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Ruin A Love Comedy RAW - Chapter (190)
Chapter 190 – 크리스마스의 야한 추억
“너 뭐해? 이글루라도 만들려고?”
눈을 각지게 만들고 있던 내 뒤에서, 렌카가 의아한 질문을 건넸다. 무슨 소리냐는 듯 의아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본 내가 대답했다.
“아뇨. 눈사람 머리 만들고 있잖아요.”
“넌 눈사람 머리가 네모나다고 생각해?”
“네모날 수도 있죠.”
“아닌데?”
“맞는데요. 그렇지 않나요 스승님?”
마침 이쪽으로 동그란 몸통을 굴리며 다가오는 치나미에게 수긍해달라는 듯한 말투로 얘길 하자, 그녀가 고개를 크게 주억거렸다.
“눈사람도 각각의 개성이 있어야지요. 이참에 몸통도 네모네모하게 만들어봐야겠네요.”
그 말에 렌카가 기가 찬 듯 헛웃음을 쳤다.
“몸통까지?”
“네. 아예 각진 눈사람으로 만들도록 해요. 두부처럼.”
“난 동그란 눈사람을 원해. 눈사람은 동그래야 해.”
뭐야 그 이상한 고집은? 그냥 내가 만든 눈사람 머리가 마음에 안 들어서 트집을 잡는 거지? 이거 담아둔다.
틱틱대는 렌카의 등허리를 살살 토닥여 달래준 치나미가 말했다.
“그러면 이것부터 다 만들고 새 눈사람을 만들면 되지요. 감독님께서도 오늘 쉬엄쉬엄하라고 말씀하셨으니까 시간은 많잖아요. 그렇지요?”
“…. 그렇긴 한데… 눈사람이 네모면 보기가 너무 흉측하잖아…”
“얼굴을 잘 만들면 흉측하지 않을 거예요. 특별히 친우님께 얼굴 디자인을 전부 맡기겠어요.”
“하… 이걸 어떻게 살려… 눈사람이 불쌍해…”
일부러 날 맥이려는 것 같은데… 넘어가주마. 얼굴을 다 만든 나는 렌카에게 눈덩이를 만들어 던져볼까 고민하다가 이내 그만두기로 했다. 옷을 빵빵하게 입었다면 해보겠는데, 지금은 도복이 끝이니까 봐준다.
“후배님, 저 위에서 떨어진 나뭇가지를 조금 가지고 오셔주실래요? 일부러 꺾지는 마시구요.”
예의바른 치나미의 부탁에 흔쾌히 알겠다고 대답한 나는, 동산으로 올라 땅에 쌓인 눈을 훌훌 털어내며 나뭇가지를 찾기 시작했다.
위쪽에서 보니 우리 이외에도 밖에 나와 있는 부원들이 더러 있다. 테츠야는 없었다. 아마 대회가 다가오니 안에서 연습에 매진하는 모양이었다. 방해꾼이 없으니 속이 시원하다. 평화로운 분위기야. 이 분위기를 밤, 더 나아가 새벽까지 쭉 이어나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내가 눈사람에 붙일 나뭇가지를 가지고 내려왔을 땐, 동그랬던 눈사람의 몸통은 직사각형으로 변해있었다. 그리고 렌카는, 몸통 위에 내가 만든 머리를 올려놓은 채로 열심히 눈을 그리고 있었다. 입가를 씰룩거리면서 말이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렌카 또한 이 눈사람 만들기를 즐기는 것 같다.
“다 만들고 나서 마츠다 후배님과 함께 같이 사진을 찍을까요?”
“사진? 굳이?”
“열심히 노력해서 만들었는데 눈으로만 볼 수는 없잖아요.”
“그런가? 알았어.”
“그런데 눈사람의 눈매가 날카롭네요. 입도 한쪽이 살짝 올라가있는 게 굉장히 음흉해보여요.”
“음흉한 애가 만든 머리니까 그에 걸맞게 그려주는 거야.”
“어허…! 친우님…!”
“농담이야.”
새하얀 눈밭 가운데에서 치나미와 함께 재잘재잘 떠드는 모습에서 소녀소녀한 감성이 물씬 느껴진다. 갑자기 렌카를 빨리 공략하고 싶어지는 마음을 억누르며, 나는 그녀들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
아무리 공휴일이 아니라지만 특별한 날이라는 건 의심의 여지가 없었기에, 거리엔 각 매장에서 설치해두었던 다양한 크리스마스 트리가 알록달록한 빛을 발하고 있었다. 분위기 좋은 레스토랑에서 미유키와 밥을 먹고 나온 나는, 그녀와 팔짱을 낀 채로 거리를 거닐며 그것들을 구경했다.
“너네 집에도 트리 있냐?”
“우리? 없어.”
“안 꾸몄어?”
“응. 원래는 가족들이랑 같이 놀이터에 가는데…”
“놀이터는 왜?”
“동네 사람들이 거기에 큰 크리스마스 트리를 가져다놓고 장식하거든.”
“오늘은 나랑 만나니까 못가겠네.”
“그렇지.”
“지금도 하고 있나?”
“하지. 왜? 가보려구?”
굳이 거길 왜 가냐. 보기도, 생각하기도 싫은 핵폐기물이 있을 텐데.
“아니.”
“단호하네? 재미있는데…”
내년에 나, 미유키, 치나미, 렌카, 그리고 히요리까지… 이렇게 다섯이서만 하면 되지. 찬란한 미래를 그린 나는 미유키와의 팔짱을 풀고, 그녀의 어깨에 팔을 둘러 내 쪽으로 당겨왔다.
“먼저 괜찮은 술집 찾아서 들어가 있자.”
“나나세 선배는 오려면 멀었어?”
“어. 아직 좀 남았어.”
“그래? 그럼 꼬치도 파는 곳으로 가자.”
“야키토리 먹고 싶냐?”
“응.”
“그럴 것 같더라.”
“왜 그럴 것 같았는데?”
“아까 웨이팅할 때 휴대폰으로 꼬치집 찾고 있었잖아.”
“그걸 봤어?”
“봤지. 어깨너머로.”
미유키가 둘러맨 베이지색 목도리를 그녀의 입술 아래쪽까지 바짝 당긴 나는 가게 안이 어둑한, 꼬치류도 파는 술집을 찾아 들어갔다. 크리스마스라 대기를 해야 하나 싶었지만 다행스럽게도 4인용 구석 자리가 남아있었다.
그 자리를 낼름 차지한 우린 메뉴판을 보며 야키토리를 비롯한 술안주 몇 가지를 주문했다. 이후 주류를 고르려고 하는데, 미유키가 방글방글한 웃음을 지으며 물었다.
“나 하이볼 마시면 안 돼?”
위스키를 조금만 타는 하이볼의 특성상 도수가 높다고는 할 수 없지만, 맥주보다는 훨씬 세다. 가뜩이나 술을 못하는 미유키가 마시면 취기가 빨리 오를 텐데 괜찮으려나? 그래도 하이볼로 인사불성이 되지는 않을 테고, 미유키가 알아서 잘 조절할 테니까 상관없겠지 싶다.
“상관은 없는데… 마셔본 적 있어?”
“가족들이랑 외식할 때 아주 조금…”
“그럼 그렇게 해. 알아서 잘 조절하면서 마셔.”
“응.”
내가 주문을 모두 끝내자, 자신의 외투를 벗은 미유키가 가게 안을 둘러보고는 포근한 미소를 지었다. 시끌벅적한 분위기가 마음에 든 듯했다.
“이런 곳에서 술 마시는 건 처음이야.”
“가족들이랑 외식했을 땐 어디에서 마셨는데?”
“보통은 호텔 룸 안에서 마시지. 아니면 공원이나.”
“아주머니랑 아저씨가 조용한 장소를 좋아하시나보다.”
“맞아. 그래서 언니가 재미없다고 답답해해.”
카나는 시끄러운 곳을 좋아하는구나. 하긴, 이미지 상 그럴 것 같긴 했다.
미유키와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길 얼마 후, 주문한 안주가 테이블을 가득 채웠다. 마지막으로 나온, 탄산이 보글보글 올라오는 투명한 하이볼의 손잡이를 잡은 나는 그것을 미유키의 앞에 내밀었다.
그러자 미유키가 잠깐 낯설어하더니, 나와 잔을 살포시 맞부딪치며 수줍게 웃었다. 그렇게 말없이 건배를 한 우린 누가 뭐랄 것도 없이 동시에 하이볼을 들이켰다.
목을 타고 내려가는 탄산 특유의 톡 쏘는 맛과, 레몬 향이 조금 섞인 희석된 위스키의 알싸한 맛이 마음에 들었을까? 표정을 예쁘게 일그러뜨린 미유키가 목을 떨며 기분 좋은 감탄사를 터뜨렸다.
그런 미유키의 눈앞에 야키토리를 내밀자, 자연스레 입을 벌린 그녀가 고기를 한 입 베어 물었다. 그리고는 입술에 약간 묻은 양념을 물티슈로 닦아내며 입을 오물거렸다.
“맛있냐?”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하는 그녀. 킥킥거린 나는 하이볼을 한 모금 더 들이키면서, 본격적으로 미유키와 담소를 나누기 시작했다.
**
착석한지 1시간이 지난 지금, 미유키의 테이블 위에는 하이볼이 반쯤 남아있는 잔이 하나, 그 옆에 비어버린 잔이 하나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고개를 비스듬히 기울인 채로 날 지그시 쳐다보는 중이었다.
“…..”
게슴츠레 풀린 눈, 불그스름하게 달아오른 얼굴. 이 두 가지가 조화를 이룬 미유키의 모습에선 색다른 매력이 풍겼다.
가끔 미유키와 술을 한 잔 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하다고 생각될 정도로, 그녀의 눈빛은 굉장히 외설적이었다. 수학여행을 가면 방에서 단둘이, 주변 눈치를 보지 않고 마셔볼까? 리미트가 풀린 미유키… 상상만 해도 꼴린다.
“뭘 그렇게 빤히 봐?”
미유키의 눈에서 시선을 떼지 않은 내 물음에, 그녀가 고개를 반대쪽으로 꺾으며 대답했다.
“마츠다 군이 먼저 봤으니까.”
혀가 꼬일 정도로 취기가 올라온 건 아니구나. 콧소리가 섞인 말투로 내게 애교를 부리는 미유키가 보고 싶었는데, 그건 다음 기회에 봐야할 것 같다. 치나미가 온 이후로도 한참을 여기 앉아있어야하는데 여기서 더 취하게 둘 수는 없지.
“그런 적 없는데.”
“그랬는데?”
“그래?”
“응.”
누가 먼저 본들 어떠하리. 좋으면 됐지. 기본안주로 나온 삶은 풋콩을 집어 미유키의 입술 앞에 가져다댄 내가 말했다.
“먹어.”
“왜 아까부터 이것저것 먹이려고 그래?”
“먹어야 덜 취해.”
“나 안 취했어.”
저렇게 말하는 사람치고 진짜 안 취한 사람을 본 적이 없단다. 라고 튀어나오려는 말을 집어넣은 내가 풋콩을 더욱 앞으로 내밀자, 미유키가 입을 앙 벌리더니 풋콩의 끄트머리를 삼켰다.
얌전히 잘 받아먹는 모습이 보기 좋다. 앞으로는 미유키가 투정을 부릴 때마다 적당히 취할 정도로만 술을 먹여서 조신하게 있도록 해볼까 싶다.
짭짜름한 콩이 맛있었는지 배시시 웃는 미유키. 다양한 행동을 보여주는 그녀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대화를 이어나가던 나는,
우우웅-!
테이블 위에 놓여있는 휴대폰이 덜덜거리는 소음을 내자 발신자를 확인해보았다. 치나미에게 전화가 오고 있다. 아까 내가 보내놓은 위치에 도착한 모양. 미유키에게 풋콩을 한 번 더 먹인 나는 통화 버튼을 누르고 휴대폰을 귀에 가져다댔다.
“어디세요?”
-도착했어요. 안쪽이 음산한 가게가 맞나요?
“맞습니다. 열고 직원한테 일행 있다고 말씀하신 뒤 쭉 들어오면 돼요. 사람이 많긴 한데 찾기는 어렵지 않을 겁니다.”
-넷…!
군기가 빡 들어간 대답과 동시에 훅훅거리며 호흡을 고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긴장한 모양이다. 술자리가 처음이라서 그런 건지, 아니면 미유키, 나와 삼자대면을 해서 그런 건지는 모르겠지만… 저러니까 나도 떨린다. 너무 굳어있으면 주변 공기가 딱딱하게 변해버릴 우려가 있으니 잘 달래주어야겠다.
-그럼 들어갈게요…! 제가 보이면 손을 들어주세요.
“알겠습니다.”
전화를 끊은 나는 술집 입구를 주시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딸랑거리는 종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고, 큼지막한 목도리로 얼굴을 반쯤 감싼 치나미가 가게 안으로 들어왔다.
이제부터가 진짜인가? 너무 마음 놓지 말고 분위기를 잘 살피면서 행동하자. 그리 생각한 나는 치나미가 우리 테이블을 쉽게 찾을 수 있게끔 자리에서 일어나, 주위를 두리번거리고 있는 그녀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