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s First Time Limit RAW novel - Chapter 107
천하제일 시한부 (107)
“지금은 안 됩니다.”
정천맹으로 향하려는 나를 초영이 붙잡았다.
그녀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지금 소가주님이 움직이면 위험할 수도 있습니다.”
“왜지?”
“변천에 대한 조사를 진행 중이지 않으셨습니까?”
“근데?”
“확실히 마무리를 지어야 안심할 수 있지요.”
음, 그 말이 맞다.
“맞지. 고맙다. 네 말이 아니었으면 그냥 생각 없이 움직일 뻔했어.”
난 진심으로 초영에게 감사를 표했다.
“금화상단에 대한 조사는 직접 움직이신다고 하셨죠?”
“응.”
“서둘러 주셔야겠습니다.”
초영은 뭔가 말을 할까 말까 고민하는 눈치였다.
그녀가 잠시 고민 뒤에 입을 열었다.
“고독에 대해 조사를 진행 중인데, 관련 서적부터 옛 고대 서적까지 모두 뒤져 보고 있습니다.”
“없나?”
“예. 사람을 조종할 수 있는 고독…… 이건 정말 위험한 발상입니다.”
맞다.
사람을 조종할 수 있는 고독은 그동안 많이 있어 왔다.
애초에 고독을 심어 놓고 협박을 하면 그만이었으니까.
하지만 이건 그런 종류와는 궤를 달리했다.
고독을 심기만 하면 이지를 상실해 버리니까.
백귀가 그 전형적인 예의 대표자였다.
“그런 예가 없나 보지?”
“네. 조금 더 찾아보긴 하겠지만, 아마 찾지 못할 것 같습니다. 일단 저조차도 처음 듣는 일인지라…….”
“그래, 차근히 해. 너무 무리하는 말고.”
내 말에 초영이 빙그레 웃었다.
요즘따라 웃는 빈도가 늘어난 것 같다.
아무래도 개방이란 옷을 벗어던져서일까?
“명심하겠습니다, 소가주님.”
“그래.”
그렇게 짧게 대화를 마치고 초영이 방을 나갔다.
“금화상단이라…….”
난 누워서 발을 까딱거리며, 생각에 잠겼다.
어떻게 조져야 제대로 조졌다는 소문이 돌까 말이다.
금화상단의 실체를 찾는 것.
백귀에게 듣기로는 지닌 재력도 꽤 되는 것 같고.
군침이 돌았다.
그 돈만 흡수할 수만 있다면…….
“잠깐만.”
난 얼른 품을 뒤졌다.
일전에 변천맥에게서 받은 녹주석이 남아 있었다.
번쩍!
녹주석은 아직도 그 영롱하게 빛나고 있었다.
“내가 왜 그 생각을 못 했지?”
정말 멍청했다.
변천맥은 내게 단서를 떡하니 던져 준 것이다.
“녹주석을 취급하는 곳이 많을 리가 없잖아?”
녹주석은 엄지손톱만 한 크기에도 엄청난 가격을 호가한다.
이 정도 굵기의 녹주석에, 심지어 세공 실력도 보통이 아니다.
난 얼른 문을 열었다.
저 멀리 자신의 처소로 돌아가는 초영이 보였다.
처음에는 초영을 불러 조사를 진행해 볼까 하다가 이내 그만두었다.
“안 그래도 바쁜 애를…….”
마침 딱 좋은 인물이 생각났다.
난 얼른 신을 신고 그대로 세가를 나섰다.
내가 향하는 곳은 남창으로 들어서는 길목의 초입, 한 이름 모를 사당이었다.
@ @ @
“어서 오게.”
난 한달음에 남창으로 달려왔다.
그리고 만났다.
“이봐, 장로. 손녀는 잘 만났나?”
“진즉에 만났지. 너무 고맙네. 정말…… 이 은혜를 어찌 갚아야…….”
“그거 지금 갚아.”
난 얼른 품을 뒤져 녹주석을 꺼냈다.
녹주석을 본 장로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엄청나군. 이건 어디서 났는가?”
“하오문도 이건 몰랐나 보네. 변천맥이 준 거야.”
“변천맥…… 흠.”
장로는 안력을 돋워 녹주석을 세심하게 살폈다.
그러고는 이내 입을 떡 벌리며 감탄사를 내뱉었다.
“귀한 물건이군. 세공 실력이 장인의 반열에 오른 이가 수 날을 걸쳐 세공을 한 작품일세.”
“그래? 어디서 만들었는지 알 수 있겠어?”
“이 정도로 뛰어난 장인이라면 내가 모를 리 없지.”
장로는 말과 함께, 책방 한구석으로 걸어갔다.
놀랍게도 이 책방은 사당과 이어져 있었다.
장로는 이내 어디선가 사다리를 꺼내 들고 와 구석에 있는 책장에 얹었다.
그러고는 그대로 사다리를 밟고 올라가 천장을 열었다.
“이야, 천장에도 비밀 공간이 있네?”
“소월이가 좋아하던 곳이었네. 또한 이곳에는…….”
장로가 따라오라며 손짓했다.
난 이내 사다리를 올라 장로가 먼저 들어간 비밀 공간으로 들어갔다.
마치 다락방 같은 공간이었는데, 이쪽은 아래층 책방보다 배는 더 넓었다.
“이야.”
감탄이 절로 튀어나왔다.
사방을 가득 메운 수많은 책들.
족히 수십만 권은 넘어 보였다.
“저게 다 그간 수집해 온 정보들이라네. 정확히는 동북쪽 성들을 중심으로 수집한 정보들이지.”
그 말이 사실이라면 이쪽 지역의 정보는 모두 하오문이 꽉 쥐고 있다는 말도 된다.
“후후, 그러고 보니 자네 가문의 총관이 고독에 대한 자료를 찾고 있다지?”
“들었나?”
“우리 눈과 귀는 어디에나 있다네.”
“…….”
난 말없이 장로를 응시했다.
노인이 이내 질색하며 손사래를 쳤다.
“아, 오해는 말게. 자네 가문에 본 문의 정보원을 심어 두진 않았으니.”
그리 말하며 장로가 한쪽 구석에서 몇 권의 책을 빼 왔다.
그건 수기로 작성된 정보지였다.
“이곳 동북쪽의 수준급의 세공 실력을 가진 세공사부터, 장인급의 세공사까지 명단이 기재되어 있네. 빠진 것도 있겠지만…… 참고는 될 게야.”
난 고개를 끄덕이며 그 서책을 챙겼다.
장로가 이번에는 다른 책을 내게 건넸다.
“이건 고독에 대한 조사 자료일세. 너무 오래된 것들이라 도움은 되지 않을 수도 있겠네만…….”
“오래됐다고? 중간에 조사를 멈춘 건가?”
“실은…….”
장로가 잠시 머뭇거리다 입을 열었다.
“우리 소월이가 조사한 것들이네. 난 소월이가 그렇게 사라지고 마음 아파서 차마 읽지 못했네만…….”
“오호, 고독이라. 좋군. 총관에게 주면 좋아하겠어.”
고독에 관한 정보는 있는 대로 긁어모으는 것이 좋았다.
난 장로가 챙겨 주는 정보지를 모두 다 챙겼다.
“그럼 나, 갈게?”
“벌써 가려는가?”
장로가 아쉽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곧 소월이가 올 텐데 얼굴이라도 보고 가지. 차라도 한잔 내올 테니.”
“음. 그럴까?”
내심 흥미가 동했다.
소월은 그동안 백귀로 살아왔다.
다행히 인지능력이 저하된 것은 아닌지 꽤나 정상적으로 돌아온 듯했다.
그렇게 보면 정말 완벽한 고독이다.
사람을 자유자재로 조종하다가 필요시엔 얼마든지 떼어 버릴 수 있는.
그렇게 되면 흔적 하나 남지 않는다.
“물어볼 것도 있으니까.”
난 이내 장로를 따라 아래로 내려갔다.
소월을 기다리기 위함이었다.
@ @ @
소월이 도착한 것은 날이 어둑해지고 난 뒤였다.
“어?”
그녀는 들어오기 무섭게, 날 향해 고개를 숙였다.
“오셨네요, 단주님!”
아주 기운이 넘쳐 보였다.
“어딜 그렇게 싸돌아다니냐. 좀 쉬라니까.”
장로의 말에 소월이 머쓱하니 씩 웃었다.
“그래도 오랜만에 사람들 좀 만나고 왔어요.”
“쯧쯧, 그 성격을 누가 말리랴.”
장로는 혀를 내두르며 차를 준비했다.
“할아버지, 제가 할게요.”
“내가 할 테니 앉아 있거라. 주 공자께서 네게 묻고 싶은 것이 있는 모양이니.”
장로의 말에 소월이 펄쩍 뛸 듯이 달려와 내 앞에 앉았다.
아무래도 원래 성격이 이렇게 활기찬 아이인 것 같았다.
“너 몇 살이냐?”
“음, 이제 스물둘이죠.”
“어리네. 그럼 열다섯에 납치당한 건가?”
“네.”
소월이 아무렇지 않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에 왠지 모르게 괴리감이 느껴졌다.
그녀가 백귀일 적에는 온통 사나운 인상뿐이었는데, 또 이렇게 보니 느낌이 다르다.
“기억은 있냐?”
“음, 전에도 말씀드렸지만 드문드문 있어요.”
난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건강해 보여서 다행이었다.
“변천의 위치는 모른다 했으니 넘어가고, 네가 거기서 주로 했던 일은 뭐였지?”
“음…….”
소월의 표정이 조금 어두워졌다.
“주로 암살 같은 걸 했었던 것 같아요. 이를테면 살수?”
“사람을 꽤 많이 죽였겠네.”
내 말에 소월이 고개를 저었다.
“아뇨. 그건 또 아니에요. 항상 누군가를 죽여야 될 때는 충귀나 전귀가 나서곤 했으니까요.”
“아, 그렇지.”
중요한 문제를 잊었다.
“너랑 충귀 말고 두 명이 더 있다고 했지. 그들은 어떤 놈들이지?”
“상귀랑 전귀요? 음, 그냥 무서워요. 지금 생각하면…… 어휴.”
소월이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겁이 나는지 몸을 떨었다.
“전귀는 정말 미치광이예요. 싸움에 환장했다고나 할까? 제 기억에서도 전귀는 좀 강렬하게 인식이 박혀있어요. 변천맥 그 쌍놈 새끼한테 덤비기도 했었다니까요?”
“오호라?”
꽤 중요한 단서다.
한마디로 고독으로 완벽한 통제는 하지 못했다는 뜻도 된다.
“상귀는?”
“음, 잘 모르겠어요. 워낙 나서는 것을 못 봐서.”
“비밀이라 이거군. 후, 뭔 비밀이 이렇게 많아.”
난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들의 특징을 알아 두면 대비하는데 좋을 텐데.
“근데 본 적은 있어요. 중요한 거래가 있는 날이면 항상 상귀를 대동하고 다녔거든요. 그 쌍놈 새끼가.”
소월이 말하는 쌍놈 새끼는 당연히 변천맥이다.
“잠깐만…….”
난 천천히 소월을 훑어보았다.
내 눈짓에 소월이 얼굴을 붉히며 얼른 앞을 손으로 가렸다.
“왜, 왜 그렇게 보세요. 저, 저는 단주님이 그 조, 좋긴 하지만 그, 그래도…….”
“뭔 생각하는 거야. 그게 아니라…… 너 변천맥이 뒤지고 나서 고독을 뱉었잖아?”
“아, 네. 그렇죠.”
소월이 작게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변천맥이 죽으면서 고독의 통제가 풀린 건가? 그럼 상귀랑 전귀라는 놈들도…….”
“아? 그럴 수도 있겠네요.”
소월과 내 표정이 동시에 진중하게 변했다.
“자, 들게.”
그때 장로가 다 끓인 차를 내왔다.
난 아무 생각 없이 차를 들이켰다.
“향이 좋군. 무슨 차지?”
“군산은침차네.”
“와.”
소월이 입을 떡 벌렸다.
난 그게 뭔지 몰라 그냥 고개만 끄덕였다.
“엄청 비싼 차예요. 한 해에 한 줌도 안 되는 양만 나와서 구하기도 힘들고 지역도 한정됐다구요.”
“그래?”
흠, 그 정도까지의 맛은 아닌 것 같은데.
그래도 귀한 거라니 감사히 마셔야겠다.
“끌끌, 예전에 꿍쳐 둔 거다. 찬 몸을 보하는 데도 좋고 원기 회복에도 뛰어나다고 하니 쭉 마시거라.”
“그럼요. 이걸 왜 남겨.”
말과 함께, 소월이 이내 차를 홀짝홀짝 마시기 시작했다.
마치 한 방울도 아깝다는 듯이 향을 있는 대로 음미하면서.
“그럼 난 가 봐야겠군.”
이내 차를 다 마신 나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얻을 건 대충 다 얻었으니, 빠르게 다음 상황을 구상해야 했다.
“이보게, 주 공자.”
책방을 나가려는 나를 장로가 붙잡았다.
“이걸 가져가게.”
장로가 내게 기다란 원통형 모양의 뭔가를 건네주었다.
“이건 신호탄일세. 언제 어디서든 그 신호탄을 사용하면 하오문도들이 자넬 도울걸세.”
“후, 고맙군.”
쓸 일은 없을 것 같았지만, 난 그래도 잘 챙겨 품에 넣었다.
“자, 이것도.”
이내 장로가 한 가지 물건을 더 건네주었다.
그건 자그마한 단추 같은 물건이었는데, 가운데에는 동귀라는 글자가 음각되어 있었다.
“동귀패네. 동쪽의 귀인에게만 내리는 패로, 자네는 이제 하오문의 귀인이 된 걸세.”
“좋은 건가?”
“하오문의 정보는 특급까지 모두 열람할 수 있다는 말도 되네.”
“좋은 거네.”
무진장 좋은 거다.
하오문의 정보력이라면 정말이지 든든할 수 밖에 없었다.
“좋아, 또 연락하지.”
“잘 가시게.”
장로가 해맑게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이내 소월이 자리에서 일어나, 장로 곁으로 다가갔다.
그녀가 장로를 향해 온갖 애교를 부리기 시작했다.
“할아버지이.”
“안 된다.”
장로가 순간 낯빛을 바꾸며 냉정하게 소리쳤다.
“아이, 참 혹시 모르잖아. 내가 단주님 정보원으로 들어가면 어? 막 서로 한눈에 반해서 어? 신기검단주를 손녀사위로 들일 수도 있는…….”
딱!
결국 장로가 참지 못하고 그녀의 머리통을 후려쳤다.
“이년은 칠 년 동안이나 이 할아비 속을 썩였으면서 한다는 소리가! 뭐? 주씨세가에서 일을 해? 에라이!”
“에잇, 몰라! 할아버지는 내 맘 아무것도 몰라!”
피식.
불평을 터트리는 소월을 보며 장로가 잔잔히 웃었다.
모처럼 느끼는 행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