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 reverted to being a K-drama genius RAW novel - Chapter 58
– 여보세요.
“하람 감독님, 우리 음악 더 자극적으로 쓰셔도 될 거 같아요. 스코어든 프리익지스팅이든지 감독님 하시고 싶으신 대로요.”
– 예를 들면 어떤···?
“그 과거 회상 장면마다 슈베르트 쓰기로 했던 거요.”
– 네네.
“거기에 맨 처음에 들려주셨던 리스트 음악도 장면 상황이나 분위기에 따라 섞어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 저야 좋죠. 근데 갑자기 생각이 바뀌신 이유를 여쭤봐도 될까요, 도 감독님?
“요즘 대중들은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자극적인 것에서 재미와 힐링을 받는 것 같더라고요. 마치 매운 음식을 먹으면 스트레스가 풀리는 것처럼요.”
– 그렇긴 합니다. 요즘 막장 드라마가 줄줄이 히트하는 것만 봐도요.
“우리 극 자체의 정서에 맞추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걸 받아들이는 시청자들의 기준에 맞추려면 하람 감독님이 제안 주셨던 것과 제 의견을 절충하면 딱 좋을 거 같다고 생각했어요.”
– 네, 좋습니다, 감독님. 잘 만들어서 드려볼게요!
“수고 많으십니다.”
래원은 하람 감독과의 전화를 끊고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2주 후, 래원의 미니시리즈 입봉 제작 발표회는 오늘 같은 식이어서는 안 된다. 절대로.
* * *
“컷! 오케이! 수고하셨습니다. 다음 씬 넘어갈게요.”
제작 발표회는 보름 남짓,
첫 방송은 3주 정도 남겨놓은 시점.
오늘의 촬영장인 예화 예고에서
백여 명의 스텝과 배우 모두가 치열하게 임하고 있었다.
촬영은 오늘로써 전체 분량의 60% 정도에 도달한 상태로, 중반부를 넘어가는 중이었다.
그동안 담임 교사인 [박태하]에게 삐딱하게 굴며 반항하던 [이지은].
그녀는 [이소은]의 기일에, 언니의 죽음에 대한 의문점을 [박태하]와 공유하면서 비로소 그에게 마음을 연다.
이 장면이 지금 바로 촬영할 분량이다.
교실에 앉아있는 [박태하]와 [이지은].
그리고 교환일기 너머로 그들을 지켜보는 [이소은].
일종의 판타지적인 연출이었다.
촬영팀이 카메라를 바꾸고 준비할 동안,
래원은 세 배우와 리허설을 해보았다.
.
.
“언니는 그때 ‘지은아, 만약에 내가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지거나 하면···.’ 같은 말을 자주 했었어요.”
“나랑 다닐 때도 뒤에 누가 쫓아오는 건 아닌지 자주 돌아보곤 했었어. 원래 그런 아이가 아니었는데··· 죽기 전에 유독 그랬었던 기억이 난다.”
이어서 박태하가 교환일기를 펼친다.
누렇게 변한 종이에 남아있는 빛바랜 흔적.
「 무엇인가를 알게 된다는 것에는, 그만한 책임과 대가가 따른다. 세상에는 몰라도 되는 것들이 많은 것 같다. 내가 지금 아는 모든 것을 몰랐던 때로 시간을 돌리고 싶다. 」
이소은의 글씨체.
“소은이가 누군가한테 쫓기거나 협박당하고 있었던 걸까···?”
“어쩌면, 언니의 죽음이 단순한 사고가 아닐지도 몰라요, 선생님.”
“······.”
“7년 전 그 교통사고. 저랑 같이 다시 조사해보실래요?”
.
.
그런데, 리허설을 해본 양수호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도 감독님, 여기 마지막에 이 대사를 [이지은]이 치는 게 맞나 싶어요. [박태하]가 쳐야 하는 대사 아닌가요?”
래원이 그의 곁으로 다가가자
대본을 가리키며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는 양수호.
“제 느낌에는 오히려 [박태하]가 ‘너희 언니의 7년 전 그 사고. 나랑 같이 조사해보자, 지은아.’ 하며 다가가야 캐릭터에 맞는 것 같거든요.”
“아, 뭐 그것도 가능은 하겠습니다만, 그게···.”
“그동안 [이지은]은 시크하게 세상만사에 관심 없는 인물로 그려졌잖아요. 반면 [박태하]는 이 학교에 온 뒤로 줄곧 [이소은]과의 과거를 떠올렸던 인물이고요. 그러니까 그 대사는 [박태하]가···.”
“아니죠. 그 대사는 [이지은] 것이 맞아요, 수호 오빠.”
류지현이 양수호의 말을 자르며 이 대화에 합세했다.
“모든 것에 시큰둥하던 [이지은]이 비로소 관심을 갖게 되는 것이 생기는 장면이잖아요. 역으로 이 씬으로, [이지은]이 언니의 죽음을 겪고서 세상에 무관심해졌다는 개연성도 생기고요. 그러니 그 대사는 [이지은]이 해야, 장면의 목적에 맞고 캐릭터 동력에도 변화가 생겨요, 수호 오빠.”
만만치 않은 기세로 자신의 대사를 지키려는 류지현.
금세 류소현도 한마디 거들어 동생 편을 든다.
“수호 오빠, [이지은]은 원래 이런 대사를 치는 아이예요. 앞에서는 이 캐릭터를 죽이고 살았던 것뿐이고요.”
“그건 직접 연기하는 우리 입장이지, 소현아. 시청자들이 보는 걸 생각하면 그동안의 [이지은] 캐릭터랑은 붕 뜨게 너무 적극적인데···. 감독님, 전 도저히 납득이 안 가요. 캐붕 같아서···.”
미간을 찡그리며 타협점을 찾지 못하는 세 배우.
“··· 그럼, 이렇게 하면 어떨까요?”
래원의 말에 배우들의 머리에 물음표가 띄워졌다.
“대본대로 [이지은]의 대사로 남겨두되 뉘앙스를 조금 바꾸는 거죠.”
“어떻게요?”
“‘저랑 같이 다시 조사해보실래요?’ 가 아니라, ‘다시 조사해봐야 할 것 같아요···.’ 정도로요. 여기에 [박태하]가 대답을 하기보다는, 결심이 선 듯한 강렬한 눈빛으로 [이지은]을 바라보며 무언의 긍정을 보내고요.”
이 같은 제안에 다행히 양수호와 류 자매, 양측 모두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특히 류지현의 얼굴에서 자신의 대사를 지켰다는 안도감이 느껴졌다.
“수호 선배, 이 장면에서 박태하는 대사보다 화면으로 승부해보죠? 그게 더 강하게 와닿을 거 같아요. 제가 촬영 감독님이랑 잘 찍어 볼게요.”
래원이 한 마디 더 보태자,
양수호도 비로소 만족하는 듯했다.
지금 다들 잘하려는 마음이 앞서다 보니 예민해진 듯했다.
래원은 그런 배우들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었다.
그들을 다독여서 최고의 컨디션으로 카메라 앞에 서게 하는 것 또한 감독의 역할이니까.
* * *
래원은 그간 1주일 내내 촬영장과 편집실에서만 살다시피 했다.
그리고 오늘, 1주일 만에 집에 일찍 들어왔다.
TV에서는 1화가 방영 중이었다.
래원은 소파에 쓰러지듯 기대어 이를 모니터하기 시작했다.
옥영임 작가의 말대로 현실을 잊고 몰입할 수밖에 없는 막장 그 자체였다.
극 중 배경은 2040년.
세계적 굴지의 기업들과 마찬가지로 대한민국의 대기업들 역시 ‘화성 테라포밍 사업’에 열을 올리고 있다.
“2032년까지 밖에 안 살아봐서 2040년에 과연 저럴까 모르겠네···. 뭐, 요즘 전기차 사업에 다들 뛰어드는 거랑 비슷한 거겠지?”
래원은 스스로 개연성을 만들어가며 이 드라마를 이해해보려 애썼다.
래원이 파악한 바에 따르면,
굴지의 두 기업 사이에 이 사업을 따내고 성공시키기 위해 목숨을 건 경쟁을 벌이는 것이 메인 플롯이었다.
그들이 서로에게 심어놓은 스파이 직원과, 그로 인해 벌어지는 사내 왕따와 죽음까지.
70분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자극적이긴 하지만 다음 화가 궁금하게 만드는 것만큼은 성공한 듯 보였다.
래원은 곧장 휴대폰을 통해 관련 기사와 시청자들의 반응을 살피기 시작했다.
[ 스페이스 캐슬 – 막장의 끝판왕? OR 인류의 미래? ]ㄴ 2040년이면 20년 후인데 저런다고?
ㄴ 옥영임 작가 상상력은 실제를 이기고도 남는다니깐ㅋㅋㅋ
[ 옥영임 표 힐링 막장, 1화 방영 직후 전개에 대한 기대감UP! ]ㄴ 이게 힐링이면 세상에 상처받은 사람 아무도 없어야 한닼ㅋㅋ
ㄴ 요새 개나 소나 힐링이지ㅅㅂ
[ ‘화성 테라포밍 프로젝트를 둘러싼 암투’ 스캐 남주의 외계인설?! ]ㄴ 미쳤네ㅎㅎ 갑분 외계인?ㅎㅎ
ㄴㄴ 옥영임이라면 쌉가능
ㄴㄴ 외계인은 못 참지ㅋ 닥본사ㄱㄱ
ㄴ 이 드라마에 ‘왜?’는 없다. ‘와!’만 있을 뿐임ㅅㄱ
ㄴㄴ 개연성은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걍 보라는 거임? 너무 한데?
드라마 첫 방송에 대한 시청자들의 반응은 나쁘지 않았다.
물론, 하인혁이 아니라 래원의 입장에서 말이다.
그리고 이제 의 제작 발표회가 한 주 앞으로 다가왔다.
K드라마 천재로 회귀했다! 59화 – 리디북스
* * *
내가 기억하는 넌 ♪♬
실제의 너였을까
우리 다시 볼 수 있을까
시간의 끝에서- ♬
청량하면서도 감미로운 OST가 배경음악으로 깔리며 기대감을 배가시키는 가운데,
문학 시간. 박태하가 교실을 돌아다니면서 과제를 하는 아이들을 살펴보다가 이지은의 책상 앞에 우두커니 멈추어 선다.
“소은아, 오늘 너처럼 히읗에 아래 ㅇ을 먼저 쓰고, 윗부분을 나중에 쓰는 애를 만났어.”
– 첫사랑을 잊지 못하는 문학 교사 [박태하]
“어릴 때, 히읗은 이응에 모자 씌워주는 거라고 배웠더니 커서도 안 고쳐지네?”
“큭큭큭. 그게 뭐야. 지금이라도 고쳐. 너 어른 돼서도 그렇게 쓸 거야?”
“무슨 상관이야. 내가 히읗을 어떻게 쓰든 아무도 관심 없을걸? 박태하 너만 빼고.”
– 7년 전의 시간 속에 박제된 그녀 [이소은]
– 첫사랑의 추억이 되살아난다. 그녀와 함께했던 그 교실에서··· 그녀의 사물함 속, 그녀와 함께 썼던 교환일기로···.
“선생님과 제가, 이 교환일기랑 사물함을 갖고서, 과거를 바꾸면 현재와 미래가 달라질 수 있을까요? 우리 언니가 죽지 않고 살아 있을 수 있는 걸까요?”
– 언니를 잊지 못하는 20살 고3 소녀 [이지은]
– 선생님X제자의 첫사랑이자 친언니의 죽음에 얽힌 비밀을 찾아라!
“그럼, 우리가 바꾼 과거로 인해서 네가 현재에 살 수 있게 된다면···? 소은이 네가 죽지 않을 수 있다면?”
.
.
“네, 여기까지 수목 미니시리즈 의 하이라이트였습니다. 다음 주 수요일 첫 방송, 놓치지 마시고 꼭 본방 사수 부탁드립니다!”
아나운서의 멘트.
오늘 제작발표회의 첫 순서였던 하이라이트 티져 시연이 순조롭게 끝났다.
짝짝짝짝짝짝 ——
불이 꺼졌던 SBC 홀이 박수 소리와 함께 다시 밝아졌다.
이어지는 포토 타임.
아나운서의 진행에 따라
양수호, 류소현, 류지현 그리고 우종세까지 4명의 주연 배우들이 차례로 무대에 등장해서 기자들의 플래시 세례를 즐겼다.
그리고 무대 위 홍보 현수막 앞에 마지막으로 선 것은, 도래원이었다.
찰칵찰칵칵-
찰칵카칵-
마치 래원에게 조명기 여러 대가 집중되는 듯한 강렬한 빛이 쏟아졌다.
배우가 아니기에 적응이 쉽지 않았다.
‘매번 느끼는 거지만, 이건 완전 눈부심 고문이야.’
래원은 자신을 향하는 수십 대의 카메라 앞에서 자신이 지을 수 있는 최대한 자연스러운 미소를, 연습해온 대로 지어 보였다.
이후, 무대 위에 의자가 셋팅되며 질의응답 시간이 이어졌다.
“지금부터 질문이 있으신 기자분께서는 손을 들어주시면, 저희 스텝이 마이크를 전해 드리겠습니다.”
기자들이 여기저기서 손을 들었다.
“도래원 감독님, 이번 작품이 미니시리즈 데뷔작이신데요. 현장에서 디렉팅을 하실 때 지난 4부작 때와 어떤 차이점을 느끼고 계신지 소감 한마디 해주십시오.”
“양수호 배우님, 제대 이후 연속으로 도래원 감독님과 함께 작업하고 계신데··· 감독님과의 호흡이 어떤지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류소현, 류지현 배우님께 질문드립니다. 두 자매분이 함께 출연하신 건 이번이 처음인 걸로 압니다. 자매 배우가 자매 역할을 하는 것에 대한 소감을 듣고 싶습니다.”
“우종세 배우님, 촬영장 에피소드나 비하인드 재밌는 거 있으면 소개 부탁드려요.”
“도래원 감독님, 지난 으로 캐나다 밴프에서 접하신 K드라마의 북미 반응을 소개해주실 수 있을까요? 밴프 상 수상 이후 공식 석상에서 마이크를 드신 게 처음이라 여쭤봅니다.”
“도 감독님, 이번 도 국제상 노미네이트를 예상하십니까?”
쏟아지는 질문들의 반은 래원을 향한 것이었다.
래원과 4명의 배우들은 맡은 바 책임을 다하며 기자들의 질문 세례에 성심성의껏 응했다.
정신없이 대답하던 래원은 잠시 배우들에게 질문이 몰릴 때, 겨우 숨을 돌리며 생수로 목을 축였다.
잠깐의 여유를 틈타 장내를 둘러보았다.
‘뭐야? 조민은 오늘 안 왔어?’
천하 일보에서는 조민이 아닌 다른 기자가 나와 있었다.
‘살짝 아쉽네. 저번처럼 또 말도 안 되는 태클 걸면 오늘은 완전 가루로 만들어 줄랬는데···.’
조민은 이제 낄 데와 빠질 데를 구분할 줄 알게 된 듯했다.
조민의 부재와 래원의 선전을 정말로 아쉽게 여기는 사람이 있었다.
객석에 자리한 이 국장이 그랬다.
진심으로 아쉬운지 입을 댓 발 내밀고는 입맛을 다셨다.
반면, 그 옆에 앉은 김 부국장의 얼굴과 목은 홍조가 번져있었다.
그는 오늘의 제작 발표회를 자기 일처럼 즐기고 있었다.
‘도래원 저 이쁜 것. 저 넝쿨째 들어온 복덩이가 결국은 나를 국장 자리에 앉혀줄 것 같으다. 흐흐흐.’
사람은 착각의 동물이다.
온 세상이 자기 위주로 돌아가고 있다고 생각하기 십상이다.
지금 김 부국장이 그랬다.
한편, 훗날 차기 국장이 될 황태수 CP도
래원의 데뷔 무대를 흐뭇하게 지켜보며 두 눈을 예리하게 빛냈다.
‘래원이는 역시 보통내기가 아니야. 내 판단이 틀리지 않았어. 실력은 물론 저 배포와 떨지 않는 쇼맨십까지···. 앞으로 우리 드라마국의 간판 PD로 키워보면 어떠려나?’
* * *
9월 마지막 주 수요일.
색색이 물든 단풍에도 어느새 까만 어둠이 내려앉은 여의도의 가을밤.
꼭대기 방송탑이 불빛을 깜박이고 있는 SBC 건물, 드라마국의 모니터실 앞에는
밤 10시를 앞두고 [ON AIR] 램프가 빨간빛을 내뿜기 시작했다.
모니터실 안에는 래원의 아군들,
김 부국장, 황태수CP, 그리고 이번 작품으로 처음 B팀 감독을 하고 있는 지혜영과 1번 조연출 유찬까지 한데 모였다.
SBC 수목 16부작 미니시리즈
의 첫 방송을 모니터하기 위해서였다.
메인 모니터의 옆 작은 화면에는,
실시간 시청률 집계 프로그램이 돌아가고 있었다.
같은 시각.
차가을 작가는 자신의 작업실에서 언니 차여름과 함께 TV 앞에 앉았다.
“손톱 좀 그만 물어 뜯어라, 차가을!”
차가을은 차여름의 핀잔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아니, 그런 핀잔 같은 게 지금 귀에 들어오지 않을 만큼 초조하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 것이다.
나이에 비해 경험이 많은 작가임에도, 첫 방송을 앞두고는 매번 소화도 안 되고 처음 겪는 일처럼 떨리기 일쑤였다.
차여름도 동생의 그 마음을 모르지 않기에, 따뜻한 유자차를 데워서 앞에 놓아주었다.
드디어.
10시가 되었고, 1화 방송이 시작됐다.
실시간 시청률은 3.6%로 출발했다.
SBC 모니터실에서도, 차 자매의 작업실에서도 모든 사람이 두 손을 모은 채 숨을 죽였다.
하지만 류소현과 류지현 자매네 집의 사정은 조금 달랐다.
“언니! 시작했어! 진짜 안 볼 거야?”
“어. 알잖아. 내 징크스. 절대 안 봐.”
류소현은 궁금함을 애써 억누른 채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