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oes, Demons & Villains RAW - chapter (93)
92???
“헉, 헉.”
하인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길을 달렸다.
‘망할 신관 놈들 같으니!’
아프면 신관에게 가면 낫는 것은 상식이다. 주인어른의 병환에는 성력도 소용없었고, 결국 신관들은 치료를 포기해 버렸다.
그렇다고 이대로 손을 놓을 수 없는 노릇, 가문의 모든 하인들이 백방으로 알아본 끝에 그들은 어느 약술사에게 한 가지 희망적인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그건 특수한 약으로만 치료할 수 있는 병이다.’
약은 몸보신에나 쓰는 것으로 알던 하인에게 그것은 참으로 뜬금없는 소리였다. 하지만 이미 절망의 끝에 서 있던 그들에게는 더 이상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이 때문에 하인은 수도를 돌아다녔다. 약술사란 약술사는 모두 찾아보기 위해서…, 그러나 그 결과는 실망스러운 것이었다.
‘내 실력이 미천해서….’
‘으음, 아무래도 안 되겠소.’
‘스승님에게 그런 약에 대해 듣긴 했는데….’
‘내 20년 동안 약술사 노릇을 해 왔지만 실제로 그 약을 만들 수 있다는 약술사를 본 적이 없소.’
‘그런 약도 있소?’
‘크흠. 그런 알지도 못할 약 대신 이 만병통치약 하나면… 케엑!’
차라리 능력이 안 되거나, 약이 없다고 하는 약술사는 양호한 편이었다.
그런 약은 처음 들어 본다는 약술사부터, 사기나 처먹으려는 빌어먹을 사기꾼까지…, 그야말로 온갖 작자를 만나고 다닌 탓에, 하인의 심신은 이미 한계에 도달해 있었다.
그렇다고 빈손으로 돌아갈 수는 없는 노릇, 그야말로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하인은 최근 이주해 온 약술사를 찾아, 수도 외곽의 빈민가를 향해 달려갔다.
정작 하인의 마음에 희망은 없었다. 빈민들을 상대로 장사하는 약술사라면 십중팔구 싸구려 약장수거나 사기꾼일 테니까. 그렇기에 빈민가만큼은 최후로 미뤄 놓았지만, 다른 선택지가 모두 무용지물이 된 이상 이제는 빈민가로 갈 수밖에 없었다.
“허억. 허억…. 여, 여긴가?”
묻고 물어 겨우겨우 도착한 장소에서 하인은 멍하니 눈앞의 건물을 바라보았다.
당장 무너질 듯 낡고 허름한 모양새라니….
어떤 의미로는 빈민가다운 집이기는 했지만, 이게 약술사가 사는 곳이라고 생각하면, 좁쌀만큼의 희망마저 증발하는 기분이었다.
‘이걸 들어가 봐야 하나?’
망설임은 있었다. 하지만 여기서 돌아갈 수도 없는 노릇, 하인은 잠시간의 갈등 끝에 문을 두드렸다.
“여보시오! 여보시오! 아무도 안 계시오?!”
탕탕탕!
그렇게 문을 두드린 지 얼마나 지났을까? 하인이 집을 잘못 찾은 건지 불안해할 때, 목소리가 문 너머에서 들려왔다.
“오늘 진료는 이미 끝났습니다. 내일 다시 오십시오.”
약간 가늘면서도 부드러운 음성. 하인은 그것을 듣고 서둘러 말을 던졌다.
“미, 미안하지만 급한 환자가 있어서 그렇소.”
“죄송합니다만, 진료 시간에 예외는 없습니다.”
“제발 부탁이오. 지금 우리 주인어른께서 생사의 고비를 헤매고 계시니, 죽은 사람 살리는 셈 치고 잠시만 시간을 내 주시오!”
“…….”
하인의 간절한 마음을 느낀 것일까? 왠지 깊은 갈등이 느껴지는 그 침묵에 하인이 마른침을 삼킬 때, 좀 전과 다른 한 줄기 음성이 흘러나왔다.
“들여보내라.”
“…알겠습니다.”
끼이익.
무뚝뚝하면서도 위압감을 담고 있는 그 음성에, 문 너머에 있던 부드러운 목소리의 상대는 지금까지와 달리 선선히 문을 열었다.
그렇게 낡은 문이 열리며, 상대의 모습이 드러난 순간 하인은 말을 잃었다. 이런 빈민가에 있을 사람으로는 보이지 않는, 아름다운 금발과 푸른 눈동자를 한 미청년의 모습이 하인을 당혹스럽게 만들었다.
“들어오시지요.”
“…아, 예.”
부드러운 미소를 머금은 청년의 안내에 따라, 일단 안에 들어간 하인은 재차 당황했다.
그다지 넓다고 할 수 없는 허름한 실내, 그 한쪽에 무표정한 얼굴로 서 있는 인형처럼 예쁘장한 자색안의 소년과 안쪽 깊은 곳의 흔들의자에 앉아 뒤도 돌아보지 않고 있는 반백 머리 사내의 모습이 하인을 절로 긴장하게 했다.
“그럼 얘기를 들어 보도록 하지.”
사내의 무뚝뚝한 음성을 들으며 마치 무언가에 홀리기라도 한 듯이 하인은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그 일이 시작된 건 대략 며칠쯤 전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