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Live as a Villain RAW novel - Chapter 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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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저는 아무것도 모릅니다.
이런식으로 말하는 상대는 단 한번도 겪어본적이 없었기 때문에 더 당황스러울수밖에 없었다. 근데 웃긴건 말을 듣다보니 그럴듯하다는게 또 문제였다. 명성과 악명이 완벽하게 그 사람을 증명해주는건 아니니 말이다. 이를테면 자신의 경우에는 명성치가 500만을 넘어가지만 악명수치도 50만가량 쌓여있다.
자신이 아무리 선행을 하더라도 결국은 자신의 도시를 구하기 위해서 다른 도시와 싸우게되면 그만큼의 악명이 쌓일수밖에 없는것이다.
‘분명 성향은 사(邪), 혹은 악(惡)이 분명한데.’
검신이 완벽하게 검은색으로 물들었지만 폼멜에 박혀있는 보석의 빛은 탁해지지 않은걸볼때 아마 명성도 어느정도 있는건 분명하다. 유성이라는 녀석의 말에 머뭇거린 이유는 바로 그것때문이었다.
스릉.
유성을 잠시 응시하던 아르벤은 허리춤으로 검을 되돌리며 말했다.
“솔직히 네 말을 믿을수는 없다. 하지만 기억을 잃어버린 네가 과거에 무슨 잘못을 저질렀든 그것을 내가 멋대로 판단하고 처벌을 할수는 없는 노릇. 일단 지금은 넘어가주지.”
“고맙단 말은 안하겠습니다. 제 입장에서 보면 갑자기 일어나자마자 모르는 사람이 저를 취조하고 멋대로 믿는다느니 아니겠다느니 말하는 상황이니까요.”
“네가 선인인지 악인인지는 모르고 앞으로 그 일로 왈가왈부하지는 않도록 하지. 하지만 최소한 내 앞에서는 네가 선인이라는 증명할수 있도록 행동할수 있도록.”
“악인이라면 어떻게 할겁니까? 그 검으로 베기라도 할겁니까?”
“난 그렇게까지 막 나가는 놈은 아니야. 악인이면 단지 너랑 더 이상 관계되지 않을뿐이다.”
유성은 순간적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째 말하는 투를 보니 앞으로도 자신과 계속 얼굴을 보겠다는 어투로 들린것이다.
“저랑 계속 같이 지낼겁니까?”
“그래. 최소한 이 미션이 끝날때까지는 말이지.”
“이건 또 의외의 대응이군요. 저를 싫어하시는듯 했는데 뭘 보고 같이 동행할 생각을 한 겁니까?”
“그 이유를 너에게 말할 필요는 없겠지. 네가 싫다면 오히려 나야 환영이지. 따로 행동할거냐?”
“…죄송하지만 그렇다면 잠시 신세를 지죠.”
기억이 날아간이상 혼자 움직이는건 위험이 많다고 생각한 유성은 일단 이 호의를 고맙게 받아들이기로 했다. 최소한 기억이 돌아올때까지만이라도 같이 행동할수 있다면 여러모로 도움이 될것이다.
‘그리고 머리가 살짝살짝 간지러운게 몇일 사이로 기억이 돌아올것 같기도 하고.’
자신이 누구인지에 대한 기억은 완전하게 날아가버렸지만 능력치나 아이템창, 현재의 복장으로 자기가 어떤 인간이었는가, 그리고 기억이 언제 돌아오는가에 대한 추측은 가능했다. 일단 초인의 능력치는 잘려진 부위에서 다시 신체를 재생해낼정도로 강력한 회복력을 가지고 있다. 한번 파괴된 뇌세포는 다시 복구되지 않는다고 하지만 기억상실증은 뇌세포가 파괴되는게 아니라 쇼크로 잠시 기억이 사라지는 것이다.
몇십년동안 기억을 되찾지 못하는 경우도 있기는 하지만 그런 경우는 극히 드물고 대부분의 기억 상실증은 강렬한 충격을 받아서 생기는것이며 몇일만에 회복되는 일도 있다. 실제로 지금도 조금씩 몇몇 얼굴들이나 생소한 기억들이 떠오르고 있다.
‘이 페이스로 가면 굳이 모든 기억을 되찾지 않더라도 하루만 있더라도 내가 어떤 인간인지 추측할수 있겠군. 그나저나 원래 기억상실을 하고도 이렇게 침착하게 상황을 추측하는게 당연한건가? 내가 좀 특이한 인간인가?’
아르벤은 유성을 잠시 내려다보다니 루시아를 데리고 일어났다.
“저만 두고 가는겁니까? 이런 어두운 숲속에서 혼자 남으니 무서운데 말이죠.”
“흥.”
아르벤은 가소롭다는듯이 웃으며 들고 있던 프라가라흐를 뽑아 망설임없이 공중으로 던져버렸다. 바닥으로 떨어질줄 알았던 검은 그대로 중력을 거부하고 공중에 스스로 떠있었다. 에고 소드인 프라가라흐는 주인을 선택하고 스스로 움직일수 있는 힘이 있다. 저 한 자루만으로도 어지간한 검사 이상의 힘을 발휘할수 있으리라.
“어지간한 몬스터는 그 녀석이 알아서 막아주겠지. 잠시 우리들은 이야기를 나누고 올테니 그동안 조용히 있을수 있도록.”
“혼자 있다는게 싫다는거였는데…, 최대한 빨리 돌아오십쇼!”
싱글싱글 웃으며 팔을 흔드는 유성을 뒤로한 아르벤은 그가 보이지 않을정도로만 떨어지고 외부와의 소리를 차단하는 마법을 사용했다. 그 사실을 알아차리자마자 루시아는 안면 가득 미소를 지으며 아르벤의 가슴을 끌어안았다.
“고마워요 오빠! 역시 오빠라면 곤경에 빠진 사람을 그냥 지나가지 않을줄 알았어요.”
“굳이 그런 목적에서 도와주려고 하는게 아니야. 기억을 잃었다지만 상당한 강자, 지금 홀대하면 나중에 기억이 돌아왔을때 이쪽에게 어떤 대응을 할지 모르니 차라리 이렇게 은혜를 입혀놓는게 맞다고 생각한거지. 기억이 돌아오지 않아도 불안요소는 눈에서 뗴어놓는것보다 곁에 붙여두는게 훨씬 나아.”
“오빠는 항상 그렇게 어려운 말을 하시네요. 그냥 불쌍해서 도와줬다는 한 마디면 될텐데.”
“난 그렇게 착한 놈이 아니야. 에휴, 너랑 무슨 말을 하겠냐.”
자신이 말한 이유도 있지만 유성을 곁에 데리고 다니기로 한 가장 큰 이유는 바로 루시아가 무슨 일이 있어도 그를 내버려둘리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루시아의 대책없이 착한 성격은 가끔 짜증을 사기도 하지만 그런 막 퍼주는 선행이 하나씩 쌓이고 쌓여서 사소한 순간부터 결정적인 순간까지 도움이 되었다.
‘당장 프라가라흐만 하더라도….’
자신이 가지고 있는 유일한 갓급의 무기인 프라가라흐만 하더라도 전염병에 감염된 미쳐버린 사람들을 치료한다는 누구도 생각지도 못한 선행을 베푼것이 검을 발견할수 있는 단초를 마련하게 됐다.
“보나마나 네 생각은 저 녀석을 보호해준다는 거겠지만 우리도 우리만의 사정이 있어. 갑자기 짐을 떠맡는건 계획에 없던 일이고.”
“그럼 어떻게 하실건데요?”
“좀 귀찮기는 하겠지만 저 녀석을 데리고 이 강제미션을 끌낼수 있는 최소조건인 미션 포인트 5천을 쌓을수 있도록 도와주는거야. 어차피 우리들이 움직이는김에 같이 데리고 가는거니 크게 신경쓸 필요도 없겠고 결과적으로 다시 원래 도시로 돌려보내줄수도 있어.”
“그러면 되겠네요! 후후후, 역시 아르벤 오빠는 똑똑해요. 아! 근데 기억 상실증인데 그대로 도시에 돌아갔다가는….”
“거기부터는 어떻게 도와줄수 없지. 오히려 도시에는 아는 사람도 있을테고 익숙할테니 기억이 더 빨리 회복될거야. 이 정도면 되겠지?”
“솔직히 저는 기억이 돌아올때까지 계속 옆에서 보살펴주고 싶은데, 현실은 그렇지 않으니 어쩔수 없죠. 대신 떨어지기전까지는 저희가 확실히 보호해줘야 되요? 약속!”
루시아가 내민 새끼손가락을 걸고 손을 위아래로 흔든 아르벤은 미약한 웃음을 짓고 숙영지로 되돌아가기 시작했다. 이런 지옥속에서 자신과 동료들이 인간성을 잃지 않고 웃을수 있는건 루시아의 이 순진무구함의 영향이 클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나뭇가지를 헤치며 숙영지로 돌아온 아르벤은 다시 얼굴을 굳힐수밖에 없었다. 침낭에 누워서 휴식을 취해야할 유성은 근처의 땅에 누운채 팔을 살짝 들어올리고 있었고 프라가라흐는 그런 유성의 목을 겨눈채 정지해있었다. 자신이 돌아온것을 확인한 유성은 너털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하, 하하하하. 검이 워낙 좋아보여서 그냥 한번 휘둘러보고 싶은 마음에 만졌더니 갑자기 움직여서 이렇게 반격을 해오는 바람에….”
“후우우.”
‘전언취소.’
아무래도 이 녀석은 득보다 실이 많을것만 같은 예감이었다.
어디인지도 모를 숲속을 몇일씩이나 해매야한다는 최악의 사태는 일어나지 않았다. 아르벤은 일어나자마자 확실하게 가야할 방향을 알고 있다는듯 앞장서서 움직였기 때문이다. 궁금함에 이유를 물어보니 아르벤은 그다지 대수로운것도 아니라는듯 들고 있는 작은 나침반을 보여줬다.
선택의 나침반
등급 : 레전드(下)
종류 : 나침반
-운명을 다루는 힘이 깃들어있는 전설의 나침반. 이 나침반은 커다란 운명이나 사건을 감지하고 그 사건이 일어나는 방향을 가리키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탐색 마법 사용 가능.
-사건의 거리, 사건의 크기, 사건의 시기 등 찾고자하는 운명이나 사건의 조건을 정할수 있습니다.
-모든 종류의 제작 성공 확률 10% 증가.
“…이건 또 무슨 특이한 아이템.”
“이것이 있으면 막무가내로 숲을 해매지는 않을수 있겠지. 그나저나 유성 너는 검을 든걸보니 검사인거 같은데, 실력은 어느정도지?”
“정확히 말씀드리지는 못하겠습니다. 하지만 제 기억상에서는 저는 이런 롱소드는 그다지 사용하지 않았던것 같은데요.”
“그럼 다른 무기를 사용한건가?”
“아뇨, 그런건 아니고 그다지 사용하지 않았다는건지 롱소드도 쓸수 있기는 합니다. 이렇게요.”
훙! 후웅!
앞으로 걸어가면서 자연스럽게 휘둘러지는 검을 바라본 아르벤은 보통은 벗아나는 검의 움직임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기억을 잃었던지, 아니면 감춰서 그런건지 탑랭커급에 속할정도는 아니어도 어디가서 명함은 내밀수 있을정도의 실력을 가지고 있군. 검의 궤적은 깨끗해보이는데 왠지 신체가 들썩이는것처럼 보이는건 내 착각인가?’
어쨌든 유성도 자기 한몸을 지킬수 있다는것을 안 아르벤은 그 이후로도 꽤나 많이 놀랄수밖에 없었다. 고작해야 반나절도 이동하지 않았는데 유성은 그야말로 만능이라고 할수있는 능력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렇게 막무가내로 가면 뒤에 있는 사람이 힘듭니다. 방향을 가르쳐주십쇼. 제가 앞장을 서겠습니다.”
“흠, 여기는 몬스터가 지나다니는 길인것같군요. 모두 주의해주시기 바랍니다.”
“요리가 맛이 없는건 아닌데 그렇다고 뛰어나다고 하기에도 좀 그렇군요. 제가 요리해도 될까요?”
전투적으로 도움이 되는 능력은 아니었지만 별에 별 잡학을 다 알고 있었다. 그가 만든 요리를 한입 먹었을때는 아르벤조차 짧게 감탄성을 토해내며 내심 재평가하기도 했고 루시아같은 경우에는 울상을 지으면서 어떻게 요리를 만드는지 물어볼정도였다.
물론 그에 대한 대답은 ‘요리 스킬을 최상급까지 찍으면 되는데요?’라는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 대답이라서 절망하기는 했지만 말이다. 그렇게 얼마간의 어느정도 숲을 해치고 나왔을무렵 아르벤이 갑자기 앞장을 서고 있는 유성을 잡고 입에 손가락을 가져다댔다.
“조용히. 근처에서 싸움이 벌어지고 있는것같다.”
“제 귀에는 아무것도 안 들리는데요?”
“나한테는 들려. 조금 느리겠지만 최대한 천천히 이동한다.”
아르벤의 지시에 따라 숨소리조차 죽이고 서서히 이동한지 얼마지나지 않아서 유성도 금속이 부딪히는 소리와 비명을 들을수 있었다. 그리고 다시 한참의 시간이 지나서 마침내 그 근원지에 도착할수 있었다. 싸우고 있는 것은 인간이 아닌 엘프, 그리고 어우러져 싸우고 있는 엘프들의 색깔은 백과 흑이었다.
일반 엘프들은 각각 특이하게 휘어진 쌍검과 궁을 들고 나무를 타고 이리저리 이동해가며 싸우고 있었고 다크 엘프들은 톱날이 달린 검이나 작은 단도를 이용해서 전선을 해집고 있었다. 들리는것이라고는 무기가 부딪히는 소리와 피가 튀고 살이 갈라지는 파육음뿐. 싸움은 전체적으로 다크 엘프에게 우세하게 전개되고 있었다.
피잉! 탁!
전투중에 날아온 애먼 화살을 맨손으로 잡아챈 아르벤은 잠시 전황을 지켜보더시 최대한 목소리를 낮춰 지시를 내리기 시작했다.
“우리도 전투에 가세한다.”
“전투에 가세한다면 어느쪽을 도와준다는 겁니까?”
“당연한것 아닌가? 엘프들을 도와서 다크 엘프를 몰아낸다.”
“…흐음.”
솔직히 말하자면 유성은 굉장히 불만이 많았다. 싸움에 끼어드는것이야 그렇다치더라도 왜 평범한 엘프들을 도와줘야 하는것인지 말이다.
‘피부색깔이 하얘서? 일방적으로 밀리고 있어서? 위험에 처한쪽을 구해주면 더 큰 은혜를 입힐수 있어서? 나 같으면 쓸데없는 모험은 하지 않고 다크 엘프를 돕거나 아예 못본척하거나 두 집단 모두 쓸어버릴텐데.’
하지만 그런 생각은 생각으로 끝날수밖에 없었다. 지금 이 파티의 결정권은 자신이 아닌 아르벤에게 있고 이런 상황속에서 괜히 말꼬리를 잡아서 불만을 사고 싶은 마음은 없었기 때문이다.
“유성, 네 실력은 평균 이상은 하니 걱정할 필요 없겠지. 하지만 만약을 대비해서 조금 불리해진다 싶으면 엘프들쪽으로 물러나서 자기 몸 하나만 보호하도록 해. 루시아 너는 평소처럼 있고.”
“알겠습니다.”
“예, 오빠.”
“좋아, 그럼.”
프라가라흐를 뽑아든 아르벤은 작게 숨을 내쉬고 검을 움켜쥔채 그대로 앞으로 휘둘렀다. 그리고 검을 휘두르려고 하던 다크 엘프의 팔목이 바닥을 나뒹굴었다.
촤악!
“홀리 블레이드, 성령의 갑옷, 레지스트 매직, 리커버리.”
루시아가 걸어준 버프들이 제대로 걸리자 아르벤의 몸은 미약하게 빛나기 시작했고 거의 2m가까이 불어난 빛의 성검을 든 아르벤은 더없이 진중한 태도로 모습을 드러냈다.
“모두 거기까지만 해주셨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