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knight in a fantasy novel RAW novel - Chapter 61
61. 오스카의 여왕들(4)
침실을 가득 채웠던 빛이 점멸하듯 사라진다.
그리하여 로니아드와 로지스트는 여왕이 보여 준 환상에서 되돌아 왔다.
“…….”
로지는 아무 말 없었다.
“문제가 생겼다는 게 제가 보고 있는 이 상황을 말하는 겁니까?”
로니아드는 여왕을 분석하듯 노려보았다.
‘빌어먹을 작가 새끼! 이런 내용을 왜 안 넣은 건데?!’
작가놈이 누락한 건지, 아니면 로니아드가 못 봤던 것인지 모르겠다.
근데 아무리 원작 설정을 대충 봤어도 이 정도의 내용을 기억 못 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그래……. 황금시대 말기부터 지금까지, 거의 3,000년을 중간계에서 지내 왔지. 오히려, 지금에야 문제가 생긴 게 신기할 정도다.”
엘카란, 현재는 에르카네로 불리는 여왕이 힘없이 웃었다.
“나는 본래 마족이다. 아무리 중간계가 좋아도 주기적으로 마계에서 영혼을 충전하고 와야 하지.”
힘없이 웃는 모습임에도 퇴폐미가 강렬하다.
“오랫동안 마계로 가지 못한 내 영혼은 지금 무너지고 있다.”
여왕은 두 남자가 퇴폐미에 흔들리든 말든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이카디아에서 3,000년 가까이 지낸 것은 아마 마족들 중에선 내가 최초일 것이다. 어떤 마왕도 이루지 못한 업적이지.”
중간계에서 인간의 정기와 감정을 먹으면서 힘을 쌓았다.
문제는 그녀의 영혼이 쌓이는 힘을 감당하지 못하게 된 것이다.
“천계에서도 그대의 존재를 아는가?”
이번에는 로지가 여왕에게 물었다. 여왕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천계에서도 마계에서도 나를 발견한 지 좀 되었다.”
여왕은 그렇게 말하곤 살짝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
“뭐, 내 영혼이 무너지고 있는 것을 알고 나서는 방치하고 있지만.”
천계와 마계에서 무시당하고 있는 듯했다.
“영혼이 무너지면서 그동안 쌓은 힘을 조절하지 못하게 되었어. 결국 수년 전부터 어떤 외부 활동도 할 수 없었고…….”
왜 여왕이 왕국을 방치했는지 이해가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의문인 것이 있었다.
“그렇다면 아스카, 아스카 공주도 인형 같은 겁니까?”
로니아드가 아스카를 가리키며 물었다.
그가 아스카를 지목하자, 아스카의 어깨가 살짝 움찔한다.
로지가 그런 아스카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맞다. 저 아이도 인체 연성으로 만든 인형이지.”
“하지만 지금까지 인형들은 영혼이 없었다고…….”
내 의문에 여왕은 흔쾌히 답해 줬다.
“아스카 저 아이는 타르타트가 지금까지 만든 인형과는 좀 달라. 그것이 영혼인지는 모르겠지만 인격을 가지고 있지.”
여왕은 아스카를 보았다.
아스카도 여왕을 보았다.
“타르타트는 마법사 중에선 능력이 없는 편에 속했지. 첫 인체 연성도 사실상 기적에 가까웠어.”
아스카를 보던 여왕의 두 눈동자가 회상하는 듯 먼 곳을 바라보았다.
“오죽하면 2,000년 묵은 리치가 40살도 되지 않은 새파란 마법사에게 패배했을까?”
그녀는 세상에서 자신에 대해 가장 잘 알고 있는 마법사를 떠올리며 피식 웃었다.
“어떻게 보면 불쌍해. 둔재의 2,000년 넘는 세월이 천재의 40년보다 못하다는 것이니까.”
잠시 타르타트를 생각하던 여왕은 다시 초점을 아스카에게로 향했다.
“하지만 그런 멍청이도 2,000년 넘게 인형을 만들다 보니, 괜찮은 것을 하나 만들더군.”
아스카를 생명이 아닌, 하나의 작품으로 보는 듯한 눈빛.
“내 힘과 영혼에 이상이 있다는 징조는 사실 100년 전부터 느꼈지. 타르타트에게 이 사실을 얘기했고, 15년 전에 그는 아스카를 만들었다.”
그녀의 눈빛과 말에 아스카의 붉은 눈동자가 슬퍼 보였다.
“그는 내 힘을 나눌 수 있는 인형을 만들었지. 그 과정에서 인격이 생긴 것이고. 황금시대의 어떤 마도사도 못했던 것을 그가 2,000년 만에 성공한 것이야.”
아스카를 보는 여왕의 눈에는 어떤 의미론 애정이 담겨 있었다.
“아스카는 타르타트가 만든 인형 중에 가장 걸작이라 할 수 있어. 인격을 가지고 있고, 수명도 보통 인간의 수명과 비슷하지.”
그렇게 말을 하는 에르카네의 모습에서 로니아드는 뭔가 이질감을 느꼈다.
‘뭔가 연기를 하는 느낌이야.’
로지스트를 보니, 로지는 이미 뭔가를 알고 있는 눈치다.
“처음 아스카를 만든 이유는 하나였지. 폭주하는 내 힘을 저 인형에게 분산시키는 것. 그렇게 해서 내 영혼의 소멸을 늦추는 것!”
여왕은 아스카에게 다가갔다. 에르카네가 다가오자 아스카가 살짝 흠칫했다.
아스카의 두 눈에서 눈물이 빛났다.
“이 아이에게 힘을 분산시켰고, 성공적이었어. 같은 장소에 있으면 분산한 의미가 없어서, 사생아 핑계를 대고 저 멀리 동부 폴라라스로 보냈지.”
말을 하던 여왕은 한숨을 쉬었다.
“그런데 또 문제가 생겼어…….”
3할 정도의 힘을 아스카에게 분산했다.
하지만 그 힘도 워낙 커서 어린 아스카가 감당하지 못했던 것이다.
아스카 주변에 있던 남자들이 미치기 시작했다.
그녀 주변으로 몬스터가 자주 나타난다는 폴라라스 남작의 보고를 들었다.
결국 2년 전에, 여왕은 무욕의 반지를 아스카에게 줘야만 했다.
“어차피 10년 전부터 무욕의 반지도 내 힘을 숨기지 못했으니.”
쓸모가 없어진 반지는 아스카에게 보내졌다. 힘들게 만든 인형이 파괴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
“먼저 무욕의 반지를 주고서, 그 아이가 좀 더 크면 내 나머지 힘을 좀 더 분배할 예정이었어……. 하지만 펠리오에서 말썽을 일으키더군.”
여왕은 자신의 영혼을 관리하는데 모든 신경을 쏟았다.
그래서 반세기 가까이 국정에 신경 쓰지 못했다.
전에도 몇 세기 동안 개판으로 왕국을 운영했던 적도 있었기에,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하지만 이번엔 시기가 좋지 않았다.
그사이에 은의 시대가 개막한 것이다.
2,000년 가까이, 북방의 펠리오는 도시국가로 이뤄진 미개한 연합체였다.
땅도 척박해 늘 오스카에게 식량을 구걸하던 도시 연합체였다.
그 펠리오가 최근 반세기 동안 동방무역을 통해 급성장한 것이다.
“내가 아스카에게 무욕의 반지를 보내고 한 달이 막 지났을 때, 전국적으로 내란이 터졌다. 이어서 프리미오 공작이 반란을 일으켰다.”
아스카에게 남은 힘을 분배한 후, 여왕은 아스카에게 왕위를 물려주려 했다.
자신은 제국으로 갈 생각이었다. 제국에서 힌미르의 적통을 찾아 역소환을 부탁하려 했다.
프리미오 공작은 제법 깨어 있는 귀족이자 학자였다.
자신의 뒤를 이을 아스카를 보좌할 훌륭한 재상 후보다.
여왕은 프리미오 공작을 유혹하면 안 됐다. 그가 맨정신으로 국정을 보좌할 수 있게 해야 했다.
그래서 공작의 알현 신청을 매번 거절했고, 이 모든 것을 오해한 프리미오 공작이 반란을 일으켰다.
결국 여왕은 반란군이 왕궁으로 오지 못하게 폭주하는 힘으로 결계를 쳤다.
“2,000년 넘게 왕국을 운영했지만 이렇게 난감한 적은 처음이었다.”
여왕은 질렸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처음 아스카에게 분배된 힘의 타입이 문제가 되었다……. 하아…….”
거의 하소연에 가까운 여왕의 말. 로니아드와 로지스트 그리고 아스카는 여왕의 넋두리를 말없이 들었다.
“아스카에게 주로 분배된 힘이. 몬스터를 부르는 힘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최근에야 알았다.”
그쯤 되자, 여왕은 자포자기의 심정이었다.
아스카에게 몬스터를 끌어들이는 힘이 너무 많이 분배됐다.
그리고 아스카는 그 힘을 컨트롤할 줄 몰랐다.
“만약 아스카가 실수로라도 무욕의 반지를 빼게 되면? 몬스터 웨이브가 터지게 되지.”
여왕의 말에 로니아드는 문뜩 아스카가 반지를 끼고 뺐던 때를 떠올렸다.
‘추가로 반지를 뺄 때마다 규모가 더 커진 거였어…….’
여왕은 아스카를 보며 혀를 차듯이 말했다.
“종말급 웨이브가 발생했다는 소식은 들었다. 주교의 경고를 듣지 않았던 것이겠지.”
여왕의 말에 아스카가 면목 없다는 듯 고개를 숙였다.
“타르타트에게 도움을 요청하려 했지만, 그때는 이미 왕궁에 결계를 친 상태였다. 그 녀석과 얘기하려면 그가 최소한 수도 가까이 와야 했어.”
결국 여왕은 부릴 수 있는 기사들을 전부 불렀다.
왕궁 밖에서 활동하던 세뇌되지 않은 시종장과 수석 시종 둘도 동원했다.
그리고 작은 도움이라도 될까 싶어 급히 아티팩트들을 만들었다.
“여왕으로 2,000년 넘게 살았다. 하지만 절체절명의 순간에 진심으로 나를 도울 사람은 없더구나. 내 2,000년은 타르타트의 2,000년보다도 못했다.”
여왕이 부릴 수 있던, 세뇌된 기사와 병사들은 저렇게 잠들어 있다.
급한 대로 주교를 통해, 외부에서 부릴 수 있는 기사들을 동원했다.
난세에 20명이라도 모은 것이 대단했지만, 실력도 숫자도 실망스러웠다.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기 위해 만든 일회용 아티팩트들을 시종들에게 주었다.
시종들을 전쟁 상인으로 위장시켜 기사들과 함께 보냈다.
“하지만 크게 기대는 하지 않았다…….”
반란군과 산적, 영지전 그리고 몬스터를 뚫고 아스카가 수도로 올 수 있을까?
여왕은 거의 포기했었다.
이대로 영혼이 찢어지고 2,000년 넘게 가꾸던 이 왕국도 함께 멸망할 것이라 여겼다.
“로니아드 경, 나는 그대에게 너무나도 고마운 감정을 가지고 있다. 경은 반란군과 산적, 몬스터 웨이브를 뚫고 이렇게 아스카를 내 앞에 데려왔다. 경이 아니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경이 없었다면, 아스카는 출발하자마자 몬스터에게 잡아먹혔을 것이야.”
여왕은 로니아드를 보면서 감사를 표했다. 진심이었다.
로니아드가 아니었다면 지금의 아스카는 존재하지 못했다.
원작에서 아스카가 어떤 식으로 죽었는지는 정확히 모른다.
몬스터에게 잡아먹혔을 수도 있고, 산적에게 죽었을 수도 있고, 반란군에게 잡혔을 수도 있다.
하지만 반란군에게 잡혀도 몬스터 웨이브가 반란군과 아스카를 잡아먹었을 것이다.
‘아마 아스카가 금방 죽었기 때문에, 원작의 몬스터 웨이브도 크지 않았던 걸까? 언급조차 되지 않을 정도로.’
문득 원작의 아스카가 떠올랐다.
‘그렇다면 원작의 아스카는 브리기트였다는 것인가?’
원작에서 가짜 아스카를 본 여왕은 어떤 기분이었을까?
결국 에르카네 여왕은 폐위되었고 로지에게 살해당했다.
남은 힘으로 로지스트와 브리기트를 죽일 수도 있었을 텐데 그러지 않았다.
그러다 로니아드는 의문이 들었다.
‘그냥 신성력 없는 인간을 골라서 죽여 달라고 하면 되지 않나? 그러면 마계로 역소환 될 텐데?’
자살은 아마 힘들 것이다.
원작에서 여왕도 자살은 고려조차 하지 않았다.
인간도 그렇지만, 특히 천족과 마족은 자살하게 되면 영혼에 엄청난 페널티를 받는다.
에르카네 정도 되는 마족이 자살을 하게 되면, 마계에서 엄청난 징벌을 받을 것이다.
차라리 소멸이 반가울 정도다.
로니아드를 칭찬하던 여왕은 이내 로지스트를 보았다.
“그리고 로니아드 경 못지않게 나는 로지스트 경이 반갑다.”
그리고 칭찬이 아닌 찬양에 가까운 눈을 했다.
“애초에, 라이오스가 살아 있었다면 이런 짓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에르카네는 로지스트를 보았다. 그녀의 금색 눈에 찬양과 희열이 가득 찼다.
“가장 좋은 방법은 마계로 역소환당하는 방법이다. 왕위는 왕국의 총명한 자에게 물려주고 마계로 돌아가는 것이지.”
로니아드가 가진 의문을 때마침 여왕이 설명해 줬다.
“하지만 일반 인간에게 죽기엔 나는 너무 강해져 버렸다. 어지간한 공격에는 상처조차 입지 않을 만큼.”
여왕의 상태는 외통수.
악황제와 그의 적통들이 있다지만, 악황제는 식물인간이고 적통들은 실종 상태거나 전쟁 중이다.
“렌슬렛에 아르미다츠의 왕녀가 살아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는 너무 기뻐 눈물이 났다. 그리고 렌슬렛의 여공작이 라이오스의 아들을 오스카에서 찾고 있다는 사실에, 가슴이 떨려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래서! 원작에서도 별 저항 없이 로지에게 죽은 거였어!’
“용의 피를 이은 자만이 그대를 죽일 수 있다는 건가?”
로지가 인상을 찌푸리며 여왕에게 말했다.
그는 기분이 좋아 보이지 않았다.
자신의 행위가 그토록 증오하던 마족의 구원이 돼 버리니까.
“그렇다. 신성력처럼 소멸시키지 않으면서도, 마족에게 막대한 피해를 입히는 용의 힘! 나는 그 용의 힘을 원한다.”
로지는 어느덧 여왕의 기운에 적응했는지, 아까처럼 그녀의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내가 네년의 말을 왜 들어줘야 하나? 자살하거나 소멸할 게 뻔한 마족을 뭐하러 구원해 주지?”
로지의 단호한 거절에도 여왕은 당황한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마누스의 적통이여, 나를 구원해 준다면 알려 주지.”
그녀는 로지를 향해 상체를 살짝 숙였다.
“10년 전, 아! 이제 곧 11년이 되겠군.”
그리고 짓궂은 표정을 지었다.
“그때, 그대의 아버지 라이오스가 어떻게 죽었는지. 그리고 아르미다츠 왕궁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무엇보다 어떤 대악마가 개입했는지.”
여왕은 유혹하듯이 로지스트에게 속삭였다.
“나는 아주 잘 알고 있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