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survive restructuring RAW novel - Chapter 139
Chapter 31. 보고서 지옥(6)
펄럭-
황당한 마음에 페이지를 넘겨봤지만, 써 있는 건 온통 님을 향한 연시뿐이었다.
사실 조복이 부패한 집권자가 아니라 순수한 로맨티시스트였나 헷갈릴 정도.
‘이걸 왜 굳이 보관해 둔 거지?’
뭔가 숨겨진 암호가 있지 않을까.
그리 생각하며 열심히 뜯어내 가던 그때.
[‘제3의 눈’ 특수 효과 발동!] [‘현혹’의 영향에서 벗어납니다.]‘……?!’
『여름밤의 일기』
제목이 흐려졌다.
『여부 ─의 일─기』
한 글자, 한 글자가 파르르 흔들리며 변했다.
자음과 모음이 하나하나 분리되어 룰렛처럼 바뀐다.
『내부 ─사 보─서』
그리고 마침내.
『내부 조사 보고서』
본래의 제목을 드러내고 말았다.
이 방의 주인이 금고에 넣고, 열쇠로 잠그고, 그도 모자라 ‘현혹’ 결계까지 씌워서 감추고 싶었던 본래의 내용과 함께.
‘이건…….’
내부 조사 보고서.
말 그대로 조복이 지금껏 회사 ‘내부’ 직원들을 ‘조사’한 ‘보고서’였다.
정확히 말하면.
『(영)비라』
『판매실적 조작으로 수수료 착복(복지 포인트 100만 점 이상).』
『매력 보조 아이템 무제한 납품 요청(진행 중).』
『VIP 고객과 불륜 관계로 추정』
……
직원들의 약점과.
『(관)주광』
『1처장 직속 라인. 자극적인 콘텐츠 위주. 실적은 상위권.』
『재물과 여색을 밝히나 대부분 접대 목적인 것으로 추정.』
『영약(30만 점) 납품 완료.』
……
그를 활용한 거래 관계를 낱낱이 기록해 둔 엄청난 비밀 장부.
‘하?’
내가 늘 정보가 필요하다 노래를 부르곤 했지만…….
정사(正史)보다 야사(野史)를 먼저 배우게 될 줄은 몰랐네.
펄럭-
엄청난 정보들을 머릿속에 차곡차곡 정리하며, 빠르게 읽어 내려가는 도중.
아는 이름이 등장했다.
『(관)하로나』
관리자 하로나와.
『(조)청정』
내 손에 당한 사수 놈까지.
(영), (관), (조).
무슨 암호인가 했더니 영업국, 관리국, 조사국인 것 같고.
하아.
이거 완전히…….
‘X파일이잖아?’
그것도 회사 직원들의 비리를 총망라해 둔 인명 사전급 X파일이라고 해야 할까.
개중에는 별 시답잖은 내용만 적힌 직원들도 있었으나, 그렇지 않은 이들도 많았다.
진급 청탁. 실적 조작. 정산금 탈루. 불륜. 살인. 방조. 사기. 절도…….
상상할 수 있는 거의 대부분의 비리.
‘아주 포인트에 환장을 했네, 다들.’
펄럭- 펄럭- 펄럭-
총 백 페이지에 달하는 엄청난 양의 보고서를 정독한 끝에 깨달았다.
‘개판이야. 이 회사.’
자, 그렇다면.
이걸 어떻게 써먹어야 잘 썼다고 소문이 나려나?
* * *
PM 8:30.
조사국에서 나와 미로 같은 숲길을 지난 끝에 당도한 건 높은 탑이었다.
둥근 탑, 네 개가 하늘까지 닿을 정도로 솟아 있는 곳.
그리고 그중 지도가 가리킨 나의 공간은.
[‘동방의 안식’에 입장합니다.]동쪽 탑의 7층이었다.
[신입사원 ‘이은호’의 방은 702호입니다.] [내일 일정을 위해 충분히 휴식하세요!]매번 7층까지 계단으로 오르락내리락해야 하나 싶어 걱정했는데, 다행히 로비에는 낡은 리프트가 있었다.
손으로 직접 문을 밀어 닫아야 동작하는 낡은 리프트.
드르르르륵- 띵!
그렇게 언제 끊어져도 이상할 것 없어 보이는 리프트를 타고 도착했다.
“은호 씨!”
“삼초오오오온!”
고풍스러운 중세풍의 응접실.
커다란 벽난로 앞에 옹기종기 둘러앉은 반가운 얼굴들에게.
“오빠! 왜 이렇게 늦었어요?”
“아, 볼일이 좀 있어서.”
“미친, 첫날부터 볼일이 있었다고? 여기서?”
걱정하는 연보라에게 답하자 욕쟁이가 ‘역시 달라.’하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러자 눈을 게슴츠레 뜨며 물어 오는 여진이와 질책하는 솔아.
“아저씨, 혹시 길 잃은 건 아니죠?”
“말이 되는 걸 물어. 아저씨가 넌 줄 알아?”
“뭐래? 바로 찾은 네가 이상한 거거든? 그쵸, 아저씨?”
민여진이 응접실에 달린 창문을 가리키며 물었다.
“여기 진짜 너무 넓지 않아요? 완전 도시예요, 도시!”
여진이의 말대로다.
아직 제대로 가 본 건 조사국 건물 하나였지만, 조사국만 해도 A동부터 E동까지 무려 다섯 동이나 됐다.
덕분에 조복의 집무실까지 가는데 시간이 꽤 걸렸고.
어쨌든 얻을 거 다 얻고 무사히 돌아왔으니 다행이지만.
“다들 미션은 어땠습니까? 성공하셨나요?”
빠진 이 없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일행들을 보니 대답을 듣지 않아도 알 수 있었지만, 그래도 혹시나 싶어 물었다.
그러자 이예지가 안도의 한숨을 폭 내쉬며 말했다.
“아, 저 진짜 걱정했는데 엄청 쉽던데요? 첫날이라 그런가?”
“미션 내용이 뭐였습니까?”
“복사하고 정수기 물 넣고…… 뭐 그런 거였어요.”
복사하고 정수기 물 채우고.
내가 받은 첫 미션과 비슷하다.
다만.
“복사는 복사기로 했습니까? 손으로 안 쓰고?”
“네? 당연하죠……?”
나처럼 이상한 조건은 달려 있진 않았던 모양이다.
이예지가 뭐 그런 걸 묻냐는 얼굴로 눈을 찌푸리는 걸 보니.
“전 짐 날랐습니다, 형님! 보고서도 박스로 쌓아 두니까 엄청 무겁던데요?”
“에구, 난 가니까 설거지랑 잡일 잔뜩 시키던디? 뭔 처자들이 컵을 그리 많이 쓴댜?”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고.
“율이도?”
“웅! 율이 노래 불러 달라구 해서 불러써! 성공해써요!”
“노래를 불렀다고?”
“녜!”
온도 차이가 너무 심한데, 이거?
다행이긴 하다만.
다만 딱 한 사람.
“지은 씨는요?”
“아…….”
지은 씨만은 표정이 그리 밝지 않았다.
“저도 보고서…… 썼어요.”
내 물음에 억지로 대답을 짜내는 것 같은 느낌.
“은호 씨, 방은 보셨어요? 2인 1실인데 꽤 좋더라고요.”
게다가 왠지 말을 돌리는 것 같은 기분마저 들어서 신경 쓰이긴 했지만.
“아! 맞습니다, 형님! 저랑 같은 방입니다!”
“그래? 어디야?”
“바로 들어가시겠습니까?”
“그러려고.”
일단은 다음을 기약하며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뭐야! 벌써 들어가게?”
“아직 9시도 안 됐는디?”
“엥? 아저씨가 무슨 새 나라의 어린이예요?”
일행들 몇몇은 아쉬운지 한마디씩을 던져 댔지만 어쩔 수 없다.
“아침에 약속이 있어서요.”
“……?!”
“……예?”
일찍 일어나야 되거든.
할 일이 좀 많아서 말이지.
* * *
AM 07:30.
조사국 수집분석처 9과장은 이른 아침부터 분주했다.
[일 처리 이딴 식으로 할 거야?!] [송구합니다, 처장님.]스크린을 뚫고 나오는 처장의 역정을 다 받아 내는 동시에 사고까지 수습해야 했으니.
[하…… 청정 그 자식은 왜 그걸 들고 죽어서 이 사단을 만들어?!] [반드시 찾아내겠습니다.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짐작 가는 데는 있고?]처장이 영 미덥지 않은 목소리로 물었다.
그래서 밤새 조사하고 고민한 결론을 슬쩍 내비쳤다.
[아무래도 그놈이 수상합니다.] [그놈이라면…… 신입사원? 혐의 없다며?] [그렇긴 한데 영 찜찜합니다. 저 감 좋은 거 아시지 않습니까?]스크린 속 처장이 침음을 흘렸다.
감이 좋다는 건 영 틀린 말은 아니었으나, 이번 사안은 감 따위에 기댈 만큼 만만한 이슈가 아니었기 때문에.
[마물에게 당했다 하지 않았나. 감사국에서도 그리 결론 지었다면서.] [그게 제일 이상한 점입니다.] [뭐가 말인가?] [아무리 방심했다지만 제가 꼼짝없이 당한 마물이었습니다. 그런데 혼자 멀쩡하다는 게 말이 안 되지 않습니까?]과장의 말에 처장이 고개를 저었다.
교과서 같은 대답이었다.
이은호를 직접 보지 못했기에 할 수 있는 답.
[그래 봤자 햇병아리야. 합리적으로 생각해.] [햇병아리…….]과장은 헛웃음을 흘렸다.
세상 어떤 햇병아리가 그렇게 파격적인 검격을 구사한단 말인가.
그 곧고 푸른 검강.
혼을 담아 만들어 낸 듯 순수한 검기의 결정체를 봤다면 누구도 그리 말할 수 없을 거다.
[뭐야! 이은호 씨, 꽤 하는데?]가볍게 말하긴 했으나, 속내는 그렇지 못했다.
놈에게 정신이 팔리는 바람에 역병 히드라의 기습을 제대로 피하지 못하고 휩쓸려 버렸을 정도.
게다가 가장 소름 끼쳤던 점은.
“검강 스킬 개방!”
놈의 그 스킬이 갓 개방한 상태였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한 획, 한 획이 지날수록 무서우리만치 성장했다는 사실 또한.
마치 그가 휘두르는 검격을 슥 훑어보고는, 스펀지처럼 빨아들여 제 것으로 만들어 버리는 것처럼 보였다.
그게 아니라면 설명이 안 된다.
분명 갓 개방해 검강을 뿜어내는 것만도 벅차하던 놈이 어떻게 몇 분 지나지 않아 제 몸의 일부처럼 운용한단 말인가.
‘악마의 재능이었어.’
무력이 뛰어난 신입을 원하긴 했지만, 이 정도의 괴물을 원하진 않았다.
호랑이 새끼를 키워봤자 잡아먹힐 게 뻔하니까.
[……구조 조정을 갓 마친 대상자의 기세가 아니었습니다.]하지만, 이 모든 이야기를 상사에게 털어놓을 순 없었던 탓에 말을 줄였다.
[아무튼…… 출근하는 대로 다시 한번 심문을 해 보겠습니다.] [심문 정도로 되겠나? 확실히 해.]과장이 머릿속을 가득 채운 이은호의 검격을 애써 털어 버리곤 말했다.
미래연구센터에 부탁해서 겨우 받아 온 약품을 떠올리며.
[충분합니다. ‘라이에이스’도 받아 왔으니까요.]라이에이스.
몸에 닿으면 세포 단위로 조각조각 분해되어 사라지는 공포의 약품.
아무리 우수사원이라도 제 팔다리가 실시간으로 부서지는 꼴을 본다면, 알고 있는 모든 걸 털어놓지 않곤 못 배기겠지.
[잘했네. 그래서, 만약 놈이 정이를 죽이고 물건을 챙긴 거라면?] [……조용히 처리해야죠.]그리고 처장의 질문에 나지막한 답을 남긴 뒤.
[알았어. 들어가 봐. 바로 보고하고.] [예, 알겠습니다.]달칵!
개인 집무실 문을 열었다.
그리고.
[!!]화들짝 놀라 뒷걸음질 쳤다.
[뭐야?! 언제부터 여기 있었어?!]문 바로 앞에서 빤히 쳐다보는 문제의 신입사원.
이은호의 얼굴을 귀신 보듯 보며.
“찾으시는 게 있는 모양입니다?”
[뭐, 뭐, 뭐라고?]놀란 과장이 저도 모르게 말을 더듬었다가, 겨우 정신을 차리고 헛기침을 했다.
그렇게 겨우 정돈한 목소리로 지시했다.
[이은호 씨, 나랑 얘기 좀 하지. 지금 당장.]당장 따라오라고.
‘잘 됐어. 다른 직원들 출근 전에 바로 처리하면 돼.’
라이에이스의 가장 좋은 점이 그거였다.
신체 부위가 바스러져 사라지는 특성상, 누구 하나 처치해도 증거가 남지 않는다.
물론, 그 전에 손가락 몇 개만 분해해 버려도 못 견디고 곧장 실토하겠지만.
그리 생각하며 발걸음을 옮기려는 찰나.
“아, 급한 용건입니까?”
이은호가 따라오는 대신 물었다.
묘하게 거슬리는 말투로.
[……급하면 오고 안 급하면 안 오겠다, 이건가?]과장이 되물었다.
안 그래도 어제의 그 기세에 속에서부터 올라오는 불안감과 불쾌감을 지우지 못한 상태였다.
그 와중에 이따위 태도라니.
“급한 거 아니면 다음에 하시죠.”
[그게 무슨 소리야?! 그렇게 안 봤는데 왜 이렇게 건방져?]자신을 무시하는 게 틀림없다.
기분이 확 상한 과장이 버럭 호통을 쳤다.
그러나 기가 죽기는커녕 아무 감흥 없는 얼굴로 어깨를 으쓱하는 이은호.
“이분들이 더 급해 보여서요.”
[이분들이라니 무슨 개소…….]그 태연자약함에 없던 분노까지 끓어 올라, 소리를 팍 지르려는 찰나.
흠칫!
[다, 당신들 뭐야?!]타닥! 타다닥! 타닥!
커다란 빈 박스를 하나씩 들고 쏟아지는 수십 명의 직원들.
초대받지 않았음에도 당당한 걸음걸이.
새파란 박스에 붙어 있는 익숙한 마크.
[감사국에서 왜……?]섬뜩!
과장의 등줄기에 소름이 쫙 돋았다.
감사국의 갑작스런 방문은 절대, 결단코 좋은 소식일 리 없었기 때문에.
그리고 그 와중에 망할 이은호는.
“아, 자료 보관실은 이쪽입니다. 거기 정기 관찰 보고서니 뭐니 다 있더라고요.”
밀물처럼 밀려오는 감사국 직원들에게 길 안내까지 자청하고 나섰다.
[이게 무슨 짓이야?! 지금 뭐 하는 거냐고!]“아아.”
설마 이놈이 찌른 건가?
뭔가 알아내서?
[서, 설마 네놈이……? 아니지?]아닐 거다.
OJT 둘째 날부터 감사국에 찔러 조사까지 나오게 하는 직원이 어디 있단 말인가.
뭔가 착각한 게 분명하다.
그리 판단하며 침입자들을 막아서려는 찰나.
스윽!
이은호가 제 앞을 막아섰다.
“그러게, 평소에 좀 깨끗하게 사시지 그러셨습니까. 그랬으면 제가 찌를 것도 없었을 텐데.”
[……?]찌르다니?
그럼…….
[설마…… 진짜 네놈이 나를……?!]“제 말, 이해하시죠?”
탁!
과장이 뒷목을 잡았다.
[이, 이, 이 미친놈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