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o Wants to Become the Demon King RAW novel - Chapter 46
제46화. 의지했던 존재
4년 전, 이뉘디아 본가.
“나 왔어 이사벨~!”
마치 자기 방 드나들 듯 편한 인사를 건네며 방에 들어오는 루비아.
이에 책을 읽고 있던 방의 주인이 그녀의 출입을 제한했다.
“동작 그만. 잠깐 거기 서 있어.”
지시와 함께 천장에서 푸른 물방울이 똑똑 떨어졌다.
곧 바닥에 떨어진 물방울에서 거품이 올라오더니, 머지않아 푸른 피부를 가진 소녀의 모습으로 변했다.
물의 하급 정령 운디네(Undine)였다.
“이번에 새로운 정령이랑 계약했다더니, 이 아이인가 보네? 착하게 생겼다!”
“잔말 말고 검문이나 받아.”
이사벨은 무심하게 말하며 정령에게 루비아의 몸을 수색할 것을 명령했다.
운디네는 물기가 느껴지는 손으로 그녀의 몸 구석구석을 만져댔다.
루비아는 딱히 불쾌해하는 기색 없이 정령의 접촉을 자연스럽게 받아줬다.
이윽고 이상 없다고 판단한 운디네는 조용히 사라졌다.
루비아는 바로 이사벨에게 다가갔다.
“너도 질리지 않니? 아무리 네 집안이 난장판이라지만, 나 정도는 이제 검문 없이 받아줄 수 있지 않아?”
“너만 하는 거 아니니까 불평하지 마. 내 방에 출입하는 마족이면 다 하는 거니까.”
그게 가족이라 해도 예외는 없었다.
오히려 가족이기에 더 철저히 하는 것도 있었다.
“지금은 뭐 읽고 있는 거야?”
“운디네와 관련된 교서. 얘가 말은 잘 듣긴 하는데, 묘하게 다른 정령들을 질투하는 마음이 있는 것 같더라고. 그 부분을 어떻게 교정해줘야 하는지 보는 중이야.”
“와. 너도 진짜 대단하다! 이미 열 살에 다섯 속성의 정령과 계약한 것도 모자라, 계속 늘려나가고 있으니. 이 정도면 종주가 될 자격도 충분히 있는 거 아니야?”
“말했잖아. 난 종주에 관심 없다고.”
실제로 이사벨은 당시만 해도 가문을 이끄는 종주 직에 아무런 바람이 없었다.
자신보다 더 어울리는 마족이 있다고 생각했기에…….
“어련하겠니? 근데 요즘 이상한 소문 돌더라? 마계에 새로운 마왕을 추대하자는 이야기가 들리던데?”
“필요할 만하지. 전대 마왕이 죽고 난 후의 마계는 그야말로 혼돈 그 자체였으니까.”
이사벨은 고개를 끄덕이며, 새로운 마왕의 필요성에 동조하는 반응을 보였다.
“듣자 하니까, 각 가문별로 후보 한 명씩을 선출해서 경합하자는 말이 있던데? 이긴 마족에게 모든 힘을 몰아준다는 방식으로…….”
“그럼 너도 참여하게 되는 거 아니야? 넌 종주 직이 이미 확정된 거나 다름없다면서?”
“맞아. 그래서 이게 정말로 실현된다면 매우 귀찮아질 예정이지.”
루비아는 될 대로 되라는 듯 이사벨의 침대로 뛰어들었다.
“이사벨, 너 만약 나랑 너희 쪽 후보가 싸워야 하는 상황이 온다면, 그땐 누구 응원할 거야?”
“뭘 그런 걸 물어? 그야 당연히…….”
이사벨은 잠시 머뭇거렸다.
“우리 이뉘디아 가 쪽에서 배출한 후보를 지지해야지.”
“그렇게 싸우면서도 피는 어쩔 수 없다 이거니?”
“너무 서운해하진 마. 그래도 넌 죽이진 말라고 의견은 내줄 테니까.”
“뭐야 그 자신감은? 그러다 내가 마왕이 되면 어쩌려고?”
“그것도 나쁘진 않겠네.”
적당히 받아주던 이사벨은 이내 책을 덮더니, 루비아와 본격적으로 눈을 마주했다.
“그래서, 오늘은 뭐 하러 왔는데?”
“응? 아, 전해줄 소식이 하나 있어서. 내 예감 상 넌 모르고 있을 것 같았거든.”
“뭐길래 그래?”
“나 이뉘디아 가 쪽에서 혼담 제의 들어왔어.”
이사벨의 표정은 정확히 2초간 굳었다.
“그리 놀랄 표정 지을 거 없어. 알잖아? 혼담은 겉으로 포장된 형식에 불과하다는 거. 우리 쪽 힘을 빌리고 싶다는 의견을 간접적으로 전한 거야.”
여유가 넘치는 루비아와 달리, 이사벨은 몸의 바짝 경직되었다.
자신은 모르는 이뉘디아 가와 룩스리아 가의 혼담을 가장한 협력 제의.
이는 이사벨에게 있어 결코 좋은 일이 아니었다.
“누가 제의했어?”
루비아는 대답 대신 침대에 누운 채로 문 쪽을 바라봤다.
문 너머론 일련의 무리가 다가오는 기척이 느껴졌다.
“지금 오는 남자.”
곧 노크와 함께 문이 열리며, 이사벨과 같은 금발의 순혈 마족이 안으로 들어섰다.
“이, 이런 두 분 같이 있으셨군요?”
마족은 왠지 모르게 조금 당황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 * *
이사벨은 내게 말했다.
자신은 가문 내에서 아무도 믿지 않는다고.
그게 피붙이든, 영혼을 공유한 퍼밀리어든 상관없이, 전부 자기를 죽일 수 있는 존재로 간주해서 경계한다고 했다.
그런 그녀에게 비록 과거형이긴 해도 절친이라고 부를만한 존재가 있었다니.
솔직히 좀 놀랐다.
보통 친구라는 건 서로 간에 경계심 없이 마음을 나눈 관계를 의미하지 않는가?
즉 이사벨에게 있어 루비아는 그녀의 닫힌 마음을 잠시나마 열게 해준 매우 특별했던 존재란 거다.
말도 안 돼.
이 음욕으로 충만한 서큐버스에게 마음을 열었다고?
4년 전의 이사벨은 어딘가 좀 모자랐던 건가?
뭐 아무튼,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지.
“이사벨의 집안이 어떤지는 알지?”
“서로 죽이지 못해 안달 난 집안이라고 들었습니다.”
“맞아. 힘 있는 가문치고 안 그런 곳이 어딨겠냐마는, 아! 참고로 우리 룩스리아 가는 아니야. 우린 사이가 되게 좋거든!”
루비아는 말하다 말고 얼굴을 감싸며, 자찬을 늘어놓았다.
“아무튼, 이뉘디아 가는 다른 가문보다 집 안 싸움이 특히나 더 심한 곳이야. 그런 곳에서 자라서 그런지, 처음 봤을 땐 정도 없고, 굉장히 무뚝뚝했었지.”
“아니, 근데……. 애초에 두 분은 어떤 계기로 친해지신 겁니까?”
나로선 그게 제일 궁금했다.
“원래 유력한 가문끼리는 교류 같은 거 자주 하잖아? 나와 이사벨도 처음엔 그런 비즈니스적 관계였어. 그러다 보니…….”
루비아는 말하다 말고 갑자기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게? 나 걔랑 어떻게 친해진 거였지?”
그걸 나한테 물으면 어쩌자고?
“뭐랄까? 그냥 알게 모르게 이사벨이 나랑 자주 있으려고 하다 보니, 그렇게 됐다고나 할까? 집안 마족들이랑 있는 것보다, 나랑 있는 걸 더 선호하는 것 같긴 했어.”
“자길 경계하는 집안 마족들보단 훨씬 안전하다고 느껴서 그런 거 아닐까요?”
“듣고 보니 그런 것 같다. 나랑 같이 있는 동안엔 집에선 안 한다는 정령에 관한 연구도 많이 했었으니…….”
그런 개념이라면 어느 정도 이해가 됐다.
적어도 타 가문의 마족과 함께 있는 상황에선 그녀에게 위협을 가하는 멍청한 짓을 하진 않았을 테니.
“그때만 해도, 이사벨은 종주나 마왕 후보 같은 거엔 별 관심 없어 했어. 거기엔 자기보다 더 적합한 마족이 있다고 생각했을 시절이니까. 어느 정도 의지도 했던 것 같고…….”
“그게 누구였단 겁니까?”
“안톤 이뉘디아. 이사벨과 부모가 같은 친오빠이자, 당시 이뉘디아 가의 장남이었던 마족이야.”
친오빠라.
그래도 가족 간에 정이 아예 없진 않았던 건가?
“더불어 내게 혼담을 제의한 마족이기도 하지!”
“호, 혼담 말입니까?”
“응! 근데 내 쪽에서 깼어! 아주 일방적으로!”
일방적이라고 해봐야 뭐 얼마나…….
“죽여버렸거든. 내가…….”
순간, 나는 등 뒤에 숨긴 오른손으로 다시 아크베리아를 생성했다.
“내가 안 죽였으면, 이사벨이 죽었을 테니까.”
그 말을 듣자마자, 바로 소멸시켰다.
루비아는 슬그머니 눈을 감더니, 이내 황무지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저길 봐.”
그녀가 가리킨 곳엔 방금 전에 없던 새로운 환상이 나타나 있었다.
내게는 익숙하지 않은 어린 나이의 이사벨, 그리고…….
“저 남자가 바로 안톤이야.”
이사벨의 친오빠라고 하는 안톤 이뉘디아의 환상이었다.
하하 호호 웃으며 대화를 주고받는 둘의 모습은 영락없는 우애 두터운 남매의 모습이었다.
어색하네.
그래도 저 나이 때엔 저런 식으로 웃기도 했다는 건가?
“이사벨의 저 웃음은 나도 잘 못 보던 거야. 유독 저 남자랑 있을 때만 잘 웃더라고. 저 살벌한 집안에서 유일하게 진짜 가족이라고 생각했던 거지.”
“그런데 왜…?”
“계속 봐봐.”
화목한 대화를 이어 나가는 둘.
이내 일이 생긴 이사벨이 이만 떠나려 하자, 안톤은 잘 가라며 정겨운 인사를 나눴다.
그 이후엔…….
하하.
나도 모르게 헛웃음이 튀어나왔다.
몸을 돌린 이사벨과 그런 이사벨의 뒷모습을 지켜보는 안톤.
그의 눈엔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의 부정적인 감정들이 잔뜩 담겨있었다.
분노, 증오, 두려움, 시기.
그 온갖 감정들이 어우러져 만들어진 엄청난 살기.
나조차도 치를 떨 정도였다.
“내가 악몽의 세계를 통해 본 안톤의 진면이 바로 저거였어. 이사벨은 안톤을 믿고 의지했지만, 안톤은 정작 자신의 여동생을 가장 두려워하고 있었지. 죽이고 싶을 정도로…….”
“어째서?”
“이사벨의 능력이 워낙 뛰어났으니까. 질투는 저 가문의 어쩔 수 없는 본성이야. 언젠가 자신을 넘어 위협을 가할 존재라고 생각했던 거지.”
그것도 모른 채, 싱글벙글 웃는 이사벨의 얼굴을 보고 있자니, 환상이지만 안쓰러울 지경이었다.
“그래서 저 안톤이란 마족을 죽이신 겁니까? 이사벨 님을 지키기 위해?”
“처음부터 죽일 의도는 없었어. 다만 너와 다르게 안톤은 자신의 두려움을 극복하지 못했어. 그래서 악몽에서도 빠져나오지 못했고…….”
“그럼?”
“악몽을 방황하다가 그대로 죽어버렸어. 솔직히 발악 한 번 못하고 죽을 줄은 몰랐는데…, 그냥 그 정도밖에 안 된 남자였던 거지 뭐.”
루비아는 딱히 죄책감을 느끼진 않는 듯했다.
“이 사실을 이사벨 님은 아는 겁니까?”
“알지, 왜 모르겠어? 지금 이뉘디아 가에서 안톤 죽음에 대한 진상을 아는 건 그녀가 유일할걸?”
“그럼 다른 마족들에겐 안 들켰다는 겁니까? 루비아 후보가 죽였다는 사실을?”
“난 그리 호락호락한 서큐버스가 아니거든! 난 증거를 남기지 않아! 물론 정기 흡수도 안 했지!”
루비아는 고개를 내리며 요염한 눈웃음을 지었다.
“어차피 그 집안은 가족 간의 살인이 하루가 멀다 하고 벌어지는 곳이야. 그래서 오히려 내가 아닌, 같은 이뉘디아 가의 일원이 용의자로 지목됐었지. 가장 의심받았던 건 아무래도…….”
이사벨이었겠지.
안톤을 지지하는 쪽에선 그녀가 먼저 선수를 쳤다고 봤을 것이다.
“뭐 이사벨이랑은 그 일을 계기로 틀어지게 된 거야. 가문 간의 교류도 마왕 경합이 시작되고 나선 완전히 끊겼지. 그렇게 시간이 흘러가면서 옛날 일이 되는구나 싶을 때쯤, 네가 나타난 거고!”
그녀는 손가락으로 대뜸 내 이마를 꾹 찔렀다.
“솔직히 나 걱정 많이 했다? 걔가 또 똑같은 실수를 저지르는 건 아닐까 하고…. 하지만 괜한 걱정이었던 것 같네!”
“무슨 의미입니까?”
“알면서 모른 척은! 이야기하다 보니, 벌써 시간이 다 됐네? 이제 그만 꿈속에서 깰 시간이야!”
-쩌적
대뜸 공간에 균열이 생기더니, 그 틈으로 밝은 빛이 새어 나왔다.
“깨어난 우리를 볼 이사벨의 얼굴이 궁금한데?”
그 말에 잠시 가라앉아있던 불안감이 다시 샘솟았다.
“그건 또 무슨 말……!”
허나 내 몸은 말을 다 잇지 못한 채, 아득해지는 정신과 함께 다시 현실로 전이되었다.
“벨져 님! 벨져 님!”
나를 부르는 애달픈 목소리에 눈이 떠졌다.
“깨어나셨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미소를 짓는 메이와 브릴리스의 모습이 보였다.
정신을 차림과 동시에 두통이 밀려왔다.
“괜찮으세요?”
“어, 대충은. 미안 걱정했지?”
대충 악몽의 세계에 빠진 순간부터, 접견실 벽에 기댄 채 숙면을 취했던 걸로 보였다.
메이와 브릴리스의 뒤론, 뭔가 곤란한 표정을 짓고 있는 미켄이 보였다.
그리고 그 옆엔 이사벨이 있었는데,
잠들었을 때와 하나도 달라지지 않은 못마땅한 눈으로 날 보고 있었다.
뭐야? 왜 그런 질투에 사무친 눈으로 날 보는…?
“우음….”
순간 매우 익숙한 목소리가 내 아래로부터 들려왔다.
잠깐, 이제 보니까 무릎이 좀 무거운 느낌인데?
지금 내 무릎에 뭔가가 있…….
이런 미친!
“좋아 보이네요?”
질투와 분노가 가득 담긴 이사벨의 차가운 목소리에 그만 온 신경이 얼어붙었다.
내 밑엔 나와 함께 현실로 돌아온 루비아가 내 무릎을 베개 삼아 뒤척이고 있었다.
“응? 잘 잤어 벨져 후보?”
이윽고 깨어난 그녀가 내게 반가운 인사를 건넨 순간,
“이 쳐 죽일 서큐버스가!”
진짜 아크베리아를 꺼내 내려치려는 것을 메이와 브릴리스가 겨우 만류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