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n aristocrat RAW novel - Chapter (927)
00927 %3C프리시즌 딜러편%3E나는 간신이다 =========================================================================
보좌관 차량이 가게에 들어섰다. 차에서 내린 보좌관은 급히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마침 지나가던 직원이 그를 보고 아는 체 했다.
“아, 보좌관님! 가방 놓고 가셨던데요.”
“헉헉…… 네! 그래요!”
“제가 바로 가져다드리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시죠.”
직원은 잠시 후 가방을 들고 나왔다. 보좌관은 가방이 열린 흔적이 없는 것을 확인했다. 잠금 장치가 걸려 있어 비밀번호를 모르면 내용물을 열 수가 없으니.
‘십 년 감수했어.’
보좌관은 가방을 꼭 끌어안은 채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직원에게 고맙다고 인사했다.
“감사합니다. 중요한 서류가 들어 있는 놈이라 큰일 날 뻔했는데, 정말 십 년 감수했습니다.”
“뭘요. 저희야 손님이 찾아주셔서 맡고 있던 것뿐인데요.”
“손님이 찾아줘요?”
“네. 수납칸에 넣어두시고 깜빡하신 걸 그 다음 손님께서 발견하셨습니다.”
“저 혹시, 그 손님이 누군지 알 수 있을까요? 나중에라도 사례를 해드리고 싶어서 그러는데…….”
사례를 하려는 마음이 아니다. 대체 누가 그걸 발견했는지 불안한 마음에서 한 질문이었다. 그리고 직원의 대답은 보좌관의 희망을 깨부쉈다.
“보좌관님도 아실 겁니다. 유지웅 회장님께서 오늘 저희 가게를 찾아와주셨습니다.”
“크헉!”
보좌관은 가방을 끌어안은 채로 휘청거렸다. 하필이면, 절대로 얽히지 말아야 할 사람과 얽히고 말았다.
직원이 이상하다는 듯이 쳐다봤다.
“왜 그러십니까? 어디 불편하신 데라도…….”
“아, 아닙니다.”
보좌관은 필사적으로 생각했다.
유지웅이 봐버렸다. 가방이 누구 것인지 과연 알아봤을까? 만약 직원한테 그 전 손님이 누구였냐고 물어봤으면? 아마 직원이 거짓말은 하지 못할 것이다. 그걸 필히 확인해봐야 한다.
“혹시 회장님께서 가방 주인이 누구냐고 물어보시던가요?”
“네. 그래서 사실대로 대답해드렸습니다.”
“아니, 그걸 왜…….”
그걸 왜 말했어! 라고 따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하지만 보좌관은 꾹 참았다. 그렇게 정색을 하고 따지고 들면 도둑이 제 발 저리는 꼴 아닌가.
세간에 알려진 유지웅 이미지를 고려하면, 일개 직원이 감히 거짓말을 할 수 있을 리가 없다. 게다가 별 거 아니라 생각하고 대답을 했을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그래! 가방에 뭐가 들었는지는 모를 거야! 알 수가 없잖아!’
가방은 확실하게 잠겨 있고, 열린 흔적도 없다. 공항에서 쓰는 방사선 투시 장치라도 쓰지 않는 한은 안에 뭐가 들었는지 알 도리가 없을 것이다.
근데 누가 밥 먹으면서 그걸 들고 와? 그러니 별 일 없을 것이다. 보좌관은 안심하고 돌아왔다.
그런데 사무실을 향하던 중 핸드폰이 울렸다. 바로 그가 모시고 있는 박희원 의원이었다.
“예, 의원님.”
「자네! 일을 대체 어떤 식으로 처리한 거야! 엉!」
“예?”
보좌관은 황당했다. 박희원은 노발대발하고 있었다. 아니, 방금 전까지만 해도 기분 좋게 식사하고 헤어진 양반이 왜 이래? 대체 가방을 가지러 돌아간 그 짧은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기에?
「지금 상황 파악이 안 되나! 유지웅 회장 SNS를 보란 말이야! 보고 다시 전화하게!」
뚝.
전화가 끊어졌다.
멍하니 있던 보좌관은 정신이 번쩍 들어서 얼른 인터넷에 접속했다. 이제 대중 사이에서도 유명해진 유지웅 회장의 SNS를 들어가 보았다. 불과 몇 분 전에 올린 글에 벌써 ‘좋아요’가 1만 개가 넘게 달렸다.
「여자친구와 저녁 먹으러 옴. 인증샷 첨부.
전 손님이 놓고 간 가방 주워서 돌려줬음. 안에 10억 들어 있더라.」
사진은 상다리가 부러지도록 차려진 식탁이 있었다. 그리고 짧은 글이 함께였다.
글을 보는 순간 보좌관은 정신이 아찔해졌다. 아니, 10억이 들어있다는 걸 어떻게 딱 알았지? 혹시 마스터키라도 갖고 있었나? 그래서 가방을 열어보기라도 했나?
댓글은 아주 가관이었다.
―헐, 10억이 든 가방? 무슨 정치 비자금 뭐 그런 거 아니냐?
―그러게. 아니면 누가 10억씩이나 가방에 넣어서 가지고 다니냐. 그것도 밥 먹는 곳에.
―그 와중에 쿨하게 돈 돌려준 클라스 봐라. 우리 지웅 형님 아니고는 못할 배포다.
―10억을 주우면…… 난 상상만으로도 지릴 것 같다. 그거 대체 어떤 기분일까.
―근데 저 돈 잃어버린 거 대체 누구냐?
―누군지 몰라도 이제 큰일 났다.
폭풍처럼 달린 댓글을 읽어내려가는데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하마터면 핸드폰을 놓칠 뻔했다.
―나 근데 이상하다. 지웅 형님이 왜 이런 글을 올렸을까?
―뭐가?
―이거 검경에 압박 넣는 거 아니냐? 식당에 웬 가방 하나를 줏었는데 10억이 들어 있더라. 무슨 수상한 자금 아닌지 빨리 조사하라, 뭐 그런 거 아님?
―헐. 그럴 수도 있겠다.
스크롤바를 내리던 손이 딱 멈췄다. 보좌관은 얼굴이 있는 대대로 시뻘게진 채 어쩔 줄을 몰랐다.
“왜 하필! 왜 하필!”
정녕 신을 원망하고 싶었다. 하필 주워도 유지웅이 주웠는지! 그 많고 많은 사람들을 놔두고!
아니, 그보다 진짜 안에 10억 든 건 어떻게 안 거야?
* * *
“그냥 딱 들어보니까 알겠던데?”
“…….”
유지웅의 대답이었다. 정효주는 어처구니가 없어서 젓가락질을 하다 말고 멈췄다.
“그걸 들어보고 알았다고? 안에 뭐가 들었는지?”
“응. 10만 원짜리로 10억 들었던데?”
뭐가 잘못되었냐는 듯이 태연히 반문해오는 모습에, 정효주는 더욱 할 말이 없어졌다. 머릿속에서 무수한 말이 떠올랐으나 어느 것 하나도 꺼낼 수가 없었다. 아니, 무슨 손끝에 방사선 투과기를 단 것도 아니고, 어떻게 그걸 한 번 들어보고 알 수 있어?
“엄청 큰돈인데, 잃어버린 사람이 지금쯤 발을 동동 구르고 있겠다.”
“그렇게 큰돈인가?”
“어머, 그럼 큰돈이지. 아무리 우리가 레이더라고 해도 10억은 정말 큰돈이야.”
“잘 모르겠네.”
유지웅은 시큰둥했다. 큰돈이라고 호들갑을 떠는 게 영 이해되지 않았다.
정효주는 문득 얼마 전에 봤던 유지웅의 계좌를 떠올렸다. 현재 그가 운용하는 계좌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업무 계좌고, 다른 하나는 개인 계좌다.
업무 계좌라고 해서 별 건 아니다. 현재 그는 국가무역위원회를 통해, 수출입을 대신 해주고 있다. 당연히 다른 사람의 돈을 받아서 대신 지불해주고, 대신 받아주기도 한다.
‘300조 원이었나?’
업무 계좌에 대충 그 정도 돈이 들어있었던 것 같다. 그녀로서는 상상도 가지 않는 아득한 액수다. 문제는…….
‘개인 통장에 5,000억 달러가 들어있었지…….’
그게 전부 다 블루 결정체를 팔아서 만든 현금이다. 더 무서운 건 현물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라는 점. 그리고 앞으로 획득할 현물에 비하면 ‘정말’ 아무 것도 아니라는 점이다.
정효주는 힘없이 끄덕였다.
“하긴, 그렇게 보일 수도 있겠다…….”
“뭐가?”
“아니, 갑자기 그냥 실감이 났어. 네가 얼마나 부자인가 하고 말이야.”
“부자라니. 나는 부자 같은 게 아니야.”
“부자가 아니면, 뭔데?”
“부, 아니 경제라고 할 수 있지.”
정효주는 순간 할 말이 없어졌다. 손발이 오그라드는 이야기를 저리 태연하기 내뱉으니, 이쪽이 무슨 표정을 지으면 좋을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 * *
유지웅의 SNS는 유명하다.
게다가 이번에 올라온, 10억 가방 습득 사건은 대중의 입방아에 오르내리기에 충분했다. 평소에도 백만은 가뿐하게 찍던 국내 방문자 수가, 기어이 그 몇 배를 거뜬히 넘어서고 말았다.
―10억 가방? 대체 누구 거?
―정치 비자금? 아니면 불법 절도? 뇌물?
유지웅이 가방이 누구 거라고 말을 하지 않은 탓에(사실 본인도 몰랐지만) 궁금증만 더 커졌다. 일반에 공개된 평범한 음식점이었으면 진작 소문이 났겠지만, 최고의 상류층만 드나드는 음식점이다 보니 소문이 날 도리도 없었다.
그러나 일반인이 그렇다는 것이지, 검찰은 전혀 달랐다.
“검사님. 알아냈습니다.”
“그래, 누구라고 하던가요?”
“SKK에너지 이정우 사장과 박희원 의원이 그 룸에서 식사를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가방을 찾아간 것은 박희원 의원의 보좌관이었습니다.”
더 볼 것도 없다. 가방에 든 10억은 기업인이 정치가에게 건네는 뇌물이었다.
그렇게 수사 방향을 잡으면 참으로 편하다. 그러나 백재형 검사는 전혀 그렇지 못했다.
‘대체 무슨 의도지?’
그는 유지웅이 SNS에 찍어서 올린 게 영 마음에 걸렸다. 분명 무슨 의도가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혹자는 검찰이 철저한 수사를 나서도록 유지웅이 은근히 돌려서 뜻을 표한 것이라고도 하고, 또 다른 이들은 돈주인에게 압박을 가하는 것이라고도 했다.
검찰이 조사를 하라는 것이냐.
돈주인이 찾아와서 엎드려 빌라는 것이냐.
어느 쪽인지 도대체 알 수가 없다. 방향을 잘못 잡았다가는 자칫 검찰이 유지웅한테 털릴 수가 있었다. 이미 검찰 내부에서도 유지웅은 건드릴 수 없는 초권력적인 존재로 인식하는 중이었다.
미국에서 대학살을 하고 돌아온 독재자를 검찰이 무슨 재주로? 어떻게?
* * *
“의원님은 뭐라고 하던가?”
“유지웅 회장이 사장님 아니면 자신에게 압력을 가하는 것이라 했습니다.”
“검찰이 아니라?”
“검찰에 압력을 가할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그럴 거면 그냥 신고를 해버리면 그만입니다. 하지만 가방을 굳이 직원에게 돌려주고, 또 그것을 사진으로 찍어서 SNS에 올렸습니다.”
SKK에너지 사장 이정우는 가느다란 신음을 뱉었다. 어제 SNS를 보고 난 뒤로 한숨도 자지 못했다.
자신이 보기에도 비서실장 말이 맞는 듯했다.
검찰에게 보내는 메시지가 아니다. 돈주인에게 보내는 메시지다. 단순히 곯리기 위해서든, 다른 할 말이 있든 간에.
그렇다면 어느 쪽이란 말인가?
돈을 준 쪽? 받은 쪽? 아니면 모두?
“일단 의원님과 함께 유지웅 회장을 찾아가보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더 시간을 끌었다가는 위험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야겠지. 자네, 지금 당장 한남동에 가서 내 서재에 있는 불상을 가져오게.”
“예? 불상을요?”
비서실장은 깜짝 놀랐다.
지금 이정우 사장이 말한 불상은, 한국의 고미술품으로 어둠의 경로에서 이정우가 은밀히 구입한 것이었다. 역사적, 고고학적 가치가 높아 이정우가 애지중지하는 문화재였다.
“어려운 사람을 찾아가는데 선물은 있어야 하지 않겠나. 순금으로 만들어진 미술품이니 그도 싫어하지는 않을 거야.”
유지웅이 미술품을 좋아한단 소리는 못 들었지만, 오래 되었고, 역사적 가치가 있고, 순금으로 된, 그리고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미술품이라면? 한 번쯤은 이 일을 눈감아줄지도 모른다.
속이 쓰릴 만큼 아깝지만, 그래도 죽는 것보다는 낫지 않은가.
“알겠습니다. 바로 준비하겠습니다.”
“의원님께도 연락하고.”
“예.”
이정우는 호랑이굴에 들어가는 심정으로 외출 준비를 마쳤다.
============================ 작품 후기 ============================
“헤헤, 회장님 집에는 이런 불상 없죠? 여기 선물…”
“아니, 이 불상은? 감회 돋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