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s not a hero, he's a demon king RAW novel - Chapter (210)
210화 – 순환의 불빛.
루멘이 멍한 얼굴로 눈앞의 광경을 바라보았다.
그의 상식으로는 믿을 수 없는 광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진 거지?’
그러나 아무리 현실을 외면해 본들 상황은 바뀌지 않았다.
럭스의 칼은 분명 남자의 몸을 찌르고 있었다.
그의 얼굴은 지금껏 보지 못한 잔혹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럭스! 지금 이게 무슨 짓이야!”
“놔! 이 자는 사라져야 해!”
사람들이 뒤늦게 럭스의 몸을 잡아당겼지만 그를 막을 수 없었다.
순식간에 휘둘러지는 검에 남자의 몸이 흩날린다.
하기야 원래부터 연기와도 같은 형체를 하고 있던 남자다.
부정형의 육체는, 형태가 없는 몸은 이렇게 단순한 손짓에조차 손쉽게 흩어지고 마는 것이다.
“멈춰! 멈추라고!”
그렇게 남자의 몸이 사라진다.
루멘이 그를 말렸지만 럭스는 그 후로도 한참을 검을 휘두르고서야 비로소 멈춰 섰다.
“너.. 제정신이야?”
그런 럭스를 바라보며 루멘은 아연한 얼굴로 소리쳤다.
연합군에게 남은 유일한 희망을 제 스스로 잘라내다니.
그의 눈에는 럭스가 제정신으로 보이지 않았다.
황망한 목소리가 이어진다. 그러나 럭스는 당당했다.
“오히려 내가 묻고 싶은 말이야. 저 외신이 노리고 있는 건 바로 저 남자야! 우리는 그저 휘말려 든 것뿐이라고! 이대로 가다간.. 크아악!”
그 순간 럭스를 향해 칼날이 휘둘러졌다. 단숨에 잘려 나가는 양팔.
럭스의 눈이 고통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찢어질 듯한 비명이 울려 퍼진다.
콰직!
검을 들고 있는 것은 단테였다. 가볍게 검을 휘둘러 피를 털어낸 그.
단테는 그대로 럭스의 몸을 발로 차 그를 넘어트렸다.
“어떻게 된 겁니까?”
더없이 고요한 얼굴이 럭스에게로 향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알고 있었다.
그 얼굴 뒤에 측정하기 어려운 분노가 서려 있다는 걸.
“왜 당신의 마음에 또다시 마가 깃들어 있는 거죠?”
차마 럭스의 목숨을 끊어내지 않은 것은 그의 상태가 정상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단테는 럭스에게서 느껴지는 은은한 마기를 감지하고 있었다.
우연이라기엔 참 공교로운 타이밍에 벌어진 일이었다.
“심마? 틀렸습니다! 저는 멀쩡합니다! 보십시오! 제 몸에서 흐르는 이 성스러운 기운을요!”
상황의 심각함을 모르는 건 당사자인 럭스뿐이었다.
아무래도 그의 정신은 이미 마에 젖어버린 것 같았다.
럭스는 자신에게 성스러운 기운이 흐른다고 말했지만, 사람들의 눈에 비친 그의 모습은 그저 심마를 이기지 못한 광인에 불과했다.
“이럴.. 이럴 리가 없는데.”
물론 럭스 역시 계속 외면만 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과거에도 그렇듯, 심마에 빠진 사람도 일정 주기마다 제정신을 되찾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얼마 안 가 럭스는 제 몸에 깃든 심마의 힘을 눈치챌 수 있었다.
“저는.. 저는 분명 태양신 님의 목소리를..!”
“..태양신께서 당신께 직접 말을 걸어오셨다는 겁니까?”
“그렇습니다! 그분께서 제게 말하셨단 말입니다! 그 남자야말로 외신의 사도이자 저희를 멸망으로 이끌 존재라고요!”
럭스의 말을 듣는 현순과 단테의 표정이 굳었다.
럭스가 외신의 수작에 넘어갔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혹시나 무언가 사정이 있는 게 아닐까 했던 마음에 확신이 깃드는 순간이다.
무엇보다 두 사람은 그 남자가 태양신의 환생임을 알고 있었다.
그런 두 사람에게 있어 럭스의 말은 그저 허무맹랑한 헛소리로밖에 들리지 않았다.
“보십시오! 그 남자를 죽이니까 저 손도 가만히..! 가만..히..?”
물론 럭스는 그 사실을 알지 못했다. 두 사람의 말을 믿지도, 받아들이지도 못했다.
하기야 그렇기에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검을 내지른 거겠지.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환각과 환청. 그리고 마음의 빈틈을 찌르는 것.
그것들은 모두 외신의 전매특허라 할 법한 것들이 아니던가.
“내가..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지?”
럭스가 뒤늦게나마 스스로의 잘못을 깨달았지만 때는 이미 늦어 있었다.
남자의 몸은 이미 사라져 버린 지 오래였다.
남은 것은 덩그러니 남겨진 사람들과 대적할 수 없는 적.
그리고 그것들로부터 뻗어지는 검은 광선뿐이다.
“신이시여..”
그렇게 세계는 멸망했다. 아니, 그럴 뻔했다.
그 순간 눈앞에 나타난 검격이 없었다면 말이다.
* * *
다음 순간, 기묘한 감각이 전신을 감쌌다.
먼지처럼 흩어져 버린 영육과 그럼에도 잔존해 있는 정신.
영혼보다 근원적인 무언가가 허공에서 타오르고 있었다.
잿더미 속의 불씨. 쿵쿵거리며 뛰는 심장.
“..이건 나로군.”
나는 이윽고 그 불씨가 나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 거대한 순환을 구성하는 등불들의 중심에 존재하는 태초의 불꽃.
아마도 이것이야말로 내가 태양신이 될 수 있었던 근원과도 같은 것이겠지.
“고작이라.. 혹시 아십니까? 태양신께서 쓰러진 그 날, 호루스족은 심장을 잃어버렸다는 걸.”
그 순간, 바알의 목소리가 귓가에 들려온다.
뒤를 잇는 것은 기계신과의 대화였다.
기계신이 나의 심장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의 우묵한 눈이 나를 바라본다.
나는 그 눈빛에 혼란을 느꼈다. 참기 힘든 현기증이 나는 것만 같은 기분이다.
‘시간의 흐름이 이상해.’
분명 그 두 개의 사건은 서로 다른 시간에서 벌어진 일일 거다.
그런데 왜 그 두 사건이 동시에 펼쳐지고 있는 걸까.
내가 알고 있던 시간이라는 개념이 희미해지고 있었다.
내 안의 존재하는 관념이 비틀리고 있는 것이다.
이 순간, 나는 굳이 마기를 사용하지 않아도 세계의 끝과 끝을 볼 수 있었고, 종과 횡으로 이뤄진 역사의 흐름을 읽어낼 수 있었다.
“너는 누구지?”
고개를 돌려보면 무수한 ‘벨제뷔트’가 나를 보고 있었다.
아마도 나의 전생들이겠지. 태양신이 죽은 후 거듭한 삶. 나의 또 다른 등불.
나는 그것들을 따라 주위를 살펴보았다.
마왕성은, 마왕이라는 존재는 하나의 기준이었다.
그 기준을 중심으로 세계는 한없이 넓고 깊어지고 있었다.
본래라면, 이 세계는 그렇게 영원에 가까운 시간을 견뎌냈을 거다.
“닫히고 있구나.”
그러나 불현듯, 이 거대한 흐름의 앞에 벽이 세워졌다.
아마도 외신의 짓이겠지.
지금까지 수없이 많은 세계를 부수며 이곳에 도달한 멸망의 신.
“..라나.”
아래를 내려다보면, 두 개의 소용돌이가 보였다.
한 곳은 조금 전 내가 있었던 시간선.
그리고 다른 한 곳은 본래 내가 있어야 할 시간선이었다.
그중 하나의 소용돌이. 저 먼 곳에는 익숙한 얼굴들이 있었다.
“모두 달려요!”
도망치는 이들의 모습이 보인다.
보아하니 결국, 프로키온은 목숨을 잃어버린 모양이다.
다행히 데이브 클락이 그 목숨 덕에 살아남긴 했지만, 무작정 싸우기엔 적들의 수가 너무 많았다.
결국 데이브와 라나는 눈물을 머금은 채 인간들의 나라를 향해 달려야만 했다.
‘그레고리오를 이용하면 너 혼자만이라도 도망칠 수 있을 텐데.. 하기야, 내가 아는 너라면 그러지 않겠지.’
“쿨럭..”
“라나! 괜찮아?”
지나치게 무리한 탓일까. 라나가 피를 토해내기 시작했다.
아마 데이브를 구해내는 과정에서 마력을 소진한 탓이겠지.
다행히 그런 라나의 뒤로 익숙한 얼굴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데몬 하트. 하프 데몬들로 이뤄진 용병들이었다.
“올가..?”
“잘 견뎠다! 이제는 쉬어라!”
일행들과 합류한 하프 데몬들의 분전은 그야말로 눈이 부셨다.
달려오는 적들을 차례차례 무찌르며 라나와 합류하는 그들.
이대로만 갈 수 있다면 더 이상의 사상자 없이 레온하트에 도착할 수 있을 테지.
“숙여!”
하지만 그 순간, 그들을 향해 날아드는 탄환이 있었다.
마치 노리기라도 한 것만 같은 타이밍이다.
나는 시공검을 펼쳐 그 탄환을 막아내려 했다.
그들을 지켜주고 싶었다.
“..젠장.”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지금의 나에겐 영육이 없었기 때문이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오로지 관측, 그저 지켜보는 것뿐이었다.
“토끼!”
그렇게 생원이 목숨을 잃었다.
생원과 항상 싸우기 바빴던 렌조차도 이번만큼은 충격이 큰 것 같았다.
그러나 죽음은 이곳에서만의 일이 아니었다.
고개를 돌려보면, 파우스트의 손에 목숨을 잃어가는 친구의 모습이 보였다.
“..조르디네스.”
무수한 죽음이 늘어서고 있었다. 시간의 등불이 꺼져가고 있었다.
태양신이라는 이름으로 이뤄지는 거대한 순환이 끊어진다.
그 원인은 명백했다. 이 모든 흐름을 유도하고 있는 원흉.
“파라켈수스. 그리고 외신.”
나는 용사와 마왕의 관계를 떠올렸다.
서로 상극이라 할 수 있는 그들은 때로는 한쪽이 다른 한쪽을 압도했고, 그 반대의 경우가 생기기도 했다.
태양신과 외신도 마찬가지였다. 두 신은 서로를 억누르고 있었다.
아마도 외신이 태양신에게 저주를 내린 건 그런 이유에서였을 거다.
광기와 집착, 불규칙한 혼돈의 신은 자신과는 정반대의 신을.
규칙과 순환의 신을 굴복시키지 않는 한 이 세계를 멸할 수 없다고 여긴 것이다.
‘그러면서도 제 목적을 이룬 건가.’
외신의 계략은 바로 그런 생각에서 시작되었다.
사실상 이미 성공한 것이나 다름없는 계획이었다.
나의 영혼은 마기에 젖어 있었고 세계에는 다른 모습의 같은 사건이 벌어지고 있었다.
피할 수 없는 멸망의 순간이 두 개의 시간선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사실상, 순환은 끊어진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태양신의 패배는, 멸망은 기정사실이 되어 버린 것이다.
“..그걸 알려주려고 날 여기로 보낸 거냐?”
고개를 들어보면, 언제부터 있었는지 모를 거대한 눈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무수히 늘어선 손바닥이 나를 향해 뻗어지고 있었다.
아마도 내가 이곳에 있는 이유도 저 녀석이 원인이겠지.
“제법 친절하군. 그런데 왜 나에게 이런 걸 보여 주는 거지? 너와 나는 적 아니었나?”
“적이라.. 우스운 소리를 하는구나. 너와 내가 상대가 될 것 같더냐? 너희 세계의 미래는 이미 결정되었다. 멸망은 피할 수 없다는 거다.”
외신이 웃음을 터트렸다.
나를 조롱하듯, 멸망에 휘말려 든 세계의 운명을 조소하듯이.
나로서는 새삼스러운 이야기였다. 그러나 나는 시큰둥해지려는 마음을 애써 감췄다.
놈에게서는 아직 얻어낼 것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뻔한 소리나 하려고 온 건가?”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고 알려주려는 거다.”
외신의 손이 저 하늘을 가리켰다. 그와 동시에 펼쳐지는 것은 하나의 기억이다.
내가 아닌 누군가의 기억. 아마도 외신의 기억이겠지.
“그럼 너와 계약하면 갈 수 있는 거냐?”
그런데 갑자기 이런 건 왜 보여주는 걸까.
의아함에 살펴보면 신룡과 외신이 대화를 나누는 것이 보였다.
아마도 그가 외신과 계약을 나눌 적의 기억이겠지.
나는 신룡을 따라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곳에 늘어선 별처럼 많은 세계를 보았다.
그 순간, 나는 신룡의 눈빛에 깃든 동경의 마음을 읽어냈다.
“그래, 갈 수 있고 말고. 나는 너를 저 드넓은 세계로 보내줄 수 있다, 너는 자유로워지겠지.”
외신은 그런 신룡의 마음을 파고들고 있었다.
아마도 계약의 대상으로서 신룡을 고른 건 이런 이유에서였겠지.
일전의 대화에서도 짐작했듯, 신룡은 기본적으로 신 같지 않은 신이었으니까.
“자유..”
나는 신룡의 눈에 서린 갈망을 읽었다. 이해하고 있었다.
그는 스스로의 운명을 답답하다고 생각했으며, 신이라는 직책을 굴레처럼 느끼고 있었다.
아마도 그래서였겠지. 태양신과 그가 친구가 된 이유는.
“나와 계약하겠나?”
그렇게 멸망은 시작되었다.
피할 수 없는 운명의 탄환이 쏘아지는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