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return a dimensionpover correctly RAW novel - Chapter 174
173화- 1월 1일 (01)
한 해가 저물고, 하얀 눈꽃과 함께 새해가 밝았다.
새벽부터 내린 눈이 아직까지 이어졌지만, 오즈벨은 그 어느 때보다 활기찬 풍경을 보였다.
마을 곳곳에는 평화와 신년을 기원하는 장식물이 걸렸고, 사람들은 이웃과 인사를 나누며 덕담을 주고받았다.
행복한 웃음소리가 영지 곳곳에서 울려 퍼졌다.
쿤은 새벽부터 일어나 정원의 눈을 쓸고, 오동촌에 들른 후, 영지를 크게 한 바퀴 돌았다.
가볍게 인사나 건네고자 나간 거였는데, 영지민들이 이것저것 쥐여주는 덕에 숙소에 돌아올 즈음에는 두 팔이 부족할 지경이었다.
그는 거실에 도착하자마자 품에 끌어안고 있던 물건들을 내려놓았다. 각종 먹거리부터 장식, 부적 등등. 영지민들의 애정이 한가득 느껴졌다.
“받기만 해서 죄송하네. 로도 베리 청이라도 드려야 하나.”
아무래도 집에 연락해 로도 베리를 잔뜩 보내달라고 해야겠다.
쿤은 그리 생각하며 물건들을 정리했다.
그때 루가 계단을 타고 1층으로 내려왔다.
“아, 루 씨.”
쿤은 그녀를 향해 활짝 웃어 보였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그래, 너도 복 많이 받아라.”
루는 이마를 짚으며 비척비척 거실까지 걸어오더니 소파에 털썩 주저앉았다.
지독한 숙취에 시달리는지 얼굴이 펴질 생각을 안 했다.
“속은 좀 괜찮으세요?”
“…아니, 안 괜찮아.”
“해장국 끓여놨으니까 가서 드세요.”
“…넌 좋은 판테테가 될 거야.”
“감사합니다. 근데 언제부터 좋은 판테테의 기준이 해장국이 된 거죠?”
“오늘부터.”
쿤은 새삼 오즈벨 지부에서 가장 인정받는 제 능력이 요리가 아닐까 하는 의심을 했다.
잠시 후, 부용과 녹턴 또한 아래로 내려왔다. 그리고 조금 더 있자, 보보와 토야가 나왔다.
지난밤, 단원들이 술에 제대로 취하는 바람에 쿤은 그냥 그들을 모두 숙소에서 재웠다. 마차를 태운다 해도 제대로 집에 들어갈지 미지수인데다, 이래저래 걱정됐기 때문이었다.
토야조차 여기서 자고 가는 바람에 헤라를 제한 모두가 숙소에서 신년을 맞이하게 되었다.
쿤은 단원들을 볼 때마다 새해 복 많이 받으란 인사를 해주었고, 그들은 숙취에 찌든 얼굴로 이를 받아주었다.
유일하게 멀쩡한 토야하고만 평범하게 새해 인사를 주고받았다.
토야는 곧장 건곤이를 찾더니, 이내 두 아이를 데리고 정원으로 나갔다.
쿤은 다시 한 번, 진짜 삼촌 같다는 생각을 했다.
“이거 영지민 분들이 주신 거예요.”
쿤이 받아온 선물 중 먹거리들을 골라 소파 테이블에 올려두었다.
하지만 손을 움직이는 단원은 단 한 명도 없었다.
그들은 소파에 앉아 고개만 푹 숙인 채, 새해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숙연한 분위기를 풍겼다.
“꼴을 보니 다들 기억이 나는 모양이네요.”
쿤의 말에 네 사람이 동시에 뜨끔했다.
술에 취한 다음 날, 사람은 크게 두 종류로 나뉜다. 전날을 기억하는 사람과 아닌 사람으로. 그리고 오즈벨 단원들은 주로 전자에 속했다.
그들은 전날 부렸던 추태를 떠올리며 마른세수를 했다.
“아, 씨…….”
“기억을 도려내고 싶다…….”
“창피해…….”
“자살할까…….”
루부터 시작해 보보, 부용, 녹턴 순으로 중얼거렸다.
오즈벨 단원들이 술을 안 좋아하는 건 이래서였다. 별난 주사만으로도 창피한데, 그게 다 또렷하게 기억나는 것이다.
심지어 그들의 주사는 밤새도록 계속되었다.
부용은 모든 채소에게 자유를 선사했고, 루는 끝내 술병을 다 비웠으며, 보보는 결국 토야에게 맞고 기절했다.
정점을 찍은 건 의외로 녹턴이었다. 약을 먹었음에도 두드러기가 가라앉지 않아 쿤이 서둘러 의사를 모셔와야 했던 것이다.
이 와중에 그녀는 주사를 놔주는 의사 선생님에게 ‘제가 돌보는 강아지랑 많이 닮으셨네요. 혹시 종이 어떻게 되세요?’라는 헛소리를 시전했다.
네 사람은 수치심에 고개를 들지 못했다.
쿤은 그들을 향해 싱긋 웃어 보였다. 아주 인자한 미소였으나 그것이 약 올리는 거라는 걸 모르는 이는 없었다.
“괜찮아요. 사람이 살다 보면 추태도 부리고, 주사도 부리는 거죠.”
“시끄러워!”
루가 발끈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정말로 창피한지 술을 마셨을 때에도 멀쩡하던 얼굴이 잔뜩 붉어졌다.
“어제 일은 다 잊어. 알겠어?”
“잊고 싶다고 잊을 수 있으면 그게 기억이겠어요.”
“잊으라고!”
“‘뭐? 이게 술이야? 어쩐지 맛이 별로더라’.”
쿤은 어제 루가 했던 말을 따라 했다.
그녀의 얼굴이 한층 더 붉어졌다.
“야!”
“‘술도 안 마셨는데 내가 왜 취해’.”
“그만하랬지-!”
루는 참지 않고 주먹을 날렸다.
감정이 제대로 실린 묵직한 공격이었으나 애석하게도 쿤에게 닿지 않았다. 그가 이를 눈치채고 빠르게 피했기 때문이었다.
“후후후. 이제 루 씨의 패턴 정도는……!”
퍼억.
루의 다리가 쿤의 배를 뻥 걷어찼다.
“컥.”
쿤은 그대로 나자빠졌다.
설마 발까지 이용해 저를 팰 줄이야.
“아프잖아요!”
“그니까 그만하라고!”
“알겠어요. 그만할게요.”
쿤은 그리 말하면서도 손가락 두 개를 펴 보였다. 그리고 쐐기를 박았다.
“루 씨, 이거 몇 개로 보이세요?”
이에 루가 폭발한 건 말할 것도 없었다.
그녀는 곧장 검을 뽑아 들었고, 쿤은 이를 피해 숙소를 한참 동안 뛰어다녀야 했다.
새해 첫날의 풍경치고는 참으로 살벌했다.
사강이 깨어난 건 그로부터 20분 후의 일이었다.
“좋은 아침~! 어라? 너희 뭐 하냐?”
사강은 검을 빼 든 루와 부용의 뒤에 숨어 있는 쿤을 보며 고갤 갸웃거렸다.
“사강 씨,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그리고 저 좀 살려주세요. 루 씨가 저를 죽이려고 해요.”
“갑자기 왜?”
“제가 어제 일로 좀 놀렸거든요.”
“좀? 그게 좀 놀린 거야?”
루가 빠드득 이를 갈았다.
사강은 이를 빤히 쳐다봤다. 순간 그가 커다란 물음표를 그렸다.
“어제? 어제 뭐가 있었지? 아~ 루가 술에 취해서 헛소리 한 거? 그러고 보니 어제도 화려했지.”
하하하하. 그는 단원들을 향해 손가락질하며 비웃음을 아끼지 않았다.
울컥한 보보가 쿠션을 쥐며 항의했다.
“사강 씨도 갑자기 우시고, 스테이크랑 미트볼 합체시켰잖아요.”
“내가 언제?”
사강이 반문했다. 표정을 보니 모르는 척하는 게 아니라 정말로 모르는 듯했다.
전날을 기억하는 단원들과 달리 사강의 뇌는 아주 편리하게도 제 추태를 싹 다 지워 버렸다. 아이러니한 것은 다른 단원들의 치부는 전부 다 기억한다는 것이다.
세상에 이보다 편리한 기억력이 또 있을까.
심지어 그는 다른 단원들처럼 숙취를 앓지도 않았다. 오히려 숙면을 취한 사람처럼 얼굴이 뽀송뽀송했다.
“항상 느끼는 거지만, 진짜 대단한 분이세요.”
쿤의 중얼거림에 부용이 고개를 끄덕였다.
사강은 그대로 소파에 앉았다. 그리고 쿤이 가져온 과자 하나를 까먹었다.
해장국을 찾는 다른 단원들과 달리 그는 속도 멀쩡해 보였다.
그때였다. 갑자기 통신 특유의 진동음이 울렸다. 그리고 뒤이어 생전 처음 듣는 신호음이 들렸다.
띠- 띠- 띠-
뚝뚝 끊어지는 음절에 쿤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게 뭔 소리예요?”
쿤의 질문에 부용이 짧게 설명해 주었다.
“단장님 방에 있는 오즈벨 지부 통신기 소리예요.”
“아.”
혜성의 방에 있는 오즈벨 지부 전용 통신기. 평소엔 잘 쓰지도 않는데다, 가끔 오는 통신은 혜성이 곧바로 받는 터라 신호음을 듣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저거 어떻게 해요?”
“네가 받아.”
사강이 턱짓했다.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단장한테 온 연락을 어찌 신참이 덥석 받는단 말인가.
하지만 이런 쿤의 마음과 상관없이 루와 녹턴 역시 그에게 받으라 말했다.
“그래도 돼요?”
“응. 어차피 네가 잘 아는 사람이야.”
제가 잘 아는 사람이라니.
쿤은 쭈뼛거리며 방 안으로 들어갔다. 생각해 보니 주인이 없는 방에 들어오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는 마치 통신기가 손님이라도 되는 양 조심스럽게 받았다.
“네, 오즈벨 지부입니다.”
[이번엔 쿤이 받았네.]“혜성 씨?”
쿤의 눈이 작게 떠졌다.
잘 아는 사람일 거라더니, 그게 혜성 씨였어?
“어쩐 일이세요?”
[누가 들으면 내가 못 할 곳에 연락한 줄 알겠군.]“그런 의미는 아니고, 그냥 좀 갑작스러워서 그랬어요. 근데 정말 어쩐 일이세요?”
[신년이잖아. 그래서 연락했어.]혜성은 단장이라 매해 연말과 연초를 왕도에서 보내야 했다. 그래서 1월 1일이 되면 이렇게 오즈벨 지부로 통신을 해왔다.
[새해 복 많이 받아.]혜성의 인사에 쿤이 희미한 미소를 띠었다.
“혜성 씨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돈도 많이 버시고요. 오래오래 사셔야 해요.”
“뭔가 이런 인사를 해야 할 거 같았어요.”
[하하하하.]통신기 너머로 혜성의 호탕한 웃음 소리가 이어졌다.
[다른 애들은? 별일 없지?]“네. 별 일 없… 아, 일이 있긴 했어요.”
도청의 위험도 있고, 정식 보고도 아니었기에 쿤은 최대한 짧고 간결하게 광석 차원이동자가 넘어왔단 걸 전달했다.
남들이 듣기엔 별거 없는 평범한 대화였다. 딱히 이상한 점도 보이지 않았고 말이다.
하지만 혜성은 금세 그 이면에 다른 일이 있었음을 눈치챘다.
[그렇군. 어쨌든 다들 무사해서 다행이야. 그 이후론?]“아직 평화로워요.”
쿤은 그리 답하다 문뜩 운이 좋았단 생각이 들었다.
만일 어제 차원문이 열렸어봐라. 아마 여러모로 난장판이 되었을 것이다.
‘다음부터 술 주면 안 되겠다.’
쿤은 단원들에게 실수로라도 술을 주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쿤?]“아, 네. 말씀하세요.”
[무슨 생각을 그리해.]“별거 아니에요. 그보다 혜성 씨랑 은이 씨는 잘 계시는 거죠?”
[나는 잘 있어.]나는?
쿤은 저도 모르게 고갤 갸웃거렸다.
“은이 씨는요?”
[글쎄.]혜성이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쿤은 조금 의아해졌다. 혜성이 도청 때문에 말을 삼키는 건지, 아니면 그냥 말을 안 하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지금 같이 안 계시는 거예요?”
[응. 어젯밤에 나가서 아직 안 돌아왔어.]“왜요?”
“친구요?”
이 말이 그렇게 웃겼던 걸까. 혜성이 드물게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 은이가 들었으면 뒤집어졌겠군. 너 걔 앞에선 절대 이 말 하지 마. 높은 확률로 맞게 될 거야.]그 착한 은이가 때린다니.
“대체 누굴 만나기에…….”
쿤이 의아함을 담아 물었다.
잠시 후, 혜성이 답했다.
[있어, 세상에서 제일 재수 없는 놈.]* * *
은이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마음이 영 편치 않아 소파에서 뒤적이자, 건너편에 앉은 이가 작게 웃어 보였다.
“얼굴에 짜증이 가득하네.”
“…새해부터 네 면상을 봤더니 역겨워서 말이야.”
“하하하. 이 리란티아에서 나한테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건 너밖에 없을 거야.”
“말로만 안 할 뿐이지 다들 그렇게 생각할 거야, 너 재수 없다고.”
“이런. 서운해라.”
말과 달리 남자는 조금도 서운하단 투가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은의 이런 말이 재밌는 듯했다.
은은 그를 매섭게 째려봤다.
30대 중후반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동안과 은빛으로 보이는 잿빛 머리칼.
곱상하다는 말이 부족할 만큼 화려한 외모에 매혹적인 붉은 눈동자였으나, 어릴 때부터 혜성의 얼굴을 봐와서 그런 걸까. 잘생겼다는 생각이 조금도 들지 않았다.
“요즘 오즈벨은 어때?”
남자가 턱을 괴며 은을 마주봤다. 입꼬리가 여유롭게 올라가는 것이 심히 불안했다.
“혜성이랑은 화해했어?”
짜증나는 질문에 은의 미간이 퍽 구겨졌다.
그녀는 이 실없는 질문을 외면하기 위해 두 주먹을 꽉 쥐어 보였다.
그러나 뒤이어진 말에 결국 참지 못하고 자릴 박찼다.
“최근에 재미난 신참이 들어온 거 같던데, 소개 안 시켜줄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