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n aristocrat RAW novel - Chapter (308)
00308 천재들의 유희 =========================================================================
“녹서스-4? 그게 뭐냐?”
“…….”
박문수가 의아해서 반문했지만 최윤은 바짝 굳은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의 눈은 노트북 화면에서 떠날 줄을 몰랐다. 심각한 태도에 박문수도 이상함을 느꼈다.
이건 그가 생각한 반응과 너무 멀었다. 그가 원한 것은 간단한 자문 역할이었다. 데이터를 보고 어느 정도 방향을 세워주는 것 정도를 기대했다.
그런데 최윤은 마치 이 분자 구조를 안다는 듯한 반응을 보이고 있었다. 이게 무슨 의미일까?
“분명 미국이 개발한 수중장비복의 핵심 소재라고 했지?”
“어. 우리 팀이 분석한 데이터야.”
“확실하냐?”
“확실하지. 설마 내가 엉뚱한 걸 여기까지 가져와서 너한테 조언을 구하겠냐?”
잠시 생각하던 최윤은 목소리를 바짝 낮춰 말했다.
“오늘 나 찾아온 건 비밀로 해라. 여기 있었던 일은 없던 걸로 해둬.”
“그건 당연한데…… 왜 그러는지 말 못 해주냐? 녹서스라는 게 대체 뭔데?”
“미안하다. 가봐야겠다.”
최윤은 심각한 얼굴로 노트북을 챙겨서 일어났다. 박문수는 좀 더 묻고 싶었지만 분위기에 짓눌려 말을 꺼내지 못했다.
* * *
“잡았다!”
금발의 사내가 벌떡 일어나며 환호를 질렀다. 가뜩이나 비좁은 방은 갖가지 전자기기들로 가득 차 더 좁게 느껴졌다. 탁자에는 다 마시고 난 맥주 캔이 굴러다니고 있고, 재털이에는 담배꽁초가 그득했다.
사내는 끼고 있던 헤드셋을 벗어던지고 옆방으로 달려갔다. 담배 연기가 자욱한 방에는 한 중년 백인 남자가 소파에 앉아 졸고 있었다.
“지부장님! 드디어 잡았습니다!”
졸고 있던 중년 남자는 화들짝 놀라서 굴러 떨어질 뻔했다. 그는 눈을 비비며 반문했다.
“잡다니, 뭔가?”
“중요한 대화를 도청했습니다! 그리고 도청 내용을 중앙 컴퓨터에 넣어 검색을 해보았습니다.”
그 말에 깜짝 놀라서 중년 남자가 화를 냈다.
“지금 우리가 뭘 하는지 EIS가 알면 얼마나 일이 커지는지 아나? 검색을 하면 어떡하나? EIS 보고 제발 알아달라고 사정하는 것과 뭐가 다르나?”
“키워드 검색 결과가 나왔습니다. 특급 데이터입니다.”
“……뭐라고?”
화를 내던 중년 남자는 대번에 멍한 표정이 되었다. 그만큼 특급 데이터라는 사실이 암시하는 바는 크다.
“특급 데이터면…….”
“즉각 본국으로 철수해야 합니다. 이미 본부에 도청 내용을 전송했습니다. 빨리 나가야 합니다.”
“이럴 때가 아니군!”
지부장 켄들러도 다급해졌다. 둘은 서둘러 탁자 위에 있는 기기를 쓸어 담으며 철수 준비를 했다. 이곳은 어디까지나 임시 안가, 아무리 극도의 보안을 유지했다 해도 본국 중앙 컴퓨터에 검색을 한 이상 EIS가 알게 되는 것은 시간문제다.
그러나 상대의 움직임은 예상 이상으로 빨랐다. 도청 장비를 미처 다 회수하기도 전에 누군가가 문을 때리는 소리가 들렸다. 잠시 후 우지끈하는 소음과 함께 문이 부서졌다.
“EIS 한국지부다! 무기를 버려라!”
순식간에 들이닥친 다섯 명의 백인들이 권총을 겨누며 켄들러와 부하를 위협했다. 켄들러와 부하는 그대로 얼어버린 채 천천히 손을 들었다. 켄들러의 얼굴에 낭패감이 가득했다.
“어떻게 이렇게 빨리…….”
“그게 CIA와 EIS의 차이점입니다, 미스터 켄들러.”
총을 겨눈 남자들 뒤에서 한 사내가 모습을 드러냈다. EIS 한국지부장 메드리안이었다.
“CIA는 한국에서 발을 떼고 EIS가 관할한다는 게 백악관의 확고한 의지였을 텐데요? 왜 CIA가 한국에 있는 겁니까? 그것도 효웅산업을 감시하고 있죠?”
“…….”
“뭐, 중앙 컴퓨터까지 이용할 정도면 대단한 특급 기밀을 손에 넣으셨나 봅니다. 나중에 차차 보면 알겠죠.”
EIS 요원들은 CIA 요원들을 그대로 연행했다. 이 사건은 즉각 상부에 보고되었다. 휴가를 즐기던 루딘은 즉각 본부에 출근해야만 했다. 그만큼 심각한 일이었다.
“CIA가 효웅산업을 도청해?”
“예. 도청 내용을 중앙 컴퓨터에 검색을 한 기록이 있습니다.”
“어디 보여주게.”
또 CIA가 사고쳤군, 대충 그렇게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며 프린트를 받아든 루딘은 내용을 읽어갈수록 흙빛이 되었다. 그는 그 자리에서 꼼짝도 하지 않고 몇 번이나 읽었다.
“이 도청 내용이 사실인가?”
“사실입니다. 컴퓨터 검색 기록을 뒤져 나온 것입니다.”
“도청 음원을 확인할 수는 없나?”
“그것이…… 우리가 문을 부수고 들이닥칠 때 파기한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루딘이 힘을 주자 종이가 구겨졌다. 그는 인상을 잔뜩 썼다.
“효웅산업 CEO가 어떻게 녹서스를 알고 있지?”
“그야 제니스 회장이 알려주지 않았을까요?”
“그렇다기에는 이 내용과 맞지 않아.”
도청 내용을 보면 최윤은 전부터 녹서스를 알고 있었다는 것으로 보인다. 그것이 문제다. 대체 어떻게? 녹서스의 돌은 미국 내에서도 극비로 취급해온 것이다. 외부인이 그 이름을 아는 것 자체가 문제다.
그리고 내용도 심각하다. 최윤은 단지 녹서스의 돌을 아는 것뿐만이 아니라, 분자 구조까지 운운했다. 이상했다. 녹서스의 돌은 인공적으로 만든 퍼플 결정체를 칭하는 말이다. 분자 구조의 유사함 어쩌고 하는 말이 나올 주제와는 거리가 멀다.
대체 최윤은 뭘 알고 있는 걸까? 그리고 미국은 뭘 놓치고 있는 걸까?
최윤 등 한성산업 초창기 설립자들은 미국을 포함해서 여러 레이드 강국들이 주목하는 인사들이다. 미국도 EIS를 필두로 내세워 그들을 오랫동안 지켜봐왔다. 그 동안 접근하지 못한 것은 유지웅의 심기를 거스를까 두려워서였다.
“최윤의 모든 것을 조사하게. 지금까지 파악한 것 이상으로 철저하게 모든 것을 파헤치게.”
* * *
퇴임을 앞둔 빌클런은 EIS가 올린 보고에 머리가 아팠다. 한동안 잠잠했던 CIA가 드디어 사고를 친 것이다. 다행히 유지웅이 알기 전에 수습은 했지만, 조지 비시가 차기 대통령으로 선출된 이상 앞으로 CIA가 한미 관계에서 얼마나 설치고 다닐지는 상상이 가지 않았다.
EIS과 CIA는 한국 정보 영역을 놓고 치열하게 대립해왔다. 이번 세대에서 승리한 것은 EIS였다. 공화당을 견제하기 위해 빌클런이 EIS의 손을 들어둔 것도 있지만, CIA가 ‘강한 미국’이란 자부심 때문에 사고를 친 것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 조지 비시가 당선되었다. 아마 다음 정권에서는 EIS가 위축되고 CIA가 활약을 떨칠 것이다. 내심 미국의 미래가 걱정되었지만 퇴임을 앞둔 대통령이 할 수 있는 건 미약했다.
“공화당이 잘 해야 할 텐데…….”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던 빌클런은 갑자기 집무실 문이 벌컥 열리자 크게 놀랐다. 내심 이 시간에 보지 않았으면 하는 얼굴이 나타났다. 바로 루딘이었다.
“이 시간에 자네가 찾아오는 건 바라지 않았네만…….”
“죄송합니다, 각하. 큰일입니다.”
“……무슨 일인가?”
“효웅산업의 최윤 사장을 납치하려는 기도가 있었습니다. 다행히 실패로 끝났습니다만…….”
“CIA의 짓인가?”
“예.”
머리가 지끈거렸다. 한동안 잘 죽어지내던 이것들이 공화당을 믿고 눈에 봬는 게 없어졌다.
* * *
“뭐라고요? 최 사장님을 납치하려고 했다고요? 그래서 어떻게 됐나요? 최 사장님은 무사한가요?”
“네. 무사하십니다.”
“범인은요?”
“범인은 즉각 도주해서 잡히지 않았습니다만 단순히 몸값을 요구하기 위한 인질범은 아니었습니다. 프로급 첩보원으로 보인다는 게 실무진의 추정입니다. 아직 배후를 특정할 만한 단서는 잡지 못했습니다.”
최윤은 정부에서도 관심을 갖는 주요 인사다. 한국이 자랑하는 충전장비와 방어장비 개발에 핵심적인 역할을 한 과학자 출신의 경영자 아닌가. 당연히 정부에서도 이번 납치 기도에 관심을 갖고 적극 수사에 나섰다. 하지만 워낙 대단한 프로라는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아내지 못했다.
물론 정부의 사정은 그랬고, 유지웅은 달랐다.
“CIA가 그랬단 말이죠?”
「네, 그렇습니다.」
사실 최윤의 납치 기도가 있었다는 보고를 받기도 전에 유지웅은 이미 누가 그랬다는 보고를 받았다. 어떻게 된 게 국내에서 들어오는 보고보다 미국에서 태평양 건너 들어오는 보고가 더 빠르다.
평소 유지웅은 칠드그린과 직접 이야기하는 것보다 문서를 받는 것으로 보고를 받는다. 보안을 생각해서다. 하지만 웬일로 칠드그린이 직접 화상 통화를 요청했다. 그만큼 사태가 심각하다는 뜻이다.
「현 CIA 국장은 물론이고 전대 국장, 전전대 국장들 모두가 공화당 지지자들이었습니다. EIS가 민주당의 오른팔이라면 CIA는 공화당의 수족이라 보시면 됩니다. 빌클런 대통령이 EIS를 밀어주고 CIA를 배척한 것은, CIA가 지나치게 과격한 행동으로 국익에 해를 줄 우려도 있지만, 공화당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는 게 더 큰 이유였죠.」
“조지 비시가 당선돼서 이제 설치기 시작했다는 거군요.”
「그렇습니다. 문제는 앞으로 그 강도가 더 심해질 거라는 겁니다.」
“왜 CIA가 최윤 사장을 납치하려고 했죠?”
「녹서스라는 단어 때문입니다. CIA는 최윤 사장과 박문수 대표이사의 대화를 도청했습니다.」
“녹서스? 녹서스의 돌 말인가요?”
유지웅의 눈빛이 흔들렸다. 그는 녹서스란 말을 최윤에게 알려준 적이 없다. 그런데 최윤이 그걸 알고 있었다고?
「단순히 녹서스란 단어만 나왔으면 그런 민감한 반응을 보이진 않았을 겁니다. 도청 기록을 보면, 최윤 사장이 말한 녹서스는 녹서스의 돌을 가리키는 게 아니라 다른 것을 지칭한 것으로 해석됩니다. CIA가 그것을 어떻게 해석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그때 전화가 요란하게 울렸다. 발신자는 남기철이었다. 유지웅은 잠시 화상 통화를 중지하고 전화를 받았다. 좋지 않은 느낌이 등줄기를 훑고 지나갔다.
「큰일났습니다.」
“큰일이 연달아 터지는군요. 저도 그럴 것 같았어요. 말씀하세요.”
「효웅산업 연구소에 화재가 일어났습니다.」
“화재? 효웅산업 연구소에? 설마……?”
「현장 전문가들 말로는 방화가 분명하다고 합니다. 최윤 사장이 입원한 병실에도 테러 기도가 있었습니다. 다행히 사전에 최윤 사장을 비밀리에 다른 병원으로 후송한지라 그는 무사합니다만, 관계없는 사람들이 부상을 당했습니다.」
유지웅은 이를 바드득 갈았다. CIA, 이것들이 제대로 미친 거 아닌가? 그는 빌클런의 마음을 비로소 이해했다. 오죽 심했으면 한 나라의 대통령이 사석에서 다른 나라 인물한테 자국 정보기관 험담을 다 했을까.
‘설마 내가 모른다고 생각하는 거야? 이것들을 그냥!’
CIA가 그랬다는 것을 한국 정부만 모른다. 아니, 모른다는 말에도 어폐가 있다. 정황상 추정은 하지만 물증만 잡지 못한 것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아무래도 CIA는 증거를 안 남겼으니 상관없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 * *
“로버트 국장! 대체 이게 무슨 짓인가?”
로버트가 들어서자마자 조지 비시는 버럭 화를 냈다. 어떻게 선거에서 승리를 거두었는데, 취임식을 치르기도 전에 사고부터 칠 생각을 다 할 수가 있나. 아무리 CIA가 공화당의 유용한 눈과 귀라지만 이건 아니었다.
민주당과 유지웅의 관계를 공격해서 공화당이 승리를 거두긴 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보여주기 위한 쇼다. 공화당 입장에서는 유지웅이 그저 조심스럽다. 선거 과정에서 보인 결례를 어떡하면 ‘사죄’하고 앞으로의 관계를 편성해야할지 머리가 아픈데, CIA가 대뜸 사고를 쳐버렸다.
유지웅의 사람을 납치하려 하고, 그 회사에 불까지 지르다니. 물증이 없다고 하지만 유지웅은 분명히 미국이 배후에 있을 거라 생각할 것이다. 그가 그렇게 인식한 순간 증거주의고 뭐고 의미가 없다.
하지만 로버트 국장은 자신만만했다.
“각하, 최윤은 그대로 놔둬서는 안 되는 인물입니다. 너무 커져버린 제니스 회장은 어쩔 수 없지만, 최윤은 아직 처리할 기회가 있습니다. 지금이 아니면 기회가 없습니다.”
“왜 그를 처리해야 하나? 어차피 그는 제니스 회장의 사람이야! 그를 처리한다고 뭐가 달라지나?”
“최윤이 제니스 회장의 아래에서 성장한다면, 우리 미국의 앞날에는 어둠밖에 남지 않게 됩니다. 더 크기 전에 최윤을 제거해야만 합니다.”
“……대체 무엇 때문에?”
침착한 설명에 조지 비시는 뭔가 이상함을 느끼고 반문했다.
“이번에 도청한 내용을 통해 우리 CIA는 확신을 얻었습니다. 최윤, 그자는 휘버 박사의 유산을 받은 후계자가 틀림없습니다. 그 자가 완전히 유산을 자기 것으로 만들고, 그것을 제니스 회장이 흡수하면 향후 몇 백 년은 제니스 회장의 가문이 전 세계를 지배하게 될 겁니다. 거기에 미국의 미래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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팍스 아메리카여, 영원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