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genius guitarist RAW novel - Chapter 21
불타오르는 본선 (3)
첫 무대가 생각난다.
고등학교 3학년 봄 때던가?
한참 기타에 미쳐 있었던 나와 민수. 그리고 때마침 열렸던 청소년 음악 축제.
-야, 우리도 가서 후리고 오자.
-좋지.
둘다 콩쿠르는 커녕 바깥 활동 자체를 해본 적이 없었다.
기타는 그냥 치는 것만으로도 재밌었으니까.
전문적인 심사위원도 없고 그냥 투표로 인기 참가자한테 상품 등을 나눠주는 행사.
나는 그곳에 나갔다.
민수랑 둘이서 둘이 나갔다.
2년에 달하는 시간동안 미치도록 기타를 쳤는데, 실수를 연발했다.
꽤 괜찮은 기타 듀오 곡을 편곡해서 나갔는데 제대로 보여주지 못했다.
이게 내 밑바닥인가? 싶을 정도로 한 때 자괴감도 들었다.
하지만 관중들의 반응은 꽤 괜찮았다.
나는 그때 처음, ‘짜릿함’을 느꼈다.
파샷- 파샷-
카메라 플래시가 터져 나왔다. 나는 정면으로 응시하며 제대로 엄지를 치켜 올려 주었다.
“아주 ···아주 훌륭한 연주였습니다!”
사회자의 말에 나는 기타를 멘 채 꾸벅. 관중들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와~ 유산고 애들 잘한다···”
“쟤도 유산고야?”
“예고 애들보다 잘 치는데 ···?”
“우리 오빠 귀신들렸나봐 ··· 왜 잘쳐?”
만족스럽다.
아주 만족스러웠다.
‘다시 서니까 은근 떨리네.’
나는 왕창 손에서 뿜어져 나온 땀을 바지에 슥슥 닦았다.
“다시 보니까 좀 잘생긴 거 같아.”
비슷한 또래 여자애들이 조잘거리는 소리가 내 귀에 내리 꽂혔다.
어두운 조명과 그림자.
그리고 기타 소리.
여러 요소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그녀들의 시각을 마비시킨 것이다.
근데 기타창이 내 외모는 b라던데···
“잠시만요!”
아까 하민서와 같이 이곳에 온, 비싸 보이는 카메라를 들고 있던 남자.
그는 대뜸 단상 위로 달려왔다.
동시에 그를 따라서 마이크만 쥔 다른 남자도 올라왔다.
기자인가?
뭔가 얼굴이 기자상인데.
“소속과 이름 부탁드립니다.”
“유산고 1학년 8반 김수재입니다.”
“오오~ 이름도 수재네. 기타 친지는 얼마나 됐어요?”
“··· 20년이요.”
순간 정적이 흘렀다.
아 그냥 1년이라고 할 걸 그랬나?
아니야.
20년이라고 하나, 1년이라고 하나.
어떤 대답을 하든 재수 없기는 마찬가지다.
그러므로 그냥 유쾌함이라도 가져가는 게 낫다.
“하하하! 수재 학생은 농담을 잘하네요. 남들 20년 어치 정도로 열심 했다고 받아들이겠습니다.”
사회자도 갑자기 무대에 올라본 이들을 저지하기보다는, 맞장구를 치며 분위기를 띄웠다.
“이야, 심사단 분들 표정이 아주 좋은데요~ 한 방 먹었다는 느낌입니다.”
카메라를 든 남자는 멋대로 내 얼굴과 사회자의 얼굴, 그리고 심시단 아재들의 표정을 클로즈업하기 시작했다.
나 이제 유튜브에 올라가는 건가?
썸네일에 k-기타리스트의 미래 이런 식으로 쓰여서 말이야.
“자, 심사단 여러분들. 김수재군의 연주가 어땠나요?”
“하하, 이따 순위 발표에서 감평하겠습니다.”
“아이고~ 지금은 안 된다고 하네요. 그러면 기자님들은 밤 까지 멀뚱~ 히 기다리셔야겠는데요?”
하하하하하하-
웃음 소리가 들려왔다.
사회자의 재치 있는 멘트.
작은 대회는 이런 게 좋다.
격식 같은걸 차리지 않으니까 가볍고 재밌잖아.
“나중에 시간 되면 인터뷰해요. 유산고 맞죠?”
두 남자는 나에게 엄지를 척, 올리더니 자리로 내려갔다.
나 또한, 무대 뒤편으로 돌아갔다.
“자 여러분! 다음 일렉기타 참가자 모실게요! 예술고등학교의 김 ···”
엄청나게 긴장한 얼굴의 이름 모를 남학생.
예고 애구나.
그는 아주 날카로운 눈빛을 내비쳤다.
내가 앞 순번이라 비교당하게 생겼구만.
“열심히 해라~”
“어 ..어, 응···”
난 괜히 그를 다독였다.
“여~ 개쩔었는데~”
도현이가 손을 들어 올렸다.
짝-!
나는 그 손을 맞잡았다.
“너도 잘해라 임마.”
“와, 너 진짜 20년 친거 아니냐? 막 그런 거 있잖아. 전생 기억 가지고서 활약하는 만화.”
“만화 많이 보지 마라.”
“아니냐?”
“사실 맞아.”
“지랄노노.”
맞는데.
난 도현이가 본 만화가 문뜩 궁금해졌다.
“수재 대단해. 이거 봐봐···”
소이가 나에게 다가와 갑작스레 소매를 걷었다.
닭살 돋았네.
“엣헴.”
“너 진짜 뭐냐? 살다 살다 박수소리 그렇게 큰 건 처음 봤어.”
최유진이랑 성예린도 기가 찼다는 표정을 띄웠다.
고등학생 보정이다 이말이야.
재미 자체는 지하 클럽이 낫지만 이런 대회도 나쁘지는 않다.
실력을 제대로 평가해주잖아.
“하아 ···”
성예린은 면전에서 한숨을 토했다. 마치 똥이라도 마려운 듯한 표정이다.
진짜 똥 마렵나?
“김수재 너 마약했냐?”
“뭔 개소리야.”
“마약 하면 막 연주실력 오르고 그렇대잖아.”
마약살 돈 있었으면 비트코인에 다 갖다 박았지.
“하, 아니야. 그냥 잘 친다고 말한 거야. 나 7번인데 ···”
“나는 6번이야 ···”
성예린의 한숨 뒤에 소이가 말을 얹었다.
내가 진심을 다해 연주한 탓에, 다른 애들의 사기를 뺐어 버렸다.
··· 근데 뭐 어떻게 해줄 수 있는 게 없네.
“자자, 힘내고. 일렉기타 부문 2등을 노리자. 힘내라 힘.”
“아.”
성예린이 나를 죽일 듯이 쳐다본다.
100만 원과 수십의 장학금은 이제 내 거다.
깔끔히 포기하고 2등을 노리는 게 나을 터.
“그건 아직 모르는 거야.”
멀리서 생글생글 쳐다보고 있던 김태현이 기타케이스를 들고 이리로 향했다.
“아직 안 꺼냈어?”
“응. 소중한 거거든.”
“Esp기타가 비싸긴 하지.”
“Esp 아닌데?”
그럼 뭔데?
난 괜히 궁금해 졌다.
하드케이스 겉면에는 아무것도 적혀 있지 않았다.
-다음 연주자는 유산 고등학교 1학년 8반의 백소이 학···
“소이야 부른다.”
“아, 응.”
“적당히 긴장하고. 긴장을 아예 안 하는 건 불가능하니까.”
“고마워 ···”
소이는 환하게 웃었다.
얘는 원래 대회 경험이 있었지.
그러면 좀 나을 거다.
나는 무대 뒤편에서 빠져나와 소이의 얼굴을 볼 수 있는 가장자리로 향했다.
객관적으로 소이는 귀엽게 생겼다. 옅은 화장이라도 했는지, 오늘따라 일자 앞머리가 더욱더 빛을 발하는 것 같았다.
소이는 ceora를 연주하기 시작했다.
재즈 기타의 필수 카피곡이다.
원래 통기타를 치던 애라서 그런지 오른 손가락 활용을 꽤 잘한다.
‘버징은 좀 사라진 것 같네.’
곡을 봐달라고 했을 때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지적을 했다.
소이는 기분 나쁜 기색 하나 없이 그것을 모두 받아들였다.
어린아이의 뇌는 스폰지 같다고 하지 않나.
딱 그런 느낌이다.
그 다음은 ··· 성예린인가.
관심 없다.
그리고 ···
최유진.
Here’s that rainy day 재즈곡.
난 솔직히 재즈곡을 잘 안 친다. 재즈 스타일 연주를 안 하는 건 아니지만, 그건 그냥 재즈가 끌릴 때 스케일을 후리는 것뿐.
하지만 이 곡은 꽤많이 들었기에 잘 안다.
나는 진땀을 빼며 최유진을 위해 톤을 만들었다.
깁슨 레스폴 특유의 두꺼운 클린톤. 최대한 몽글몽글하면서 부드럽게 만드는 게 상당히 고역이었다.
그리고 그 고역의 대가가 지금 나왔다.
“오, 소리 좋은데요?”
“고등학생들은 톤 메이킹실력이 떨어지는 경우가 많은데··· 이건 진짜 딱 들어맞네요.”
나는 심사단원들이 하는 말을 훔쳐 들었다.
당연하지. 프로가 대가리 깨져가며 만든 톤이다.
최유진은 몇몇 실수를 했다.
하지만, 자세히 듣지 않는 이상에야 크게 거슬리지는 않는다.
기타에 대한 전문성이 없는 청중들은 눈치채지 못할 수준.
짝짝짝짝-
곡이 끝났다. 나는 다른 사람들보다도 힘차게 박수를 쳤다.
최유진과 눈이 맞았다.
쟤도 웃으니까 예쁘네.
나는 대기실로 돌아갔다.
“하아. 죽는 줄 알았어. 소이 넌 괜찮아?”
“으응 .. 나도 심장 떨려.”
“난 너희 실수할까봐 머리카락 빠지는 줄 알았다.”
“무슨 우리 선생님이야?”
“반쯤은 그렇지.”
둘 다 내게 가르침을 받은 제자들이다.
프로한테 배우는 건 비싸다.
무료로 해주니까 얼마나 좋아.
최유진 다음 순번부터 김태현 전까지는 일반고나 예고 애들이었다.
본선까지 올라온 만큼 다들 그냥저냥 적당히 잘 친다.
하지만, 단 한 명.
유난히 박수소리가 컸던 애가 있었다.
나는 성예린에게 다가가 물었다.
“쟤 누구냐?”
“쉿. 선배야. 나도 잘 몰라···”
성예린의 머리칼이 옅은 갈색수준이라면, 저건 진짜 북유럽에나 볼 법한 블론드색이네.
키도 최유진보다 크고.
근데 서양인처럼 생기지는 않았다.
“갔다 올게.”
“이제 네 차례구나.”
김태현이 끝 번호였다.
이게 대회 측에서 노린 건지, 아니면 우연의 일치인지는 모르겠다.
아무래도 얘가 얼굴이 제일 잘 생겼고, 실력도 괜찮으니 일렉기타 피날레로 선정 된 게 아닐까.
그냥 내 뇌피셜이다.
덜컥-!
하드케이스에 달린 자물쇠를 김태현은 낑낑대며 풀었다.
얼마나 심이 굵은 거야. 자물쇠만 들고 다녀도 운동 되겠다.
“후.”
김태현은 케이스를 열었다.
그곳에 들어있던 것은,
“와, 태현이 그 기타 오랜만에 본다~”
“그치?”
텔레캐스터였다.
헤드에 큼지막한 글자로 TELECASTER 라고 적혀 있는, 70년대의 고유 디자인.
하지만 뭔가 이상했다.
위화감이 들었다.
“야 너 ···”
“응? 왜?”
“아니 그거···”
“기타가 좀 낡았지?”
아니 낡은 게 문제가 아니야.
“네가 그걸 왜 들고 있어?”
“···응? 내 거니까? 아, 나중에 이야기하자.”
김태현은 멀티이펙터와 기타를 들고 진행요원을 따라갔다.
꿀꺽, 마른침을 삼켰다.
나는 저 기타를 알고 있다.
원래는 하얀 메이플 넥이 완전히 시꺼멓게 그을린, 저 불길한 모습의 기타를 말이다.
“김수재 왜 그래?”
최유진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똥 마렵냐? 식은땀 나네.”
나는 어느새 송글송글 땀이 맺힌 이마를 닦았다.
“아, 아니야 괜찮아.”
“수재 갑자기 안색이 안 좋아졌어 ···”
‘번개 맞은 기타.’
아주 유명한 기타다.
지금도 유명한 미국의 모 밴드 기타리스트가 저걸 사용하다 팔이 부러지고,
그걸 구입한 다른 기타리스트가 쓰다가 다리가 부러지고,
기분 나쁜 일이 반복될수록 가격이 천정부지로 솟는 이상한 기타.
“··· 야, 성예린.”
“응? 왜?”
“저거 뭐냐?”
“아 저거? 태현이 아버지 친구의 사촌동생이 기타 치다 번개 맞은 거래.”
“··· 진짜?”
“몰라.”
···
번개맞은 기타의 전설은 한국에서 시작되는 거였구나.
나는 정신이 대략 멍해졌다.
저거 소문 진짜 안 좋던데.
나는 줘도 안 칠거다 절대로.
이걸, 김태현에게 알려 줘야 할까.
소중히 여기는 것 같은데.
그런데 저 기타가 ··· 왜 유명 밴드의 손에 넘어가게 되는 거지?
“나 왔다.”
대기실 문이 활짝 열렸다.
그곳에는,
“꺄아아악!”
“어우 씹 뭐야!”
상의탈의 한 도현이가 있었다.
여자애들은 누구 하나 할 것 없이 눈을 가렸다.
얘가 몸이라도 좋으면 모르겠는데 그냥 흔한 고등학생 체형 1이다.
“뭐긴 뭐야. 베이스는 옷 벗고 쳐야 좆간지.”
“미친새끼 ···”
진짜 개병신이다.
얼마나 병신인지 깊이를 알 수가 없다.
때마침 무사히 연주를 끝마친 김태현이 돌아왔다.
별거 아니었다는 듯 산뜻한 얼굴이다.
하지만 도현이의 상반신을 보고 곧바로 표정을 굳혔다.
“도현아 …?”
“야, 말리지 마. 얘는 진짜 병신이야.”
나는 대기실에서 노가리를 까다가 도현이의 연주를 구경했다.
진행요원이 저지했기 때문에 도현이는 상의탈의를 한 채로 무대에 오르지는 못했다.
어쩌다 마주친 그대 편곡 버전.
인터넷에 올라가 있는 슬랩 버전이랑은 상당히 다른, 멜로디가 섞여 있는 도현이의 오리지널.
꽤 잘 친다.
특히, 중 장년층에게 아주 반응이 좋았다.
피아노, 바이올린은 그냥 눈팅만 했다.
피아노는 칠 줄 안다. 잘 치지는 않고 조금. 야매로 배운 거라 실력은 그냥 그저 그렇다.
마침내,
“이어서 수상자 발표와 심사단의 감상평이 있겠습니다.”
이미 해가 다 저물어버린 시각.
여러 악기를 연주하는 대회이다 보니, 시간을 꽤많이 잡아먹었다.
관중은 이미 내가 연주했을 때보다는 훨씬 줄어 있었다.
“각 부문의 수상자를 발표하겠습니다.”
참가자들은 무대 뒤편에서 숨을 죽이며 기다렸다.
소이는 긴장되는지 발을 동동 구르고, 성예린은 기도하듯 손을 모았다.
“클래식기타 부문 1등은 ···”
멀찍이 떨어져 기대어 있는 하민서가 보인다.
“김병태입니다!”
하지만, 1등은 예고 애였다.
뭐, 하민서 너도 잘 치긴 잘 친다.
고등학생 기준으로 말이다.
하민서는 ‘2등’ 이라는 명예의 부름을 받고서 단상 위로 튀어 나갔다.
수상을 함에도 잔뜩 굳어있는 표정.
좀 펴라. 상 받는데.
찰칵 찰칵-
플래시 라이트가 쏟아진다.
중간에 자리를 비웠던 유튜버는, 어느새 열나게 하민서를 찍어대고 있었다.
“자, 다음은 일렉기타 부문입니다. 1등 김수재.”
그럴 줄 알았지.
알았던 게 아니라 어찌 보면 당연하고, 치사한 일이다.
마치 애들이 모래로 소꿉장난하는데 내가 굴삭기 들고 전부 파버린 격이다.
가슴속에서, 미미한 미안함이 올라왔다.
“··· 수재야. 잘 갔다와.”
“크응 ··· 예상은 했어.”
“고마워.”
“나도 곧 올라감.”
“어 그래~”
나는 친구들의 축하를 받으며 단상 위로 향했다.
어머니 아버지도 중간에 어디 나갔다 오셨는지 얼굴이 번들번들하다.
나 빼고 고기라도 드셨나?
김세연 날 두고 고기 먹다니 용서 못 한다.
집에 가서 개때릴거다.
“1등 김수재 학생에게는 상금 100만원과 5월 ‘전국장학경연대회’ 출전권이 부여됩니다.”
난 상품권 그림이 그려진 판때기를 잡고, 미소를 지으며 사진을 찍었다.
관객석 맨 앞자리에 있던 중년 남성 한 명이 일어났다.
익숙하다.
아주 익숙한 얼굴이다.
저 짧은 스포츠머리.
예선에서 봤던 거 같은데.
“심사단원의 연주평가가 있겠습니다.”
스포츠 머리 중년 남성은 고개를 살살 저으며 입을 뗐다.
“김수재 학생에 대한 평가 ··· 를 내리기가 참 난감했습니다.”
그는 태블릿 pc를 보고 내용을 읊듯이 말했다.
“곡 자체는 아주 고난이도의 기술이 들어간 곡이 아닙니다. 나온지가 2년 정도 되었으니 아주 모던한 성향의 선곡이었습니다.”
모던하다.
인정한다.
2014년에 발표된 곡이 모던하지 않으면 대체 뭐가 모던할까.
“속주곡을 친 학생들도 많았지요. 하지만, 곡 자체를 ‘재현’하고 ‘표현’하는 능력이 김수재 학생은 특히 남달랐습니다. 곡을 배우며 놓칠 수 있는 미묘한 포인트를 단 하나도 실수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손가락으로 태블릿을 쓸었다.
“연주함에 있어서 자기 자신의 감정을 잘 표현하고, 특유의 구르브를 만들어 내었습니다. 1등 금상을 받을 자격이 충분합니다.”
나는 관객들을 둘러보았다.
다들 그게 다야? 라는 표정을 띄우고 있었다.
이전 심사평은 좀 더 길었나?
“아 저··· 심사단원님, 감평 부분이 좀 짧지 않나요 ···”
사회자가 물었다.
“다 했습니다.”
심사위원은 딱 잘라 말했다.
이게 다다.
더 없다.
“여기서 꼬투리 잡으면, 제가 속 좁은 사람이 될 것 같아서 그만합니다. 도저히 고등학생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실력입니다.”
스포츠 머리 남성은 말을 끝마치고서 자리에 앉았다.
“··· 찍었지?”
“야, 이게 더 조회수 많이 나오겠는데. ‘신나게 지적하던 심사관이 실력자를 앞에 두자 벌어진 상황’ 어때?”
“제목이 너무 구린데 ···”
카메라는 나를 향해 있었다.
기자와 유튜버처럼 보이는 남자 둘은 자기들끼리 속닥속닥 이야기하기 바빴다.
“와 ··· 아까 전에는 되게 독하게 말하더니.”
“지적을 아예 안 하네 ···”
관중들은 놀랍다는 듯이 다시하여금 나를 쳐다보았다.
역시 프로는 프로를 알아보는 걸까.
저 사람도 아마 프로일 거다.
회귀전에 마주친 적이 없어서 잘은 모르지만, 왠지 그리 느껴졌다.
2등은 당연히 김태현이었다.
그리고 3등은 ···
“3등 백소이.”
이거, 유산고가 다 해먹는 거 아니야?
내가 회귀하는 바람에 밸런스가 무너져 버린 건가.
차례차례 다른 참가자들도 단상에 올랐다.
스포트라이트가 우리를 감쌌다.
그중에서도 가장 빛나는 것은 나··· 는 아니고.
바이올린 켜는 여자애였다.
나는 뭐 2위쯤 되네.
하민서가 나를 노려본다.
공동 수상이란 게 이런 건가 ···
지금 있는 내 자리가 원래 자기 거라는 건가.
‘가장 인상 깊었던’ 연주자 셋이 제일 앞자리에 선다.
사진빨이 잘 받는 위치에 말이다.
나, 예고생, 바이올린 여자애1 셋은 각자의 악기를 들어 보였다.
하민서가 나를 모질게 대하지 않았더라면 약간의 양심의 가책 따위를 느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녀는 내게 업보를 너무 많이 쌓았다. 미안한 마음은 하나도 들지 않았다.
나는 학생들의 수상소감을 들으며 지루함을 참아냈다.
도현이는 베이스 3등이다. 1, 2등은 둘 다 예고생이네.
도현이는 만족스러운 듯한 표정을 얼굴에 띄웠다. 얘도 꽤 열심히 했으니 상받을 자격은 충분···
“와 개 막 만든건데 이걸 3등하네.”
이게 재능충이란건가?
그래도 병신이란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열정적이면서도 지루한 콩쿠르는, 오후9시가 되어서야 끝났다.
“야, 너무 풀 죽지 마라.”
내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최유진을 다독이는 것이었다.
“응? 내가 왜 풀 죽어?”
“풀 죽어야 정상 아니야?”
“아닌데? 나 5등 했어··· 봐봐.”
최유진은 작은 상품 하나를 꺼냈다.
“이거 하나에 10만 원은 할 텐데. 본전 넘게 뽑았다. 히힣. 아예 망할 줄 알았는데 네 덕이야. 고마워!”
회귀전 최유진은 과연 어땠을까.
톤도 잘못 잡고, 긴장 때문에 실수도 하고. 완전 개 박살이 나지 않았을까.
내가 처음 실용음악 학원에 갔을 때처럼.
“축하한다.”
“축하는 무슨~ 네가 더 축하받아야지.”
저 멀리서 부모님과 동생이 달려온다.
“우리 아들!”
나는 부모님을 안아 드렸다.
여동생도.
“우리아들 상 받은거 사진 찍었지 여보? 액자에 넣어서 거실에 걸어 놓아야겠어.”
얼굴에 웃음 꽃이 피는 부모님.
오랜만에, 어머니께 치킨을 먹고 싶다 떼를 써보았다.
진짜 오랜만에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