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knight in a fantasy novel RAW novel - Chapter 43
43. 술, 여자, 도박 그리고 호기심
아스카가 떠난 의자에 내가 앉았다.
“나도 한 판 하지.”
내 말에 마법사가 비웃는다.
“그래? 뭘 걸 건데? 난 이제 저 아티팩트 아니면 안 할 거야.”
“저 아티팩트를 걸지.”
“뭔 소리야?”
마법사의 물음에 나는 바닥에 주저앉은 아스카를 가리켰다.
“이 여자가 낀 아티팩트는 인지를 방해하는 아티팩트다. 굉장히 귀하지. 돈으로도 못 사. 그런 아티팩트를 왜 저 여자에게 착용시켰을까?”
내 말에 마법사가 고개를 갸웃했다.
“확실히 예쁜 얼굴이군. 끌리지 않지만. 마치 조화를 보는 느낌이야. 저 아티팩트의 효과란 건가?”
“맞아. 그리고 저 여자는 내 소유다.”
내 말에 아스카의 얼굴이 또 붉어졌다.
이젠 쟤가 뭔 망상을 하던 알 바 아니다.
“좋아, 이해했다. 첩 같은 거군. 아티팩트에 맞춰서 나도 은화를 걸겠다.”
“아니, 은화는 필요 없어.”
“그럼 뭘 걸라고?”
나는 마법사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이 아티팩트와 저 여자를 판돈으로 걸지. 대신! 나는 너를 원한다.”
“으엑?!”
“어머, 어머!”
내 말에 마법사는 질색한 얼굴로 몸을 가리며 나를 봤다.
주르륵.
아스카는 코피를 쏟았다.
“……오해는 하지 말도록. 나, 여자 좋아해.”
분위기가 이상해진다. 내 말을 이상하게 오해한 모양이다.
“휴…….”
마법사는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아…….”
아스카는 안타까워했다.
‘하여간, 도박에 각종 망상에……. 도대체 뭘 하고 자라면 저렇게 되는 건데?’
아스카는 양파 같았다. 까도 까도 기가 막힌 점들이 계속 나왔다.
사랑의 매로 많이 나아졌다고 생각했는데, 아직 갈 길이 멀었다.
“내가 좀 젊어 보여도 중간 규모의 용병대를 하나 이끌고 있어. 문제는 우리 용병대에 마법사가 없다는 거야.”
나는 씨익 웃었다.
거의 무보수에 가깝게 부려 먹을 마법사가 필요하다.
“게임에서 지면 나와 계약을 하자!” 대충 이런 의미다.
마법사는 내 의도를 파악하곤 팔짱을 끼고 다리를 꼬았다.
“판돈으로 나를 걸라고? 이 많은 돈을 놔두고? 내가 왜 그래야 하지?”
당연히 응하지 않았다.
“너! 가까이 와라!”
강압적인 태도로 아스카를 불렀다.
이런 자리에서 괜히 공주님 칭호나 아스카라는 이름을 부를 순 없다.
쓸데없는 추적이 붙을 테니까.
아스카는 쭈뼛쭈뼛 내게로 왔다.
“얼마나 예쁘면 이렇게 외모를 가릴지 궁금하지 않아?”
마법사에게만 들릴 정도로 작게 말했다.
마법사란 호기심의 종족.
꿀꺽.
놈은 호기심이 동했나 보다.
아스카의 머리에 후드가 달린 로브를 씌웠다. 그리고 마법사에게 가까이 오라고 손짓했다.
“아주 잠깐이야. 너만 보라고.”
아스카의 반지를 잠시 뺐고, 마법사는 후드에 가린 아스카의 얼굴을 보았다.
“허억!”
감탄과 함께 코피를 흘렸다.
아스카가 다시 반지를 끼자, 놈은 진한 아쉬움을 삼켰다.
아스카는 늘 있는 일이라는 듯 후훗! 하면서 코웃음을 친다.
“자아, 어때? 할 생각이 들어?!”
이런 말이 있다.
마법사의 사망률이 높은 이유는 호기심 때문이라고.
그리고 남자가 망하는 세 가지 이유는 도박, 여자, 술이라고.
지금 술 빼고 모든 게 다 적용된다.
꿀꺽, 꿀꺽, 캬하.
마법사가 테이블에 있던 럼주를 원샷 했다.
이젠 술까지 전부 모였다.
그는 취기가 살짝 오른 상태로 말했다.
“하겠다!”
“그래, 마나의 맹세를 하고서?”
“마, 마나의 맹세?! 으음!”
마나의 맹세가 나오자 놈은 잠시 고민하더니, 이내 아스카를 쳐다본다. 그리고 붉어진 얼굴로 외쳤다.
“가즈아!!”
술기운에 용기를 얻었는지 마나의 맹세를 했다.
놈의 몸에서 마나의 맹세를 증명하는 푸른 빛이 잠깐 돌다 사라졌다.
마나의 맹세는 함께 맹세한 나도 해당되는 것이지만, 나는 교묘하게 내게 가해지던 종속의 마나를 회피했다.
‘역시 인생 망치는 데엔 술, 여자, 도박만 한 게 없어.’
놈은 취한 상태다. 심지어 아스카에게 눈까지 팔려 있다. 덕분에 내 수작을 눈치채지 못했다.
“로니, 아니, 용병대장! 이길 수 있겠어? 그러다가 지면 어쩌려고?”
문득 정신을 차린 아스카가 조심스레 물었다.
“지면 지는 거지. 짧았지만 즐거웠어. 거기서도 행복해야 해!”
“!!”
내 무책임한 말에 아스카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그럼 시작하지.”
카드가 정신없이 분배됐다.
놈 한 장, 나 한 장, 그리고 놈 한 장, 마지막으로 나 한 장.
서로 카드를 맞추고 새로 카드를 뽑았다.
그때, 우우웅―.
마법사의 몸에서 마나가 움직였다.
‘어림도 없지.’
아까 부하놈과 아스카를 상대하면서 쓰던 수법이다.
나도 마나를 움직여 놈의 수작을 막았다.
“!!”
마법사의 표정이 굳었다.
‘마법을 쓴다고?!’
하지만 이내 손을 움직였다.
그래, 드물게 마검사 용병이 있긴 하다.
‘그래 봤자 무식한 일개 용병이야.’
그는 자신의 뛰어난 머리와 손재주를 믿었다.
하지만 머리와 손놀림은 나도 지지 않는다.
특히 손놀림은 절대 질 수 없지.
‘명절 때면 화투 치다 늘 멱살 잡히던 몸이었다고!’
그걸로 연이 끊긴 친척도 꽤 됐지.
빙의 전의 경험과 빙의 후의 육신이 조화를 이룬다.
내 정신과 육신이 합일 이상의 경지를 올렸다.
휘휘휙, 휘익!
나의 손놀림을 보는 마법사의 눈에 경악이 어렸다.
그는 이젠 마법을 대놓고 사용했다.
하지만 의미 없는 짓이지.
손은 마법보다 빠르니까.
* * *
“당신! 도대체 정체가 뭡니까?”
게임에서 지자, 마법사는 정신이 확 든 모양이다.
“자, 물부터 마셔. 술도 좀 깨고 그래야지?”
나는 아직 얼굴에 술기운이 있는 그에게 냉수 한 컵을 주었다.
마법사는 목이 타는지 물을 꿀꺽꿀꺽 마셨다.
“캬하! 시원하……가 아니라! 오, 이런. 내가 뭔 짓을 한 거지? 마나의 맹세라니…….”
이제야 술이 깬 그는 망연자실한 얼굴로 그 자리에서 주저앉았다.
“나는 여기 레인저 용병대를 이끄는 용병대장 로니다.”
어느새 레인저 용병대 전원이 여관 주변으로 모였다.
“……제 이름은 루키엘 도일입니다. 적염학파의 상급 마법사지요.”
‘얏호! 상급 마법사를 잡았다!’
140여 명에 달하는 인원이 모이자 주변의 시선이 모인다.
잘하면 도시 경비대가 출동할지도?
나는 자신을 루키엘이라고 소개한 마법사의 로브 뒷덜미를 잡아 들었다.
그리고 부하들을 향해 외쳤다.
“얘들아, 마법사 주웠다!!”
“우와아아!!”
내 표정은 의기양양. 아스카도 나를 따라 의기양양한 얼굴이다.
용병들도 뭔지 모르지만 환호했다.
오직 잠깐의 실수로 인생이 꼬여 버린 마법사만 얼굴이 흙빛이다.
‘잠깐, 루키엘이면…… 원작의 그 루키엘이라고?!’
나는 들고 있던 루키엘을 신기하듯 훑어봤다.
내 시선을 받은 루키엘이 도살장의 소처럼 벌벌 떤다.
“내가 미쳤지. 내가 미쳤지. 술은 마시지 말았어야 했는데…….”
생각보다 거물이 걸렸다.
심지어 원작에서도 종종 등장했던 조연급 인물이다.
‘빙의 보정 같은 건가? 잊을 만하면 원작 인물들이 나타나네?’
이럴 거면 주인공 로지스트나 빨리 나오지.
“그럼 계약서부터 작성하자고. 그래도 앞길 창창한 마법사 인생 조지긴 싫으니, 딱 2년만 우리 용병대에서 일하는 게 어때? 보수는 섭섭지 않게 챙겨 줄게.”
내가 현역 장교로 있을 때만 해도 병사들 복무 일수가 2년이었다.
딱 그 기간에 맞춰 불렀다. 어차피 이 용병대를 평생 이끌 것도 아니니.
“2년 정도면…… 하아, 뭐, 여행 다니는 셈 치죠. 용병대장님의 자비에 감사드립니다.”
생각보다 후한 계약 조건에 루키엘은 안도한 모양이다.
하지만 아직 안심하긴 이르지.
“상급 마법사면 아티팩트도 잘 다루겠지?”
“네, 어지간한 건 다룰 줄 압니다.”
루키엘의 말에 나는 여기 모인 용병들을 향해 외쳤다.
“너희들! 다 쓴 아티팩트 전부 꺼내서 얘한테 줘라.”
“와아아아!”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수십의 용병이 루키엘을 덮쳤다.
‘일회용 아티팩트라도 일부는 재활용 가능하겠지?’
거기에 최근 몬스터 웨이브에서 얻은 재료들도 있다.
나는 용병들에게 압사당하는 루키엘을 버리곤 패가스와 필립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래서, 괜찮은 의뢰는 찾았나?”
내 물음에 필립과 패가스의 표정이 어색하다.
“그게 말입니다. 지금은 딱히 우리 정도 되는 용병대가 맡을 만한 의뢰가 없다네요?”
“불과 보름 전만 해도 굵직한 의뢰가 하나 있었는데, 이미 모집 기간이 끝나 버려서…….”
두 사람의 말에 나는 담담했다.
“뭐, 어쩔 수 없지. 다음 도시에서 의뢰를 찾도록 하자. 그동안 애들보고 아껴 쓰라고 하고.”
그렇게 지시를 한 후에 나는 궁금해서 물었다.
“그나저나 보름 전에 있었다는 굵직한 일이 뭔데?”
내 물음에 기다렸다는 듯 필립이 먼저 대답했다.
“현재 여기 샹타페 시티도 전쟁 중이라고 합니다.”
이어서 패가스도 덧붙였다.
“인근의 투모크라는 도시랑 전쟁 중이랍니다. 보름 전에 모집이 다 끝났고 이미 출발한 모양이더라고요.”
“지금쯤 한창 전쟁 중이겠죠. 투모크라면 저도 아는데, 샹타페보다 작은 도시라서 아마 특별한 일이 있지 않은 한 수월하게 이길 겁니다.”
“듣자 하니, 시장이 직접 전쟁에 참여했다고 하니…….”
필립과 패가스가 서로 사이좋게 설명을 해 줬다.
그들의 설명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여기서 이틀 뒤에 출발한다. 루트파흐에서 고생을 했더니, 이틀 정도는 쉬고 싶군.”
“알겠습니다. 푹 쉬십쇼, 대장.”
“다시 한번 말하지만, 애들 개별 활동하지 않게 관리 잘하고. 돈 없다고 멋대로 의뢰받을 바엔, 필립이 대출을 해 줘.”
“알겠습니다.”
자잘한 지시를 마치곤 여관 주인으로부터 침실 두 개를 받았다.
나는 침실 열쇠 하나를 아스카에게 던져 주면서 추가로 덧붙였다.
“그리고 필립!”
“네, 대장.”
“쟤한테 돈 주지 마.”
“아, 아가씨 말씀입니까?”
“그래.”
최소한의 보안을 위해 용병들에게도 아스카나 공주님이라 부르지 말고 아가씨라고 부르라 했다.
“너, 너무해!!”
아스카의 동공이 지진이 난 것처럼 흔들린다.
“받아라.”
나는 아스카에게 은화 하나를 던져 줬다.
“용돈이다.”
“용돈?”
내 말에 아스카는 신기하다는 듯 내 얼굴과 자신의 손에 있는 은화를 번갈아 봤다.
물론 그 얼굴은 뒤이은 내 말로 와장창 구겨졌지만.
“일주일 동안 그 은화로 버텨.”
“불가능해!”
“불가능하긴 개뿔. 평민 가정 일주일 소득이 은화 다섯 개야.”
이 답 없는 히로인에게 절약이라는 것을 가르쳐야 할 때가 온 것이다.
나는 다시 한번 필립과 패가스 등에게 경고했다.
“얘한테 절대 돈 주지 마. 명령이다. 주는 놈 있으면 그놈도 주급으로 은화 하나만 줄 테다.”
“절대 안 하겠습니다.”
“명심하겠습니다.”
그 말이 결정적이었는지, 두 사람 다 결연한 표정이다.
그러다가 추가적인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지구에서 어릴 때, 부모님이 나에게 했던 교육 방법.
“아! 자잘한 일 같은 거 시켜서 용돈 형식으로 주는 건 상관없어. 예를 들어 심부름비로 10쿠퍼씩 준다거나 그런 거. 단, 심부름 값은 10쿠퍼 이상 주지 말고.”
“아가씨에게 심부름을 시키란 겁니까?”
“심부름이라면 어떤 심부름을?”
두 사람의 표정이 의미심장하다.
“위험한 일은 시키지 말고 자잘한 일 정도만 시켜. 딱 10쿠퍼 정도 되는 일. 심부름시킬 때는 아가씨라는 호칭보단…… 스카이라는 이름이 낫겠군.”
아스카의 이름을 살짝 수정해서 괜찮은 가명 하나를 만들었다.
“나는 진짜 자러 간다. 중요한 일 아니면 알아서들 해!”
그 말을 끝으로 침실로 올라갔다.
“심부름? 미쳤어?! 내가 그걸 왜 하냐고! 진짜 너무해!! 나보다 먼저 태어나면 다냐!!”
뒤에서 아스카의 외침이 들렸다.
그나저나 먼저 태어나고 자시고는 뭔 뜻이야?
다음 날.
“스카이~ 가서 물 좀 가져오렴.”
필립이 10쿠퍼짜리 동화를 튕기며 아스카를 불렀다.
아스카가 빠르게 필립에게 다가온다.
“차가운 거? 따듯한 거?”
“너는 이 날씨에 따듯한 걸 마시고 싶니? 시원한 냉수로 한 잔 떠 와!”
“……금방 가져오겠다!”
필립으로부터 10쿠퍼를 받은 아스카는 히히 웃으며 냉수를 찾아 뛰어다닌다.
“스카이~ 어깨가 좀 뻐근한데?”
“기다려, 이것만 하고 갈게!”
“방에서 깜빡하고 손수건을 안 가져 왔네? 스카이~!”
“몇 번 방인데? 열쇠도 내놔!”
아스카는 정말 부지런히 용병들 사이를 오갔다.
심지어.
“아가씨가 10쿠퍼만 주면 자잘한 심부름을 해 주는 사람이라고?”
모험가와 다른 용병들까지 아스카를 찾기 시작했다.
아스카를 시작으로 샹타페의 어린 소년 소녀들이 10쿠퍼 심부름이라는 일에 뛰어들었다.
본의 아니게 창조 경제, 일자리 창출을 해 버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