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knight in a fantasy novel RAW novel - Chapter 124
124. 부마의 자격
“부, 뭐요?”
뜬금없는 것을 넘어서 어처구니없는 이소레타의 말.
‘잊고 있었다. 원작에서 얘도 발암은 아니지만 정상은 아니었지…….’
“안 돼!”
그때, 이소레타의 말에 로니아드 뒤에 있던 앨리스가 외쳤다.
앨리스의 외침에 이소레타가 고개를 갸웃하더니 물었다.
“뭐가 안 된다는 거지, 후작 영애?”
“그, 그건…….”
앨리스가 마저 말을 잇지 못했다.
“너는 눈앞의 남자를 연모하나?”
황녀의 거침 없는 말이 뚝뚝 이어진다.
“그렇다면 첩으로 들어오는 것까지는 허락할게.”
“처, 처어업?!”
“불쾌하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어쩔 수 없어. 그대는 일개 귀족 영애, 군주나 왕족이 아니야. 첩으로 만족해. 대신 잠자리는 영애에게 더 많이 양보하지.”
이소레타의 당당하고 초현실적인 발언.
“허, 허어……!”
앨리스는 기가 막히는지 말을 잇지 못한다.
“이봐, 황녀님? 내가 무슨 물건도 아니고…….”
보다 못한 로니아드가 나서자, 이소레타가 뭐가 문제냐는 눈으로 고개를 갸웃했다.
“싫은가? 왜지? 내가 못생겼나?”
“아니, 못생긴 것은 아닌데…….”
눈앞의 황녀를 보고 못생겼다고 한다면 눈알을 뽑는 게 낫지.
“내가 취합한 정보대로라면 그대는 굉장히 여자를 밝혀. 즉, 그대가 나를 거절할 이유는 전혀 없어.”
“…….”
생각해 보니 너무 맞는 말이라서 대답할 말이 없었다.
“하지만 결혼은 좀 다른 거야…….”
간신히 뱉은 로니아드의 소심한 변론.
“렌슬렛의 여공작과 아르미다츠 왕녀 때문인가? 나는 관대하고 이해심이 많다. 여공작은 군주이니 두 번째 부인 자격을 허락하지. 하지만 왕녀는 몰락한 왕족이니까 후작 영애와 함께 첩의 자리를 배정하겠어.”
“그게 아니라…….”
“오스카의 여왕과 브리기트라는 시녀 때문이야? 오스카 여왕과는 사촌 관계라고 들었는데, 흐음, 근친이라……. 그대는 정말 호색한이네.”
이소레타의 무시무시한 발언에 로니아드는 식겁하면서 반박했다.
“아스카, 걔랑은 아무 관계 아니거든!!”
“하긴, 근친은 실례되는 말이기는 하지.”
이상한 방향으로 황녀가 넘겨짚은 거 같아 심히 억울했다.
“오스카의 여왕은 세 번째 부인으로, 전속 시녀는 세 번째 첩으로 허락할게.”
벌써 언급된 부인만 황녀를 포함해 세 명, 첩도 세 명이다.
문제는 이게 끝이 아니라는 것이다.
드라센 제도에 있을 세이렌까지 생각하니…….
‘이렇게 들으니까 여자관계가 엄청 복잡하네?’
로니아드는 이소레타의 말을 들을수록 지구에서의 도덕 관념으로 자신이 굉장히 쓰레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면 정말 내가 마음에 안 드는 것인가?”
이소레타의 표정이 살짝 시무룩해진 것은, 보는 이의 기분 탓일까?
“내가 제복을 입은 게 마음에 안 드나? 카디나라는 여기사와는 잘만 다니지 않았나?”
이소레타는 입고 있던 붉은색 기사 제복을 만지작거린다.
‘도대체 나에 대해 어디까지 조사한 거야?!’
이소레타가 알고 있는 정보에 로니아드는 두려움마저 느꼈다.
“……도대체 여자관계가 어떻게 된 게!”
그의 뒤에 있던 앨리스 또한 싸늘한 목소리로 로니아드 등을 작은 주먹으로 쿡쿡 찌른다.
막연히 로니아드의 여자관계가 복잡하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황녀의 입에서 로니아드의 추악한(?) 진실이 구체적으로 나오자 앨리스는 기분이 나빴다.
다 알지만 외면했던 사실을 직면하게 된 기분이다.
‘이 남자를 온전히 소유할 수 없다는 것은 각오하고 있었지만…….’
이 세계는 몬스터와 전쟁이 흔하기에, 남자의 인구가 보편적으로 적다.
남자가 여유만 있으면 일부다처제가 오히려 권장되는 세계다.
앨리스 또한 로니아드에게 다른 여자가 두셋 있는 것까지는 넘어가려 했다.
물론 그 두셋은 이노와 제인 같은 자신이 인정한 여자여만 했고.
하지만 실상은 아니었다.
눈앞의 이 남색 머리 남자는 자신의 잘난 외모와 능력을 너무 잘 활용했는지, 그녀가 인정할 수 있는 수준보다 더 많은 여자들과 관계를 맺었던 것이다.
‘무슨 왕도 아니고!’
앨리스의 살벌한 시선을 느끼면서 로니아드는 ‘그래도 세레나데랑 세이나 얘기는 모르나 보네?’라며 살짝 안도했다.
‘그나저나 이소레타, 원작에서 봤던 것보다 더 밝은 느낌이 드는군.’
원작의 이소레타는 눈앞의 이소레타와 비슷하면서도 차이가 있었다.
이소레타는 설정상 황궁에서 늘 독살 위협에 시달리고 그녀를 제대로 가르쳐 줄 사람조차 없어서 사회성이 많이 결여된 황녀.
그랬기에 원작서도 현실 감각이 떨어지는 언행을 종종 했다.
어떻게 보면 성녀 미샤와 비슷했지만, 성녀와 다르게 사회성 떨어지는 부분이 귀여울 때가 많아서 꽤나 사랑받던 히로인이었다.
‘원작에서 고자 주인공 로지 녀석에게도 이런 식으로 대시를 했었지.’
그녀 딴에는 진심이었을 것이다. 다만 어떻게 하는지 몰라 서툴렀을 뿐이지.
‘문제는 그 대시를 이제는 내가 받고 있다는 점이지.’
원작을 읽을 당시에는 이소레타의 대시를 철벽처럼 막는 고자 로지의 모습에 짜증 났었다.
‘막상 겪어 보니 당황스럽긴 하네……. 그나마 장벽에 가기 전의 이소레타라 방법이 부드러운 편이군.’
만약 장벽에서 헌스터와 함께 죽을 고비를 여럿 넘긴 원작의 이소레타였다면?
‘다짜고짜 속옷 바람으로 달려들어 애부터 가지자고 했겠지…….’
원작에서도 그랬으니까.
그나마 대화를 통해 제안하는 이소레타의 모습은 로니아드에게 신선함과 애틋함 그리고 안도감을 줬다.
스르륵…….
하지만 안도하기도 잠시.
“어? 자, 잠깐! 뭐 하는데?!”
이소레타가 갑자기 입고 있던 기사 제복의 단추를 풀기 시작했다.
“왜 여기서 옷을 벗는데?!”
앨리스가 기겁해 이소레타에게 달려들었다.
하지만 평생 몸을 써 본 적이 드문 귀족 영애가 검술을 익힌 황녀를 몸으로 막는 것은 불가능하다.
어느덧 이소레타는 자신의 제복을 다 벗었고, 하얀색 속옷 차림의 황녀의 모습이 로니아드 눈앞에 펼쳐졌다.
“…….”
환상 그 자체의 이소레타의 반라.
그녀의 언행에 대해 각오를 했음에도 잠시나마 이성을 마비시키는 아름다움이었다.
‘……원작의 로지, 이 새끼는 이걸 보고도 참았다고? 진짜 고자인가?’
로니아드는 얼이 빠져서 멍하니 황녀의 반라를 보고 있었다.
“보지 마, 보지 말라고요!”
이소레타를 막는 데 실패한 앨리스는 차선책으로 로니아드의 눈을 그녀의 작은 키와 작은 손바닥으로 가리려고 애쓴다.
“자, 이 정도 몸이면 흥미가 생기나?”
“뭐, 뭐 하는 짓이야? 당장 입지 못해?!”
“……속옷도 벗어야 하나?”
이소레타의 양 볼에 처음으로 연한 붉은색이 보였다.
“혹시나 처녀성 때문에 그런 거라면 걱정하지 마. 기마술을 익히면서도 그건 신경 써서 보호했으니까.”
더 이상 듣고 있다간 정신이 이상해질 것 같던 로니아드는 성큼성큼 이소레타를 향해 걸어갔다.
[아름다운 이 바다에~♬]속으로는 제독 놀이 할 때 불렀던 노래를 떠올렸다.
이소레타는 자신에게 다가오는 로니아드를 보며 어째 안도한 표정을 짓는다.
“이제야 내 외모에 호감이 갔나 보네?”
로니아드가 그런 황녀에게 다가가 그녀의 양팔을 붙잡았다.
“하지만 관계는 결혼식 후에 정식으로 하도록 하자.”
로니아드의 행동에 그녀는 단호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동안은 저기 뒤에 있는 후작 영애에게 풀고 있었으면 해.”
“……앨리스, 내가 잡을 테니 입혀라.”
“네.”
“그렇게 안 해도 된다. 나는 애가 아니다. 평교수, 그대의 마음을 확인했으니 내가 스스로 입겠다.”
로니아드가 이소레타의 양팔을 붙잡고, 앨리스가 이소레타의 등 뒤에서 옷을 입히려 했다.
“내 부마가 되었다고 해서 벌써 나를 구속……!”
황녀는 직접 입기 위해 몸을 움직였고, 아직 이소레타의 팔을 잡고 있던 로니아드와 제복의 바지를 막 입히려던 앨리스와 몸이 엉켜 버렸다.
“어어?!”
“꺄악!”
쿠당탕.
세 사람이 사이좋게 넘어지는 소리가 숙소를 울렸다.
“끄응…….”
로니아드가 제일 아래에 깔렸고. 중간은 이소레타가, 제일 위는 앨리스가 위치하여 마치 햄버거 형태였다.
“으으…….”
가장 위에 엎어져 있던 앨리스가 먼저 자세를 잡고 일어설 수 있었다.
그리고 막 일어선 앨리스가 본 광경은 이소레타의 가슴팍에 얼굴이 깔린 로니아드였다.
“뭐 하는 거예요! 당장 안 나와요? 교수님, 일부러 가만히 있는 거지!”
“…….”
앨리스는 기겁하여 넘어진 이소레타와 로니아드를 떼어 놓았다.
그리고 이 모든 광경을 아까부터 몰래 지켜보고 있던 루키엘은 멍하니 중얼거렸다.
“정말 전생에 세상이라도 구했나?”
진짜로 로니아드가 제르다의 환생이 아닐까 진지하게 의심하는 루키엘이었다.
* * *
사태가 진정(?)되고, 아직도 방금 전의 화끈한 열기가 식지 않은 앨리스와 로니아드는 숙소 안에 마련된 식탁에서 말없이 차를 마시고 있었다.
“그나마 이 숙소에 우리밖에 없어서 다행이지, 아니었으면…….”
앨리스는 아직도 황당함이 가시지 않는지 차도 제대로 못 마시고 있다.
괜히 마셨다가 사레들릴 것 같았기 때문이다.
“…….”
로니아드는 아까 이소레타의 흉부에 깔려 휘어진 안경을 조심히 펴고 있었다.
“이렇게 독이 없는 차는 참으로 오랜만이야.”
반면 황녀 이소레타는 평온했다.
언제 그랬냐는 듯 붉은 기사 제복을 단정히 입고 차를 마시고 있는 황녀.
방금까지 옷을 벗은 일은 꿈속에서 보았던 것으로 착각이 들 정도다.
“어쨌든 좋게 끝나서 다행 아닙니까?”
그리고 아까부터 이 모든 광경을 보다가 앨리스에게 걸린 루키엘은 엉겁결에 이 자리에 함께하게 되었다.
“그나저나 참 부럽습니다. 루카스 교수님은…… 끄악!!”
눈치 없이 말하던 루키엘은 어느새 날라온 앨리스의 구두 굽에 정강이를 맞고 말았다.
“구체적으로 상황이 어떻게 된 것인지 들을 수 있을까?”
너무도 황당한 첫인상을 준 황녀에게 존대를 할 엄두가 안 난 로니아드는 이소레타에게 편하게 물었고, 이소레타는 그런 로니아드를 보면서 ‘이 정도 배포는 되어야 내 남자지’ 하는 듯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그래, 국서께서 궁금해 하시는데, 아내 되는 내가 답해 줘야지.”
“…….”
절대 아니라고 반박해 주고 싶지만 그랬다간 또 뭔 짓을 벌일 거 같아서 로니아드와 앨리스는 침묵했다.
“그럼 먼저, 몇 년 전에 로지스트가 황제를 알현했다고 들었다. 그곳에서 정확히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이지?”
로니아드의 질문에 이소레타는 고개를 살짝 위로 올리고는, 기억을 떠올리면서 말을 뚝뚝 이었다.
“그 알현 자리에 나는 참가하지 못해서 몰라. 나는 그저 폰셔 백작에게 몰락 왕자를 소개해 준 것일 뿐. 하지만 확실한 것은 당시 그 볼품 없는 왕자가 황제의 심장을 찔렀다는 거야.”
이소레타의 말에 로니아드는 이해할 수 없다는 투로 물었다.
“사천왕이 그걸 가만히 지켜만 보고 있었나?”
“재상 폰셔의 결단이었어. 만약 왕자가 아니었다면 언젠가는 내가 그 일을 했었을 거야.”
‘말이 안 돼…….’
말이 안 된다. 원작에서 폰셔, 이카본, 타르타트 모두 로지스트를 없애려고 별짓을 다 했다.
‘여기선 도대체 무슨 이유로 재상이 로지를 도와 악황제를 찌르게 한 거지? 그럴 거면 애초에 처음부터 로지를 찾아서 그리했으면 됐잖아?’
로니아드는 이소레타를 바라봤다. 그녀의 눈을 응시했으나 딱히 그녀가 거짓을 말하는 느낌은 받지 못했다.
“왜 그렇게 나를 보지? 참아라. 결혼 이후에 언제든 그대의 씨를 잉태해 줄 테니.”
그의 시선을 받은 이소레타가 엉뚱한 소리를 한다.
“에혀…….”
황녀 옆에 앉아 있던 앨리스는 이미 반쯤 포기한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