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necromancer in a fantasy game RAW novel - Chapter 183
183
대앵. 댕.
크로이츠부르크 시내에 7번의 종소리가 울려 퍼졌다.
시종들이 꽃을 뿌리며 새로운 권좌의 주인이 탄생했음을 알렸다.
온 도시의 길거리가 황제를 칭송하는 노랫소리로 가득한 가운데, 콘라트는 수행원들을 대동한 채 묵묵히 대로변을 빠져나갔다.
문득 성문 앞에 이르러 그의 발걸음이 멈춰섰다.
미간을 일그러트린 대공은 나지막이 뇌까렸다.
“이런. 시청에선 한창 네 승리를 경하하는 연회가 벌어지고 있을 텐데, 왜 잔치의 주인공이 여기 있느냐?”
베르나드는 그를 기다렸다는 듯, 성문 앞에 서 있었다.
“이게 완전한 승리라고 생각하지 않으니까요.”
콘라트의 입가가 씰룩였다.
“제국에서 가장 고귀한 자리를 쟁취해냈는데, 승리가 아니라니.”
“제국엔 여전히 혼란과 도탄이 가득합니다. 그걸 결착 내기까진 승리라 생각하지 않고요.”
너 따위가? 콘라트는 목청까지 올라온 말을 억눌렀다.
베르나드는 당당히 턱을 세운 채 자신을 마주했다.
자신과 눈도 마주치지 못하던 황비의 한심한 핏줄은 온데간데없었다.
그는 어깨를 들썩였다.
“···헤젤슈마흐 대공령에서 벌어진 일을 전해 듣긴 했는데, 이번에도 어김없이 사령술사가 개입했더구나. 설마 검은 기사가 리케르트의 장녀였을 줄이야. 전혀 예상치 못했다.”
“그분이 뫼를렌푸르트의 결투 재판에서 대전사들을 상대로 연승을 거둔 일화는 유명하지요. 게다가 신록의 기사가 내린 시련까지 통과했으니, 명예로운 이름이 널리 알려질 겁니다.”
입술을 훑은 콘라트가 탄식했다.
“저주받은 자에게 명예라···. 죽은 자를 일으키는 삿된 마법사를 용납지 말라는 경전의 말씀을 잊은 게냐? 장차 황금 권좌에 오를 이가.”
사령술사를 포용한 자에게 황제의 자격이 있느냐는 물음에 베르나드가 맞받아쳤다.
“셰우드 경은 행보로 자신의 진정성을 증명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분은 제국 내에 암약하는 흑마법사 잔당들을 소탕하시지 않았습니까.”
그쪽이야말로 은밀히 흑마법사들을 지원하지 않았나. 베르나드의 반격에 콘라트가 미소를 흘렸다.
“내가 권좌에 오르면 이 땅에서 불경한 족속들은 모두 축출될 거다. 그들은 내게 수단에 지나지 않아. 반면 너는 그 마법사가 자신의 요새를 세우는 걸 묵인했을뿐더러, 장차 제국에서 죽은 자들이 배회하는 행태까지 용인할 작정이란 말이냐.”
베르나드는 눈썹을 세우며 대꾸했다.
“적어도 셰우드는 무고한 자들을 희생 제물로 삼으려 하진 않았지요.”
“언제 그가 속셈을 드러낼지 알고? 여전히 순진하고, 어리석구나. 베르나드.”
베르나드의 뒤에 서 있던 호위들이 반발하자, 그는 손을 들어 제지했다.
“···숙부. 저는 분쟁을 바라지 않습니다. 기존의 권리들은 제 이름으로 보장해드리겠습니다.”
“온 권역의 군중들은 작금의 혼란스러운 세태에 고통받고 있다. 모두가 단호하고, 흔들리지 않을 질서를 세울 자를 바라는데, 네게서 시대의 부름에 부응할 자격은 보이지 않는구나.”
“제국의회의 적법한 절차를 거쳐 제겐 권좌가 부여되었는데, 숙부께선 이를 무시하고 자격을 논하시는 겁니까?”
콘라트가 싸늘하게 웃었다.
“제국은 끓어오르는 솥단지와 같다. 장차 무수한 자들이 들고일어설 텐데, 네 유약함으로 이를 억누를 수 있으리라 생각하느냐? 저 아둔한 자들은 이를 알고도 사익을 위해 눈감았지. 나는 절대 묵과하지 않겠다. 오로지 제국의 항구적인 평안을 위해서.”
참다못한 호위 기사가 검집에 손을 올렸다.
“저 불충한 자가 기어코···!”
덩달아 콘라트의 수행원들까지 눈자위를 번뜩였다.
아직 즉위식을 올리지도 않았는데 피를 뿌려봤자 좋을 게 없었다. 당장 콘라트의 기사들을 제거하고 그의 신병을 구속할 전력도 없거니와, 무수한 제국영주들의 대사들이 주변에 있었다.
애써 떨리는 주먹을 말아쥔 베르나드는 미약하게 한숨을 삼켰다.
‘여기서 콘라트를 공격해봤자 구실만 만들어주는 셈이겠지.’
더군다나 양측 모두 무구의 달인에 준하는 기사들이 많은 만큼, 여기서 교전하면 피해가 걷잡을 수 없을 것이다.
어차피 전쟁은 필연적이다.
제국은 광활한 권역을 다스리는 만큼, 향후 제후들을 포섭하기 위해선 지도자로서 위신을 지킬 필요가 있었다.
베르나드는 말없이 물러섰다.
이를 갈던 호위 기사도 반쯤 튀어나온 장검을 거칠게 밀어 넣었다.
콘라트가 옅게 미소를 흘렸다.
“솔마르께서 우리의 카이저를 도우시길.”
그를 노려보던 베르나드 역시 화답했다.
“그대 역시 나의 가신으로서 현명하게 판단하길 바라오. 루오폴트 공.”
황소대공이 묵례했다.
“예··· 폐하.”
며칠 뒤, 그가 봉기를 일으켰다는 소식이 제국 전역에 들불처럼 퍼져나갔다.
///
황색 깃발을 쥔 기수가 네크로폴리스의 문을 두드렸다. 그간 송진과 뼛가루만 달이던 토드로선 목 빼고 기다리던 소식이었다.
‘드디어 올 것이 왔네.’
토드는 모든 하수인들을 이끌고 나와 그를 맞이했다.
고개 숙인 사령술사를 향해 황제의 전령이 금실로 봉해진 독피지를 풀었다.
“만인 위에 군림하는 황금 권좌로부터 온 전언이노라! 불충한 콘라트는 황금 문서의 조항에 따라 개최된 제국 의회의 지엄한 결정을 번복하고, 거룩한 선거후들의 지지에 따라 권좌에 즉위한 짐에 정면으로 반기를 들었다!”
선거 인단 중에 토드의 입김이 작용한 사람만 하더라도 카셀미어 주교후, 사자대공 리케르트, 순록대공 아이단, 셋이다.
라노의 수녀원 습격 건, 이스라와 승계 문제, 북방 식민 도시, 하나같이 토드의 마수가 직접적으로 뻗쳐 있었다.
‘베르나드는 당연히 자신한테 표를 던졌을 테니 이것만으로 게임 셋이지.’
어차피 사자대공을 포섭한 시점에서 콘라트도 선거에서 자신이 이길 거란 기대는 하지 않았을 거다.
전쟁 준비라는 게 하루 이틀 만에 되는 것도 아닌데, 라이히슈타크가 끝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시점에서 군대를 일으킨 것이 증거였다.
“이에 따라 나, 막시밀리안 2세는 네크로폴리스의 주인인 토드 셰우드를 제국군의 일원으로 소집하고자 한다!”
황제가 자신을 필요로 한다.
그토록 고대하던 순간이었다.
사령술사는 황제의 전령 앞에 무릎을 꿇었다.
“흑색 학파는 카이저의 부름에 답하겠나이다.”
토드는 공손히 전령이 건넨 서신을 받아들었다. 그가 마력을 일으키자 나란히 늘어선 백골 근위병들이 일제히 창을 내리찍는다.
쿵, 쿵!
망자들은 특유의 앓는 소리나 귀곡성조차 흘리지 않고 불길한 안광만 흩뿌렸다.
사방에 온통 장병기 부딪치는 소리와 연녹색 섬광만이 가득했다.
【하, 하! 하. 출정이다!】
파멸의 기사가 올라탄 유령마가 찢어지는 비명을 토해내자 시체들이 발맞춰 성문 밖으로 움직였다.
네크로폴리스를 방어할 병력은 엘프 사수들과 망령들만 남겨두고, 총 500구의 망자가 출정한다.
토드 옆에 선 클라우스가 입을 열었다.
【황제가 지정한 집결지가 베르겐푸르트이니, 꽤 먼 여정이 되겠군요! 스승님.】
“아마 거기서 콘라트의 북진을 저지할 생각이신가 봅니다. 중남부 권역에 있는 곳이니, 이 행군 속도론 이 주 정도 걸리겠군요.”
산시아가 우려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그럼 스승님, 여러 제후들의 봉역을 통과해야만 할 텐데, 그들이 누굴 지지하는진 일일이 알 수 없지 않나요.”
제국 내 봉역까지 상세히 묘사한 지도는 걸레와 구분이 되질 않는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다.
더욱이 변방인 동부와 달리, 중부는 다수 영주들의 경계가 복잡하게 얽혀있는 만큼, 각자의 이해관계도 제각각이다.
토드는 히죽 웃으며 대꾸했다.
“오히려 무력 충돌이 있다면 환영입니다. 저희로선 신병을 모집할 기회니까요.”
자고로 전쟁이란 병참과의 싸움이다.
대규모의 병력을 운용하려면 이들을 먹이고, 재우고, 심지어 봉급까지 지속적으로 지급해야만 한다.
하지만 죽은 자들은 그럴 필요가 없다.
모든 영주들이 간절히 꿈꾸는 이상적인 군세였다.
‘아직 물자는 충분하니 이동 중에 불필요한 약탈을 벌일 일도 없어.’
아무리 엄격한 군율로 통제되는 군대라도 전비를 충당하려면 약탈도 서슴지 않는 게 제국에선 흔한 일이나, 망자들은 토드의 의지 하에 단단히 결속되어 있다.
토드로선 이번 전쟁이 흑색 학파의 대외 인식을 널리 알릴 절호의 기회였다.
‘단지 병력이 좀 더 많았으면 좋겠는데. 500기가 적은 건 아니지만, 전장을 휘어잡기엔 부족하단 말이야.’
망자들은 거침없이 쾨흘링 권역을 통과했다.
무수면 행군이 1주 가까이 거행되었을 즈음, 선두에서 척후 역할을 맡았던 이스라가 돌아왔다.
【토드! 도보로 20분 거리에서 삼백가량의 병력이 야영하고 있더군!】
토드의 눈이 가늘어졌다.
“···혹시 내걸린 깃발이 어떤 색입니까?”
쾨흘링을 지나오며 들은 바론 황제를 지지하는 충성 세력, 이른바 존황파는 황실의 색인 붉은색을, 참칭파 콘라트에 가담한 자들은 황색을 들었다고 한다.
【가문 문양을 걸고 있어 판단하기에 모호하더군. 다만 해가 뜨고 있으니 머지않아 이동할 걸세.】
애매한데. 피아를 구별할 수 없으니 무턱대고 공격했다간 자칫 오명을 산다.
【그냥 깃발이나 문양이 새겨진 갑옷은 모두 폐기하고, 시체만 확보하는 건 어떨까요? 스승님.】
토드가 근엄한 표정으로 말했다.
“어허, 클라우스. 정말 솔깃한 제안입니다만, 무의미한 살생은 지양해야 합니다. 우리는 오로지 흑색 학파를 대적하는 자들의 목숨만 거둡니다.”
눈동자를 굴린 클라우스가 뼈대만 남은 손을 곱씹었다.
【아차, 저희는 그런 쪽이 아니었죠? 제가 실언을···! 죄송합니다. 스승님.】
이스라가 안광을 번뜩이며 그를 타박했다.
【쯧쯧, 그간 인골만 한 달 가까이 깎아내더니 우리의 대의를 망각한 모양이로군! 우리는 함부로 목숨을 거두지 않는다! 허나 우리를 대적하는 자들에게만은 자비가 없을 것이니!】
【암요, 이스라 경. 하지만 삼백구는 좀 탐나지 않나요? 그중에 경의 기사단에 포섭할 인재가 한두 명쯤은 있을지 모르는 일인데요.】
그 말에 투구 속 안광이 음흉하게 일렁인다.
【···흠! 그럴지도 모르겠어. 지금 있는 병사들은 기사도 전집의 숭고한 가르침을 설파하기엔 모난 녀석들이란 말이지. 말을 걸어봐도 턱뼈만 부딪칠 뿐, 대꾸조차 못 하고.】
【예, 그럼요! 게다가 그중에 두상이 아름다운 녀석도 있을지 모를 일이고요. 흐흐, 새로운··· 머리뼈··· 예쁘게 펴진 늑골···.】
클라우스는 이전에도 뼈 수집에 관심을 보이는가 싶더니, 기어코 해골 병사 가공을 하면서 괴상한 취미에 눈을 뜬 모양이었다.
해골 세공에 심취한 리치와 신규 기사단원이란 말에 혹한 파멸의 기사.
두 고위 망자의 안광이 선명하게 이글거린다.
하수인들의 강렬한 성화에 토드가 입을 열었다.
“한 번 제가 직접 가서 저들의 의중을 살펴보겠습니다.”
그러자 산시아가 반대했다.
“스승님께서 직접요? 너무 위험해요. 저들이 어떤 무리일지 모르잖아요.”
【염려 말게! 수석 제자! 본인이 곁에서 호위하면 그만 아닌가?】
토드는 고개를 저었다.
“아뇨. 이스라. 당신은 너무 외형이 강렬한 데다가, 자칫 저들이 겁에 질려 달아날 수도 있습니다. 호위론 근위병 한기만 데려가겠습니다.”
투구 속 안광이 시무룩해진다.
토드가 재빨리 덧붙였다.
“이리저리 달아난 놈들을 일일이 수거하는 것도 번거롭지 않습니까. 당신은 병력을 이끌고 주변에 산개해있다가, 제가 신호하면 일거에 소탕해주세요. 당신은 제 기사이니만큼, 더 막중한 임무를 맡아야지요.”
중요한 역할!
대번에 파멸의 기사는 의욕에 찬 안광으로 고삐를 틀어쥐었다.
【하, 하! 하. 알겠네! 우회 기동을 하란 말이지!】
“스승님, 정말 하수인 한 기만으로 충분하시겠어요?”
산시아의 우려에 토드가 히죽 웃었다.
“그래야 상대방도 방심하지 않겠습니까. 어차피 이 녀석이라면 납탄 몇 발 정도는 막아줄 테고요. 이번 기회에 산시아와 클라우스, 당신들도 교전 상황에서 망자들을 통솔하는 경험을 쌓아봅시다.”
삼백 정도면 귀여운 수준이다.
어차피 망자의 군세는 장차 불어날 텐데, 미리 제자들의 조종 역량도 키울 필요가 있었다.
‘제자들의 경험치도 먹여주고, 개체 수도 확보하고.’
토드는 하수인 한기만 달랑 끌고 앞서 향했다.
마침 개울가에서 저들이 수통을 채우고 있었다.
“좋은 아침입니다! 신사 여러분! 그대들에게 구주 솔마르의 가호가 있기를!”
토드의 외침에 병사들이 경계 어린 눈빛을 보냈다. 그들의 시선은 하수인이 치켜든 깃발로 향했다.
“···검은색?”
병사들 사이에 동요가 일자, 제법 그럴싸한 갑옷을 걸친 이가 나섰다.
“나는 홀츠베센 백령의 징집관이다. 네놈은 누구냐?”
토드는 빙긋 웃으며 대꾸했다.
“아, 홀츠베센에서 오신 분들이군요! 소인은 하워드라고 하옵니다. 우리의 정당하신 통치자, 막시밀리안 2세께 영광을!”
대번에 징집관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하워드라고 했나? 그자는 편협한 모의로 권좌를 찬탈한 자다.”
“허허, 라이히슈타크에서 선출되신 우리의 카이저이신데도요?”
그가 손을 까딱이자 쇠뇌수들이 방아쇠에 손을 걸었다.
“보아하니 네놈은 불순한 분자로군. 소지품을 확인해봐야겠다. 투항하지 않으면 사살하겠다.”
굳이 깃발을 확인하지 않아도 알아볼 길은 있지. 토드가 선명한 미소를 그렸다.
“불순한 건··· 여러분이 아닐까요?”
“뭐라?”
‘이스라.’
“너희, 반란군이잖아요.”
즉각 화살이 날아든다. 토드는 백골 근위병을 세워두고 몸을 숨겼다.
투타탕!!
마력을 덧씌워둔 뼛조각들에 화살이 빽빽하게 틀어박힌다.
이를 악문 징집관이 외쳤다.
“저놈을 잡아 와···”
콰직!!
대번에 그의 몸통이 허물어졌다.
숲에서 뛰쳐나온 유령마가 섬뜩한 불꽃을 흩뿌렸다.
【잡힌 건 네놈들이다!!】
사방에서 망자들이 튀어나오자 백작령의 병사들은 혼비백산했다.
【하, 하! 하. 자진 입대를 환영한다!!】
그날 네크로폴리스는 300구의 해골을 얻었다.
///