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n aristocrat RAW novel - Chapter (1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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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준석 기획재정부 차관을 앉혀놓고 진행하는 유지웅의 방송은 실시간 시청자 수가 1억에 근접한 상태였다.
세계 시민들은 결정체 산업이 앞으로 인간의 삶에 깊이 침투해 모든 것을 바꿔놓으리라고 생각했고, 때문에 유지웅이 진지 모드 방송을 준비했을 때 호기심과 흥미, 기대감을 품고 시청 채널에 접속한 것이다.
백악관도 예외는 아니었다.
다른 국가 원수들과 마찬가지로, 트럼프 대통령도 측근들과 함께 방송을 시청하는 중이었다.
「아무튼 결정체 비축 물량은 인류 전체의 비상 상황을 대비한 비상 물자로 남겨놓을 겁니다. 다들 그렇게 아세요.」
유지웅은 그렇게 방송을 끝맺었고, 그제야 트럼프는 측근들을 돌아보았다.
다들 곤혹스러워 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방송 내용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저마다 필사적으로 사고회로를 돌리고 있는 게 눈에 보였다.
“이걸 어떻게 해석해야 하지?”
트럼프가 먼저 입을 열었지만 선뜻 나서는 이가 없었다.
아직 뭐라고 의견을 말하기에는 시간과 정보, 분석이 너무 부족했다.
“지금 창고 비축 물량이 정말 세계가 펑펑 쓰기에는 부족한 물량인가?”
방송 내내 유지웅은 비축 물량이 ‘생각보다 많지 않음’을 거듭 강조했다.
‘야금야금 빼서 쓰다 보면 금방 다 떨어진다니까요! 아무튼 이건 사용 못함! 절대 안 됨!’
그 말을 반복해서 듣다 보니 정말로 비축 물량이 많지 않은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재무부 장관이 말을 꺼냈다.
“결정체는 평균적으로 25 내지 30의 결정도를 가집니다. 결정도는 결정체가 품은 결정 에너지의 총량을 숫자로 표시한 것이며, 유지웅 의장은 결정도 1당 10만 달러로 결정체의 원가 가치를 산정하고 있습니다.”
모두의 시선이 재무부 장관을 향했다.
“제니스 컴퍼니는 결정도 1당 원유 1,500배럴에 맞먹는 에너지를 낸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유가를 배럴당 66달러라고 가정하면, 조그마한 결정체가 250만, 300만 불이 넘어가는 게 터무니없이 비싼 가격이 아닙니다.”
오히려 가격 측정을 철저히 원유에 맞춰서 기준을 잡았다고 보는 게 맞다. 아무렇게나 연필을 굴려서 매긴 가격이 아니다.
실제로 재무부 장관 개인적으로는 그 점을 대단히 높이 사고 있었다. 결정체의 최소 가치를 원유 가치와 연동해서 설정한 점 말이다.
“현재 남아 있는 결정체 비축 물량은 근 1경 8,700조 달러, 정확하게는 1경 8,750조 달러어치입니다. 본래는 7경 5,000조 달러어치의 물량이 있었지만, 유지웅 의장이 대한민국 정부와 힘겨루기를 하는 과정에서 절반씩 두 번, 3/4을 날려버렸기에 남아 있는 물량이 저 정도입니다.”
재무부 장관은 냉수로 잠시 목을 축이고 말을 이었다.
“지금 남아 있는 결정체 물량을 원유로 환산하면, 281조 2,500억 배럴이 됩니다.”
“…….”
“…….”
너무 아득한 수치에 다들 잠깐 정신이 멍해졌다.
“이것도 제니스 컴퍼니가 근래에 에너지 비교 비율을 정확히 밝힌 덕분에 알게 된 사실입니다. 그전까지는 막연하게 지금 있는 결정체 재고로 인류가 수십 내지 수백 년은 쓰지 않을까 추론만 했었습니다.”
“…….”
백악관 국정회의실은 한참 동안 말이 없었다.
재무부 장관 입을 통해서 구체적인 숫자로 확인하고 나니 지금 쌓여 있는 결정체 재고가 얼마나 무시무시한 물량인지 깨달을 수 있었던 것이다.
이윽고 트럼프가 어이없다는 듯이 말했다.
“그 정도면 당장 전 세계에 물량 풀어도 향후 몇 십 년 동안은 티도 안 나겠는데, 대체 왜 저러는 거요?”
국무위원들은 다 같은 심정이었다.
그걸 알면 우리가 이러고 있겠냐고.
“윤 모 선생님도 그러셨지. 배우가 가장 연기가 잘 될 때는 배고플 때라고. 마찬가지야. 뮤지션이 명곡을 써낼 때는 통장에 잔고가 떨어져가고 있을 때지.”
유지웅은 정자세로 앉은 채 눈을 부릅뜨고 있는 김범석을 향해 말을 이었다.
“그럼 산업이 가장 발달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산업 시장을 배고프게 만들어야 합니다!”
“맞았어. 그게 내가 방송에서 그런 선포를 한 이유야.”
“역시 주인님께서는…….”
김범석은 벅차오르는 감동을 억누르지 못한 채 눈물을 글썽거렸다.
유지웅은 다리를 꼬고 앉은 채, 손가락 끝으로 의자 팔걸이를 타닥타닥 리드미컬하게 두드렸다.
“결정체와 레이드는 현대 문명을 견인할 거대한 산업이야. 앞으로 괴수는 어디에서든 흔히 볼 수 있는 일상이 될 테고, 인류는 생활 터전을 확보하기 위해서 끊임없이 괴수와 싸워야 해.”
위험을 무릅쓰기에 위해서는 강력한 동기가 필요하다. 그리고 그런 동기는 하나라도 더 많은 게 좋다.
“괴수를 통해 결정체를 얻을 수 있다는 게 증명됐어. 하지만 아직 걸음마 수준이지. 값싸고 안정적으로 사체를 가공할 수 있는 기술 개발이나 인프라가 전혀 구축 안 됐으니까.”
김범석이 보는 유지웅의 표정은 그 어느 때보다 진지하고 눈이 부셨다.
“이런 상황에서 창고에 쌓여 있는 결정체 재고는 오히려 치명적인 장해물이 되고 말아.”
“옳으신 말씀입니다.”
“돈만 내면 결정체 물량을 휙휙 공급받을 수 있는데, 누가 힘들게 사체 정제 기술을 개발하고, 위험을 무릅쓰고 레이드를 산업화시키겠어? 그냥 최소한의 안전을 위해서만 괴수를 사냥하는 구도로 자리잡게 될 걸?”
유지웅은 그 점을 가장 우려했다.
결정체 산업이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많은 투자가 있어야 한다. 비단 돈만을 의미하는 게 아니다.
기술 개발에 대한 투자, 열정, 의욕, 성취감, 그리고 사회적 지지의 합의가 있어야 한다. 유통 인프라를 위해서도 많은 관심과 돈과 정책이 투입되어야 한다.
공격대 시스템과 전술, 그리고 괴수 사냥에 대한 강력한 동기 집중은 꾸준히 강화되어야 한다.
그런 것들이 맞물린 채 오랜 세월이 흘러야 비로소 레이드 산업은 꽃을 피울 수 있다.
하지만 유지웅이 완제품 결정체를 제한 없이 시중에 휙휙 제공한다면 어떻게 될까?
세상은 괴수를 가능한 많이 잡아야 할 동기를 느끼지 못한다. 결정체가 필요해서가 아니라, 괴수를 몰아낸다는 목적으로만 레이드를 하게 된다.
정제 기술도 마찬가지다.
완제품 결정체를 쉽게 얻을 수 있으니, 굳이 정제 기술에 투자를 할 이유가 없다.
정제 기술은 비단 사체를 가공하는 것에만 그치지 않는다. 그로 인해 파생되는 수백, 수천 가지 다양한 기술과 아이디어가 결정체 산업이라는 토양을 살찌운다.
“내가 완제품 결정체를 무제한 공급하게 되면…… 결국 나한테만 기대는 기형적인 결정체 산업에서 모든 발전이 그쳐. 내가 살아 있을 때라면 몰라도 죽은 이후에는 이 세상에 큰 비극이 될 거야.”
“아아, 주인님! 벌써부터 백년, 천년 뒤를 내다보시면서 세상을 제어하시다니요! 이 미천한 머슴은 감격스러워서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김범석은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트릴 것처럼 감격에 빠진 채 눈시울을 흠뻑 적셨다.
“니트로 교수는 어떻게 하기로 했다고?”
“미국으로 돌아가는 즉시 생활을 정리하고 다시 한국으로 넘어올 모양입니다. 일단 결정체 정제 기술을 개발하는데 당분간 집중하기로 했습니다. 원래 하던 핵융합 연구도 잠시 2순위로 밀어놓을 것 같습니다.”
“거봐. 만약 내가 비축 물량을 아낌없이 풀어놓는다고 했어도 그 사람이 저렇게 나왔겠어?”
“주인님의 혜안이 그 분에게도 큰 도움이 된 것 같습니다. 물론 이 지구 전체에도 말입니다.”
꿀을 바른 듯한 김범석의 아부는 언제 들어도 기분이 좋다.
유지웅은 얼굴 가득 흐뭇한 웃음을 지었다.
“범석이, 니트로 교수는 아예 들어오는 거냐?”
“이민을 고려하는 것은 아니지만 여생을 한국에서의 연구에 쏟을 결심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
“좋아, 그럼 휘버 교수는?”
“휘버 교수도 진지하게 한국 이전을 고려하고 있는 중입니다. 니트로 교수와 최윤 박사가 적극적으로 설득하고 있습니다.”
“니트로, 휘버, 최윤이라…… 정말 최강의 드림팀이군.”
유지웅은 잠시 숙연해졌다.
아직도 몇 년 전 그날의 기억이 떠오른다.
자신이 태어나고 살아온 지구를 마지막으로 떠난 그 날이…….
―움직여! 움직이란 말이야! 이제 다 왔는데!
눈동자를 굴릴 수조차 없이 몸이 무거워졌던 순간.
―오리나. 너구나.
세상을 위해 목숨을 던지려던 순간, 혼자가 아니라는 그 안도감.
―그래. 같이 가자.
묠니르를 꽉 붙잡은 채 균열을 향해 모든 것을 집어던지고, 소리 없는 굉음에 휩싸인 채 과거로 돌아가 눈을 떴던 그 날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 셋이 힘을 합쳤으니, 이곳 지구에서는 그런 비극이 다시 재현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균열이 어디에 열리긴 했을 건데, 그래서 괴수와 레이더가 나오는 걸 텐데…… 대체 누가 균열을 열었지?’
정황을 보면 휘버가 균열을 연 것은 아닌 듯하다. 그렇다고 니트로도 아니다.
유지웅은 오랜만에 깊은 고심에 빠졌다.
지금 차원의 결정 에너지, 즉 내핵 에너지는 대체 어디에서 흘러나오는 걸까?
유지웅이 방송에서 선언한 내용은 니트로와 휘버에게 적지 않은 충격을 주었다.
“비축 물량을 풀지 않겠다니.”
“생산 물량을 아무리 늘려봤자 소용없어요. 전 세계가 요구하는 물량, 감당 못합니다.”
“당장 결정체 전기자동차를 보급하는 것부터 제대로 발목이 잡혔어. 지금 결정체 공장에서 재배되는 물량은 GC-1, 2, 3, 4 생산하는 데만도 빠듯하지 않나?”
국제 증시는 패닉 상태에 가까웠다. 유지웅의 선언이 있은 이후로는 폭락과 폭등을 거듭하며, 제정신이 아닌 듯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었다.
“일단 사체 정제 기술부터 빨리 개발해야겠습니다.”
“안 그래도 그럴 생각이다. 재배 물량으로는 턱도 없어. 사체 정제 기술도 개발하고, 또 전 세계적으로 사체 매입과 유통망도 구축해야 한다.”
“제니스 컴퍼니에서 괴수 사체 공개 매입 정책을 시행 중인데, 거기에 문의를 해보는 것은 어떨까요? 분명히 물량 확보에 큰 도움이 될 겁니다.”
“그래야겠지. 일단 기술 개발하려면 연구비 투자도 받아야 하니까.”
“에너지부에 말씀을 넣으셔도 될 겁니다.”
“헹, 락밀렉 그놈한테 또 고개를 숙이란 말이냐? 스승이 자존심이 있지, 더는 그놈한테 굽실거리면서 못 살겠다.”
“교수님께서 언제 굽실거리셨다고…… 교수님 덕분에 락밀렉 장관의 스트레스성 원형 탈모가 심해진 것으로 아는데요.”
“이놈이!”
핵물리학의 권위자 고 프랭클린 교수의 두 동문이 아옹다옹하는 모습을 지켜보던 최윤이 문득 조용히 중얼거렸다.
“니트로 교수님, 아무래도 의장님한테 제대로 낚인 거 같은데.”
일찍이 니트로 교수는 사체 정제를 증명해놓고, 정작 대량생산 기술개발에서는 빠져 버렸다. 나랏돈 45억 달러를 써서 자기 흥미를 채웠으니 끝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곧바로 터져 나온 유지웅의 비축 물량 동결 선언.
정제 기술 개발에 필사적으로 매달려야 할 동기 생성.
“합리적 의심을 지울 수가 없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