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a Disaster-Class Necromancer Retires RAW novel - Chapter (176)
176화
게이트 물품을 매입하는 소상인 세르게이가 이번에 새로 생긴 게이트 앞에 가판을 깔며 말했다.
“좋아. 오늘도 열심히 일해 볼까?”
그때 세르게이에게 일을 배우기 위해 따라온 아들이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그런데 아버지, 주변에 이미 상인들이 많은데요.”
새로 게이트가 생기자마자 게이트로 몰려와 판을 깔고 앉은 상인들이 세르게이 부자를 포함해 이미 30여 팀.
세르게이의 아들이 걱정스럽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이러다 허탕 치는 것 아니에요?”
그러자 세르게이가 태연한 표정으로 말했다.
“걱정하지 마. 게이트 물품은 비싸서 한두 건만 잡아도 우리 둘 하루 일당은 충분히 나온다고. 게다가 이 아빠가 이 일만 벌써 몇 년째냐. 그러니까 너는 그냥 옆에 딱 붙어서 아빠가 어떻게 일하는지나 보고 배워.”
“알겠어요.”
그렇게 가판을 모두 설치한 후 조용히 기다리던 세르게이 부자.
그런데 그때 게이트가 일렁이더니 사냥을 마친 각성자 팀 하나가 짐을 가득 든 짐꾼들과 함께 귀환했다.
그러자 그 모습을 본 상인들이 너도나도 외친다.
“최고가로 드립니다!”
“안 파셔도 되니 견적만 받아 보세요!”
그런데 그런 상인들과 다르게 세르게이는 조용히 짐꾼들의 짐만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는 게 아닌가.
“아버지, 저희도 영업해야 하는 것 아니에요?”
“기다려, 지금 계산 중이니까.”
“계산이요?”
설마 아버지에게 눈으로만 봐도 중량을 알 수 있는 능력이 있나 혼란스러워하던 그때.
세르게이가 짐꾼의 짐을 가리키며 말했다.
“잘 봐. 가방 위로 가죽이 쌓여 있지?”
“어! 그러네요?”
“저 팀이 지금 가져온 물품 중 가장 많은 게 가죽이라는 소리야. 그럼 우리는 가죽을 공략해야지.”
그러곤 세르게이가 외쳤다.
“가죽 kg당 1,000루블!”
그러자 리더로 보이는 각성자가 세르게이 부자 가판대를 바라보며 말했다.
“1,000루블?”
“가격 괜찮은데?”
수익과 직결되는 만큼 물품 시세를 어느 정도 파악하고 다니는 각성자들이기에 1,000루블이라는 괜찮은 가격을 제시하자 바로 흥미를 표한다.
“우리 지금 가죽이 제일 많지? 그냥 저기로 가자.”
“그래.”
그렇게 각성자들이 세르게이 가판대로 다가와 말했다.
“가죽 1,000루블이라고요?”
“예. 맞습니다. 아마 도매시장으로 가도 이것 이상은 못 받으실 겁니다.”
“그건 그렇지. 가격 괜찮네. 견적 한번 뽑아 주세요.”
“예, 손님.”
그렇게 세르게이가 친절한 표정으로 짐꾼들의 짐을 받아 전자저울로 무게를 측정해 나간다.
그때 아들이 걱정스럽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아버지, 1,000루블이면 저희 납품가잖아요.”
“그렇지.”
“그럼 한 푼도 안 남는데…….”
그러자 세르게이가 조용히 검지를 들어 올리며 말했다.
“쉿.”
그러곤 무려 각성자들도 눈치 못 챌 만큼 은밀하게 저울의 뒤에 있는 비밀 버튼을 누른 세르게이.
그러자 가죽을 올릴 때마다 요동치던 저울의 무게가 미묘하게 낮아진다.
“…아!”
저 비밀 버튼의 기능은 바로 저울의 무게를 무조건 10퍼센트 낮춰 주는 것.
그런 세르게이의 행동에 아들은 생각했다.
‘일단 저쪽이 가진 가장 돈이 될 만한 물건을 최고가로 불러 유인한 다음 무게를 조절해 이익을 챙기는 거구나!’
아버지의 뛰어난 영업력과 각성자들도 속여 낸 민첩한 동작에 감동한 아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역시 아버지야. 그래, 오늘은 아무 말 말고 그냥 보고 배우자. 아버지처럼 훌륭한 상인이 돼야지.’
그사이 모든 무게를 측정한 세르게이가 말했다.
“모두 다 해서 70만 루블입니다.”
그러자 각성자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이 정도 무게에 그 가격이면 괜찮네. 그런데 혹시 저울 속이거나 그러시는 건 아니죠?”
“아이고. 요즘도 그런 양아치들이 있답니까? 저는 장사 오래하고 싶습니다. 오래하려면 신뢰는 필수고요. 하하.”
“그럼 다행이고요. 그럼 결제해 주세요.”
그렇게 거래를 마치고 돈을 나눠 가진 각성자들이 떠나가자 세르게이가 말했다.
“거래는 이렇게 하는 거야. 신뢰? 그게 밥 먹여 주나? 어차피 러시아는 넓어. 여기서 문제 생겨도 다른 곳으로 떠나면 그만이지. 나한테 있어서 중요한 건 가족뿐이다. 다른 놈들은 내 알 바 아니야.”
“역시 아버지.”
“잘 기억해 둬. 핵심은 손님을 만족시키는 거야. 정확히는 만족한다고 느끼게 만드는 거지. 그러니 앞으로…….”
그렇게 소상인으로서 가져야 할 마음가짐에 대해 일장 연설을 늘어놓는 세르게이.
그런데 그때 한 트럭이 게이트 쪽으로 다가오는 게 아닌가.
평소라면 또 다른 경쟁자 등장이겠거니 생각하고 말았겠는데, 그 트럭 뒤에 실린 무언가가 아들을 교육 중이던 세르게이조차 말문을 막히게 만든다.
“…스켈레톤?”
그것은 바로 스켈레톤.
“운반형 스켈레톤? 아니지. 저건 이족 보행이잖아. 이족 보행 스켈레톤을 게이트에 왜 데려온 거지?”
“그러게요?”
그렇게 세르게이 부자를 포함한 모든 상인들이 의아한 표정으로 바라보던 그때, 트럭이 정차하고 운전석에서 러시아인 한 명이 내리며 말했다.
“보자. 여기가 E급이랬지?”
그러곤 가판대를 설치하더니 스켈레톤을 배치하고 콘솔을 조작한다.
“E급으로 세팅하고… 돈통의 돈 확인됐고. 카메라, 저울, 스피커 전부 오케이. 좋아.”
그렇게 스켈레톤을 배치하더니 뒤도 안 돌아보고 다시 트럭을 타고 어디론가 떠나간 러시아인.
“뭐야, 저게?”
그런데 그때 게이트에서 또 다른 팀이 귀환한다.
스켈레톤의 등장에 멍하니 있던 상인들이지만, 고객이 등장하니 다시 시작된 영업.
“최고가로 드립니다!”
“일단 한번 오세요!”
세르게이 역시 방금처럼 영업을 위해 계산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스켈레톤 쪽에서 기계음이 들려오는 게 아닌가.
-세론 상사에서 모든 물품 최고가로 매입합니다.
바로 스켈레톤 허리춤에 달려 있는 스피커에서 나오는 소리였다.
-최고가 매입합니다. 후회없는 선택, 세론 상사.
그러자 각성자는 물론이고 상인들까지 멍한 표정으로 스켈레톤을 돌아본다.
“잠깐만… 지금 게이트 물품 매입한다는 거야? 스켈레톤이?”
“이런 미친……?”
그때 귀환한 각성자 팀이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스켈레톤에게 다가가며 말했다.
“살다 살다 이런 건 또 처음 보네. 게이트 물품 매입하는 스켈레톤?”
“한번 견적이나 받아 볼까?”
그렇게 각성자 팀이 스켈레톤 앞에 서자 스켈레톤이 스피커에 달려 있는 한 버튼을 누르며 허리를 숙인다.
-고객 만족도 1위를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어서 오십시오.
“지금 저 스피커 눌러서 이야기하는 거지?”
“완전 웃기네. 킥킥.”
그때 각성자가 짐꾼 가방 중 하나를 받아 가판에 쏟아부으며 말했다.
“자. 이거 한번 계산해 봐.”
그렇게 장난 삼아 물품을 건넨 각성자.
그러자 스켈레톤이 아주 능숙하게 무게를 측정하고 계산기를 두들기더니 각성자에게 보여 주며 스피커의 버튼을 누른다.
-최종 계산 금액입니다. 이 가격에 파시겠으면 팔겠습니다, 아니라면 안 팔겠습니다라고 말씀해 주십시오.
그런데 계산기에 적힌 금액을 바라보던 각성자의 표정이 심상치가 않다.
“…뭐야, 이거.”
“왜 그래. 너무 낮아?”
“아니, 그게 아니라… 왜 이렇게 높아?”
“뭐?”
“거의 도매가 수준인데? 우리 평소 받는 단가보다 20퍼센트 정도 높아.”
“뭐?!”
아무리 각성자가 돈을 잘 번다지만, 더 많은 돈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는 법.
심지어 이놈은 스켈레톤이고 세론 같은 대기업이 매입하는 거니 저울 속임수 같은 걸 쓸 리도 없지 않은가.
“야, 전부 다 여기 팔자.”
그렇게 장난 삼아 왔다가 가져온 모든 물건을 스켈레톤에 팔아 치운 각성자들.
그때 스켈레톤이 다시 허리를 숙이면서 버튼을 누른다.
-거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혹시 거래하시는 데 있어서 불편했던 사항이 있다면 옆에 있는 종이에 적어 주시면 바로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고객 만족도 1위를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하하. 없어, 없어. 대만족. 다음에 또 보자고!”
그렇게 각성자들이 떠나가자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던 세르게이가 조용히 스켈레톤에 다가가며 말했다.
“도대체 얼마길래…….”
그렇게 몰래 계산기를 확인한 세르게이가 경악하며 말했다.
“이, 이게 뭐야!?”
자신이 도매가로 부른 가죽값이 1,000루블.
그마저도 저울을 속일 걸 감안하고 부른 가격인데, 계산기에 적힌 가격은 무려 1,150루블이었다.
“이 가격에 산다고? 이게 말이 돼?”
세르게이가 흥분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건 소상인 죽이기잖아! 이런 개 같은……!”
그런데 그때 스켈레톤이 세르게이를 돌아보고는 스피커의 한 버튼을 누른다.
-지금 이 주변 모든 상황은 카메라로 녹화되고 있으며, 만약 자사 재산에 물질적 피해를 입힐 경우 고발 조치 될 것을 알려 드립니다. 자사 재산에는 테이블과 게이트 물품 그리고 본 스켈레톤이 모두 포함되어…….
스피커에서 줄줄이 튀어나오는 경고 메시지.
동시에 세르게이는 알았다.
“씨발…….”
이 스켈레톤으로 인해 아들에게 물려주려 했던 직업이 없어질 위기에 처했다는 것을.
* * *
“이런 씨발!”
러시아 최대 게이트 물품 도매상 중 하나가 테이블을 내려치며 말했다.
“세론 그룹 이 미친놈들이 이제는 골목 상권까지 파고들어?!”
가격도 좋고 속임수도 없는 스켈레톤 상인.
거기에 심지어 24시간 영업을 하다 보니 스켈레톤이 배치된 곳은 스켈레톤이 독점하다시피 해 버리는 바람에 소상인들이 경쟁을 포기하고 다른 게이트로 떠나는 일이 비일비재해졌다.
당연히 소상인들이 매입하는 물량이 줄어들면 도매상에게도 피해가 올 수밖에.
문제는 이게 시작에 불과하다는 거다.
“계속 늘리고 있다고?”
처음엔 시범적으로 이곳저곳에 배치하는 수준이었는데, 어느 순간 갑자기 스켈레톤 배치를 폭발적으로 늘리며 그 범위를 러시아 전 국토로 넓혀 가고 있었다.
“젠장. 어떻게 해야 되지?”
물건을 쥔 채 그걸 무기 삼아 한국 최대 수입업자인 박 사장을 상대로 제법 쏠쏠히 장사를 해 온 도매상.
그런데 설마하니 아예 세론과 손을 잡고 직접 진출해 버릴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때 도매상의 측근이 말했다.
“사장님, 뭔가 대책을 세워야 하지 않겠습니까?”
“세워야지. 어떻게 키운 사업인데!”
“일단 소상인들 반발도 엄청나니 그들이랑 다른 도매상과 힘을 합쳐서 공동 대응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측근의 말에 도매상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맞는 말이야. 아무리 세론 그룹이라 해도 여기는 우리 앞마당이라고!”
도매상이 곧바로 평소 친하게 지내던 다른 도매상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세론 상사, 대처해야지.”
긴말도 필요 없었다.
지금 현재 러시아의 게이트 물품 시장 최대의 화두는 바로 세론 상사였으니까.
-해야지. 그런데 어떻게?
“일단은 물건 잠그자. 세론 그룹은 스켈레톤이 주력인데, 뼈 공급이 부족하면 타격을 입을 것 아니야.”
-나야 찬성인데, 다른 나라에서 수입해 오면 아무 의미도 없잖아.
“다른 나라 도매상이라고 해서 뭐 다를 것 같아? 지금 러시아가 첫 타깃이 됐지만, 완전히 자리 잡으면 다른 나라에 진출하는 건 시간문제라고! 그러니 설득해서 공동 대응 해야지! 그리고 소매상도 결집시키자. 세론에 대항하려면 우리 덩치를 일단 키워야 돼!”
-그건 그렇지.
“그렇게 상인들 규합한 다음 어떻게든 비벼 보자고. 우리 마진 최소 폭으로 하더라도 일단 세론 상사랑 비슷한 단가는 맞춰 줘야 소상인들이 물건을 모아 올 것 아니야!”
-…손해가 막심할 텐데.
세론 상사와 다르게 복잡한 유통 구조를 가질 수밖에 없는 특성상 비슷한 단가로 맞추면 손해는 불 보듯 뻔한 상황.
“그럼 이렇게 가만히 앉아 있다 당하자고? 그리고 영원히 단가 경쟁을 하자는 게 아니야. 일단 우리가 절대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걸 보여 준 다음 딜을 해야지, 앞으로 공급 원활하게 해 줄 테니 서로 영역을 존중해 주자고.”
-후우.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 처음부터 그냥 물량 풀어 줄걸.
이 업계에 종사하고 있는 상인들은 모두 알고 있다.
세론 그룹의 핵심은 스켈레톤인데, 그 스켈레톤 제작에 있어서 필수품인 뼈의 공급이 원활하지 못하자 한지혁이 빼 든 칼이 바로 세론 상사라는 걸.
“우리가 뭐 죄졌어? 가격이 오를 것 같으면 더 비싸지길 기다리는 게 당연한 것 아니야? 주식이든 뭐든 다 똑같잖아!”
-당연한 거지. 문제는 그 당연한 걸로 인해 한지혁의 심사가 뒤틀렸다는 거고.
“후회하기엔 이미 늦었어. 지금 우리가 해야 할 건 행동이야.”
-후우. 아무튼 다른 방법이 없어 보이네. 좋아, 알았어. 아는 도매상이랑 소매상에 전부 연락 돌릴게.
* * *
“반응이 폭발적입니다.”
박 사장이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스켈레톤이 배치된 게이트의 물품을 거의 독식하다시피 하고 있습니다.”
“불만 사항은요?”
“없는 건 아니지만, 보내 주신 프로그래머들의 도움을 받아 계속 개선해 나가고 있습니다.”
직거래인 만큼 단가도 좋고 속임수도 없으니 각성자들에게 있어서 최고의 대안.
시험 삼아 영토가 넓은 러시아를 첫 타깃으로 삼았는데, 역시나 결과는 성공적이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결과가 성공적이자 반발이 튀어나온다.
“러시아 게이트 물품 협회라고 했던가요?”
러시아 도매상들을 중심으로 소매상까지 모여 급조된 협회.
협회는 창설되자마자 세론 그룹의 골목 상권 침해를 주장하며 사태를 주시하고 있는 다른 나라 도매상들까지 설득하여 세론 상사를 향한 공동전선을 구축해 나가고 있었다.
분명 협회의 모든 계획이 실현되면 게이트 물품을 좌지우지하는 엄청난 규모의 새로운 세력이 탄생하겠지.
하지만 현실을 아는 난 그저 우스울 뿐이었다.
“돈에 환장한 놈들끼리 모여 봤자 모래성이지.”
협회가 진정한 힘을 발휘하려면 협회원 모두의 공통된 이득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저 게이트 물품 협회는 세론 상사란 초유의 적에 대응하기 위해 하나로 모이긴 했지만, 기본적으로 저놈들도 서로서로가 전부 경쟁자란 말이지.
“우리 단가랑 비슷하게 맞췄다고요?”
“예. 실제로도 효과가 있습니다. 오래된 상인들 중엔 고정 고객을 확보한 사람이 많아 비슷한 가격이라면 단골을 찾아가니까요.”
“대신 손해가 막심하겠죠. 그리고 손해가 누적되면 공동전선에 구멍이 나기 마련이고요. OPEC조차도 치킨 게임을 하며 사분오열됐는데 저놈들이 버텨 봐야 얼마나 버티겠습니까?”
물론 그렇다고 해서 조용히 두고 볼 생각은 없다.
최대한 빨리 시장을 박살 내 세론 상사를 중심으로 재편해야 원활하게 공급을 받을 수 있을 테니까.
“뼈 물량 완전히 잠갔다고요?”
“그렇습니다.”
협회가 세론 그룹을 압박할 수 있는 최고의 카드.
예상한 카드지만 효과는 확실하다.
아직 스켈레톤 상인 배치가 끝나지 않은 상황에서 도매상 물량이 전부 묶이면 뼈 공급에 막대한 타격이 있을 수밖에 없으니까.
“박 사장님이 그간 열심히 매입해 둔 덕에 비축량이 제법 많아서 당분간은 버틸 수 있으니까 괜찮습니다. 뭐… 전투용 생산은 완전히 중단되겠지만. 아무튼 그걸 걱정할 시간에 빨리 저놈들 박살 내고 독자 공급망 만드는 게 우선이죠. 그건 그렇고, 세론 상사는 괜찮습니까?”
상인들에게 확실히 각인시키기 위해 세론이란 이름을 달고는 있지만, 세론 상사의 전신은 바로 박 사장의 회사.
세론 그룹이 박 사장 회사 지분 절반을 인수하고 세론 상사로 재탄생시킨 거다 보니 재무구조가 이런 치킨 게임을 버티기엔 많이 부실하다.
“원래 주력 사업이 도매상 뼈 매입해서 세론 그룹에 파는 거였잖습니까. 도매상 물량이 완전히 중단되면 타격이 클 것 같은데.”
“솔직히 클 겁니다. 이제 막 공급 라인을 깔기 시작한 스켈레톤 매입으로는 기존 물량을 대체하기엔 턱없이 부족하니까요.”
전 세계에서 뼈를 대량으로 수입해 오던 회사가 갑자기 러시아에 드문드문 깔리기 시작한 스켈레톤 매입에만 의존한다?
당연히 거래량이 어마어마하게 줄어드는 만큼 매출도 박살 수준으로 떨어질 거다.
하지만 상관없다.
박 사장 뒤에는 내가 있으니까.
“매출 떨어지면 저한테 말하세요, 바로 메꿔 드릴 테니.”
그러자 박 사장이 감격한 표정으로 말했다.
“감사합니다. 한 회장님을 만나 뵌 건 제 일생일대 최대의 행운입니다.”
“뭐, 부정하진 않을게요.”
사실 그 당시에 박 사장을 선택한 건 순전히 운이었으니까.
“대신 상황 정리 된 후 지금까지처럼 제가 신경 쓰지 않도록 뼈 공급만 잘해 주시면 됩니다, 그럼 경영권이고 뭐고 일절 간섭 안 할 테니까.”
“알겠습니다.”
“아무튼 보자. 뼈 물량을 잠갔다?”
놈들이 가지고 있는 최고의 패.
그렇기에 세론 상사의 전면 철수 약속 정도 아니면 절대 포기하지 못하겠지.
하지만 그렇기에 놈들의 피해는 더욱 누적될 거다.
그럼 나는 역으로 누적될 놈들의 피해를 더욱 가중시키는 쪽으로 나가야지.
“OPEC이랑 치킨 게임도 해서 이겼는데 오합지졸 협회쯤이야 일도 아니지. 지금 뼈 가격 오른 건 전적으로 세론 때문이죠?”
“그렇습니다.”
“그럼 그냥 공식적으로 발표하죠, 앞으로 세론은 도매상에게서 뼈 매입 하는 걸 전면 중단 하겠다고. 안 판다는데 우리도 그냥 안 사지, 뭐. 그럼 뼈 가격이 어떻게 될까요?”
“당연히 폭락할 겁니다, 가장 큰손인 세론이 빠졌으니.”
“그렇겠죠? 그런데 폭락한 국제 시세와 별개로 스켈레톤은 지금 현 시세 그대로 매입하면 어떻게 될까요?”
“아! 단가 격차를 벌리시려는 거군요.”
지금 협회는 자신들의 손해를 감수하면서까지 단가를 어거지로 우리 수준까지 끌어올렸다.
그런데 최대 소비자이자 큰손인 내가 아예 너네 뼈 안 사, 그냥 내가 사는 것만 쓸 거야 하고 나가면 저놈들이 지금까지 확보해 둔 뼈는 고스란히 전부 악성 재고가 되어 시장에 과잉 공급 되며 뼈 국제 시세는 폭락할 거다.
그때 내가 폭락한 뼈를 값싸게 사 오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지만, 겨우 뼈 좀 싸게 사겠다고 이 난리를 칠 리가 없잖아?
그러니 국제 시세가 폭락을 하든 말든 세론 상사는 무조건 지금 가격대로 비싸게 산다.
“협회가 이 가격 따라오려면 엄청난 손해를 감수해야 될 텐데, 과연 그게 가능할까요? 당연히 다른 건 몰라도 뼈만큼은 소상인들이 스켈레톤 단가를 못 쫓아올 겁니다. 그럼 사냥을 마치고 나온 각성자들이 뼈를 소상인들이 아닌 스켈레톤에게 팔겠죠? 그렇게 되면 뼈 따로, 가죽 따로 이렇게 파는 건 귀찮으니 어차피 가격도 비슷하겠다, 파는 김에 나머지들도 그냥 스켈레톤에게 처분할 거고.”
뼈가 일종의 미끼 상품 역할을 하는 거지.
“그리고 상황이 그쯤 되면 협회 내부에서도 분열이 일어날 겁니다. 어쩌면 손해를 만회하기 위해 협회 결정과는 상관없이 보유한 뼈 물량을 높은 가격 쳐주는 우리한테 팔려는 도매상이 나올지도 모르고.”
나는 무려 OPEC과의 치킨 게임도 이겨 낸 사람이라고.
그러게 처음부터 그냥 잘했으면 좋았잖아.
“만약 그런 도매상이 나오면 어떻게 할까요.”
“그건 상황 보고 판단해도 늦지 않습니다. 일단은 단가 격차 벌려서 압도하는 게 먼저죠.”
나는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어차피 그때쯤이면 우리 마음대로 할 수 있으니까.”
너네는 물건으로 흔들었지?
나는 돈 그리고 스켈레톤으로 흔들어 줄게.
“스켈레톤 쫙쫙 뿌립시다, 상인들이 반발하건 말건 상관없이. 기왕 시작한 거, 다 먹어 버려야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