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ll special! Dungeon Master RAW novel - Chapter 47
47
퍼엉.
붉게 달아오르던 거대한 돌덩이가 산산조각이 나 버렸다.
젠장, 속으로 ‘쓰러뜨렸나?’라고 부활의 주문을 외운 것이 잘못이었던 건가.
묵직한 소리와 잔해를 걷어 내며 나온 것은 당연하게도 카나야였다.
그녀의 몸에선 치이이익, 하는 요란한 소리와 함께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다 했나?”
카나야는 고개를 들더니, 착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
“마법사란 족속이 얼마나 짜증 나고 위험한 놈들인지 다시 한번 뼈저리게 느끼게 해 준 것에는 고맙게 생각한다. 이 눈을 얻고 나서는 잠시 잊고 있었는데 말이야. 답례로 내가 한 약속, 꼭 지키도록 하지.”
말끝에 빠드득하는 이 가는 소리가 더해진 걸 보니 고마운 마음은 전혀 없어 보였다.
물론 사지를 정성 들여 찢어 주겠다던 약속을 지킬 마음은 확고해 보였지만, 그건 전혀 기쁘지 않았다.
말을 마친 카나야가 천천히 일어났다.
그리고 그녀의 발밑에서 예의 그 검붉은 웅덩이가 다시 생성됐다.
이번에는 삼키기 위한 것이 아니라 뱉어 내기 위한 것이었는지, 그 안에서 세 명의 육체가 꾸물거리며 기어 나왔다.
“너희들이 그렇게 믿고 있던 악마의 벽의 주인과 그 자식들이다. 우리를 저 척박한 땅에 가둬 둔 가증스러운 놈들이지. 너도 곧 이들과 함께하게 될 것이다.”
나는 네 명으로 불어난 적을 보며 시간을 가늠했다.
대략 7분쯤 지난 것 같은데…….
아직은 남은 시간에 여유가 있다고 판단한 나는 입을 열었다.
“말하는 걸 보니 왜 이런 일을 벌였는지 대충은 알겠군.”
카나야의 걸음이 뚝, 하고 멈췄다.
“안다고? 네놈들이 뭘 안다는 말이냐! 저 척박한 땅으로 우리를 내쫓고, 수백 년을 가둬 둔 주제에! 네놈이 굶주림을 겪어 봤느냐! 먹을 게 없어 어제 친구를 잡아먹은 괴수의 고기를 뜯으며 살아왔다. 괴수를 사냥하다 죽은 동족마저 우리에겐 식량이었다.”
카나야가 꽉 쥔 손에서는 듣기 싫은 쇳소리가 났다.
“야만족, 너희는 우리를 그렇게 부르지. 맞는 말이다. 하지만 우리를 이렇게 만든 건 너희들이다. 그 죗값은 너희의 피와 고기로 받아 내겠다.”
카나야의 손가락은 정확히 나를 가리키고 있었다.
“난 그런 구구절절한 사연에는 관심 없어. 내가 궁금한 건 범행 동기가 아니라 범행 수단이다. 그 능력은 어디서 어떻게 얻었지?”
내 질문을 들은 카나야의 행동이 멈췄다.
하지만 그것 외에는 투구 때문에 표정을 읽을 수가 없었다.
“내가 헛다리 짚은 것이면 좋겠지만, 그런 것 같지는 않고. 말하는 걸 보니 나랑 완전히 같은 부류는 아냐. 일단은 여기서 태어난 것 같으니까. 그래도 혹시 모르잖아. 서로 모르는 정보가 있을지도. 서로 사생결단 내기 전에 정보는 교환하는 게 어때? 내 질문에 대답해 주면 네 질문에도 대답해 주지.”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냐? 너도 나와 같은 신의 사자라도 된다는 말이냐? 웃기지 마라. 악마보다도 잔인한 너희들이 우리들의 신께 닿을 수 있을 리가 없다. 이 능력은 신께서 너희를 벌하기 위해 내게 내려 주신 것이다!”
“신?”
그녀의 목소리에는 분노와 당황이 반씩 섞여 있었다.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지는 않은데.
나는 마지막으로 질문했다.
“혹시 지옥은 알고 있나?”
“하, 네놈이 지옥을 입에 담는 것을 보니 구역질이 나는구나.”
카나야는 손을 들어 한 방향을 향해 쭈욱 뻗었다.
“지옥은 저 악마의 벽 너머에 있다.”
“저건 내가 만든 벽인데.”
“닥쳐라!”
내 위트 있는 농담을 들은 카나야는 소리를 빽 질렀다.
“네가 어떻게 신의 권능을 무시하고 조잡한 마법을 써 대는지, 어떻게 신의 존재를 알게 됐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차피 너만 죽어 없어지면 될 일. 다음 대면은 식사 자리에서 하도록 하지.”
“미안하지만 그 데이트 제안은 거절한다!”
촤좌좌좍.
나는 슬슬 대화를 마무리하려는 카나야를 보고 먼저 선수를 쳤다.
그림자 마수의 검은 가시가 아가일 변경백과 두 아들을 갈기갈기 찢어 버렸다.
그동안 내 변칙적인 공격에 시달리느라 이놈들을 신경 쓰지 못했나 본데, 쫄을 다루는 건 내가 한 수 위란다.
“이 비겁한 새끼가 끝까지!”
“그딴 갑옷 입어 놓고 비겁을 논하지 마!”
“으아아아!”
카나야는 괴성을 지르며 투창 자세를 취했다.
창도 없이, 라는 의문이 생기기도 전에 나는 반사적으로 방패들을 꺼냈다.
그 무조건적인 반응이 나를 살렸다.
갑옷이 꿈틀거리며 카나야의 손에 창이 생성된 것이다.
까아아앙.
카나야의 손을 벗어난 창이 내 방패에 날아와 박혔다.
한 장, 두 장, 세 장. 방패가 종이라도 된 듯 찢어지는 소리는 소름이 돋을 정도로 끔찍했다.
그나마 한 개로 막아 보려는 생각을 안 해서 다행이었지만,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쉴 찰나의 여유도 없이 달려드는 카나야를 대비해야 했다.
대화를 하면서 정보를 얻으려던 것은 사실이지만, 피 같은 시간을 소모하면서 그것만 한 것은 아니다.
눈이 빠져라 그녀의 갑옷을 살핀 결과, 왼쪽 어깨와 오른쪽 발목, 그리고 투구 끝부분이 회색으로 변색되고, 살짝 실금이 가 있었다.
저 갑옷은 빌어먹을 정도로 단단하긴 하지만 무적은 아니란 뜻이고, 무적이 아니란 건 두드리다 보면 언젠가 부서진다는 말이었다.
카나야는 분명 엄청난 힘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그 폭발적인 힘을 추진력으로 사용하는 특유의 돌진은 무서운 힘과 속도를 자랑한다.
그렇다고 평균적인 속도마저 압도적으로 빠른 것은 아니다.
순수 능력치만을 따지면 던전 안에 있는 내 쪽은 마력을 제외한 능력치들이 각각 300이 약간 넘는 수준.
힘만 제외하면 카나야보다 높다.
괴물은 괴물이되, 잡을 수 없는 괴물은 아니란 뜻.
어차피 저 괴물을 쓰러뜨리지 못하면 앞으로 길어 봐야 20분밖에 남지 않은 시한부 인생이다.
정말로 죽느냐 사느냐의 갈림길에 선 것이다.
지금까지도 직접 싸울 때는 죽을 수도 있는 상황이 비일비재했지만, 언제나 묘하게 생명의 위협을 느끼진 않았었다.
그래, 자만이라고 해도 좋을 것 같다.
이 정도 위기는 극복할 수 있다고, 내가 상황을 통제할 수 있다고, 그런 심리가 기저에 깔려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20분 뒤에 살아 있는 게 나일지, 아니면 저 괴물일지 가늠조차 되질 않는다.
안개가 자욱한 미지의 영역에 맨몸으로 들어가는 기분.
그 안개 속에 얼마나 많은 칼날이 있는지도 모른 채 말이다.
어느새 카나야는 내 코앞까지 도달해 있었다.
나는 그대로 주욱 뒤로 물러났다.
지형 변화를 계속 쓰다 보니 지형 변화를 이용해서 내 위치의 지면을 다른 곳으로 옮기는 것까지 가능해진 것이다.
쓰면 쓸수록, 익숙해지면 익숙해질수록 던전 창의 메뉴에 정해진 것만 할 수 있던 것이 마치 내 몸을 쓰는 것처럼 자연스러워졌다.
5단계 던전이 제공하는 기능을 넘어서는 짓은 할 수 없지만, 정해진 한계 내에서 응용하는 것은 내 마음대로 가능해졌다.
뒤로 물러나는 중에 뒤쪽에서 기척이 느껴졌다.
이미 3인칭 시점 화면을 띄워 놓은 나는 그 기척이 새로이 소환된 카나야의 병사임을 뒤를 돌아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나는 내 뒤통수를 향해 달려드는 병사들 앞쪽에 와이어 함정을 설치했다.
투두둑.
쩌엉.
뒤쪽의 병사들이 토막 난 밀랍 인형이 되어 구르는 찰나에 앞쪽에서 돌진해 온 카나야를 벽을 생성해서 막았다.
강철로 재질까지 바꾼 벽이 형편없이 우그러진다.
나는 카나야의 움직임이 잠시 멈춘 짧은 틈을 파고들어 사방에서 함정을 발동시켰다.
마비 가스와 금속 가시, 화염, 이어서 냉기까지 짧은 간격을 두고 공격이 쏟아졌다.
파악.
화염 이후에 이어진 냉기가 만들어 낸 자욱한 수증기를 뚫고 나온 카나야를 기다린 것은 내가 아니라 여러 마리의 애시드 보머였다.
안이 훤히 비치는 피막으로 된 몸을 가진 애시드 보머는 저돌적으로 카나야에게 달려들어 그대로 자폭했고, 강산성의 체액이 그녀를 덮쳤다.
치이익.
“이익!”
갑옷에서 연기가 나는 와중에도 내 위치를 파악한 카나야가 주변의 돌을 집어 던졌다.
퍼엉.
돌과 방패가 충돌했다고는 믿기 힘든 폭발이 일어나고, 날카롭게 부서진 돌조각이 사방으로 흩어진다.
이 정도 위력이면 원시적인 파열 수류탄이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 정도다.
카나야는 내 치졸한, 아니 지능적인 전법에 질렸는지 노선을 바꿨다.
우리를 가두고 있는 벽을 부수고 탈출을 시도한 것이다.
그녀는 한차례 무릎을 굽혔다가 자신을 쏘아 내듯 도약했다.
좋아.
나는 그 모습을 보고 속으로 외쳤다.
카나야는 처음에는 우리를 격리한 이 공간에 자신이 갇혔다는 인식이 없었을 것이다.
사람이 자진해서 맹수와 같은 방에 갇혔다고 해서 맹수가 그곳을 피하려 하지는 않는 것처럼.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맹수는 깨달은 것이다.
이 방은 자신을 사냥하기 위해 꾸며진 특별한 공간이란 것을.
그리고 맹수를 뛰어넘은 괴수를 사냥하기 위해서는 그 심리마저 이용해야 한다.
빠앙, 빠앙, 빠앙, 퍼엉, 퍼엉, 퍼엉.
그녀가 막 천장에 부딪히려는 순간, 카나야를 중심으로 공기가 터지는 소리와 폭발음이 연속해서 울렸다.
“크아아악.”
카나야가 공중에서 폭발에 휩쓸린 채 바닥으로 추락했다.
나는 그 장면을 보고 안도와 함께 희열을 느꼈다.
그녀가 처음으로 비명을 지른 것이다.
“역시 이것까지 막아 내진 못하는군.”
바닥에 추락한 카나야는 여느 때처럼 벌떡 일어나지 못하고 바닥에 엎드린 채 비틀거리고 있었다.
연쇄 폭발 함정은 그녀가 밖으로 나가는 걸 막은 정도로 별다른 타격을 주지 못했지만, 음폭탄 함정은 제대로 통한 것이다.
아무리 단단하고, 독무에 마비 가스, 온갖 속성 공격을 다 방어해 내는 저 갑옷도 고막까지 보호하진 못한 것이다.
천장에서 터진 음폭탄 때문에 지상에서 귀를 막고 있던 나까지 잠깐 주변 소리가 들리지 않을 정도였으니, 카나야가 받은 충격은 상당할 것이다.
나는 새로운 무기를 꺼냈다.
어렵게 만들어 낸 기회인 만큼 여기서 모든 걸 쏟아부어서라도 이 싸움을 끝내야겠다.
“네 빌어먹을 갑옷만 단단한 줄 알아? 나도 단단한 걸로 따지면 안 밀리는 사람이야!”
젠장, 음폭탄을 동시에 터뜨린 후폭풍인가.
큰 소리로 외쳤는데도 내 목소리가 내 귀에 들리질 않는다.
그래도 내가 이 정도라는 건 상대는 더 심각하다는 소리다.
나는 지옥 주머니에서 한동안, 그리고 영원히 꺼내고 싶지 않았던 물건을 꺼냈다.
아스모데우스의 배트.
이제 슬슬 이 흉측한 물건을 꺼내지 않고도 잘 헤쳐 갈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 끔찍한 걸 다시 휘두르게 만든 걸 후회하게 해 주지.”
빠아악.
나는 아스모데우스의 배트로 비틀거리며 일어나려 하는 카나야를 강하게 후려쳤다.
텅터덩.
그 충격에 카나야가 물수제비처럼 바닥에 여러 번 튕기면서 날아갔다.
갑옷 탓인지, 아니면 정신이 없어서인지 샤르잠을 두들겼을 때의 반응은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그런 건 상관없다.
이 대결은 단단하기로는 천하의 명검이 부럽지 않다는 흉측한 몽둥이와 저 미국 대장 방패를 녹여 만든 게 아닌가 싶을 만큼 단단한 갑옷의 자존심을 건 단단함 대결이 될 테니까.
“그, 그건 도대체 무슨……? 네놈은 전사의 명예란 것도 모르는 거냐! 어떻게 그런 흉측한……!”
“닥쳐! 이 물건을 본 이상, 살아서 여길 나갈 생각은 버리는 게 좋을 거다.”
콰앙.
카나야는 아스모데우스의 거근을 팔뚝으로 방어하고는 이를 갈았다.
“너야말로 지금 자살해라. 내 손에 잡히면 무슨 짓을 할지 나도 모르겠으니까.”
벌써 음폭탄 효과가 다하고 있는 건가.
나는 바닥을 움직여 더욱 뒤로 물러나며 귀를 막았다.
“이런?”
카나야는 그런 나를 보고 반사적으로 자신도 귀를 막았다.
파앙.
하지만 이번에 터진 것은 음폭탄이 아니라 강력한 섬광을 일으키는 4단계 함정이었다.
“크아악, 제발 거지 같은 짓 좀 그만해!”
귀를 막았던 손으로 눈을 가린 카나야가 악다구니를 내뱉었지만, 나는 대답 대신 매를 퍼부었다.
지면이 들썩일 정도로 강력한 타격이 계속되자, 퍼석하고 갑옷 가장자리가 회색으로 변하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텅.
잠시 갑옷을 살피는 사이에 시력을 회복한 카나야가 배트를 튕겨 냄과 동시에, 몸을 한 바퀴 회전하는 힘까지 실어서 투창을 날렸다.
퍼억.
그 창은 그녀가 노린 목표물을 멋지게 관통하고, 남은 힘을 주체하지 못한 채 벽에 큰 구멍을 냈다.
“됐… 이런 제길!”
실눈을 뜨고 그 광경을 보던 카나야는 완전히 시력이 확보되자, 자신이 노린 것이 내가 아니라 오크라는 것을 확인하고 욕지기를 내뱉었다.
그리고 나를 찾기 위해 고개를 돌리는 순간, 눈앞에는 내 배트가 있었다.
빠악, 하는 살벌한 타격음과 함께 고개가 다시 팩, 돌아갔다.
퍼석.
이번에도 투구 끝부분이 회색으로 변하면서 실금이 살짝 간다.
“허억, 허억.”
카나야의 거칠어진 숨소리에서 지친 기색이 역력히 느껴졌다.
하긴, 지금 이 싸움은 투우와도 비슷하다.
나는 효율적인 동선으로 움직이면서 최대한 상대에게 피해를 누적시키려고 했지만, 카나야는 그저 저돌적으로 나를 잡아 죽일 생각만을 하면서 돌격했다.
한 번이라도 공격을 성공시키면 나를 가루로 만들 자신이 있어서겠지만, 그런 전투 방식은 체력 소모가 극심하기 마련이다.
“나보고 흰 돼지라고 했던가? 와라, 갈색 송아지. 한번 확인해 보지. 네 손이 내게 닿는 게 빠를지, 네가 쓰러지는 게 빠를지 말이야.”
대답은 없었다.
그저 다시금 무서운 속도로 돌진해 오는 모습만이 있을 뿐.
카나야와의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심장 박동이 빨라지면서 주변 시야가 뿌옇게 흐려졌다.
그런 와중에도 머리는 내가 놀랄 만큼 차가웠고, 주변이 뿌옇게 보이는 만큼 나를 노리는 카나야의 움직임이 하나하나 정확하게 보였다.
그중에서도 오른쪽 팔뚝에 생긴 균열이 눈에 들어왔다.
지금까지 카나야는 오른팔이 방패라도 되는 것처럼 공격을 막아 왔었다.
나는 이번에는 벽을 만들지도, 몸을 빼내기 위해 지형을 변형하지도 않았다.
그저 온 신경을 집중해서 한 점을 노린 공격을 준비했다.
보다 날카롭게, 조금 더 빨리, 더 강렬한 회전까지.
한계 이상으로 축적한 힘이 해방되자, 끊어지기 직전까지 당겨진 활시위가 해방된 것처럼 아스모데우스의 거근이 날아갔다.
방어를 도외시한 돌격과 내 필사의 일격이 정면으로 부딪쳤다.
퍼어억, 후드득.
뿌옇던 주변이 선명해졌다.
동시에 나는 균형을 잃고 굴러온 카나야와 충돌했다.
콰왕, 하는 소리를 귀가 아닌 온몸으로 듣는 기분을 느끼며 날아간 나는 그대로 벽에 처박혔다.
“커허억!”
젠장, 아무리 그래도 나도 마법 갑옷으로 몸을 두르고 있는데다 체력도 높은 수준인데도 이 정도 충격이라니.
정타로 맞았으면 그야말로 가루가 됐겠군.
벽에 처박힌 신세가 된 나도 볼품없었지만, 카나야도 멀쩡하진 않았다.
그녀는 내가 서 있던 자리에 쓰러져 있었다.
“쿨럭……!”
비척거리며 억지로 몸을 일으키려던 카나야는 결국 무릎을 꿇고 앉은 자세를 취한 게 한계였다.
그녀는 오른팔뿐만 아니라 오른쪽 옆구리에도 움푹 파인 상처를 입은 상태였다.
상처 입은 부위를 보호하던 갑옷에서 퍼서석, 하며 회색 조각들이 내장 조각과 함께 섞여 쏟아지고 있었다.
“내가… 먼저 닿았다.”
“뭐라고? 쿨럭, 쿨럭.”
젠장, 갈비뼈가 나간 건가.
숨을 쉬기도 힘들 정도로 가슴이 뻐근하다.
빨리 마무리를 지어야 하는데, 또 폭주라도 한 건지 마력이 내 말을 듣지를 않는다.
“우리는 야만족이 아니라, 칸바로의 전사들이다.”
쿠웅.
겨우 들릴 정도의 크기로 중얼거린 카나야가 앞으로 고꾸라졌다.
“……?”
쓰러졌다? 저 괴물이?
나는 앞으로 고꾸라져 있는 카나야를 바라봤지만, 내 눈으로 보고 있음에도 믿기 어려운 광경이었다.
당장이라도 다시 일어나 성난 황소처럼 나를 향해 달려들 것만 같았지만, 카나야는 미동도 없이 바닥에 쓰러져 있을 뿐이었다.
그 광경이 실감하기에는 너무 비현실적이어서 나는 그때까지도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주변의 모든 것이 멈추고, 색도 사라져 모든 것이 회색빛이 됐다는 것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