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n aristocrat RAW novel - Chapter (733)
00733 묘목을 사수하라 =========================================================================
이유리는 텐트를 쳤다. 복잡한 설치 과정이 필요 없이, 원터치만으로 간단하게 완성이 되는 텐트였다. 조금 비싸긴 한데 한국 최고 부자층에 속하는 그녀에게 가격은 문제가 안 됐다.
“피곤해. 피곤해.”
그녀는 버릇처럼 중얼거렸다. 진짜로 몸이 피곤한 것은 아니다. 탱커는 비거가 완전 소모되기 전에는 피로라는 것을 잘 알지 못한다. 하물며 하루 정도 수색했다고 해서 피로를 느낄 정도도 아니다.
다만 정신은 피로했다. 망망대해에서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르는 바늘을 찾아야 하는 심정이라 갑갑했다.
“언니, 저도 같이 자도 돼요?”
“왜, 텐트 없니?”
“아니. 혼자 자려니 심심해서요. 어차피 이거 네 명이 자도 거뜬할 거 같은데…….”
“그래, 같이 자자.”
엔시디아 시절부터 함께 해온 딜러 동료, 한수희가 좋아라 하며 가방을 들고 들어왔다. 이유리는 텐트 천장에 휴대용 전등을 매달고 텐트 입구 방충망을 닫았다.
한수희는 이유리와 나란히 누웠다.
“언제까지 수색해야 되는 거예요?”
“나흘 정도만 더 하면 작전 지역은 다 훑어보는 셈이긴 해.”
“훑어본다고 끝나는 게 아니죠?”
“아마 이상 징조가 뭔지 밝혀낼 때까지는 계속 수색을 할 모양인가 봐.”
“근데 왜 하필 우리가 해야 돼요? 우리는 전투견이지 수색견은 아닌데.”
자신들을 개에 비유하는 것을 보고 이유리는 픽 웃어 버렸다. 비유가 조금 이상하긴 했는데, 틀린 말은 아니다. 제니스는 전투력에 특화된 단체지, 수색에 뛰어난 조직은 아니니까.
“어쩔 수 없지. 만약 수색 중에 탐지망에 안 걸리는 레드 몹 같은 걸 마주쳐 봐. 다른 사람들이 수색했다가는 그 즉시 전멸할 걸.”
“하긴, 그건 그렇겠네요.”
“번거롭지만 우리가 참아야지. 이것도 우리가 감당해야 할 도덕적 의무니까.”
제니스 대원들은 대부분 도덕의식이 뛰어났다. 사회주도층으로서 솔선수범을 보이고 싶다는 자긍심이 강했다. 이유리만 해도 매해 수천 억 원을 사회약자층을 위해 기꺼이 내놓는다. 다른 대원들도 비슷하다.
이번 일만 해도 그렇다. 원래라면 제니스, 그것도 유지웅의 최측근인 제1예비대가 맡을 일은 아니다. 그러나 최악의 경우가 발생할 때 조기 진압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 제1예비대는 그만한 힘, 그리고 권한이 있기 때문이다.
“비상근무 때 일반 병사나 중대장급으로 당직세우는 거 봤어? 다 대령이나 장성급이 서잖아. 그런 거야.”
“그건 그래요.”
그래서 대원들도 귀찮고 싫긴 해도 책임감을 가지고 임무를 수행하는 중이다. 이것은 제니스 공격대로서 누리는 부와 명예에 부속된 책임의 한 줄기니까.
‘……!’
그때였다. 이유리가 벌떡 일어났다. 막 잠이 들려던 한수희는 잠이 확 달아났다.
“언니, 무슨 일이에요?”
이유리는 그녀의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조용히 하라는 듯이 입술에 검지를 세워 댔다. 그리고 눈을 감고 어딘가를 향해 귀를 기울였다. 한수희는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그녀의 행동 하나하나에 집중했다.
갑자기 이유리는 텐트 구석에 벗어둔 레이드 장비를 움켜쥐었다. 입구를 열 시간도 아까운 듯 그대로 찢어버리고는 밖으로 뛰쳐나갔다. 이미 야영장에는 그녀와 같은 느낌을 받고 뛰쳐나온 이가 있었다. 서브 탱커, 테레사였다.
두 여자의 시선이 서로 마주쳤다.
“비상! 비상!”
“모두 일어나십시오!”
암석이 갈라지는 굉음이 울리고 있었다. 이제는 탱커가 아니라도 들을 수 있을 정도로 컸다. 뒤늦게 뛰쳐나온 대원들은 어떻게 된 영문인지 몰라 두리번거렸다. 그러면서도 다들 재빠르게 장비를 착용하고 있었다.
“무슨 일입니까?”
“저쪽 암석이 흔들리고 있어요!”
“설마 지진인가요?”
“지진이면 좋겠지만, 만약 괴수라면…….”
이유리는 식은땀이 흘렀다. 이 일대는 지진이 좀처럼 없는 곳이다. 암석 지반도 매우 단단하다. 한 지점에서만 암석 붕괴음이 울리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
“ZMD 반응은요?”
“아무 조짐 없습니다.”
“좋아요. 그럼 일단 쿤겐 탱커가 수색을…….”
이유리가 채 말을 끝내기도 전이었다. 우르릉, 하는 소리와 함께 야영지 북쪽의 바위지대가 무너져 내렸다. 마치 폭약이라도 터트린 듯한 붕괴였지만 폭음은 없었다.
―케케에에에엑!
무너진 암석지대 뒤에서 거무튀튀한 뭔가가 모습을 드러냈다. 흡사 거대한 전갈을 닮은 듯한 생김새였다. 잿빛 연기를 뿜어내는 입에서는 날카롭고 푸른 이빨이 반짝거렸다.
전갈 벌레처럼 생긴 거대한 괴수의 등장에 대원들은 바짝 긴장했다. 그들은 훈련한 대로 일사분란하게 전투 대형을 취했다. 힐러진이 최후방에 서고, 그 주변을 원거리 딜러가, 다시 그 밖을 근거리 딜러가 포진했다. 이유리는 제일 앞으로 나섰고, 테레사는 본진을 호위하듯 바로 앞에 섰다.
이유리가 외치듯이 물었다.
“ZMD 반응은요? 그대로인가요?”
“그대로입니다! 아무 반응 없습니다!”
“말도 안 돼! 이렇게 눈앞에 있는데도요?”
“하, 하지만 아무 반응이 없습니다!”
“설마 규소기반괴수인가요? 지원팀 호출 해봐요! 어서!”
“이미 하고 있습니다! 잠시만…… 아, 연결됐습니다!”
지금은 작전 중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호출한 지 3분도 지나지 않아 지원팀과 연결되었다.
「무슨 일입니까?」
“장 팀장님 불러오세요! 빨리요! 1급 상황입니다!”
「알겠습니다!」
이유리는 마른침을 삼켰다. 아무리 봐도 저 놈은 규소기반괴수처럼은 안 보인다. 그냥 평범한 보통의 레드 몹처럼 보인다.
그런데도 ZMD망에 전혀 반응이 보이지 않는다. 도무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상부에서 느낀 이상 조짐이 바로 이것인가.
―키에에에에엑!
검은 전갈 괴수는 더 이상 생각할 틈을 주지 않았다. 그대로 높이 도약하며 예비대를 덮쳤다.
“어딜!”
이유리는 힘껏 뛰어오르며, 손에 쥔 대검을 수직으로 그었다. 녀석의 배를 노린 공격이었다. 흰 칼끝이 녀석의 배를 그대로 파고들었다.
그녀는 상당한 반발력을 예상했다. 탱커의 공격력이 괴수 방어막을 뚫는다지만, 어느 정도 반발력은 돌아오는 법이니.
그러나.
‘어?’
마치 종이를 벤 듯한 허전함에 이유리는 그만 허공에서 중심을 잃고 비틀거렸다. 그녀는 가까스로 자세를 잡고 착지했다.
‘뭐지, 대체?’
그녀는 당황해서 괴수를 응시했다. 괴수는 그대로 본진을 덮치고 있었다. 이대로 몇 초면 본진을 덮치게 된다. 본진 대원들도 이유리가 맥없이 착지한 것을 보고 엉거주춤하고 있었다.
그녀는 본능적으로 외쳤다.
“모두 산개해요! 산개하면서 원딜들은 공격! 근딜들은 원딜과 힐러들을 보호해요!”
「라져!」
갑작스런 지시였지만 대원들은 재빠르게 응했다. 근딜들은 힐러를 보호하며 산개했고, 원딜들도 각자 흩어지면서 자발적으로 공격을 퍼부었다. 테레사도 괴수를 막아내기보다는 대원들 보호에 집중하면서 이동했다.
“어?”
“저, 저게 뭐야?”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원딜들이 발사한 섬광이 그대로 괴수의 몸을 뚫고 뒤로 뻗어나간 것이다.
“호, 홀로그램?”
“말도 안 돼! 그런 게 어딨어!”
놀람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괴수가 땅에 착지하는 순간 쿵 하고 굉음이 울리며 야영지가 쑥밭이 돼버렸다.
적어도 괴수가 홀로그램이나 광원체 따위가 아닌, 분명한 실체가 존재한다는 증거였다.
“저 봐. 홀로그램 따위가 아니야.”
“근데 왜 공격이 안 통해?”
“그, 글쎄…….”
이유리는 이를 악물었다. 그녀는 검을 쥐고 그대로 힘껏 뛰쳐나갔다. 괴수가 꼬리를 높이 치켜 올렸다. 꼬리 끝에서 푸른 빛이 어둠을 빨아들이며 강렬히 타올랐다.
“하앗!”
이유리는 그대로 괴수의 머리 부위를 찔렀다. 그러나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칼끝은 아무 것도 없는 빈 허공만 베어 넘기며 옆으로 흘렀다.
‘뭐야, 대체?’
이상했다. 분명히 실체는 존재하는 것 같은데, 막상 공격하면 아무 것도 없는 허공만 치는 것 같다.
그녀는 중심을 잡으며 재빨리 거리를 벌렸다. 고글에서 대원들이 외쳤다.
「탱커장님! 조심요!」
수직으로 치켜 올라간 괴수의 꼬리 끝에 맺힌 푸른 빛이 맹렬히 회전하고 있었다. 섬뜩한 느낌이 가슴을 뚫고 지나가는 순간, 이유리는 생각할 것도 없이 옆으로 몸을 날렸다. 꼬리 끝에서 한 줄기 섬광이 번쩍이며 그녀가 서 있던 땅을 꿰뚫었다.
“…….”
섬광이 남긴 자국은 좁았다. 그러나 그 끝은 수백 미터가 넘도록 길게 이어져 있었다. 마치 예리한 송곳이 관통하고 지나간 듯한 흔적이었다.
만약 저것을 맞았으면? 이유리는 그 생각에 모골이 송연해졌다.
============================ 작품 후기 ============================
공허에 경애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