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 shipping lord RAW novel - Chapter (148)
148화 – 콘택트전기공업(3)
30년이 넘는 업력을 가진 콘택트전기공업.
영역을 건설과 자동차로 넓히긴 했지만, 여전히 선박용 조명과 전기장치하면 콘택트전기공업을 으뜸으로 꼽는다. LED 붐이 불면서 꽤 잘 나가기도 했다. 그렇게 잘 나갈 때는 매출 1200억까지 찍기도 했다.
관점에 따라 다르겠지만, 내가 보기에 매출 1200억? 오랜 업력에 비하면 아쉬운 성적이다. 더 잘 나갈 수 있는 잠재력이 눈에 보이는데도 정체돼 있다고 할까? 그래서 내가 꼭 사고 싶단 말이지.
뭐 좋게 보자면, 딴 데 눈 안 돌리고 한 우물만 팠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만큼 자존심이 센 회사라고 할 수 있고.
그런 회사를 사러 왔다. 콘택트전기공업이 키코로 엄청 호되게 얻어맞지 않았으면, 감히 사겠다는 생각조차 못 했을 것이다. 이거 참, 살다 보니까 키코에 고마워할 때가 다 있네.
세상사의 미묘함을 느끼는 사이에 도착한 콘택트전기공업 본사는 잠잠했다.
“약속 시간 맞춰서 왔으면 안내하는 사람이라도 나와 있어야 하는 거 아니냐?”
“그러게요. 대접이 영 시원찮네요. 플래카드도 걸고 고적대도 불러서 성대한 환영식을 해도 모자랄 판에…….”
“그건 아닌 거 같구나.”
“그건 그렇죠? 자, 사무실로 들어가시죠.”
규모가 있는 회사라서 사무실 찾기는 어렵지 않았다.
중소기업이 대부분인 기자재업체를 방문할 때 가장 힘든 것이 사무실 찾기다. 어디 짱박혀 있는지도 모르겠고, 창고인 줄 알고 지나쳤는데 사무실인 경우도 많다.
가장 난감했던 것은 화장실인 줄 알고 미리 준비하면서 문을 열었는데, 사무실이 나오는 경우다. 지퍼는 내려가 있고, 사람들은 놀라서 쳐다보고. 생각만 해도 식빵 소리가 절로 나오는 경험이었지.
다행히 오늘은 방광을 말끔히 비워놨고, 여긴 누가 봐도 사무동으로 알게끔 지어놨더라.
사무동 진입과 동시에 중소기업 특유의 냄새가 느껴졌다.
햇빛이 잘 들어오지 않아 습한 상태에서 방문객 배려한다고 억지로 뿌려놓은 칙칙이 향, 거기에 지워도 지워지지 않는 믹스커피향까지. 그야말로 완벽하다. 내가 정말 사고 싶은 회사다.
“혹시 이스턴캐피탈?”
“네, 반갑습니다.”
어정쩡한 인사로 콘택트전기공업과 대면이 이뤄졌다. 사회 초년생 때 사람만 나타나면 멋도 모르고 명함부터 건네면서 인사했다가 뻘쭘했던 경험 탓에 그저 목례만 했다.
상대가 먼저 정체를 밝히면서 수그리길 바라는 의도치 않은 의도일 수도 있겠다. 상대도 같은 생각인지 가볍게 인사만 하고 말더라.
“회의실에 자리 마련돼 있습니다. 저를 따라오시면 됩니다.”
회의실에는 우리의 기선을 제압하려는 듯 양복쟁이 여럿이 앉아있었다. 이름 외우려면 골치 좀 아프겠네.
“하하. 어서 오세요. 먼 길 오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콘택트전기공업 사장 유재열입니다.”
“네, 반갑습니다. 이스턴캐피탈의 한국지사를 맡고 있는 박한철입니다. 마일드자산운용이라고 작은 투자회사 하나도 맡고 있습니다.”
“잘 알지요. 우리나라 금융계의 미래를 책임질 인재를 여기서 뵙게 되다니 감개무량합니다. 하하.”
“저도 뭐, 목소리만 듣다가 이렇게 만나 뵙게 되니 또 색다릅니다. 하하.”
두 대장의 인사 이후 잔챙이들이 인사가 이어졌다. 나도 잔챙이 틈에 끼어서 부지런히 명함 주고받았다. 정동인 전무, 정재형 부장, 박승환 대리. 어우, 셋이나 한 번에 소개받으니 헷갈리네.
“이스트캐피탈에서 우리 회사에 보여준 관심에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사장님, 이스트가 아니라 이스턴.”
“아, 그래요, 그래. 이스턴캐피탈. 하하. 뭐 요즘 미국에서 잘 나가는 곳이라고 하는데, 아무튼 우리 콘택트전기공업이 좋은 파트너를 만나는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콘택트전기공업 같이 실력 있고 탄탄한 회사가 요즘 불운을 만나서 힘겨워한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우리와 함께 위기를 넘어설 수 있길 바랍니다.”
두 대장의 바람 가득한 공치사 교환식을 시작으로 이스턴캐피탈의 콘택트전기공업 섭취 행사가 시작됐다. 시식으로 끝날지, 배부른 한 끼 식사가 될지 기대되는구만.
“인사들은 충분히 했으니까, 서로 얘기를 나누면서 좋은 결과를 만들어봅시다. 난 이만 물러나리다. 시간에 구애받지 말고 찬찬히 얘기를 나누세요. 허허.”
“사장님께서 결정하실 사항 아닙니까?”
“뭐 나 같은 늙은이가 있어 봐야 서로 불편하기만 하죠. 우리 직원들한테 전권을 위임했으니까, 전문적인 얘기는 전문가들끼리 해야지요. 내 회사이지만, 어디 내 맘대로 할 수 있습니까? 하하.”
유 사장이 자리를 떴다. 박 대표는 내게 저 늙은이가 보통이 아니라고 한 얘기가 무슨 뜻인지 알겠냐는 눈빛을 보내왔다. 나도 상큼한 윙크로 화답했다.
직원을 활용할 줄 아는 사장이라……. 흔치 않은 사장이야. 긴장이 역력한 직원들 표정을 보니, 우리 오기 전에 얼마나 갈궜을지도 눈에 훤하다. 오늘 한 끼 식사 만만치 않겠다.
유 사장이 나가고 나자 냉랭한 분위기 그대로 바로 대화가 진행됐다. 각자 서류뭉치들을 꺼내고, 안경을 고쳐 쓰고. 의자를 책상에 당겨 앉고.
정재형 부장이라는 사람이 화두를 던지며 협상의 시작을 알렸다.
“이스턴캐피탈에 대해선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조선업계에 관심이 많으신 것 같은데, 그중에서도 우리 회사에 관심을 보인 이유를 여쭤 봐도 되겠습니까?”
“좋은 회사에 관심을 가지는 것이야 우리 같은 투자자에겐 기본이죠. 뭐 구체적인 얘기는 여기 유 이사가 해 줄 겁니다. 우리 유 이사 잘 아시죠?”
“글쎄요. 이름이 낯익긴 한데…….”
“하하. 이스턴캐피탈 직원으로만 알고 계시나 봅니다? 요즘 잘 나간다는 유일조선의 대들보 모르십니까?”
“아! 유일조선의 유연성 이사님이 이분이셨습니까? 아이고, 이거 몰라 봬서 죄송합니다.”
뭐 죄송할 것까지야. 본의 아니게 뉴스에 한 번 나오긴 했지만, 날 못 알아보는 게 당연할 거야. 내가 뭐 유명인사도 아니고, 이름도 흔하니까. 그런데 선망하는 저 부담스러운 눈빛은 뭐람.
“우리 회사가 지금의 위기 속에서도 잘 버티고 있는 게 유일조선 덕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 자리를 빌려 감사 말씀을 드립니다.”
“콘택트전기공업이 좋은 제품을 생산하니까 거래를 지속하는 것이지, 다른 이유는 없습니다. 저희가 급할 때는 다른 메이커를 써 보기도 했는데, 확실히 수준이 떨어집니다. 선박을 밝게 비추는 것은 콘택트전기공업이 최고죠.”
“좋은 평가 감사드립니다. 저희가 다른 건 몰라도 품질만큼은 자신 있습니다. 괜히 시장점유율 1위를 차지하는 것이 아니겠죠.”
“그럼요. 이 좋은 회사가 잠시 풍랑을 만나 휘청거리고 있으니, 찾아와서 도움을 드릴 방법을 모색하는 건 우리에게 당연한 일이 아닐까 싶습니다.”
“도움을 주신다는 말씀에 감사할 따름입니다.”
계속되는 정상회담 같은 대화에 저쪽 정 전무가 정 부장을 제지시키고는 직접 나섰다. 목마른 자가 우물 찾는 법이겠지.
“거 이스턴캐피탈이 원하는 것이 구체적으로 뭡니까? 투자하겠다고 하던데, 뭘 얼마나 투자하겠다는 겁니까?”
“저희가 원하는 것이요? 사전에 다 말씀드렸는데, 아직 전달이 안 된 것 같네요. 저희는 투자가 아니라 인수를 원합니다.”
“인수요?”
“네. 콘택트전기공업이 유일조선과 한 울타리 안에서 성장하길 바랄 뿐입니다. 그러려면 경영권이 필요하겠죠.”
“돈이 많은 모양입니다. 허허.”
저 사람이 알고 하는 소린지, 모르고 하는 소린지 모르겠지만, 내가 돈이 많다는 건 잘 봤네.
돈 얘기가 나오자 박 대표가 눈짓을 하고는 마이크를 잡았다. 돈 앞에서 얄짤 없는 냉혈한이니, 차디찬 기운을 마음껏 발산하길.
“여러 가지로 검토해 봤는데, 투자보다는 인수가 낫겠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이런 말씀이 어떨지 모르겠지만, 전 키코에 가입한 판단력이라면 앞으로의 회사 경영도 순탄치 않을 것이라고 봅니다.”
“허, 키코요? 판단력이요? 허허. 아니, 무슨 그런 섭섭한 말씀을 대놓고 하신답니까? 그 당시에 키코 가입 안 한 회사가 있습니까? 은행들이 가입 안 하면 재미없다고 협박하는데 우리가 무슨 힘이 있어서 그걸 마다합니까?”
“유일조선은 그걸 이겨냈죠. 우리가 이 분야에 뛰어들기로 했을 때 유일조선을 제일 먼저 떠올린 것은 그 때문입니다.”
“유일조선같이 덩치 큰 데랑 우리를 비교하면 안 되죠.”
“글쎄요. 콘택트전기공업의 매출에서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이 얼마 되지 않는데도, 키코상품을 그렇게 많이 가입했다는 건 제조업의 본분을 망각한 것이 아닐까 싶은데요.”
“허허…….”
박 대표, 참 무서운 사람이네. 눈 하나 깜빡 안 하고 저렇게 구라를 치는 것 좀 보라지. 내 구라빨은 아직도 멀었네. 더 갈고 닦아야겠어.
뭐가 됐건, 별로 중요하지 않은 대화로 분위기가 적당히 무르익었고, 대화 추도 이쪽으로 살짝 기운 듯했다.
“자, 뭐 제가 여기서 경영을 잘 했니, 못 했니를 따지자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연유로 인수를 고려하고 있다는 말씀을 드렸을 뿐입니다. 유 사장님께서도 지분 매각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셨으니, 이제 그 얘기에 집중했으면 합니다.”
“뭐, 그러시죠. 사장님께서 대주주이긴 하지만, 지분을 넘기는 일은 우리 회사에게 아주 중요한 일이라 저나 여기 정 부장이 자격이 없는 건 아닙니다. 그건 이해하시죠?”
“그럼요. 사장님의 일이 회사 일이기도 하고 그렇죠. 하하.”
“그래서 얼마를 생각하십니까? 뭐, 이 자리에서 자질구레하게 따져볼 것도 없고, 우리 같은 사람들은 따져 봐야 무슨 소리인지도 모릅니다. 그냥 서로 원하는 걸 시원하게 얘기합시다.”
화통해서 좋긴 한데, 시원한 얘기에 놀라지 않을지 모르겠네.
이번이 여섯 번째 회사다. 지금까지 돌고 온 다섯 군데 모두 우리의 인수제안을 고맙게 생각했지만, 제시한 금액엔 고마움을 표시하지 못했다.
우리야 충분히 높고 넉넉하게 책정했지만, 받아들이는 쪽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반응할 뿐이었다. 원래 자기 자식은 그저 예뻐 보이기만 하니까. 사실 하나도 안 예쁘다고 얘기하면 그걸 받아들이기 쉽지 않겠지.
그래도 결국 그 냉혹한 현실을 받아들이고 회사를 넘겼다. 아무리 부인하고 싶어도 회사가 망해버리면 아무 소용이 없다는 걸 알기 때문에.
자, 이 집도 똑같은 전철을 밟는지 한번 보자고.
“정확한 금액은 실사를 통해 확정될 것이지만, 저희가 예상한 금액과 크게 차이 나지 않을 겁니다.”
“그러니까 원하는 걸 얘기해 보시라니까요.”
“280억 원. 참고로 콘택트전기공업의 미래가치를 긍정적으로 평가해 책정한 금액이라고 말씀드립니다.”
“뭐요? 제가 뭘 잘못 들은 겁니까?”
에잇, 이 집도 똑같네.
이제 매출이 천억이네 어쩌네 하면서 한바탕 신세한탄하겠지. 매출이 아무리 높아도 쥐꼬리만 한 이익으로는 이자 감당도 안 되는 걸 왜 외면하는지는 모르겠네.
흥분해서 씩씩거리는 정 전무를 진정시킨 정 부장이 다시 전면에 나섰다. 뭔가 얘기가 될 것 같은 얼굴이니 이번엔 기대해 보자고.
“대표님께서 금융 쪽은 빠삭하시니 우리 회사의 가치에 대해서는 공정하게 평가했으리라 믿습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는 차이가 너무 큽니다. 어떤 부분에서 차이가 발생했는지 저희도 면밀히 검토하겠지만, 그 격차가 말 몇 마디로 좁혀질지는 모르겠습니다.”
“우리가 제시한 금액으로는 협상이 무의미하다는 뜻으로 들립니다?”
“그렇게 생각하신다니 딱히 아니라고는 말씀을 못 드리겠군요. 재작년이었으니까 2년 전이군요. 그때도 우리 회사에 관심을 보인 곳들이 있었습니다. 그 때의 제안과 너무 차이가 나니, 저희로서는 좀 당황스럽습니다.”
“2년 전이요? 시간으로 따지자면 고작 2년이라고 하실지 모르겠지만, 그 사이에 세상이 뒤집어졌습니다. 그건 알고 하시는 말씀이죠?”
“물론입니다. 금융위기라는 전대미문의 사태를 감안해도 그 가격엔 더이상 대화가 어렵겠습니다.”
“검토할 시간을 달라는 것이 아니라, 협상 결렬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격차를 좁힐 방안이 있으면 말씀해 보시죠. 제가 좀 전에 말씀드렸다시피, 서로 대화를 나눈들 좁혀질까 싶습니다.”
“네. 무슨 말씀이신지 알겠습니다. 더이상 대화를 못 하겠다고 하니, 저희도 계속 앉아있을 이유가 없군요. 환대는 감사했습니다. 혹시라도 생각이 바뀌면 연락 주시죠. 유 이사? 우리도 일어나지.”
아휴, 저 능구렁이 좀 보라지. 연기 정말 리얼하네. 덕분에 출장이 또 길어지게 생겼네, 에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