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s being mistaken for a soccer genius RAW novel - Chapter (123)
2022년 8월 14일.
스타디오 아르테미오 프랑키, 피렌체, 이탈리아.
8월의 태양보다 뜨거운 것이 세상에 있을까 싶지만, 오늘 이곳을 찾은 사람이라면 그게 여기 있노라고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화르르륵-!
작열하는 태양과 맞불을 놓겠다는 듯 붉은 홍염이 여기저기서 피어오르고.
Oh Fiorentina─!
Di ogni squadra ti vogliam regina!
Oh Fiorentina─!
Combatti ovunque ardita e con valor!
Forza Fiorentina─!
수만 명의 관중은 전장을 향해 진군하는 전사들처럼 그들의 군가인 피오렌티나의 응원가를 부르짖는다.
그 누구도 따가운 태양을 신경 쓰는 이는 없다.
그 태양조차 비시즌 동안 오늘만을 기다려왔던 이들이 내뿜는 열기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8월의 태양보다 더 뜨거운 것이 이곳에 있었고, 그곳에선 2022-23 세리에 A 개막전, 피오렌티나와 AC 밀란의 경기가 펼쳐지려 하고 있었다.
“와, 요 앞에서 하는 얘기 들었어요?”
“무슨 얘기?”
“뭐 암표 거래하는 것 같던데. 가격 듣고 내 표 팔 뻔했잖아요.”
“···진심이야?”
“아이, 말이 그렇다는 거죠. 진지하시기는.”
관중석 한켠, 피오렌티나 U17 팀의 토니 감독과 루카 코치가 싱거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유스 리그 개막은 아직 2주가량이 남은지라 개막전을 보러 온 둘인데, 경기장과 한참 떨어진 시내서부터 발에 채일 만큼 많은 인파 탓에 놀란 참.
거의 뭐 도시 사람 전체가 밖으로 나온 수준이 아니라 주변 근교에서도 오늘 경기를 보러 피렌체를 찾은 것 같은 느낌이었다.
루카 코치의 농담대로(사실 반은 진심이었다) 암암리에 거래되는 암표의 가격조차 입이 떡 벌어지는 수준이었으니, 뭐.
00년 이후로 아르테미오 프랑키가 이렇게 붐빈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였다.
그 탓에 어딜 보든 활기가 넘치는 풍경이나, 간혹 불평의 목소리를 터뜨리는 사람들도 있다.
“휴우, 겨우 들어왔네. 비올라도 아닌 것들 때문에 이게 뭔 고생이야.”
“시즌권 미리 사놔서 망정이지. 아니었으면 들어오지도 못할 뻔했어.”
“이래서 너무 유명해지는 건 싫었는데 말이야.”
피오렌티나가 잘할 때나 못할 때나,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이곳을 지켰던 팬들이 그들.
그동안 그들에게 홈 경기란 소소하게 즐기는 나들이 같은 느낌이었는데, 그 나들이를 즐기던 공원이 갑자기 관광지가 된 느낌이었다.
덕분에 외부 사람들도 몰려오고, 동네가 시끄러워졌으니 불평을 하는 게 나름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다.
또한 올드팬의 입장에서 이제껏 관심도 없다가, 성적이 괜찮으니 갑자기 나타나 열렬한 팬인 척하는 게 꼴보기 싫은, 그런 뒤틀린 팬심이 어느 정도 존재한다는 것 역시 부정할 수 없었다.
물론 그보다 새로운 팬들을 환영하는 정상적인 팬들이 더 많긴 했지만 말이다.
“피오렌티나가 새로운 전성기를 맞네요.”
“이런 풍경을 죽기 전에 다시 볼 수 있을 줄은 몰랐어.”
“무슨 팔십 먹은 노인처럼 말을 하세요.”
토니 감독과 루카 코치가 피식 웃는다.
사실 피오렌티나라는 팀의 전성기를 꼽는다면 몇 번의 시기를 꼽을 수 있겠으나, 이 둘에게 묻는다면 역시나 90년대를 이야기할 것이었다.
프란체스코 톨도나 후이 코스타, 그리고 가브리엘 바티스투타 등이 피오렌티나를 대표하던 시절.
그리고 그 피오렌티나가 7공주라 불리며 세리에를 대표하던 시절.
한창 감정이 풍부하던 10대 때 그 영광의 시대를 경험하며 자라 온 둘이었기에.
여전히 이 둘의 마음속 최고의 시절은 그 시절이고, 최고의 스타 하면 바티스투타일 수밖에 없었다.
허나 그런 주관적인 기억이나 추억 보정 같은 걸 뺀다면, 오늘 아르테미오 프랑키의 풍경은 그 시절의 열기 그 이상이었다.
절대 다시 올 것 같지 않았던 영광의 시대가 다시 한번 피오렌티나를 찾아온 것이었다.
그리고 그 영광의 시대를 불러온 새로운 스타가 누구인지는, 앞 좌석에 앉은 관중들의 등만 봐도 알 수가 있었다.
“아, 우리도 유니폼 샀어야 되는데. 나중에 하나 보내달라고 그럴까요?”
“됐어. 애 귀찮게 무슨.”
“왜요. 옛정을 생각해서 새 유니폼 정돈 보내줄 수 있는 거지.”
“넌 코치란 놈이···”
“아 몰라요. 그럼 하나만 보내달라고 할 거예요. 감독님 건 없어요.”
“···.”
온통 ‘LEE’로 도배된 등을 둘러보며 루카 코치가 얘기한다.
이지안의 유니폼이야 당연히 있다만, 이번 시즌 버전의 유니폼은 아직 구하질 못했다.
아니, 재고가 있나 하루에 몇 번씩 확인해도 계속 매진이더라.
온라인 매장이든 오프라인 매장이든 말이다.
심지어 재입고 알림을 보자마자 잽싸게 들어가도 또 매진.
덕분에 아직 못 구했다.
아쉬운 대로 저번 시즌의 유니폼을 입고 오긴 했다만, 그래도 새 유니폼을 입은 능력자들이 부러울 수밖에 없다.
새로운 디자인도 새로운 디자인인데, 등 번호 때문에 더욱 새 유니폼이 갖고 싶었다.
“그 요주의 인물이던 꼬맹이가 10번이라니. 새삼 감회가 새롭습니다.”
“난 그게 고작 1년 전이라는 게 새삼 신기해.”
LEE
10
지난 시즌까지 20번을 달았던 이지안이 올 시즌부터는 팀의 10번을 맡게 되었다.
축구에서 등 번호는 단순한 숫자에 불과하지 않다. 오랜 역사와 전통이 쌓이면서 등 번호에도 의미가 생겼고 굳어졌다.
예를 들면 1번은 수문장.
2, 3번은 사이드백.
4, 5번은 중앙 수비수나 중앙 미드필더.
7번은 가장 톡톡 튀거나 돌격대장의 역할을 맡는 선수.
9번은 팀의 득점을 책임지는 스트라이커.
그리고, 그중에서도 가장 큰 의미와 상징성을 갖는 게 10번이다.
팀의 사령관이자 간판스타, 명실상부한 에이스만이 달 수 있는 번호니까.
그런 의미에서 놓고 본다면 팀에서 이지안보다 10번에 잘 어울리는 선수는 없었다.
이미 지난 시즌부터 그랬다.
따라서 새삼스럽게 놀랄 일도 없다만, 문득 1년 전 그 조용하고 예민하던 꼬맹이가 떠오른 루카 코치와 토니 감독은 팬들의 등에 달린 10번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을 수밖에 없었다.
그 아이가 이 도시의 간판이자 자랑거리가 되었다.
그리고 새로운 영광의 시대를 열어젖힌 주인공이 되었다.
“저기 저 꼬맹이들한텐 지안이 후이 코스타고 바티스투타겠죠.”
이지안의 유니폼을 입고 나란히 앉은 꼬맹이들을 보며 루카 코치가 흐뭇하게 말한다.
토니 감독 역시 고개를 끄덕인다.
“그 이상이 될걸.”
“그렇겠죠.”
그 시절 이 둘이 바티스투타를 영웅으로서 동경했듯, 저 아이들에겐 지안이 그런 선수가 될 것이다.
어쩌면 그 이상이 될 테지.
아니, 아마 반드시 그렇게 될 거다.
“다만··· 의식은 안 했으면 좋겠는데.”
“안 할 수 있을까요.”
“쉽진 않겠지.”
“이겨 내주길 바란다면 욕심이려나.”
자랑스러움이 가득하던 토니 감독과 루카 코치의 얼굴에 일순 걱정이 물든다.
누군가의 영웅이 된다는 건 사뭇 낭만적으로 들리지만, 막대한 부담감이 뒤따르기도 하는 일이다.
모두가 기대를 걸고 있다.
지난 시즌 그런 활약을 보여줬으니, 수십 년 만에 우승컵을 가지고 왔으니 이제 됐다고 말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이젠 더 뛰어난 활약을 보여주길, 내친김에 리그 우승컵까지 가져와 주길 바라는 사람이 대부분일 거다.
그런 기대를 걸만한 모습을 보여줬기에 그들을 나무랄 수도 없다.
이런 부담감 때문에, 2년 차에 오히려 1년 차 때만 못한 활약을 보여주는 어린 선수도 드물지 않다.
굳건한 멘탈을 타고 난 선수조차 쉽게 이겨낼 수 있는 문제가 아닌 거다.
그런데 이지안은 이미 그에 시달렸던 과거가 있는 아이였다.
그렇기에 모두가 그 아이만을 바라보는 걸, 마냥 자랑스러워만 하기엔 어려운 일이었다.
“그래도··· 한 번 이겨낸 경험이 있잖아요. 오히려 더 잘 해낼 수도 있지 않겠어요.”
“그럴 수 있다면야···”
그래도 어쩌면, 오히려 그런 경험이 있었던 게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
한 번 넘어져 본 사람이 다시 일어나는 법도 아는 법이니까.
“아, 나온다.”
이윽고 경기장이 보다 더 시끄러워지기 시작한다. 이내 엄청난 함성으로 귀가 먹먹해지고, 모두가 자리에서 일어나 한곳을 향해 환호를 보낸다.
선수들이 그라운드 위로 입장하고 있었고, 토니 감독과 루카 코치 역시 일어나 환호로 선수들을 환영했다.
수만, 아니 수십만, 수백만을 환호케 하는 열한 명.
그중에서도 10번의 등 번호를 단 선수의 등이 보이는데, 토니 감독과 루카 코치는 동시에 웃고 말았다.
잠깐 못 본 사이에 그 등이 꽤나 남자답게 널찍해져 있었다.
*
개막전의 분위기는 뭔가 달라도 다르다더니, 확실히 선배들의 말이 맞았나 보다.
선축을 위해 경기장 가운데 서 있는데, 나는 휘슬을 물고 있는 주심을 유심히 쳐다봐야 했다.
자칫 휘슬 소리를 듣지 못할까 봐였다.
그만큼 관중들이 내는 소리가 물리적인 압력으로 느껴질 만큼 거대했다.
삐이이이익-!
···음.
괜한 걱정이었네.
휘슬 소리가 아주 잘 들린 탓에, 호루라기라는 도구를 처음 발명한 사람에게 존경을 표하며 선축으로 경기를 시작했다.
파아앙-!
공을 멀찍이 뒤로 보내고, 천천히 뛰어 상대 진영으로 넘어간다.
이어 상대 수비 라인과 3선 미드필더 사이 공간에 자리를 잡고, 천천히 걸으며 주변을 넓게 둘러본다.
리그 첫 경기 상대부터 AC 밀란이라니.
만만치 않은 일정이다.
다만··· 뭐랄까.
지난 몇 주 사이에 맨유와도 경기해보고, 바르셀로나와도 경기를 해봐서 그런지.
AC 밀란이라는 팀을 처음 만났을 때 들었던 느낌이 들지는 않는 것 같다.
그렇게 막 상대가 커 보이지는 않는다는 얘기였다.
타타탓-
천천히 걸으며 주변을 두리번거리길 5분여.
머릿속의 지도를 완성한 뒤 천천히 뛰기 시작한다.
오늘따라 등이 좀 무거운 느낌이 든다.
한국에서 축구 하던 시절 달았던 번호를 오랜만에 달았기 때문일까.
이 등 번호의 의미를 모르지 않는다.
잘 알고 있어서, 한국에 있을 때도 싫어했던 번호였다.
지금도 뭐 크게 다르지는 않다.
전에 쓰던 20번이 벌써 그리운 기분.
10번은 역시나 부담스럽다.
뿐만이 아니다.
경기장을 가득 채운 수만 명의 팬들, 그들이 내게 걸고 있을 기대가 뜨거운 시선과 환호로 피부에 와닿는다.
여러모로 부담스럽기 짝이 없는 순간이다.
하지만 그런 이 순간, 문득 생각이 나는 건 1년 전의 내 모습이다.
그때 나에겐··· 관중이라곤 아무도 없는 훈련장에서 뛰는 것조차도 힘겨운 일이었다.
보는 이라곤 감독님과 코치님밖에 없는데, 그것만으로도 심장이 두근두근거렸던 게 나였다.
처음 지우가 내 경기를 보러 왔던 날도 떠오른다. 교체로 들어가던 그 순간. 못하면 끝장이라는 생각에 덜덜 떨며 뛰어들어 갔었지.
지금 갑자기 그때가 떠오르는 건 그때의 내가 우스워서는 아니었다.
지금은 수만 명 앞에서 뛰고 있는데, 그땐 그게 뭐가 대수라고 떨었을까 이해가 안 된다는 게 아니라는 얘기다.
여전히 이해된다.
여전히 떨리기 때문이다.
지금도 당연히 떨리고 부담스럽다.
나는 여전히 수만 명 앞에서, 그들의 기대를 한몸에 받으며 축구를 하는 것이 부담스럽고 떨린다.
“헤이-!”
파아앙-!
하프 라인을 살짝 넘은 지점에서 공을 잡는다.
그리고 곧바로 돌아서려다, 등 뒤의 수비가 바짝 붙어오는 걸 느끼곤 리턴 패스를 내주는 것으로 방향을 바꾼다.
파아앙-!
이에 상대 수비의 주의가 공 쪽으로 분산된 사이, 나는 조용히 움직여 다시 공을 받을 준비를 한다.
압박을 이겨내는 것도 좋지만, 애초에 압박이 없는 곳에서 공을 받는 게 더 좋은 플레이라고 생각한다.
파아앙-!
보다 여유로운 공간에서 다시 공을 잡은 뒤 이번엔 곧바로 돌아선다.
그리고 빠르게 속도를 높이며 공을 몰고 상대 진영을 향해 올라간다.
타타탓-!
그러는 동안 관중들의 함성이 커지는 게 들려오기 시작한다.
이 순간 그들이 기대하는 거야, 당연히 골일 거다.
예나 지금이나 부담스러운 순간이다.
다만, 1년 전의 나와 지금의 내가 다른 점이 있다면··· 지금의 난 그 부담감을 한 번 이겨내 본 경험이 있다는 거다.
나에겐 나만의 방법이 있다.
이런 걸 노하우라고 하던가.
이 순간엔 수만 명이 아니라 단 한 명만을 생각하면 된다.
그 한 명을 생각하면, 신기하게도 나도 몰랐던 내 안의 능력이 뿜어져 나온다는 걸 경험으로 알고 있다.
타타탓-!
앞을 막아서는 수비에 상체를 왼쪽으로 튕기며 페이크를 준 뒤 오른쪽으로 돌파해낸다.
속도를 죽이지 않고 돌파를 해냈기에 박스 앞임에도 열린 슈팅 각도가 눈에 들어온다.
이에 망설이지 않고 오른발을 크게 당긴다.
뻐어어어어어엉-!
체중을 완전히 실어 때린 탓에 몸이 붕 뜬다.
그렇게 공중에 뜬 상태로 날아가는 슈팅을 바라보는데··· 음.
슈팅도 내 몸처럼 뜨고 있다.
중거리 슈팅이 골대 위를 아슬하게 벗어난다.
이에 관중석에선 아쉬움이 탄성이 터져 나오는데, 나는 혀를 한 번 차고는 몸을 돌려 우리 진영을 향해 뛰었다.
예전에 비해 바뀐 게 또 하나 있다면, 이젠 이렇게 기회를 날려도 심장이 마구 쪼그라드는 느낌을 받지는 않는다는 거다.
이 역시도 경험에 의해서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짝짝짝짝-
아쉬움의 탄성으로 잠깐 물들었던 관중석에서 이내 격려의 박수가 터져 나온다.
욕이 아니라 박수.
매 순간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걸 저 박수로 배웠다.
그러니 예전과 달리 이 정도는 이제 대수롭지 않게 넘길 수 있다.
그러고 보면 신기한 일이다.
나는 한 명 때문에 받았던 부담감을 그 한 명 덕분에 이겨냈고, 수만 명 때문에 받았던 부담감을 그 수만 명 덕분에 이겨낼 수 있었다.
···으음.
세상일이란 참, 17살의 머리로 이해하기 어려운 것들 투성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