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unter Club RAW - chapter (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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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2# 광기(狂氣)
“패터슨, 그놈은 그렇게 가선 안 될 놈이었다.”
“…….”
“창창한 나이에 제 발로 불모지에 들어가 사업을 일으킨 놈이었어. 고생이란 고생은 있는 대로 다 하고, 마침내 행복을 찾을 예정이었지.”
“으, 큭…!”
바닥에 박혀 있던 얼굴이 앞으로 끌려 나오며, 연한 볼 살이 까끌까끌한 돌바닥에 비벼졌다.
“그런 녀석의 인생을 네년이 짓밟았다.”
노구덕은 지척까지 끌려온 하유라의 낯짝을 강하게 후려쳤다. 그렇잖아도 피떡이 되어 있는 얼굴이 또 한 번 터져나가며 한 움큼 핏물이 튀었다.
의자에서 일어난 그는 얼굴을 얻어맞고 지렁이처럼 꿈틀대는 하유라에게 다가갔다.
“네년은 건드리지 말아야 할 사람을 건드렸어.”
“꺽!”
발치에서 뭉그적거리던 하유라의 몸뚱이가 다시 뒤로 날아가 벽에 처박혔다. 노구덕이 그녀의 옆구리를 강하게 걷어찬 것이다. 찢어진 옷 틈으로 엿보이는 그녀의 옆구리는 시꺼먼 멍이 들어 있었다.
노구덕은 뭉그적거리는 하유라의 머리채를 사정없이 잡아채서 들어올렸다. 그 힘이 어찌나 우악스러운지, 일부 머리카락이 덩어리째 뽑혀나가며 뿌드득 비명을 질러댔다.
그는 눈조차 제대로 뜨지 못하고 있는 하유라와 억지로 시선을 맞췄다. 벌에 쏘인 것처럼 심하게 부어오른 눈두덩 사이로, 유리알 같은 눈동자가 그를 노려보고 있다.
“네년은 평생 이곳에서 벗어나지 못할 거다. 죽는 것도 허락할 수 없다. 네년이 그 아이들에게 행한 짓의 백배, 천배가 되는 고통을 겪게 해주마.”
“킥… 재롱을… 떠는군…….”
“…아직도 웃을 힘이 남아 있는 모양이군.”
“어디… 마음대로… 해봐라….”
“그렇잖아도 마음대로 할 생각이다.”
“쓰레기… 날 지금… 죽이지 못한 걸… 언젠가… 후회할 날이…….”
“널 죽이라고? 흐흐흐. 누구 좋으라고? 안 되지. 그렇겐 절대 안 되지. 그렇게 쉽게 죽여줄 수야 없지.”
퍽!
머리채를 붙잡고 있는 팔이 휙 휘저어지자, 그 아래 딸려 있던 하유라의 얼굴이 단단한 벽면과 부딪치며 살갗이 뭉그러지는 소리가 났다.
간신히 두 구멍만 알아볼 수 있는 코에서 다시 줄줄이 핏물이 새기 시작한다. 두 줄기로 흘러내린 검붉은 핏물은 하유라의 목선을 타고 내려와 그녀의 앞섶을 흥건하게 물들였다. 끈적거리는 핏물을 들이마시기라도 했는지, 간신히 새어나오던 숨소리가 더욱 탁해진다.
이러다 정말 서리여왕 하유라가 감옥에서 맞아죽는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 지금 하유라의 몸 상태라면 평범한 성인 남성도 때려죽일 수 있는 수준인데, 심지어 그 상대가 가공할 괴력의 소유자인 노구덕이었으니.
“저, 저….”
뒤에서 안절부절못하는 안세희의 목소리가 들렸지만, 노구덕은 개의치 않고 주먹을 들어올렸다.
“지금까지 잘 견뎠잖아. 한 대 더 맞는다고 뒈지진 않겠지. 세상에서 가장 비싼 샌드백이니까 말이다.”
식, 식… 답답한 숨을 토해내는 하유라의 얼굴에 옅은 공포가 어린다. 굴복하느냐 하지 않느냐와는 별개로, 벌써 수 일째 가해지고 있는 무자비한 폭력은 찌를 듯이 곤두선 그녀의 기세를 한 풀 꺾어놓기에 충분했다.
뜻밖의 구원자가 등장한 것은 바로 그때였다.
“여보.”
머리 높이까지 주먹을 치켜든 노구덕의 머리가 한쪽으로 돌아갔다. 언제 들어왔는지, 그에게 참담한 시선을 보내는 임유진의 어두운 얼굴이 보인다.
“유진아? 여긴 웬일로….”
“이제 그만하세요.”
“그만두라니? 뭘….”
“그 팔이요. 내려놓으세요.”
평소의 나긋나긋한 임유진의 말투와는 딴판이다. 그녀의 고압적인 요구를 들은 노구덕은 멋쩍은 미소를 지으며 슬며시 팔을 아래로 내렸다.
나쁜 짓을 하다 들킨 아이처럼, 피에 젖은 손을 뒤로 숨긴 노구덕은 나지막이 헛기침을 했다.
“험. 지금은 업무를 볼 시간 아니었나? 이야, 우리 유진이가 농땡이를 피울 때도 다 있군. 오래 살고 볼 일이야.”
“제게는 그깟 일보다 당신이 훨씬 더 중요해요.”
“응? 내가 뭘 어쨌다고….”
“정말 몰라서 그러시는 건가요?”
간곡히 흔들리는 목소리가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듯하다. 우물쭈물하는 안세희를 지나, 노구덕이 서 있는 곳까지 다가간 임유진은 주위에 펼쳐져 있는 핏빛 풍경에 진저리를 쳤다.
“지금 이게 정상으로 보이세요? 도대체 왜 이러시는 거예요?”
노구덕의 미간에 깊은 골이 파였다. 인상을 쓴 그는 바닥에 쓰러진 하유라를 가리켰다.
“유진아, 이것들 때문에 그 애들이 죽었다. 이보다 더한 나락에 떨어져도 할말이 없는 것들이야. 이년의 낯짝을 봐라.”
“끅!”
바닥에 머리를 처박은 하유라를 발로 차서 뒤집은 노구덕은 그녀의 머리를 움켜잡고 임유진의 눈앞에 들이댔다.
“알아보겠지? 하유라, 그년이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재수 없던 년이었지. 뭐,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았지. 신경 쓸 가치도 없는 사소한 트러블이었을 뿐이니까. 그런데 말이다, 이제는 아니다. 정도를 넘었어. 넘어도 한참 넘었지. 이년이 뭐라고 지껄인 줄 알아? 패터슨의 눈앞에서 마리안과 레이나를 윤간했다고 했다. 그 불쌍한 아이들을… 그런데도, 이런 빌어먹을 년을 가만히 내버려두란 말이냐?
그는 엉거주춤하게 선 하유라의 정강이를 발로 걷어찼다.
“으윽!”
“이년이 뭘 남 일처럼 닥치고 있어? 어디 그 잘난 주둥이로 한 번 더 지껄여봐라. 그때처럼 으스대면서 말해보란 말이다!”
또 한 번, 이번엔 복부를 얻어맞은 하유라가 죽을 듯이 기침을 해댄다.
“그만! 제발 그만하세요!”
하얗게 질린 임유진은 급히 둘 사이에 끼어들었다. 그에게 붙들려 있는 하유라를 억지로 떼어낸 그녀는, 벌겋게 달아오른 눈을 한 노구덕의 앞을 막아섰다.
노구덕의 희번덕거리는 눈알이 피눈물을 뚝뚝 떨어뜨릴 것처럼 새빨갛게 변했다. 붉은 눈을 부릅뜬 그는 앞을 막아서는 임유진을 노려보며 으르렁거렸다.
“유진아, 뭐하는 거냐? 설마 너, 지금 그년을 두둔하는 거냐?”
“그게 아니에요.”
임유진은 단호하게 도리질을 했다. 얼굴을 들어 노구덕을 마주보는 그녀의 눈엔, 이슬처럼 맑은 물이 한가득 괴어 있었다.
도깨비불처럼 타오르는 그의 눈빛이 너무 두려웠다. 적의를 표출하는 그의 얼굴이 남처럼 멀게 느껴졌다.
“이 사람을 감싸는 게 아니에요. 제가 걱정하는 건 오히려 당신이에요. 지금 당신, 어떤 얼굴을 하고 있는지 알고 계세요?”
“뭐?”
“무서워요. 이대로 당신을 내버려두면, 그대로 당신을 잃어버릴 것 같아서요.”
“무슨 소릴….”
“스스로도 알고 계시잖아요? 요즘 당신, 아이들 얼굴 보지 않으신 지 얼마나 되었죠?”
역정을 내던 노구덕의 표정이 기괴하게 일그러진다. 가슴이 답답하고 화가 나는데, 임유진의 그렁그렁한 눈을 보니 뭐라고 대꾸해야 할지 생각이 나지 않는다. 앞뒤가 꽉 막혀버린 기분이었다.
“무슨 일이 있는 거죠? 왜 제게 아무런 말씀도 하지 않으시는 거예요? 우린 부부…아니었나요?”
목소리에도 온도가 있던가. 호소하며 매달리는 임유진의 목소리가 무척이나 뜨겁다.
노구덕은 빠르게 머리를 흔들었다. 온통 새빨갛게 변했던 시야가 조금 옅어졌다. 두개골 속이 펄펄 끓는 찻주전자가 된 것 같았다.
‘빌어먹을….’
그는 임유진을 앞에 두고 몸을 돌렸다. 눈물을 흘리고 있는 그녀를 직시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여보… 어디 가시는 거예요?”
“나중에… 나중에 얘기하자. 지금은… 그냥 내버려 둬.”
대뇌가 송두리째 불타고 있는 것만 같다. 노구덕은 임유진 쪽은 보지도 않은 채, 그대로 한 팔을 휘적휘적 내저으며 지하실을 빠져나갔다.
“여보….”
망부석이 되어버린 임유진의 입에서 힘 빠진 부름이 새어나온다. 그러나 노구덕의 인기척은 이미 아득히 멀리 사라진 뒤였다.
한동안 우두커니 그가 사라진 방향을 바라보고 있던 임유진은, 문득 들려오는 웃음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킥킥. 간신이 쥐어짜는 듯한 웃음이 그녀의 발아래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꼴불견…이야…. 평소에도… 이러고 노는 건가…?”
“당신….”
웃음소리의 정체는 하유라였다. 눈물을 닦아낸 임유진은 끔찍하게 망가진 하유라의 얼굴을 쳐다봤다. 그 시선을 느낀 하유라는 부어터진 눈매를 흉하게 샐그러뜨렸다.
“하, 핫… 내 얼굴을 보니… 기분이… 어때…? 참을 수 없이… 좋을 것 같은데….”
묵묵히 그녀의 얼굴을 쳐다보던 임유진의 낯빛에 돌연 결연한 빛이 감돌았다.
“…세희야.”
“넷!”
전전긍긍하며 자리를 지키고 있던 안세희가 헐레벌떡 뛰어왔다. 혹시나 불똥이 튀지 않을지 노심초사하는 표정이다. 어쨌거나 그녀도 이런 살풍경을 연출하는데 한몫 단단히 보탠 셈이었으니.
허나 걱정과는 달리, 임유진은 그다지 그녀를 탓할 생각은 없어 보였다.
“이 사람, 치료 좀 부탁해. 뼈는 내가 맞출게.”
“저, 치료라고 하시면… 어느 정도를 말씀하시는 건지….”
“…어느 정도? 지금 그게 할 소리니?”
“아, 아니에요!”
못마땅하게 인상을 찌푸린 임유진이 홱 눈을 돌리자, 사나워진 그녀의 기세에 지레 겁을 집어먹은 안세희는 얼른 손을 들었다. 곧이어, 반듯하게 펴진 그녀의 손바닥에서 선홍색의 따스한 기운이 뿜어졌다.
“아프더라도 조금만 참아요.”
우두둑! 뚜둑!
임유진은 마력을 이용해 부러지고, 어긋나 있던 뼛조각들을 제자리로 되돌렸다. 그 고통이 상당할 터인데도, 앙다문 하유라의 입에선 작은 신음 하나 새어나오지 않았다.
전심전력을 다한 안세희의 솜씨는 역시 명불허전이었다. 거의 괴사직전이었던 피부가 본래의 빛깔을 찾았을 뿐 아니라, 울긋불긋하게 피어났던 멍울들도 대부분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심하게 찢어지고 터져, 본래의 크기보다 배는 커보였던 얼굴의 부기도 많이 가라앉았다.
그러나 그녀의 실력으로도 당장 완치는 불가능했다. 환자인 하유라의 원기가 워낙 많이 상한데다, 잘게 부서져 흩어진 뼛조각들을 일일이 짜맞추려면 고도의 수술이 필요했다. 특히 콧대가 내려앉고 광대와 턱뼈 등이 으스러진 얼굴 쪽은, 이대로 무턱대고 치료를 진행했다간 아예 전체적인 형태가 뒤바뀔 수도 있었다.
“대모님, 아무래도 얼굴 쪽은… 시간이 좀 필요할 것 같은데요…. 다른 곳도 그렇고요.”
“…어쩔 수 없지. 부탁해도 되겠니? 시간이 걸리더라도 괜찮으니까.”
다행히 안세희는 강력한 신성력과 높은 수준의 의술을 동시에 갖춘 진짜배기 사제다. 하유라의 상세를 치료할 능력이 있다는 의미다. 그러나 임유진의 부탁을 받은 안세희는 대답을 망설였다.
“저야 상관없지만… 의장님께서 아신다면…….”
“그이는 내가 설득할게. 걱정 마렴.”
“…네.”
“그리고 저 사람들은….”
주위를 둘러본 임유진의 말끝이 흐려졌다. 그 ‘사람들’의 상태가 말이 아니었던 탓이다. 라키오라는 이미 고혼이 되었고, 플랑기스는 말 그대로 사육당하는 식물인간 신세가 되었다. 그의 상태는 이미 치유주문으로 어떻게 해 볼 수준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이지를 아예 상실한 그를 과연 살아있다고 봐도 되는 것일까.
“…임유진… 감히 이따위… 싸구려 동정을….”
임유진의 눈이 아래를 향했다. 눈 뜨고 보기 힘든 흉측한 몰골에서, 그럭저럭 인간으로 되돌아온 하유라의 외눈이 스산한 독기를 내뿜고 있다.
“동정이 아니에요.”
“그런다고… 내가 고마워할 줄….”
“착각하지 말아요. 전 당신을 동정하고 싶지도, 그럴 이유도 없어요. 단지, 이런 환경에 그이를 방치할 수 없다고 생각했을 뿐이에요.”
피. 피. 피. 사방이 온통 붉은색으로 덧칠된 공간의 곳곳에서 원한과 증오가 도사리는 것 같다. 멀쩡한 사람도 이런 장소에 들어오면 틀림없이 문제가 생길 터다.
임유진은 당분간 이곳을 외부와 격리시킬 작정이었다. 하유라를 치료해 두는 것도, 홀로 남겨진 그녀의 숨이 끊어지지 않게 하기 위한 조치였다. 물론, 그런 이유만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당신과는 결착을 짓지 못했죠. 이건, 제 마지막 호의라고 봐도 상관없어요. 아니면 구 십존에 대한 최소한의 예우라고 해 두죠. 어쨌든 당신의 숨을 끊을 사람은 제가 아니니까요. 그 동안에는… 가급적 멀쩡한 모습으로 있어줬으면 해요.”
“두 연놈이 똑같아… 멋대로… 날 장난감 취급하는군….”
“그렇게 생각한다면, 그것대로 좋겠지요.”
그녀답지 않게 앙칼지게 쏘아붙인 임유진은, 고충어린 한숨을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 작품 후기 ============================
여러분의 추천과 코멘은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오늘은 모처럼 모든 걸 내려놓고 맘 편히 쉴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12시가 지난 지금! 다시 연재 재개합니다.
주인공의 시한폭탄이 소규모 폭발을 일으켰습니다. 이 광폭(?) 상태가 후에 풀어나갈 스토리에 있어 큰 영향을 끼치는 만큼, 여유를 갖고 지켜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p.s / 주인공이 아가레스트의 능력인 천리안을 발현할때 눈이 터져버린 일이 있었지요. 노구덕은 그때 자기 능력이 아직 부족한가보다.. 하고 넘어갔지만, 실은 그의 눈에 천리안을 발현할 수 있는 기본기 자체가 없었기 때문에 일어난 일입니다. 그런 소소한 시행착오(?)를 거쳐 심령차력술에 제한이 있다는 걸 알게 된 거죠~ 답변이 되었으면 좋겠네요!
이제 장마 시작이라는데 무더위가 싹! 가셨으면 좋겠네요! 오늘도 연참 시도하도록 하겠습니다!
기운 나는 월요일 되시길 희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