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ling village life with herbal elixir RAW novel - chapter 36
벌써부터 친구들과 놀 생각을 하니 마음이 설렜다.
“알았어. 갈게.”
경호강에 도착하니 철수와 경훈이가 한적한 곳에 포인트를 잡고 낚시를 즐기고 있었다.
우리 마을 경호강은 지리산 자락의 1급수의 물이 흘렀기 때문에 특별한 어종이 많이 잡혔다.
그 중에서 최고 어종은 은어였다.
조선시대 임금님 수랏상에 올라가는 어종이었으니, 그 맛은 검증된 바다.
민물고기라 함은 비린내가 나는 줄 아는데, 은어는 전혀 그렇지 않다.
한 번 맛보면 수박향이 난다.
먹어본 이만 아는 독특한 향이다.
은어위에 굵은 소금 대충 뿌린 뒤 화로구이를 해먹으면 그 맛이 일품이었다.
“도일아!”
낚싯대를 휘두르는 철수가 나를 보며 반겼다.
옆에 있던 경훈이는 이미 한 마리를 낚았는지 열심히 챔질이다.
은어를 보관해놓은 박스에는 상당량의 은어가 있었다.
오늘은 은어 맛을 제대로 볼 수 있겠다.
***
장작 위에 노릇노릇 익는 은어를 한 입 맛봤다.
입에서 살살 녹는다.
“크으, 죽인다. 어릴 때 먹던 맛이랑 똑같아!”
친구들을 보며 말했다. 경호강의 은어 맛이 그리웠거늘, 이건 천상의 맛이었다.
그런데, 철수가 나를 보며 갸우뚱했다.
“요즘 운동하냐?”
나의 탄탄해진 팔뚝을 보며 철수가 물었다. 물어본다는 것 자체가 운동 효과가 나온다는 게 아닌가.
기쁨을 내색하지 않고 다시 되물었다.
“왜? 좀 티나? 요즘 좀 운동하긴 했어.”
“뙤약볕에 민소매가 웬 말이냐. 몸 다 타겠다.”
의도했다. 통나무처럼 단단해진 내 팔뚝을 자랑하고 싶었다.
“선크림 잔뜩 발라서 괜찮아. 구리 빛 피부를 만들고 싶었거든.”
“시골서 뙤약볕에 밭일만 하면 새카맣게 타는 것을 굳이 왜 일부러 태운대?”
“구리 빛이라고 구리 빛. 엄연히 다른 거지 그건.”
“하여튼, 요즘 이상한 바람이 들었어.”
“뭐 먹고 운동했냐? 며칠 서울 갔다 오더니 사람이 확 변했네.”
경훈이가 내 몸을 유심히 관찰하며 말했다. 녀석은 배는 서울의 남산을 가져다 놓은 것 같다.
“딱히 뭐 먹은 건 없고. 산사나무 열매랑 호박 씨앗 좀 먹었어. 운동은 팔굽혀펴기나 윗몸일으키기 정도로 했고. 너도 한 번 먹어볼래?”
경훈이에게 물었다. 철수는 마른 장작처럼 깡말랐지만, 경훈이는 어느 정도 다이어트가 필요했다.
“운동해서 뭐하냐. 이렇게 살다가 가는 거지 뭐. 안 그래 철수야?”
경훈이의 말에 철수가 웃으며 답했다.
“아마 네 관은 대형 사이즈로 해야 될 거다.”
“잘 됐네. 안 그래도 좁은 집에 사는데, 죽을 때는 넓은 관에 들어가면 얼마나 좋아. 철수 너는 좋겠다. 나의 절반 가격만 내면 되니까.”
“그러게. 물려줄 것도 없는데 마침 잘 됐지 뭐.”
“다들 내일 죽을 것처럼 말을 한다? 시한부 인생을 살아봤어?”
내 말에 다들 입을 꾹 다문다.
철수와 경훈이는 요즘 들어 아이 교육문제로 아내와 많이 다툰다고 한다.
결국 대학 진학 여부였다.
그뿐만 아니라 경훈이는 술집 건물주의 방 빼 시전으로 폐업까지 생각한다고 하니, 그리 좋은 상황은 아니었다.
때마침, 경호강에서 래프팅을 하는 여행객들이 지나가고 있었다.
경호강은 유속도 빠르고 큰 바위가 없어 래프팅 명소였다.
우리는 여행객들을 향해 손을 흔들어줬다.
그러자, 몇몇 여객들이 우리에게도 손을 흔들었다.
“맨날 보는 경호강인데, 저기서 보트타면 재미가 있을라나.”
경훈이가 퉁명스럽게 말했다. 이 친구는 아까부터 삶의 재미를 잃어버린 것 같다.
“한 번 해볼래?”
“무슨. 됐다. 됐어. 무슨 래프팅이냐. 저것도 비싸.”
“꼭 보트를 탈 필요가 있어?”
“뭐?”
“우리가 언제부터 장비를 썼다고. 옛날에 기억 안나?”
나의 눈에는 수풀사이에 버려진 통나무가 보였다. 며칠 전 비가 많이 와서 산에서 내려온 통나무인 것 같았다.
통나무를 번쩍 들어 철수와 경훈이 앞으로 끌고 갔다.
“어렸을 때처럼 해보자.”
“철없어 보여. 우리가 애도 아니고, 나이가 오십이다. 오십.”
“오십이면, 통나무타고 놀면 안 되냐? 그건 누가 정한 법이래?”
“스마트폰하고 지갑은 어떻게 할 건데?”
“비닐봉지에 넣어두고 땅에 묻어두자고. 아무도 찾지 못하게.”
“옷은? 옷도 없잖아.”
“우리가 언제 그런 걱정했었냐.”
통나무를 타고 경호강을 누볐던 유년시절, 옷 따위야 젖으면 뙤약볕에 말리면 그만이었다. 철수가 나에게 설득당한 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하긴, 아무 생각 없이 놀긴 했지.”
철수가 못이기는 척 통나무를 발로 한 번 툭툭 치며 말했다.
나는 녀석들을 보며 씩 웃었다.
“그럼 답은 정해졌네?”
“내 몸무게를 버틸 수 있을까. 옛날에는 말랐다지만 지금은 90kg이 넘는데.”
경훈이는 제 몸무게를 걱정했다.
“마음만 가벼우면 뭐든 못 뜰까.”
우리는 각자의 주머니에 있는 스마트폰과 지갑을 봉지에 담았다.
땅속에 묻어 숨긴 뒤, 통나무를 끌어 강물에 띄웠다.
“하나 둘 셋 하면, 통나무를 밀고 깊은 수심까지 들어가는 거다.”
“알았어.”
셋에 맞춰 통나무를 강의 중심으로 밀었다.
무릎까지 오던 수심이 서서히 가슴까지 차올랐다.
나는 양팔로 통나무를 감싸 쥐었다.
물위를 둥둥 떠다니며 통나무에 의지하는 지금 이 순간은 번지점프를 뛰었을 때처럼 스릴이 넘쳤다.
“하하하하!”
내키지 않아했던 경훈이 녀석의 웃음소리가 크게 들렸다.
막상 해보니 즐거운가보다.
우리는 통나무 하나에 몸을 맡기고 경호강의 물살에 따라서 하염없이 흘러갔다.
강물에서 통나무를 탈 때는 발놀림이 매우 중요했다.
방향 전화를 할 때도 합에 맞춰 발을 저어야 했고, 속도를 제어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맨 앞사람이 중요했다.
나는 근력 운동을 열심히 했기 때문에 물살을 이겨낼 근육이 있었다.
“야, 저기 아까 우리가 인사했던 사람들 아니냐?”
내 시선에는 래프팅을 하는 사람들이 보였다.
그들이야 두 손에 노를 쥐고 안전모와 구명조끼를 입고 있지만, 우리는 야생미가 돋보이는 날것 그대로였다.
“안녕하세요!”
사람들의 보트를 지나치며 반갑게 인사했다.
래프팅을 하는 여객들의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로컬 주민들의 독특한 여름나기를 처음 보는 거겠지.
그렇게 우리는 경호강의 물살에 몸을 맡겨 한참동안 둥둥 떠다녔다.
비싼 돈 들여가는 수영장 부럽지 않았다. 자연의 폭포를 있는 그대로 즐길 수가 있었다.
“와아!”
폭포가 몰아치는 구간에서 통나무와 함께 물길에 휩싸였다.
수심이 그리 깊지 않아 빠져도 죽지 않을 깊이지만, 어렸을 때는 대체 무슨 용기로 이런 짓을 했는지 모르겠다.
내 시선에는 강변에 핀 아름드리 개회나무 꽃이 보였다.
청춘의 순수함을 뜻하는 개회나무 꽃이 바람에 하늘거리며 휘날렸다.
순간 멍하니 그 장면을 바라보다가, 옆에 있던 철수가 소리친다.
“도일아.”
“응?”
“앞에 봐 인마.”
철수의 말에 앞을 보니, 어렸을 적 가장 공포에 떨었던 하이라이트 폭포 구간이 있었다.
수심이 깊고 물살이 급속도로 휘몰아치는 구간이다. 나는 이 순간만을 기다렸다.
“친구들아!”
“왜에!”
“웃으면서 살자고! 인생 뭐 있냐!”
“크하하하하.”
경훈이가 호탕하게 웃었다.
때마침, 우리는 거친 물살에 휩싸였다.
경훈이의 웃음소리가 또 다시 들렸을 때, 물길은 다시금 잔잔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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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회나무(3)
우리는 종착지에 도착했다.
여기서부터는 수심이 깊지가 않아 더 이상 나아가봐야 큰 의미가 없었다.
“일단 옷이나 좀 말리자.”
우리는 동그란 자갈이 탐스럽게 깔린 곳에 윗옷을 벗어 말려놓았다.
“하아, 올해 들어서 가장 재밌는 순간이었어.”
철수가 말했다.
우리는 철수의 말에 전부 공감했다.
특히 경훈이가 더 그랬다.
최근 술집 문제로 스트레스가 만만치 않았으리라.
“경훈아.”
나는 경훈이를 불렀다.
신나게 뛰어 놀 때는 언제고 다시 묵묵해지는 녀석이었다.
“옛날에 항상 이곳에 도착하면, 하던 일이 있었잖아.”
“뭐?”
“라면이나 끓여 먹을까?”
“라면?”
내 말에 철수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맞아. 이 근방에서 라면을 외상 받아다가 먹곤 했지.”
“그 아줌마 아직 계시나?”
“이제 백발노인 되셨어.”
“가볼까?”
“지갑이 없잖아.”
“그러게. 지갑이 없네.”
지갑과 스마트폰 모두 시작점에 두고 왔기 때문에 다시 되돌아가야만 했다.
“가위바위보해서 진 사람이 뛰어가서 가져오기 할까?”
“한 10분 걸리려나?”
“그치. 뛰면 10분, 걸으면 20분.”
뜸들일 것 없지.
나는 친구들 앞에서 외쳤다.
“안내면 진다 가위 바위 보!”
나는 주먹을 냈다.
철수는 가위를 냈고, 경훈이도 가위를 냈다.
“아싸!”
승자는 뒤로 빠지고, 철수와 경훈이가 승부를 겨뤘다.
결과는 경훈이의 패배.
“잘 됐네. 얼른 뛰어 갔다 와. 살도 뺄 겸.”
“하…씨. 나랑 같이 가줄 사람 없냐?”
나와 철수는 모른 채 하며 고개를 돌렸다.
“갔다 오면 너희들이 라면 사.”
“얼른 가져오기나 해.”
경훈이가 투덜거리며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그렇게 몇 분이나 흘렀을까.
어디선가 경적 소리가 울렸고, 마침 경훈이가 차를 타고 우리가 있는 곳으로 도착했다.
“역시, 똑똑해. 오는 길에도 걸어왔으면 쥐어박으려고 했어.”
녀석들이 산수마을 앞에서 낚시를 하고 있었으니, 그곳의 모든 짐을 추려서 가져온 것 같았다.
“이제 슈퍼로 가볼까?”
***
우리는 말려놓은 윗옷을 입고 강변 인근의 구멍가게로 향했다.
작년 태풍으로 간판마저 날아가 버린 구멍가게는 매우 한적하기 그지없었다.
이젠 아무도 찾지 않는, 오래된 식료품과 과자만이 내부에 덩그러니 방치되어 있었다.
간혹 철수가 이 근방을 지나칠 때마다 담배를 사곤 했는데, 나는 30년 만에 처음 와보는 곳이었다.
이런 구멍가게의 특징은, 가게 내부에 가정집이 꼭 있다는 것.
나는 큰 목소리로 사장님을 찾았다.
“어머님!”
그러자 백발의 노인이 되신 사장님께서 문을 열고 우리를 마주했다.
“아이고! 이게 다 누구들이야!”
사장님은 우리를 기억하고 있었다.
하긴, 극성맞게 놀았던 우리를 기억하지 못하는 어른들이 없으리라.
“오랜만에 뵙습니다. 흐흐. 잘 계셨어요?”
“이름이 뭐더라.”
“도일이요. 김도일.”
“아이고. 몇 년 만에 보나. 어쩜 얼굴이 하나도 안 변했어?”
“어머님 얼굴도 하나도 안 변했어요. 옛날처럼 되게 고우시다.”
“주름이 자글자글한데 곱기는. 그래, 뭐 사려고 왔어?”
“먹을 것 좀 사려고 왔어요. 물놀이하다가 배가 고파서요.”
“아무거나 집고 가. 오늘은 내가 기분 낼 테니까.”
“그럴 수야 없죠. 옛날에는 우리가 돈이 없어서 그랬지만, 지금은 그래선 안 되죠.”
“예전처럼 라면 끓여 먹게?”
“네.”
“가스버너는?”
“빌려주시면 감사하죠.”
“그려, 그려.”
어머님이 방안에서 가스버너를 들고 나오셨다.
우리는 라면 다섯 봉지와 계란, 일회용 접시와 젓가락 등을 챙겼다.
이제 다 챙겼거니 했거늘, 경훈이의 두 손에는 과자를 잔뜩 들고 있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과자를 참 좋아하는 녀석이다.
“이게 다 얼마냐?”
사장님이 철수에게 물었다.
철수는 손가락으로 대충 개수를 세어보더니 대답했다.
“대충 10만 원 나왔겠지. 20만 원 정도 되려나. 아니 30만 원? 도일아 이게 다 얼마 같아?”
“한 30만 원은 될 것 같은데. 그치 경훈아?”
“30만원이면 적당하지. 인당 10만원씩 하면 딱 이다.”
이럴 때는 아주 잘 통했다. 어릴 때 얻어먹었던 과자와 라면을 이제야 갚는다.
우리는 각자의 지갑에서 10만원씩을 꺼내 어머님에게 드렸다.
“이게 무슨 일이래.”
“건강하세요. 어머님. 저희 또 들릴게요.”
“아유…참 이러지 않아도 되는데.”
양 손 푸짐하게 먹을 걸 챙겨들고 강변으로 향했다.
버드나무 우거진 그늘 밑에 자리를 잡았다.
개회나무 꽃이 보이는 풍경 좋은 곳이었다.
가스버너를 올려놓고 물을 팔팔 끓였다.
라면과 계란을 퐁당.
묵묵히 기다릴 일만 남았다.
“여기 좀 봐.”
친구들에게 말했다.
이 순간을 추억으로 남겨놓고 싶었다.
버드나무 지붕, 개회나무 꽃의 배경, 가스버너 위에 올라간 냄비와 쭈그려 앉아 기다리는 친구들.
-찰칵, 찰칵.
‘추억을 남겨 놔야지.’
나는 친구들의 사진과 셀카 사진을 찍어 SNS에 올렸다.
제목은 [친구들과 함께 여름나기]라는 유치뽕짝의 순수함이 묻어난 제목이었다.
그러던 때. 라면이 다 익었는지 철수가 냄비 뚜껑을 열었다.
경훈이가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더 끓이자! 라면은 퍼져야 맛있어.”
그러자 철수가 손사래를 친다.
“퍼진 라면은 맛없어.”
“라면은 퍼진 게 맛있다고. 면발에 국물이 베어야 맛있지. 그리고 나는 옛날부터 그렇게 먹었다고.”
“아이고, 입맛 하나 까다롭네. 정말.”
철수와 경훈이는 예전부터 이랬다.
어쩜 이렇게 변함이 없는지.
이럴 때마다 항상 내가 중재했었다.
중재 방식도 예전과 변함없겠지.
“라면 봉지에 쓰인 방식대로 끓여 먹자.”
뚜껑 덮고 4분.
라면을 만든 제조사의 방식이 가장 맛있는 법이다.
녀석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몇 분 더 끓인 뒤 뚜껑을 열었다. 라면이 잘 익었다.
후루룩, 후루룩.
라면 다섯 봉지를 성인 세 명이서 해치우는 건 금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