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Druid in Another World RAW novel - Chapter (88)
제88화
제88편 자갈과 잎사귀 (8)
-퍼어엉!!!!!
고막을 찢을 듯한 폭발음과 함께 숲 전체가 흔들린다. 착각이 아니다. 정말로 강한 진동이 주변으로 퍼져 나가고 있었다. 한동안 사방에 흙먼지가 날리며 시야를 가렸다.
그리젤의 접촉과 동시에 일어난 폭발과 함께 나는 그대로 몇 바퀴인가를 구르다 나무 기둥에 부딪쳤다. 낙법을 펼칠 새도 없었다. 극심한 고통이 온몸을 뒤흔들었다. 정신을 잃지 않은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일까.
[숲의 아이 특성 발동!] [린샤카의 가호와 은총이 느껴집니다…….]엉망으로 흔들리는 시야에 반짝거리는 글자들이 잡힌다. 린샤카의 가호와 은총…….
그래, 이곳 역시 ‘숲’이니까 말이지.
“크윽…….”
나는 가까스로 몸을 일으켰다. 온몸의 뼈가 부서지지는 않았을지 걱정될 정도의 충돌이었으나, 다행스럽게도 내 몸은 멀쩡했다. 갈비뼈가 아픈 걸 보니 완전히 멀쩡하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그 정도는 나중에 처리해도 된다.
맞은편을 바라보자 그리 멀지 않은 곳에 그리젤 역시 바닥을 나뒹군 모양새로 쓰러져 있었다. 먼저 녀석을 제압해야 해. 나는 비틀거리는 몸뚱이를 이끌고 그리젤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질긴 넝쿨로 놈의 몸을 휘감기 위해 손을 뻗었다.
-우우우웅…….
그러나 스킬이 제대로 발동하지 않는다. [식물 묶기]는 하급 스킬임에도 불구하고 넝쿨은커녕 새싹조차 보이지 않았다. 방금의 폭발로 마력이 전부 소진된 것일까? 현자의 물병에 모인 포션은 아까 이미 마셔 버렸는데……. 나는 아공간 반지에서 대충 하급 포션을 꺼내 입에 물었다.
-꿀꺽, 꿀꺽.
비린 맛의 하급 포션을 전부 삼키고 다시 [식물 묶기]를 사용하려고 손을 뻗었을 때.
“……젠장!”
이번에는 그리젤이 모습을 감추었다. 방금까지만 해도 정신을 잃은 채 고꾸라져 있던 녀석이 한순간에 사라진 것이다. 젠장, 젠장, 젠장. 나는 욕을 씹으며 주변을 살폈다. 다행히, 멀지 않은 곳에서 풀들이 꺾인 흔적을 발견할 수 있었다. 놈은 발을 질질 끌며 걸은 것인지 바닥에 흐릿한 흔적이 남아 있었다. 나는 숨을 죽이고, 사냥감을 쫓듯 녀석의 흔적을 쫓았다.
“헉, 허억…….”
회복되지 않은 몸을 움직이고 있자니 자꾸 숨이 차고 정신이 흐려졌다. 아일라, 아일라만이라도 피하게 했어야 하는 건데. 그랬다면 녀석에게 추격을 맡길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와서 후회해도 소용없는 일. 최대한 빨리 그리젤을 찾아내 제압하고 다친 아일라에게 돌아가야 한다.
-바스락.
곤두세운 신경에 작은 소음 하나가 걸렸다. 나는 발자국 소리를 죽이며 조용히, 느릿하게 소리의 근원지로 다가갔다. 조심스럽게 덤불 사이를 헤치자 어둠 너머 낯익은 얼굴이 보였다.
“……!”
낯익은 얼굴‘만’ 보였다.
그리젤의 머리통이다.
그리젤의 머리통은 쓸모없는 물건처럼 바닥을 나뒹굴고 있었고, 녀석의 목에서는 검은 진흙 덩어리 같은 것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몸뚱이 역시 사정은 다르지 않았다. 목의 단면에서, 그리고 몸 구석구석의 상처에서 검은 진흙이 흘러나오고 검은 먼지가 날렸다.
나는 이것들을 본 적이 있었다.
‘꿈의 미로’에서 말이다.
부서지고, 비어 있고, 방치되어 문조차 달리지 않았던 그 ‘방’들에 있던 것들이다.
다크 엘프들의 영혼의 찌꺼기일까? 아니면 원한? 아니면…….
-부글부글…….
검은 진흙들은 서로 뭉치더니, 그리젤의 머리와 몸통을 감싸 덮기 시작했다.
일어나선 안 되는 일을 목격하는 그 느낌이란, 정말이지 끔찍했다. 목뒤로는 소름이 돋고, 손가락 하나 꼼짝할 수 없는 그 느낌.
나는 억지로 몸을 움직였다. 뭐라도 해야 해. 속으로 끊임없이 되뇌며 손을 뻗는 순간.
-철퍽!
-빠드득!
검은 진흙이 튀어 오르고, 그리젤의 머리와 몸통이 서로 붙었다. 반대 방향으로 붙은 모양인지, 돌아가 있던 머리가 그즈즈즉, 하는 소리를 내며 원래 방향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강렬한 보랏빛을 발산하는 눈이 정확히 나를 바라보았다.
그리젤은 손을 들더니, 꺾인 손가락으로 나를 가리켰다.
-퍼어억!!!!
그리고 동시에 나는 강력한 힘에 의해 날아가 다시금 바닥을 뒹굴었다. 골통이 울리고 입에서는 찝찔한 흙의 맛이 느껴졌다.
“헉, 커헉……!”
내가 바닥을 짚고 헛구역질을 하는 동안, 그리젤이 나를 향해 천천히 걸어왔다. 여기저기 뒤틀린 몸이 걸어오는 모습이 상당히 기이하다. 나는 놈을 피해 뒷걸음질을 쳤다. 그러나 그것도 얼마 가지 못했다. 금방 나무에 등이 부딪쳤기 때문이다.
“허억, 헉, 허억…….”
나는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그리젤을 바라보았다. 앳된 얼굴에는 어떤 감정도 담겨 있지 않았다.
“더는 린샤카도 어쩌지 못하는 모양이군.”
“…….”
“버림받는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알게 해 주마.”
그리젤이 이리저리 부러진 손가락들을 펼친 채 내 머리통을 붙잡았다. 곧 깨질 것 같은 두통이 찾아왔다.
-@$#^&*!
-!^&*@#$
생전 처음 듣는 불길한 속삭임이 귓가를 파고든다. [통역가] 특성이 있는데도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였다.
‘이대로 죽는 건가.’
압도적인 힘 앞에서는, 이런 허무한 생각밖에 할 수 없다.
두개골 안에서 뇌가 점점 쪼그라드는 것만 같다. 미지근한 코피가 입가를 죽 가로지르며 흘렀다. 안 돼, 안 돼, 안 돼…….
-삐이이—–!
최후를 예감하고 두 눈을 질끈 감은 순간, 내 품에서 무언가 튀어나오더니 빛을 뿌리며 날아올랐다.
삐삐다.
“크윽!”
그리젤은 곧장 손을 떼고 뒷걸음질을 쳤고, 나는 그대로 풀썩 쓰러졌다. 삐이이, 삐이이이……. 삐삐의 울음소리와 함께 반짝이는 빛이 흩날리는 것이 보인다. 뭔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그 반짝임들이 그리젤을 몰아붙이고 있었다. 게다가…….
“아아…….”
내게는 ‘힘’을 주고 있었다.
삐삐를 처음 만났을 때, 녀석이 목욕물에 생명력을 가득 부여했던 것처럼 반짝이는 빛의 조각들이 내 몸 위로 내려앉으면서 나를 회복시키고 있었다. 머리를 반으로 쪼개는 것만 같았던 두통이 차츰 사라지고 기력이 돌아온다. 나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실패자 주제에, 감히……!”
그리젤은 삐삐를 향해 소리를 지르며 보라색 빛을 마구잡이로 쏘아 보내고 있었다. 삐삐는 아슬아슬하게 녀석의 공격들을 피했다.
‘빨리 놈을 해치워야…….’
그러나 활은 이미 반으로 부서져 있었다. 그렇다면 단검이라도? 아니면 히드라의 독니? 허리춤에 손을 뻗으려는 순간.
-피요오오오……!
높게 날아올랐던 삐삐가 눈부신 빛을 뿜어냈다.
-타악!
빛이 꺼짐과 함께 무언가 떨어진다. 나는 반사적으로 그것을 잡아챘다.
“이건…….”
활이다.
가볍고, 매끄럽고, 단단한 감촉. 오팔을 깎아 만든 듯 오색으로 은은하게 빛나는 활. 시위 없이도 부드럽고 강하게 구부러져 멋진 위용을 뽐내는…….
나무로 만든 것도, 뿔로 만든 것도, 광물로 만든 것도 아니다. 마치 이 세상 것이 아닌 무언가로 만든 것처럼 신비하다. 나는 마치 오래전부터 이 활을 사용했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자세를 잡고 ‘보이지 않는’ 시위를 당겼다. 그러자 삐삐가 뿌리던 밝은 빛을 모아 만든 것 같은 화살이 ‘생겨났다’.
엉망진창으로 땅바닥을 굴러다닌 데다가 몸도 정상이 아닌 상태였다. 하지만 나는 그 어느 때보다도 깨끗하고 맑은 정신이었다. 나는 망설임 없이, 그리젤을 향해 화살촉을 겨누었다. 놈의 양손에서 뿜어져 나온 검보라색 불덩이가 사납게 일렁거리다 나를 향해 달려들었다.
-탁.
나는 당겼던 시위를 놓았다.
-피요오오오오!
마치 휘파람 같은 아름다운 소리와 함께 화살이 바람을, 어둠을, 그리고 불길한 검보라색의 불덩이를 갈랐다.
-퍼억!!!!
그리고 그리젤의 심장에 명중한다.
“으, 으아아아아악!!!!”
“캬아아아아아!!!”
“히야아아아악!!!!”
내가 명중시킨 건 그리젤 하나였지만, 동시에 여럿의 목소리가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노인, 아이, 여자, 남자…….
사납게 일렁이던 불꽃은 천천히 사그라들기 시작했다. 나는 그리젤을 향해 다가갔다. 녀석의 눈과 코, 귀, 그리고 입에서 검은 진흙이 흘러나왔다. 나는 그 ‘검은 진흙’들이 비명을 질렀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젤.”
나는 한쪽 무릎을 꿇고 녀석의 턱을 붙잡았다.
“커헉! 컥……!”
그리젤은 끊임없이 진흙을 토하느라 제대로 된 말을 하지 못했다. 구멍이란 구멍에서 전부 검은 진흙이 흘러나오고 있으니 나를 보지도, 내 말을 듣지도 못하는 것 같았다. 나는 녀석이 그랬던 것처럼, 녀석의 머리에 손을 올렸다. [자연의 치유]를 사용하기 위해서였다.
그때였다.
-그만두세요…….
그리젤에게서 익숙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녀석은 검은 진흙이 묻어 있는 입으로 말을 이어 나가기 시작했다.
-더 큰 고통이 될 뿐입니다.
“……디안타 여왕?”
-네. 디안타라고 불러도 좋아요, 당신이라면…….
“여기에는 어떻게…….”
-그리젤과 저는 이어져 있어요. 거미줄처럼 얇고 연약한 연결이지만…….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
“꿈의 미로에서 하지 못했던 말, 지금 해 주시죠.”
-그리젤은…….
여왕은 조용한 목소리로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그녀의 말에 따르자면, 그리젤은 ‘꿈의 미로’에 들어올 수 있는 능력을 가진 다크 엘프였다. 그는 다크 엘프들에게 닥친 재앙을 막기 위해 ‘꿈의 미로’에 들어와 여왕을 만나려 했지만…….
그리젤이 마주한 것은 다크 엘프들의 끔찍한 과거와 부서진 영혼들뿐이었다. 꿈의 미로에 갇혀 있던 다크 엘프들의 ‘찌꺼기’는 그리젤의 영혼을 잠식하기 시작했고, 그는 그가 아니게 되었다.
-그리고…….
여왕은 잠시 말을 멈췄다. 그러자 그리젤의 몸이 꿈틀거리더니 곧 목구멍 너머로 보라색으로 빛나는 무언가를 토해 냈다.
“구웨에엑!”
-그리젤은 이것으로부터 그에게 필요한 ‘힘’을 얻었지요.
작은 구슬 같은 보라색의 무언가. 나는 그것을 집어 들었다.
‘이건…….’
새로운 활에서 느껴지는 힘과 비슷하다. 비교하기 위해 활과 구슬을 함께 들자, 신기한 일이 일어났다.
빛을 내며 떠오른 구슬이 화살에 파인 홈에 딱 맞게 들어간 것이다.
“…….”
대체 무슨 일일까, 고민에 잠길 틈도 없이 이번에는 그리젤이 피를 토하기 시작했다. 검은 진흙이 흐르던 심장에서도 피가 흘러나오고 있다. 죽음이 임박했다는 것이 느껴졌다.
-……당신에게 부탁하고 싶은 것이 있어요.
그리고 그리젤의 입을 빌린 여왕이 내게 속삭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