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genius interpreter RAW novel - Chapter (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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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 통화는 꽤 길게 이어졌다.
얼굴 보고 안부만 전하겠다던 본래 의도는 잊어버렸는지, 하늬와 레아 사이에는 대화가 끊어지질 않았다.
“어, 내가 지난번에 그랬잖아? 여기서 기획하는 시리즈 중에···.”
때로는 일 얘기가 되기도 하고.
– 맞아요 언니. 연호도 딱 그 맘때쯤 그랬거든. 근데 진짜 육아는 시간이 지나야···.
때로는 아이들 이야기가 되기도 했으며.
“너네 진짜 올해 영국으로 안 올래? 오면 내가 같이 다니면서 가이드해줄 수 있는데.”
매번 그렇듯, 언제쯤 직접 만나 회포를 풀 수 있을지 기대감을 놓지 않으며 대화는 마무리되었다.
“그래, 잘 지내고. 응응, 찬영이 너도 잘 지내고···.”
그렇게 길고 긴 통화를 마친 뒤, 하늬는 약간 상기된 얼굴로 성원을 돌아보았다.
“왜 그렇게 멍하니 있어?”
“어?”
그 어느 때보다도 신이 난 아내의 얼굴을 발견한 추성원은 저도 모르게 미소 지었다.
“아니, 그냥. 갑자기 이래저래 옛날 일이 생각나서. ···에이전트 시험 합격했을 때 말이야.”
“우리 성원 씨 인생 최고의 순간 말이지?”
하늬의 말에 성원은 일순 눈을 크게 뜨더니 이내 고개를 저었다.
“최고의 순간까지는 아닌데.”
“그럼 언제가-”
“니가 런던에 왔을 때. ···여름에 말이야. 기억나지?”
“···.”
성원의 말에 하늬의 얼굴이 붉어졌다.
“난 그때가 가슴 철렁한 순간이었는데.”
“가슴이 철렁하다니?”
“음.”
뜻 모를 소리를 낸 송하늬는 이내 몇 년 전을 돌이켜보기 시작했다.
*
통대를 졸업한 직후, 그녀는 우연치 않은 계기로 전문 너튜버의 길에 들어섰다.
처음만 해도 그저 취미로 좋아하는 영상을 만들어 올리려는 정도였지만.
[영상 업로드 1주 만에 조회수 몇 만 돌파··· BJ 쏭하의 인기 비결은?] [너튜브 채널 ‘쏭하의 덕질연구소’, 심상치 않은 성장세] [BJ 쏭하, ‘찬영이 친구’에서 2030을 대표하는 너튜브 방송인으로 자리잡다]시작은 운이 좋았다고밖에는 말할 수 없었다.
찬영에 관한 덜 알려진 사실들을 정리해주는 영상으로 스타트한 덕분에, 그녀의 채널은 처음부터 찬영의 팬들에게 많은 관심을 받았으니까.
그러나 너튜브의 세계는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것을 그녀는 잘 알았다.
타인의 유명세에 편승하는 것은 잠시뿐.
흥미로운 컨텐츠가 꾸준히 올라오지 않으면 금세 인기가 사그러들기 일쑤가 아닌가.
‘그리고 꾸준함이라면, 어느 누구보다도 자신 있는 분야이고 말이지.’
송하늬는 통번역 프리랜서로 일하는 한편 너튜브 컨텐츠를 꾸준히 생산했다.
‘덕질연구소’라는 채널명에 맞춰 평소 자신이 깊이 있게 덕질했던 소설이나 만화, 영화 따위를 주제로 삼았는데, 여타 리뷰 전문 너튜버들과 차이점이 있다면.
– 안녕하세요 쏭하예요! 오늘은 드래곤볼을 리뷰해볼 건데요···.
다름 아닌, 해당 작품의 등장인물로 분장한 채 리뷰를 진행하는 것이었다.
[아니 부르마를 하실 줄 알았는데(충격)] [ㅋㅋㅋ 쏭하 님··· 지금 초사이어인 버전 맞죠?] [머리··· 저 머리 대체 어떻게 세운 거지]들어가는 비용을 줄이고자 동영상도 직접 편집하는 것은 물론.
의상까지 본인이 직접 만들어 입은 채로 리뷰하는 그녀의 영상은 점점 더 많은 구독자를 확보하게 되었고.
이후 영어 자막을 넣거나, 아예 영어로 된 컨텐츠를 제공하게 된 후에는 그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물론 부침도, 우여곡절도 있었지만.’
조회수의 오르내림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묵묵히 한 지 몇 년째, 어느새 백만 구독자를 달성하게 된 날.
추성원에게서 전화가 왔다.
– 쏭하야, 축하한다. 백만 구독자 달성했다며? 크으, 골드배지 받겠네.
“흐흐, 고맙다 추야.”
추성원은 그 후로도 그녀를 계속해서 추켜 세웠지만.
따지고 보면 본인은 송하늬 이상으로 승승장구를 거듭하는 중이었다.
장요한의 개인 통역사 겸 프랑스어 선생님으로 마르세유로 간 지 2년 만에 정식 에이전트 자격증을 취득했는데.
기존 에이전시와의 계약이 종료된 장요한은 물론, 올랭피크 드 마르세유 구단의 몇몇 스타 선수들과 기념비적인 첫 계약을 맺었다.
그리고 3년 뒤.
장요한의 맨유 이적을 성사시키며 자신의 몸값을 한 차례 더 높이기에 이르렀으니.
“너야말로 눈 코 뜰 새 없이 바쁜 거 아냐? 어째 연락할 시간이 났니.”
– 야, 내가 아무리 바빠도 전화 한 통 할 시간이 없겠냐.
두 사람은 통대를 졸업한 후에도 꾸준히 연락을 이어간 터였다.
못해도 한 달에 한 번은 꼭 통화를 하고 지냈을 뿐더러.
추성원은 장 선수를 따라 원정을 나갈 때마다 그곳의 뭔가를 사서 송하늬에게 선물로 보내곤 했다.
어디 그뿐인가, 1년에 한 번은 꼭 한국에 들어와 그녀를 만나고 갔으니.
– 아 뭐 축하도 그렇지만, 너 전에 장요한 선수 취재하고 싶다고 하지 않았어?
“···헐, 야, 설마.”
– 흐흐, 이번에 장 선수 한동안 휴식 들어가거든. 이 틈을 타 잠깐 취재하고 가지 그래.
“추야 완전 고마워! 니가 최고야!”
송하늬의 런던행은 그렇게 갑작스레 결정되었다.
‘장요한 선수를 취재하게 해준다니.’
여태껏 너튜브 촬영에 단 한 번도 응한 적이 없는 선수가 아니던가.
게다가 추성원이 직접 공항까지 마중 나온다는 얘기에 송하늬는 그저 감사할 따름이었다.
‘십년지기가 좋기는 좋구나.’
그래.
분명 성원과 자신은 그저 ‘찐친’일 뿐이라고 굳게 믿던 그녀였지만···.
런던 히스로 공항의 입국장.
“오, 쏭하다.”
반가운 목소리에 뒤돌아본 순간, 송하늬는 잠시 멈칫하고 말았다.
‘추가··· 저렇게 생겼던가?’
작년 여름 한국에서 마지막으로 봤을 때만 해도 보통 키에 평범한 체격, 조금은 흐릿한 인상을 지닌, 분명 자신이 아는 추성원이었는데.
‘지금은··· 좀 다른 느낌이네.’
송하늬는 제게로 저벅저벅 걸어오는 추성원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얼굴과 체격 자체는 전과 변함이 없는 것 같지만 옷차림과 헤어스타일이 달라져서일까.
어딘가 덥수룩했던 예전과 달리, 머리 옆쪽을 짧게 치고 포마드로 깔끔하게 빗어넘긴 추성원의 모습이 낯설고도 신선했다.
전에는 스포츠 유니폼이나 트레이닝복을 즐겨 입었지만.
오늘은 웬일로 캐주얼한 셔츠에 슬랙스를 받쳐 입었는데, 깔끔하게 떨어지는 라인 때문인지 유난히 훤칠해 보였다.
“···잘 지냈어?”
“나야 잘 지냈지. 하늬 넌?”
“나도 뭐···.”
그 탓일까.
“음, 오늘 무슨 공식 일정 있어? 근사하게 차려입었네.”
저도 모르게 살짝 긴장한 채로 말을 건네자 성원 또한 조금 뻣뻣하게 대꾸했지만.
“어, 으··· 그래? 나 좀 괜찮아 보여?”
“어. 좀 사람다워 보이네.”
“야, 그럼 지금까진 사람 같지 않았단 거냐?”
둘 사이에 잠시 흐르던 어색한 기류는, 그녀의 농담 한 마디로 순식간에 사라져버렸다.
“송하늬 너도 전보다 좀 더 봐줄만해졌네.”
“봐줄만은 뭐야, 전에는 차마 못볼 꼴이었나 보지?”
“뭐 그 정도는 아니고, 너무 극단적으로 나가지 말자고.”
두 사람은 서로를 돌아보며 낄낄거렸다.
···그래, 이래야 나랑 추답지.
송하늬는 그제야 침착을 되찾았다.
그리고 그런 감정을 느끼는 것이 자신뿐이 아니라는 것을, 당시의 그녀는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
호텔에 짐을 맡기고 나오자 성원은 식사부터 하자며 그녀를 어느 조식 전문 카페로 데려갔다.
“친한 선수가 추천해준 곳이거든.”
무려 로컬 추천이라며 호들갑을 떠는 성원.
그녀가 메뉴 결정을 마치자 웨이터를 불러 익숙한 태도로 주문을 했다.
“···너 영어도 되게 잘한다?”
영국식 액센트가 느껴지는 성원의 유창한 영어에 송하늬가 잠시 감탄하며 말하자.
추성원은 의기양양한 얼굴로 어깨를 으쓱했다.
“몰랐어? 내가 원래 좀 언어 천재거든.”
“이런 말만 안 하면 좋을 텐데.”
“이런 말을 안 하면 내가 추성원이 아니지.”
그의 너스레에 하늬는 풋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어쩜 시간이 흘러도 변함이 없네.’
통대를 졸업한 지 몇 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변함없는 우정이란 얼마나 좋은 것인지.
한껏 들뜬 채 주변을 둘러보자, 오랜 세월이 느껴지는 카페 내부가 눈에 들어왔다.
화려하기보단 아담하고 소박하며 어쩐지 정겨운 느낌.
“기대되네.”
“음, 맛은 너무 기대하진 마. 그냥 현지인들이 간단히 아침 때우러 오는 곳이라니까···.”
이윽고 주문한 영국식 조식이 나왔다.
서니업사이드로 주문한 달걀 프라이, 구운 토마토와 베이컨, 베이크드 빈, 거기에 밀크티를 곁들인 단출한 구성이지만.
“맛있는데?”
“오 정말?”
“난 5일 내내라도 먹을 수 있을 듯.”
“크크, 그건 무리일 것 같은데?”
참고로 말하자면, 송하늬는 런던에서만 5일을 머문 뒤 카디프로 이동할 계획이었다.
···순전히 닥터후 박물관을 방문하겠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장 선수 인터뷰는 내일 하겠다고 했고, 오늘은?”
간단한 식사에 홍차까지 마신 뒤, 일정을 묻는 추성원에게 송하늬는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오늘은 내가 알아서 돌아다닐 테니까 신경 쓰지 마. 그냥 적당히 관광하고 쇼핑이나 하려고-“
“신경을 안 쓰다니, 나 사흘간 연차 낸 거 알지?”
“왜?”
“왜긴 왜야, 너 가이드해주려고 낸 거지.”
“···.”
송하늬는 잠시 눈을 크게 떴다가 이내 장난스레 대꾸했다.
“에이전트 추 완전 바쁘신 몸 아니었어?”
“거럼 거럼 완전 바쁘지. 엄청난 대접이란 거 잊지 말고, 그래서···.”
어디부터 가고 싶냐, 라는 성원의 물음에 하늬가 외치듯 답했다.
“해리포터 박물관!”
“···너답네 너다워.”
*
두 사람은 곧바로 해리포터 스튜디오로 출발했다.
지하철을 타고 기차를 타고 거기서 또 셔틀을 타야 하는 거리였지만.
“완전 대박!”
눈앞에 펼쳐진 스튜디오의 전경에 송하늬가 감격의 탄성을 내질렀다.
두 눈을 반짝이며 감동하는 그녀를 가만히 지켜보던 성원이 한마디했다.
“근데 너 진짜로···.”
“응?”
“그 차림으로 돌아다닐 거야?”
방금 전, 잠깐 화장실에 들렀다 나온 송하늬는-
그리핀도르 교복을 입은 채였으니 말이다.
“왜, 안 어울려?”
“아니 되게 잘 어울리긴 하는데···.”
변함없이 날씬한 몸매에 주먹만 한 얼굴.
귀엽고 오밀조밀한 이목구비 덕분인지 여전히 어려 보이는 그녀는 제 의상을 완벽히 소화해내는 중이었지만.
‘솔직히 말하면 아주 귀엽고 말이지.’
그러한 감상과는 별개로, 피부로 와닿는 외부인들의 시선이 몹시 불편했다.
그녀를 대놓고 흘끔거리는 것은 물론 폰카메라로 찍는 사람들도 있었으니까.
추성원은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
“아무리 방송을 위해서라지만 부끄러운 건 어쩔 수가 없구나.”
“뭐래. 난 이제 아무렇지도 않은걸.”
“너야 그렇겠지.”
···첫 방송부터 두자와 코스프레를 했던 그녀에게야 호그와트 교복은 평상복 수준이겠지만 말이다.
여하튼.
둘은 즐겁게 돌아다녔다.
“안녕하세요, 쏭하예요. 오늘은 앞서 예고한 대로! 런던의 해리포터 스튜디오를 방문했는데요···.”
교복을 입은 채 영상도 부지런히 찍고.
영화 세트장도 구경하고, 실제 배우들이 입었다는 의상도 살펴보고.
마지막으로는 기념품샵에 들러 이것저것 사가며 ‘탕진잼’을 즐겼다.
“꺅, 개구리 초콜릿 너무 귀엽다!”
“이거 봤어? 온갖 맛이 나는 젤리인데. 너 하나 먹어볼래?”
“···웩.”
“헐, 설마 귀지 맛 먹은 거야?”
그렇게 관광을 마친 뒤에는 호텔 근처에 있는 어느 펍에 들렀다.
“영국에서 먹어서 그런가, 생맥주 맛이 다르네.”
“나랑 먹어서 그런 건 아니고?”
“···뭔 소리래.”
오늘 일을 비롯해 통대 다닐 당시까지, 몇 년의 기억을 샅샅이 훑어가며 이야기를 나눴다.
추억이야말로 그 무엇보다도 훌륭한 안주거리였고, 두 사람은 에일로 출발해서 라거, 진저비어, 기네스 등 다양한 종류의 술을 섭렵했다.
홀짝 홀짝.
목구멍을 넘어가는 술이 어찌나 달던지.
‘몇 시까지 마셨더라.’
12시를 훌쩍 넘기고 새벽까지도 신나게 마시다가···.
“기억이 영 안 나네···.”
그렇게 중얼대며 눈을 뜬 순간, 송하늬는 시야에 들어오는 낯선 천장에 일순 깜짝 놀랐다.
‘···!’
여기는 분명 자신이 투숙하는 호텔 객실인데···.
저도 모르게 벌떡 상체를 일으킨 순간, 몸을 감싸고 있던 이불이 흘러내렸고.
“···어?”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자신의 상태를 확인하고는, 잠시 이성이 마비되고 말았다.
그와 동시에 머릿속을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는 전날의 기억.
비틀비틀거리는 자신을 부축해 객실까지 데려와준 추, 그리고 그런 추를 충동적으로 안으로 잡아당기던 자신의 모습이···.
‘망했다!’
송하늬는 얼른 이불을 끌어올린 뒤 옆을 돌아보았고, 역시나 거기에는···.
“어, 음, 잘··· 잤어?”
자신처럼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채, 이제 막 잠에서 깨어난 추성원이 있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