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ling village life with herbal elixir RAW novel - chapter 16
오직 주인에 대한 충성이다.
‘소를 키우자.’
도시에서는 상상도 못할 일이 아닌가.
비록 강아지보다 분양가가 비싸긴 하지만, 이번 기회가 아니면 소를 키울 날이 없을 것 같았다.
무엇보다, 나는 강아지 교육에 자신이 없다. 가령, 주인을 못 알아보고 물기라도 한다면?
그땐 파양이다.
소는 그럴 여지가 없다.
***
함안에 있는 우시장으로 향했다.
소 울음소리가 우렁차게 들렸다.
경매가 시작될 참이었는지 커다란 슬레이트 가건물 아래에 소와 사람들이 북적거리고 있었다.
소 경매에 참가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그래서 집중력을 발휘하기 위해 장미꽃 차 한 잔을 달여 먹고 왔다.
장미의 효과가 제대로 발휘될지, 나는 긴장을 머금은 채 경매에 임했다.
일단, 소의 가격을 살폈다.
암놈은 600만원이 넘었고, 수놈은 400만원에서 500만원 사이였다.
경매방식은 매우 간단했다.
1번 소의 최저입찰가가 400만 원이라면, 경매참가자인 내가 410만 원에 응찰하여 낙찰이 되면, 소의 주인이 되는 것이었다.
옛날에는 경매꾼이 소리를 쳐가며 했었는데, 요즘은 다 전자식이었다.
내가 봐둔 소는 작은 송아지였고, 가격은 90만 원이었다.
나는 녀석의 응찰가로 100만 원을 넣었다.
이정도면 충분히 낙찰될 것 같았다.
때마침.
내가 원했던 송아지의 응찰이 시작됐고, 150만 원에 낙찰되어 다른 주인에게 팔려갔다.
100만원을 썼던 나는 탈락한 것.
나는 아쉬움을 감추고 다른 송아지에 도전했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송아지 경매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니라는 걸 실감하게 됐다.
그 이유는 소의 상태를 볼 줄 아는 전문가만의 식견이 남달랐기 때문이다.
송아지의 체구가 작더라도 유전적으로 형태와 몸체가 좋다면, 값비싸게 사가는 것이었다.
나는 전문 지식도 없이 최저입찰가만 상회하여 입찰했으니, 번번이 떨어지는 게 당연했다.
이대로 가다간 송아지를 한 마리도 구경 못하게 생겼다.
빈털터리로 갈 수 없는 법인데.
나의 마음이 다급해졌다.
그러던 때였다.
경매 참가자들 중에 매우 낯이 익은 얼굴을 발견할 수 있었다.
얼굴이 철수처럼 검게 탔고, 우락부락하여 덩치가 꽤 좋았다.
장미꽃 차의 효과 덕에 그의 이름부터 과거의 성격과 집안, 심지어 몇 반이었는지 전부 새록새록 떠올랐다.
경매에 집중하려 먹었던 장미꽃이 의외의 곳에서 효과가 나타났다.
그는 집안 대대로 축산업을 했던 나의 초등학교동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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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수유(2)
많은 세월이 흘렀다.
나는 겉모습도 변했고, 성격과 목소리, 풍기는 분위기도 달라졌다.
실없이 뛰놀던 옛 모습은 온데 간데 사라졌다.
그가 나를 기억하지 못할 수도 있었다.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세월이 아무리 흘러도 변하지 않은 게 있다.
그것은 추억이었다.
“혹시 동석이 아닌가요?”
팔짱을 끼고 경매를 지켜보던 친구, 동석이에게 먼저 다가갔다.
동석이는 뒤돌아 인상을 마구 찌푸리며 나를 바라봤다.
“예?”
그가 나를 보자마자 눈을 번뜩였다.
기억할까. 아니면 기억하지 못할까.
나는 그의 머릿속에 각인된 추억을 너무 잘 안다.
그 단어 하나만 꺼내면, 나라는 존재를 머릿속에서 번뜩 떠올리리라.
“느티나무에서 떨어진 놈.”
“이야아아!”
동석이가 화색이 만연하며 소릴 질렀다.
이 순간 소의 울음소리보다 더 컸다.
“너! 도일이구나!”
느티나무에 떨어졌던 날, 머리를 세게 다쳤었다.
아무 의미 없는 상처뿐인 날이 아니었다. 그해 나는 친구들의 머릿속에 ‘느티나무에서 떨어진 놈’으로 평생토록 기억에 남았다.
“오랜만이다. 동석아.”
“우리..이거 몇 년 만이냐?”
나는 동석이의 면면을 살폈다.
덩치는 예전처럼 컸고, 우락부락하였다.
얼굴에는 잔주름이 많았지만, 옛 모습이 잔잔히 남아 있었다.
안부 인사를 서로 주고받는 게 맞지만, 지금도 경매는 진행되고 있었다.
다급한 마음에 동석이를 보며 말했다.
“소 사는 것 좀 도와주라. 계속 입찰에 실패하네.”
무작정 도와달라니, 동석이는 웃음 지었다.
“무턱대고 왔구나? 옛날 성격 그대로네. 내가 알아봐 줄게. 어떤 송아지? 수놈? 암놈?”
“그냥 귀여운 놈으로. 집에 있기 적적하니까. 애완 소 키우고 싶어서.”
귀엽고 작은 애완 소라고 얘기하니, 동석이가 고개를 저었다.
“그런 소를 여기서 왜 사냐.”
“그러면 어디에서 사?”
“우리 집으로 가자. 내가 싸게 팔아 줄 테니까.”
“그래도 될까?”
“당연하지! 우리 집이 오랫동안 축사를 했잖냐. 내가 좋은 소로 골라 줄 테니까 우리 집으로 가자고.”
***
동석이네 축사로 향했다.
송아지들이 꽤 많았다. 엄마 옆에 찰싹 달라붙어 젖을 먹는 송아지부터, 쓰러져 누운 채 잠을 자는 송아지까지.
나는 눈을 바삐 움직이며 데려갈 놈을 찾고 있었다.
“네가 원하는 놈 있으면 데려가. 싸게 줄게.”
나는 유심히 송아지들을 살폈다.
그리고 한 놈을 향해 손짓했다.
“쟤로 데려갈게.”
“누구? 젖 빠는 놈?”
“아니. 저기 혼자 있는 친구.”
“아.”
“왜? 안 될까?”
구석진 곳에 홀로 있는 송아지 한 마리가 눈에 띄었다.
아까부터 움직이지도 않고 그저 멍하니 앉아 눈만 끔뻑거리던 녀석이었다.
많은 송아지들 중에 정감이 갔다.
그런데 동석이의 표정은 그리 좋지 못했다.
“쟤는 안 돼.”
“왜”
“장애가 있거든, 발을 절뚝거려서. 조만간 처분해야지.”
처분한다는 동석이의 말에 씁쓸함이 몰려왔다.
축사를 운영하는 소는 애완동물이 아닌 경제동물이었다.
나는 왜인지 마음 한편이 아려왔다.
홀로 멍하니 앉은 소의 눈빛이 너무나 맑았기 때문이다.
“괜찮아. 내가 데려갈게. 저놈으로.”
“정말이냐?”
“얼마 정도 주면 될까? 내가 시세를 잘 몰라서.”
“그냥 데려가라.”
“뭐?”
“나도 저놈 신경 쓰여서 영 마음이 찜찜했거든. 다리도 절뚝거리고 힘도 없고 비실거리고. 네가 잘 키워만 준다면야, 나야 너무 고맙지. 돈은 받지 않을게.”
공짜로 준다는데 구태여 사양할 필요가 없었다.
“그런데, 어미 소는 어딜 간 거야?”
“그러니까 저놈이 태어났을 때 어미 소가 죽어버렸거든.”
“아…”
“저 놈 때문에 암소가 죽어버렸고 몸 상태도 안 좋으니까. 우리 아버지는 당장에라도 처분하길 바라셨어. 재수 없는 놈이라고.”
“그렇구나.”
“내가 고집을 피워서 데리고 있긴 했지. 에휴. 불쌍한 놈. 그래도 데려갈 거냐?”
사연을 알게 되니 더 간절해졌다.
“어. 내가 입양할게.”
“예나 지금이나 유별난 건 똑같네.”
“너도 장애가 있는 소를 애틋하게 생각하는 거 보니까. 착한 마음은 그대로구나.”
동석이가 웃었다.
태산 같은 덩치를 했지만, 속내는 매우 순수한 친구였다.
“철수에게 소식 들었다. 몸 상태가 많이 좋아졌다고? 정말 다행이네.”
“기적이지. 췌장암 말기가 호전될 확률은 매우 낮거든.”
그래서 그런가.
저 송아지에게 기적을 선물하고 싶었다. 심하게 절뚝거리는 다리를 보며 처음으로 귀향했을 때가 떠올랐다.
그때 나도 병을 달고 귀향 했었으니까.
“너희 아버지 살아 계실 때도 기적 같은 일이 많이 생겼잖아.”
“그치.”
“귀향한 걸 환영해. 도일아.”
고향에서 나고 자라 평생토록 이곳을 묵묵히 지켜주는 친구가 고맙다.
동석이에게 고향 친구는 그냥 손님이 아니었다.
잃어버린 순수함이었고.
언젠가 다시 보고 싶은 애틋함이었다.
우리는 그러한 감정을 함께 공유했다.
한참의 대화를 끝내고, 송아지를 우리 집까지 옮겼다.
“동석아. 이거 가져가서 먹어.”
나는 그에게 산수유 열매를 대량 건넸다.
그래도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이다.
“산수유 아니냐?”
“먹어봐. 효과가 좋을 거야.”
“이제 약초꾼 다 되셨네?”
동석이가 집의 경관을 둘러보며 말했다. 처마에 매달린 약초부터 마당의 한편에 말리고 있는 여러 약초까지.
사방에 약초 천지였다.
“아버지처럼 약초 공부 하는 거냐?”
“어.”
“우리 아버지가 좋아하시겠다. 김 씨네 약초원이 다시 부활한다고. 흐흐.”
“추억이 많았던 곳이지.”
“아버님이 워낙에 좋으신 분이었어. 친구들이 조금만 아프면 너희 집으로 달려갔으니까.”
“우리 아버지가 아이들을 좋아하기도 했고.”
나는 머쓱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소는 잘 키울게. 고맙다.”
“자주 보자. 연락할게.”
동석이가 포터를 끌고 떠났다.
수십 년 만에 만난 친구에게 선뜻 송아지를 내주는 친구가 세상에 어디 있을까.
이 모든 게 나의 인망이라고 생각지 않는다.
아버지가 뿌려놓은 씨앗이었고, 그 씨앗이 이제야 발아하여 새싹을 돋는 과정이었다.
***
나는 홀로 외로이 있을 송아지에게 다가갔다.
이놈은 뭔가 우울해 보인다.
그저 멍하니 정면만 바라보며 슬픔에 젖은 눈망울을 하고 있었다.
태어나자마자 어미를 잃었다.
송아지가 자각을 할지는 모르겠지만, 남들 다 있는 엄마인데, 본인만 없다는 걸 알아차리지 않았을까.
그래서 멍하니 앉아 다른 소들을 지켜보고 있었던 것 같다.
위로를 해줄 수가 없었으니 답답할 따름이다.
일단 우리 집에 왔으니 망가지고 절뚝거리는 다리를 고쳐줘야 했다.
송아지의 무릎을 살폈다.
오른쪽 무릎 한편에 종기가 있었다.
환부는 꽤 오랜 시간 곪아 염증이 심한 상태였다.
동석이가 왜 처분을 하려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수의사에게 상처를 치료한다면 많은 금액이 불필요하게 지출된다.
거기에 사료 값 들어갈 것 생각하자면, 경제적으로 마이너스였다.
그런데, 나는 수의사를 부르지 않을 생각이다.
나의 약초지식이 빛을 발할 때였다.
‘구룡초를 이용해볼까.’
청산에서 캐온 구룡초가 있었다.
약초가 사람에게만 작용하리란 법은 없지 않은가. 자연에서 난 약초가 비단 인간에게만 이롭지 않을 것이다.
구룡초를 강화하였다.
효능 – 해독, 종기, 류머티즘, 구안와사, 각종 피부병에 이용한다.
아버지의 서책에 의하면, 구룡초를 이용해 독뱀에 물린 상처를 치료한 사례가 있었다.
당시 아버지가 했던 작업 방식을 그대로 재현했다.
구룡초를 즙이 나올 때 까지 짓찧었다.
짓찧은 구룡초를 송아지의 무릎 환부에 바른 뒤 붕대를 이용해 칭칭 감았다.
송아지는 나의 치료를 견뎌냈다.
고통을 감내하는 송아지의 눈망울이 촉촉이 젖었다.
“다 끝났어. 이제 그만 아플 거야.”
치료가 끝나자마자 송아지가 맥이 빠진 듯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부디 송아지가 쾌유하길 빌었다.
***
다음 날 아침.
깊은 잠에 들어 오랜만에 늦잠을 잤다.
늦은 아침에 기상하여 가장 먼저 꾸지뽕 물을 마셨다.
상황버섯과 꾸지뽕, 둥굴레를 배합하여 만든 항암 특효의 약물이다.
[암세포의 수치가 줄어듭니다.] [오장이 튼튼해지며 기운을 돋습니다.] [혈당 수치가 낮아집니다.] [양기가 충만해지며 혈색이 되살아납니다.]마당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무슨 소리인가 귀를 기울였더니.
사부작, 사부작.
뭔가가 움직이는 소리였다.
다급히 방문을 열고 나갔다.
외양간을 나온 송아지가 절뚝거리며 마당을 배회하고 있었다.
오른쪽 무릎의 붕대는 잘 감겨 있었지만, 밤새 불편했는지 벽에 긁은 흔적이 보였다.
‘그래도 움직이기 시작했구나.’
나는 기특한 마음에 송아지 곁으로 향했다. 혹시나 내 곁을 무서워하지 않을까 불안 했는데, 내 손길을 얌전히 받아들이고 있었다.
송아지에게 아침을 먹여야만 했다. 동석이에게 볏짚 몇 단을 받긴 했는데, 상처 치료를 위해 특식을 제공할 참이었다.
특식은 마을 지천에 널렸다.
소를 키워본 사람들은 잘 아는, 자귀나무 였다. 소가 잘 먹는 다고 하여 시골에서는 소쌀밥 나무라고도 했다.
나는 망태기를 짊어지고 대문을 나섰다.
문을 활짝 열어놓은 뒤 마당에서 우두커니 서 있는 송아지를 보며 말했다.
“따라 올 거야?”
“크흥.”
송아지가 콧숨을 거세게 내뿜더니, 이내 절뚝거리는 다리를 이끌며 내게 천천히 다가왔다.
나는 녀석이 대문을 벗어날 때까지 차분히 기다려줬다.
“천천히 걷자. 몸이 썩 좋지 않으니까.”
나는 앞서 걸으며 송아지가 잘 따라오는지, 뒤처지지 않았는지 수시로 관찰했다.
송아지는 내 곁을 벗어나지 않고 뒤를 바짝 따라오고 있었다.
얼마정도 갔을까.
어릴적 소를 이끌고 자주 왔던 들판에 도착했다.
들판은 소가 좋아하는 많은 잡초가 자라 있었다.
그중에서 자귀나무라고 하는 송아지의 특식이 있었다.
효능 – 손상된 근육이나 인대, 근육 경련을 치료하는데 좋다.
평가 – 소가 좋아하여 소쌀밥 나무로 불린다.
마침, 자귀나무의 효능도 손상된 근육과 인대를 치료하는데 좋았다.
소들이 왜 자귀나무를 좋아하는지 나름 이해가 됐다.
매일 밭을 갈고 일했으니, 자귀나무의 성분으로 자가 치료를 하는 게 아니었을까.
“한 번 먹어봐. 맛보면 좋아할 거다.”
송아지가 땅에 떨어진 자귀나무 잎을 한 입 집어 먹었다. 꽤 만족스러운 듯 거침없이 먹어 치운다.
“소 아니랄까봐 먹성도 대단하네.”
나는 녀석이 식사를 하는 동안 잠시 들판에 앉아 여유를 즐겼다.
마을 전경이 한 눈에 보였다.
마을 중심부의 파란색 지붕이 옛날 동석이가 살던 집이었다.
작은 축사를 넓히고 넓혀 이젠 함안 인근으로 이사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