는 왜 웃어?”
“아, 아냐. 그냥.”
“형도 내 말에 동의한다는 뜻에서 웃은 거지? 레장여. 괜찮지 않아?”
“어. 그래. 괜찮은 걸로 하자.”
“그럼 우리 이제 오늘 밥값은 다 한 거 같으니까 2차 갈까? 어때, 형?”
“2차 좋지, 좋은데···. 우리 말고 한 사람 더 같이 가자.”
“한 사람 더? 누구?”
“여기로 온댔어. 소개해 줄게.”
잠시 후,
래원이 이 딤섬 집 안으로 들어오는 누군가에게 손짓했다.
“이쪽이에요!”
지혜영과 유찬은 고개를 돌려서 그쪽을 쳐다보았고,
20대 초반 정도로 앳되어 보이는 한 여자가 쑥스러워하며 다가왔다.
“아.. 안녕하세요.”
“인사드려. 이쪽은 김윤하 작가님.”
래원이 일어나서 김윤하를 소개하자,
유찬과 지혜영도 벌떡 일어났다.
“아, 레장여 작가님! 처음 뵙겠습니다, 조연출 유찬입니다. 대본 완전 재밌게 읽었어요.”
“안녕하세요, 조연출 지혜영 입니다. 잘 부탁드려요.”
“제..제가 잘 부탁드려요. 피디님들.”
“그럼, 우리 2차는 어디로 갈까? 작가님, 뭐 드시고 싶으세요?”
“아.. 저..저는 다 잘 먹어서···. 유찬 피디님은 뭐 좋아하세요?”
“저희는 딤섬 많이 먹었어요. 김 작가님이 드시고 싶은 데로 가요.”
“아.. 그래두···. 그럼 지혜영 피디님은요?”
“저도 작가님이 고르시는 곳으로 가고 싶어요.”
“아.. 그..그럼 래원 감독님이 골라주세요.”
“하하하. 그러면 우리, 하나둘셋! 하면 다 같이 동시에 먹고 싶은 거 말하기. 어때요?”
“작가님은 또 아무 말씀 안 하실 거 같은데요?”
“아무 말 안 한 사람은 벌주로 소맥 원샷!”
“저.. 저는 술 잘 못 마시는..데..”
“술 안 드시려면, 하나둘셋! 했을 때 빼지 말고 먹고 싶은 거 말하면 돼요.”
“네에..”
래원이 호흡을 고른 후 다시 입을 열었다.
김윤하, 지혜영, 유찬은 타이밍을 놓치지 않으려 래원을 쳐다보며 침을 꼴깍 삼켰다.
“좋아요. 자아, 그럼. 하나..둘..셋!”
“치킨!” “치맥!” “파닭!” “통닭!”
네 사람은 같은 메뉴를 동시에 서로 다르게 외쳤다.
“푸하하. 이렇게 잘 통할 일이야?”
“이럴 거면서 왜 서로 양보했대?”
“하하. 너..너무 웃겨요.”
“자아, 그럼 길 건너 치킨집으로!”
딤섬 집을 나선 네 사람은, 달달한 밤공기를 마시며 나란히 걸었다.
“맞다, 작가님. [마리코] 역할 엄하늘 배우가 해주기로 했어요. 괜찮죠?”
“어..엄하늘이요?”
김윤하 작가의 입이 떡 벌어져서 다물어질 줄을 몰랐다.
“하하. 우리 작가님 귀여우시다.”
“찬아, 작가님 놀리지 마라.”
“아.. 저.. 괜찮아요. 엄하늘이라니, 너..너무 좋은데요? 수고하셨어요, 도 감독님.”
“그리구 [박규산 남작]은 민준이한테 연락해볼까 하는데 어때요, 구민준?”
“아.. 저 ‘재벌의 세계’ 봤어요. 저..저는 거기 나오는 인물 중에, 구민준 배우가 했던 강인이 제..제일 좋았어요.”
“그쵸? 저도 재성이 보다 강인이 너무 멋있더라구요. 서브 남주 전문 배우인 줄!”
지혜영이 김윤하의 말을 거들었다.
“다행이다. 그럼 제가 연락해볼게요. [연홍] 역에 유하나는 어떨까요?”
“이..이미지가 잘 맞네요. ‘청춘 런웨이’때 연기도 괜찮았고요.”
“우와. 작가님 청춘 런웨이도 보셨어요?”
김윤하의 대답에 래원이 놀라며 되물었다.
“아.. 도 감독님 성함이 조연출 크레딧에 있길래요..”
“하하. 진짜요? 감사해요. 우리 이제 주요 캐스팅은 [안승헌], [노미령]만 남았어요.”
“세..세 명 주인공 중에 두 명이 남았네요.”
“네. 대본 쓰시면서 이 두 배역에 생각하셨던 배우 있으세요?”
“저.. 저는 감독님이 캐스팅하시는 배우라면 누구든 좋을 거 같아요.”
“그래두 생각나시면 말씀 주세요. 작가님 의견도 중요하니까요.”
래원은 김윤하, 지혜영, 유찬과 나란히 걸으며 왠지 모르게 마음이 놓였다.
이제부터 할 일이 산더미인데도 말이다.
‘이 팀워크라면 뭐든 해내겠는데?’
* * *
며칠 후, SBC 드라마국.
황태수 부장이 전화를 끊고는 래원을 향해 소리쳤다.
“도래원, 지금 미팅 준비해.”
“갑자기 미팅이요?”
“지금 ‘화이트 엔터’ 마 대표가 엄하늘이랑 양수호 데리고 오고 있대. 우리 만나러. 1시간 후 도착.”
“아.. 네! 알겠습니다. 근데 양수호는 왜요?”
“’레장여’에 캐스팅된 거 아니었어?”
“선배님도 ‘레장여’라고 부르시네요.”
“짧고 편하잖냐. 바빠 죽겠는데 언제 그 긴걸 다 부르고 앉았어.”
유찬이 퍼뜨린, 의 줄임말 ‘레장여’가 어느새 모두의 입에 붙어버렸다.
“아, 근데. 잠깐만요. 양수호가 캐스팅 됐다구요? 우리 드라마에요?”
“어? 아냐? 난 그렇게 들었는데. 그래서 인사하러 오는 거라고.”
“··· 우리 모두가 아는 그 양수호 배우요?”
“그렇다니깐. 마 대표가 데리고 있는 그 양수호!”
30대 초반의 한류 스타 배우, 양수호.
‘화이트 엔터’의 간판 배우 양대 산맥이 바로 엄하늘과 양수호였다.
2년 전, 한류 열풍의 주역으로 휘날리다가, 몸값 최고조의 시기에 돌연 입대를 했다.
군 복무를 더는 미룰 수 없는 나이였기 때문이다.
그의 입대날 전 세계 팬들은 생중계를 보며 오열했다.
논산 훈련소로 수천 통의 편지가 쏟아져서 군 당국이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그랬던 그가 이제 한 달 후, 드디어 전역한다.
“··· 양수호가 복귀할 때가 되긴 했죠. 근데 저는 금시초문인데요? 양수호가 캐스팅되면 당장 엎드려 절 할 만큼 좋은 일이긴 한데···. 양수호가 4부작 단막극에? 에이, 그럴 리가 없잖아요?”
“나도 그래서 깜짝 놀랐잖냐. 무슨 수로 양수호를 잡았나 했지. 근데, 너도 모르는 일이라고?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CP인 선배님도 모르시고, 담당PD인 저도 모르는 캐스팅이 언제 된 건데요?”
“··· 곧 만나보면 알겠지.”
* * *
한편, 이 시각.
올림픽대로를 달리며 SBC로 향하는 하얀색 스타크래프트 밴 한 대가 있었으니.
마 대표와 엄하늘, 그리고 양수호가 탄 밴이었다.
“대표님, 저 이거 꼭 해야 해요?”
“나 말고 하늘이한테 말해 봐.”
반삭으로 까까머리를 한 양수호가 머리를 매만지며 곤란하다는 듯 징징댔으나,
마 대표는 팔짱을 낀 채 엄하늘의 눈치만 봤다.
“누나, 나 일제강점기 시대극은 안 해봐서 부담스러운데···.”
“잘됐네. 그럼 이번 기회에 해보면 되지. 배우는 안주하면 안 돼. 항상 새로운 역에 도전해야지.”
엄하늘은 완고했다.
“아아, 누나아···.”
“수호 너, 내가 2년 동안 해다 준 싸인이 몇백 장이고, 내가 면회만 몇 번을 갔는데! 누나 덕에 군 생활 편하게 했다며! 은혜 갚는다며! 지금이 바로 그 타이밍이야.”
“······.”
“누나가 나 좋자고 이래? 다 너 위해서 이러는 거지. 2년이나 쉬어놓고 바로 미니시리즈나 블록버스터 영화 들어가 봐, 너만 힘들다?”
“그건 그렇다, 수호야. 전역하자마자 연기력 논란은 곤란해.”
“그래, 네가 연기 신이나 연기 기계도 아니고···. 단막극으로 몸 좀 풀고, 카메라 마사지도 받고 나서 큰 작품 가야 연기도 잘 나오지.”
“대본은 신인 작가 거라 약간 거칠긴 한데 재밌긴 재밌어. 흔하디흔한 로맨스도 아니고, 미스터리 스릴러라 수호 너랑 무드도 어울리고.”
“그래, 오빠가 저렇게 말하는 건 진짜 괜찮은 거라니깐? 단막극이라고 우습게 보지 말고 대본부터 봐봐, 양수호.”
“대본 대충은 봤어요.”
“대충 말고 찬찬히 봐야지! 영화 뺨친다? 그 연출자도 엄청 주목받는 신인 감독이고.”
그 말에 양수호가 대본 첫 장에 있는 이름을 확인하며 되물었다.
“도래원? 처음 보는 이름인데?”
“야, 이 업계가 2년 전이랑 똑같겠냐? 너 없는 동안 많이 변했어. 네가 아는 게 다가 아니야.”
이 말에 마 대표가 엄하늘을 힐끔 쳐다보았다.
이번에 단막극 입봉하는 피디가 언제부터 주목받는 감독이었냐는 눈빛이었다.
허나 엄하늘은 헛기침을 하며, 모른 척 할 뿐이었다.
“뭣보다 네 역할이 완전 기가 막히게 멋있어. 누나 믿고 해봐.”
“··· [안승헌] 그 역할? 전 한 번 읽어서는 잘 모르겠던데···.”
“양수호. 네가 그러니까 안 되는 거야. 너 지금까지 네가 혼자 고집부렸던 시나리오나 대본으로 잘 된 적 있어?”
“··· 아뇨.”
“그럼 오빠나 내가 추천해줬던 작품은?”
“다 잘 됐죠···.”
“특히 내가 하라고 했던 작품으로 후회한 적 있어?”
“없죠···.”
“그래. 도 넌 끝까지 하기 싫댔는데 누나가 계속 강추했던 거 기억해?”
“··· 네에.”
“너 그걸로 한류스타 됐잖아. 이번에도 잘 될 거야. 단막극이라고 얕보지 말라니까.”
“······”
“그럼 이제 토 달기 없기?”
엄하늘은 이제 말 그만 시키라는 듯이 눈을 감고 기댔다.
밴 안이 금세 조용해졌다.
이윽고,
이 밴은 미끄러지듯 SBC 신관 로비 앞에 도착했다.
마 대표와 양수호 그리고 엄하늘이 차례로 내렸다.
이들이 드라마국으로 올라가는 동안, 방송국 사람들의 이목이 쏠렸다.
“헐? 양수호?”
“반삭도 존잘이다!”
“벌써 전역했어?”
“복귀작이 우리 방송국 꺼야?”
특히 여직원들은 양수호를 보고 어쩔 줄 몰라 했다.
그들은 사람들의 관심을 뒤로하고 곧바로 드라마국 회의실로 들어섰다.
이 국장과, 황태수 부장, 그리고 도래원 PD가 세 사람을 반겼다.
“하늘이는 일찌감치 이야기된 거 들었는데, 수호 캐스팅은 우리 황 부장도 도 피디도 금시초문이라던데 어떻게 된 건가요, 마 대표?”
이 국장이 화이트 엔터 사람들을 향해서 먼저 물었다.
이에 엄하늘이 마 대표에게 눈짓을 보냈고,
“솔직히 말씀드리면, 이 작품은 하늘이가 회사랑 수호한테 강력 추천한 작품입니다.”
엄하늘이 뒤이어 입술을 뗐다.
“이야기가 잘못 전해졌나 보네요. 아직 캐스팅이 된 건 아니구요, 수호 캐스팅은 메인 연출자이신 도 피디님이 직접 보고 판단하실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오늘 인사드리러 온 거구요. 수호야, 인사해. 이쪽이 도래원 피디님.”
양수호는 세간의 소문과 달리, 엄하늘 앞에서 말 잘 듣는 순한 양이었다.
“안녕하세요. 양수호 입니다.”
“아, 안녕하세요. 연출을 맡은 도래원 입니다.”
“어떠세요, 도 피디님? 우리 수호, [안승헌] 역할로 딱 이지 않아요? 지금 머리도 반삭이라 딱 느와르 비쥬얼이구요.”
엄하늘이 눈을 반짝이며 상기된 말투로 말했고,
이 국장과 황태수 부장은 어안이벙벙해서 끔뻑끔뻑 보고만 있었다.
‘양수호라면 이미지도 찰떡이고,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무조건 오케이 아닌가? 근데 뭘 물어?’
사실 이 국장의 심기는 편치 않았다.
이 작품의 황태수CP와 도래원PD는 이 국장이 경계하는 김 부국장 라인의 후배들이기 때문이다.
반면, 황태수는 속으로 만세를 부르짖고 있었다.
‘레장여, 대박 예감!’
엄하늘과 양수호는 래원을 뚫어져라 보며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래원이 그들을 향해 차분히 입을 열었다.
“이건 제가 선택할 입장까진 아니고, 솔직히 선택받는 입장이네요. 양수호 배우님이면 가타부타할 것도 없이 감사합니다죠. 다만 저는,”
래원은 양수호의 두 눈을 똑바로 보며 말을 이었다.
“배우님께서 나중에 돌이켜봤을 때, ‘복귀작으로 찍길 잘했다!’고 후회없이 만족할만한 작품으로 보답하겠습니다.”
래원은, 양수호가 엄하늘에 의해 거의 끌려오다시피 했다는 걸 눈치챘기에 이 말을 꼭 건네고 싶었다.
양수호에게 하는 선언이자, 래원 자신에게 하는 다짐이기도 했다.
이제 회의실에 감돌던 긴장은 풀어지고, 한층 화기애애해졌다.
이 안에서 불편한 것은 이 국장은 한 사람뿐이었다.
그는 불편한 속내를 애써 감추며 입을 오므렸다.
“저는 솔직히 지금 이 상황이 이해가 잘 가질 않아서···.”
산통을 깨는 듯한 이 국장의 말에 모두가 그를 쳐다보았다.
“아 물론, 드라마국 국장으로서 감사한 일이고 두 팔 벌려 환영할 일이지만···. 수호 복귀작으로 대작 시나리오나, 미니 대본도 많이 들어갔을 텐데. 수호가 굳이 4부작 단막극을 택한 이유가 궁금합니다만. 대체 뭘 믿고?”
“전.. 하늘 누나의 추천을 믿습니다. 데뷔 때부터 제 오랜 은인이거든요.”
양수호가 아까 인사할 때와는 다르게 분명한 어조로 답했고,
이에 이 국장은 자기도 질문이 이상하다는 걸 깨달았는지 주저리주저리 변명을 덧붙였다.
“아 물론, 우리 드라마가 별로라는 소리는 아냐. 원더빅에서 투자도 받았고, 우리 배미란 사장님도 주목하는 작품이고, 우리 드라마국에서도 미는 작품이긴 하네만···.”
엄하늘이 미간을 찌푸리더니 이 국장의 말 사이로 끼어들었다.
“작품 자체도 믿지만, 저는 도래원 피디님을 믿어요.”
“도 피디를···? 아, 하늘이 저번에 청춘 런웨이 때 같이 했었지. 근데 그땐 도 피디, 그냥 조연출이었잖아?”
“‘그냥’ 보통의 평범한 조연출은 아녔죠. 국장님도 아시다시피요.”
“그..그랬지. 도 피디가 연차에 비해 출중하긴 하지.”
“그때 알았어요. 도 피디님은 분명 미래에 대박 감독이 되실 거란 걸···. 제 안목은 한 번도 틀린 적이 없으니까.”
“······”
더 할 말이 없는 이 국장은 입을 다물었다.
“미래를 위한 투자 정도라고 이해해주시면 되겠네요. 전 배우 생활 길게, 오래 할 거라서요.”
순간, 회의실에 정적이 흘렀다.
“자, 회의 끝났으면 우리 식사하러 가실까요? 마 대표님이 한턱 내신대요. 그쵸, 대표님?”
엄하늘이 눈웃음을 치며 마 대표를 보았다.
“아, 그..그럼요. 오늘은 제가 사야죠. 저희 하늘이랑 수호 차기작 맡아주실 분들인데···.”
“전 화장실 좀 다녀올게요. 엘리베이터 앞에서 뵙죠.”
엄하늘이 또각또각 힐 소리를 내며 먼저 나갔고,
“난 됐어. 맛있게들 먹어.”
이 국장이 뒷짐을 지고 자기 방으로 돌아갔다.
이 작품이 잘 될 조짐에, 상당히 심기가 불편해 보였다.
이에 황태수와 래원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 눈을 마주치며, 피식- 웃었다.
마 대표와 양수호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래원에게 악수를 청했다.
“잘 부탁드립니다, 감독님.”
“제가 잘 부탁드려야죠. 같이 좋은 드라마 만들어봐요.”
모두가 회의실을 나서서 엘리베이터 앞으로 모였다.
엄하늘이 화장실에서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지이잉—
휴대폰 진동음에, 래원은 메시지를 확인했다.
[엄하늘] 이번 드라마 내가 사활을 걸었으니까, 래원 피디님은 약속이나 꼭 지켜요.뜻밖의 발신인에 래원은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또각. 또각. 또각 —
“저번에 요 앞 중화요릿집 괜찮았는데, 거기 가실까요?”
엄하늘까지 모두 모였다.
이 소리에 래원이 돌아봤고, 엄하늘과 눈이 마주쳤다.
엄하늘은 래원의 반응을 보며 빙긋 미소지었다.
‘단막극이래도, 어쨌든 래원 피디가 처음으로 메인 연출을 맡은 작품이잖아? 내가 팍팍 밀어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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